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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 특집] 왕실 여성들을 위해 건립된 궁궐, 창경궁(昌慶宮)
고요와 적막 속에서 창경궁을 거닐며, 과거 이곳에서 벌어졌을 일들을 상상해본다. (사진=박정연)

[시사뉴스피플=박정연 기자] 창경궁 함인정의 천장 주련에는 도연명의 ‘사시’가 사방으로 적혀 있다. 

春水滿四澤[춘수만사택] 봄에 물은 못마다 가득하고
夏雲多奇峰[하운다기봉] 여름 구름 묘한 봉우리 많기도 해라
秋月楊明輝[추월양명휘] 가을 달은 높이 떠 밝게 비추고
冬嶺秀孤松[동령수고송] 겨울 언덕 소나무의 외로움이 아름답구나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도연명의 「사시」(四時)

굴곡진 역사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 
1418년 제4대 왕위에 오른 세종대왕은 상왕(上王, 왕위를 물려준 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수강궁(壽康宮)을 지었다. 시간이 흘러 1483년 성종은 세조의 비 정희왕후, 덕종의 비 소혜왕후,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수강궁을 확장하여 별궁인 창경궁(昌慶宮)을 지었다. 이때 지은 전각으로는 현존하는 조선시대 궁궐 목조건축물 가장 오래된 명정전을 포함하여 편전인 문정전, 왕의 침전인 환경전과 왕비의 침전인 통명전 등이 있다. 

조선왕조 궁궐들이 숱한 수난을 겪어왔듯 창경궁 역시 화재가 잦아 전각이 소실되었다가 재건되기를 반복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도성 안의 모든 궁궐이 불타면서 창경궁도 소실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1616년 광해군이 창경궁을 재건하였지만, 이후에도 몇 차례 화재를 겪으며 많은 전각들이 화재로 소실되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전각 대부분은 임진왜란 이후 재건한 전각으로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명정문과 명정전, 1834년 재건한 숭문당과 함인전, 환경전, 경춘전, 통명전 등이 있다. 

창경궁이 결정적으로 훼손된 것은 일제강점기 무렵부터이다. 1909년 일제는 궁내 전각을 헐어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짓고, 1911년 창경궁의 명칭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1912년에는 창경궁과 종묘로 이어지는 산맥을 절단하여 도로를 설치하고 주변 환경을 파괴했다. 1920년대에는 일본의 국화인 벚꽃을 수천그루 심어 궁궐을 일본식으로 변모시켰으며, 일본인들이 벚꽃놀이를 즐기도록 했다. 해방 이후에도 창경궁은 계속 동·식물원으로 이용되다가 1980년대 ‘창경궁 복원 계획’이 시작되면서 창경궁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통명전은 숙종 당시 인현왕후의 처소로 사용되었으며, 장희빈이 사약을 받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사진=박정연)

창경궁은 역사적 사건들이 많이 발생한 장소이기도 하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라 명한 곳이 창경궁의 문정전이며, 사도세자는 창경궁 선인문 안뜰에 놓인 뒤주 속에서 8일간 갇혀 있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효심이 깊은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시는 경모궁을 짓고, 경모전이 잘 보이는 궁궐 내 언덕에 자경전을 지어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로했다.  창경궁은 장희빈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숙종 때 장희빈은 창경궁 취선당에서 생활했으며, 인현왕후를 저주하기 위해 통명전 일대에 흉물을 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창경궁 둘러보기

①홍화문: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은 왕과 백성이 만나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홍화문 앞에서 영조는 균역법 찬성여부를 백성들에게 직접 물었고,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여 백성들에게 손수 쌀을 나누어주며 기쁨을 함께 나눴다. 홍화문에 들어서면 맑은 물이 흐르는 금천 위로 놓인 옥천교가 있으며, 춘삼월 봄이 오면 금천과 옥천교 주위로 앵두, 자두, 살구꽃이 만개하여 장관을 이룬다. 

②명정전: 창경궁의 법전인 명정전은 성종이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616년 광해군이 재건했다. 이때의 모습을 현재까지 간직하여, 현존하는 조선시대 궁궐 목조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전각이다.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이 중층구조의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창경궁 명전전은 단층 지붕에 아담한 규모이다. 창경궁이 왕실의 웃어른을 모시기 위한 궁궐로 지어져 외전보다 내전이 발달한 이유다. 

명정전은 왕실의 공식행사를 치르던 창경궁의 중심건물로, 1616년 지어진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세월의 유구함을 느낄 수 있다. (사진=박정연)

③통명전: 통명전은 왕비의 침전으로 창경궁에 있는 내전 중 규모가 가장 크다. 경복궁의 교태전, 창덕궁의 대조전과 같이 건물 지붕에 용마루를 두지 않아 단아하고 정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각 내부에 금박으로 쓴 ‘通明殿’이라는 편액은 순조의 어필이다. 통명전은 희빈 장씨가 흉물을 묻어 인현왕후를 저주하였다가 사약을 받은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④춘당지: 창경궁 후원 영역에 있는 연못이다. 원래 이곳은 왕이 친히 모를 심고 추수하여 신하들에게 나눠주며 백성들의 생활을 몸소 체험하는 내농포(內農圃)가 있던 자리이다. 1909년 일제가 이곳을 파헤쳐 큰 연못으로 개조한 것을 1983년 이후 전통 양식의 연못으로 조성했다. 춘당지 너머로 유리건물로 지어진 대온실 식물원을 볼 수 있다. 

⑤대온실: 일제는 순종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창경궁 전각들을 헐고 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었다. 대온실은 이때 만들어진 식물원으로, 일제에 의해 훼손된 창경궁의 일면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그 자체가 역사적 가치와 건축적 의미를 지닌 근대 문화유산으로 인정,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춘당지 뒤편으로 유리 건축물인 대온실이 있다. 사진은 대온실의 외관과 내부 모습 (사진=박정연)

창경궁 관람 Tip 
˙ 주    소: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185   
˙ 운영시간: 09:00~21:00 (입장마감 20:00)
˙ 휴 무 일: 월요일
˙ 입 장 료: 1,000원

박정연 기자  ilenapar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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