HOME 생활/문화
[고궁 특집] 창덕궁(昌德宮), 조선왕조 정원 문화의 진수를 만나다 
창덕궁 후원에서 여물어가는 계절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사진=픽사베이)

[시사뉴스피플=박정연 기자] 산자락에 자리 잡은 창덕궁은 전통적인 궁궐 배치와는 달리 지형에 맞춰 자연친화적으로 전각을 배치했다. 특히 창덕궁 후원에는 숲과 나무, 연못, 정자 등이 조화를 이루어 한국 전통 조경의 특성과 아름다움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왕자의 난으로부터 시작된 창덕궁
태조 이성계는 1392년 조선왕조를 건국하고 1394년 조선의 도읍지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했다. 동시에 경복궁을 짓기 시작하여 1395년 조선왕조 최초의 궁궐이자 법궁(法宮, 왕이 거처하는 궁궐 가운데 으뜸이 되는 궁궐)인 경복궁을 창건했다. 

태조가 경복궁에서 정사를 돌보는 동안 여덟 왕자들 사이에서 후계자 자리를 두고 권력 다툼이 벌어졌다. 본디 태조는 막내인 방석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이었으나, 이에 불만을 품은 다섯째 아들 방원이 난을 일으켜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이 발생했다.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잡은 방원은 형 방과를 조선왕조 제2대 왕 정종으로 임금 자리에 앉혔다. 하지만 정종은 왕위 2년 만에 동생 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으니, 제3대 왕 태종이 바로 방원이다. 태종은 형제인 방석과 방번, 조선왕조 건국에 공헌한 정도전과 같은 신하들이 무참히 살해된 경복궁에 입성하는 것이 께름칙했기에 1405년 경복궁 동쪽에 새로운 궁궐인 창덕궁을 건립했다. 창덕궁(昌德宮)은 ‘덕의 근본을 밝혀 창성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창덕궁의 대표 전각이라고 할 수 있는 인정전. 이곳에서 왕의 즉위식과 외국 사신의 접견 등 국가 주요 행사가 치러졌다. (사진=박정연)

선왕조 궁궐의 역사는 법궁인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에 집중되었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고 난 후 1868년 고종이 재건할 때까지 270여 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다. 경복궁이 왕궁으로 사용된 기간은 250년에 불과하다. 반면 창덕궁은 건립 이후 임진왜란 당시 화재로 소실되었던 시기를 제외하면 순종이 창덕궁에서 승하했던 1926년까지 520여 년 동안 조선왕조의 궁궐로서 기능을 수행했다. 

창덕궁 둘러보기
①돈화문: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은 1412년 건립되었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07년 재건, 1609년 완공하여 이때의 모습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돈화문은 현존하는 궁궐의 정문 중 가장 오래된 문이다. 돈화문은 궁궐의 정문이 정전과 일직선상에 위치해있는 것과는 달리 궁궐의 서남쪽으로 치우쳐 있는데, 궁궐의 자연적 지형에 맞추어 건물을 배치한 이유로 추측된다. 돈화문은 본래 넓은 돌계단이 있는 장대석 기단 위에 세워졌으나, 일제 강점기와 광복 후에 거듭된 도로 포장으로 기단 부가 아스팔트로 덮였다. 최근 발굴을 통해 계단과 기단 일부가 제 모습을 찾았지만 전면으로 지나는 율곡로 도로면보다 낮은 모습으로 노출되어 있다. 

②인정전: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正殿)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국가의 중요행사가 행해진 궁궐의 대표 공간이다. 정조 때 신하의 품계에 따라 품계석을 설치했으며, 내부에는 1907년 순종이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할 당시 꾸며진 서양식 장식을 볼 수 있다. 인정전과 인정문은 원래 있었던 것이고, 인정전을 둘러싸고 있는 행랑은 모두 최근에 복원된 건물이다. 

창덕궁 선정전은 국왕이 거처하며 신하들과 국정을 논하던 편전으로, 현존하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다. (사진=박정연)

선정전: 선정전은 왕이 신하들과 더불어 업무를 보던 편전으로 ‘정치와 교육을 널리 펼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편전에서는 아침 조정회의, 업무 보고, 국정 세미나인 경연 등 각종 회의가 매일같이 이루어졌고, 조선 후기에는 주로 빈전, 혼전과 같은 의례적 장소로 이용되었다. 현존하는 궁궐에 유일한 청기와 건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④희정당: 왕의 비공식적인 집무실인 희정당의 본래 이름은 숭문당이었다. 1496년 ‘화평하고 느긋하여 잘 다스려지는 즐거운 정치’라는 의미를 담아 희정당(熙政堂)으로 바뀌었다. 본래 임금의 처소로 사용되어 내전에 속한 건물이었으나 순조 때부터 국정을 논하는 편전으로 사용되었다. 1917년 대화재로 소실되었지만 1920년 경복궁의 강녕전을 옮겨 재건했다. 희정당은 현관이 돌출되어 있는 점이 특이한데, 순종이 자동차를 타고 다니던 시기에 재건되었던 만큼 비를 맞지 않기 위해 돌출 현관으로 재건되었다. 내부는 카펫, 유리창문, 샹들리에 등의 서양식으로 꾸며져 있다.

⑤창덕궁 후원: 창덕궁 후원은 창덕궁 안에 있는 조선시대 정원으로 조선왕궁의 놀이와 연회 장소로 활용된 대표적인 조원(造園, 정원이나 공원) 유적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멋이 있는 공간인 이곳은 역대 조선 왕들이 여유를 즐기던 수양지이자 학업의 수련장이기도 했다. 4개의 골짜기에 각각 부용지, 애련지, 관람지, 옥류천 정원이 펼쳐진다. 1997년 창덕궁과 후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박정연 기자  ilenapark@naver.com

<저작권자 © 시사뉴스피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정연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