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담보로 떠나는 저가여행

지난 7월 13일 캄보디아 여객기 추락사고 희생자 13명의 영결식이 현대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유가족들의 오열 속에 치러졌다. 이른 아침부터 굵은 장맛비가 내리는 가운데 영결식이 시작되자 유족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끝내 무너져버렸다.

6월 25일 오전 10시 13분(현지시각)에 PMT항공 소속 U4-241(안토노프-24)편은 시엠리아프 공항을 출발해 목적지 시아누크빌로 향했으나 이륙 37분 만에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한국인 관광객 13명을 포함해 22명이 탑승한 PMT 여객기는 관광지 앙코르 와트가 있는 시엠리아프를 출발해 서남부 해안의 시아누크빌로 가던 도중 보꼬르산에 추락했다. 사고 발생 직전 관제탑은 고도가 낮다고 경고했으나 사고기의 조종사는“이곳 지형은 내가 잘 안다”는 응답을 남겼다. 사고발생 사흘 째, 실종 여객기는 프놈펜에서 167km 떨어진 경사가 심한 산악 밀림 속에서 발견되었으며 여객기에 타고 있던 탑승객 22명이 전원 사망한 채 참혹한 모습을 드러냈다.

도마 위에 오른 동남아 저가여행
▲ 지난 7월 13일 캄보디아 여객기 추락사고로 숨진 이들의 영결식이 유가족들의 오열 속에 치러졌다.
이번에 추락한 경비행기 AN-24기는 옛 소련에서 30~40년 전에 제작한 민간 수송기로 알려졌다. 카자흐스탄이나 몽골, 캄보디아, 라오스 등 주로 옛 사회주의권 국가에서 비행기 가격이 저렴해 들여와 정기 국내선에도 이용되고 있다. 사고 발생 항공기는 낡은 것 외에 기체 정비도 불량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캄보디아 참사로 동남아 저가여행의 안전성 여부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5000여 개가 넘는 관광업체들이 출혈 경쟁을 벌이다 보니 선호도가 높은 관광 상품을 계속 내놓을 수밖에 없고 이것이 곧 질이 떨어지는 항공기 제공 등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관광협회에 등록된 해외여행 관련 업체는 서울에만 2800여 개, 전국적으로 5600여 개에 달한다. 관광 전문가들은 이러한 중소형 관광업체들의 난립으로 경쟁이 치열해져 값싼 상품을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 저급 항공기를 선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타 여행사들과 비슷한 일정과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는 여행비의 70-80%를 차지하는 항공료 절감에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나, 모두, 롯데 등 이름난 대형․
중견 여행사 일부를 빼고는 만성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여행업계의 현실이다. 특히 관광산업을 막연히 블루오션으로 착각하고 하루에도 수십 여 곳의 여행사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어 고정시장을 두고 여행사간에 벌이는 경쟁은 혈전이라 부를 정도다. 이는 필리핀, 태국, 중국 등의 동남아 현지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서도 업무 수행력조차 검증되지 않은 중소 여행사가 난립하고 있어 저가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져만 가고 있다. 문제는 여행사들의 피 튀기는 경쟁이 아닌 여행을 떠나는 여행객들의 안전이다. 여행사들이 값싼 상품을 계속 만들어내려다 보니 여행객들의 안전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며, 여행상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운송수단에 드는 비용을 낮추려다 보니 노후 항공기, 선박, 차량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저가상품의 근원 하드블럭
지난 6월 사고가 난 하나투어의 캄보디아 여행상품은 1인당 59만 9000원으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사한 여행 상품이 27만원 대까지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상품이 결코 저가상품이 아니며, 그나마 여행 상품 중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고 말한다. 59만 9000원 중 국제선 왕복 항공요금 23만 8000원, 캄보디아 국내 항공료 4만원, 국내 여행사 마진 4만원, 대리점 수수료 5만 3000원이다. 남는 12만원으로 4박 6일간의 특급호텔 숙박료, 식사,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관광지 입장료, 차량, 발 마사지, 보험료를 해결해야 한다. 대한항공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캄보디아 행 왕복 항공료는 62만 4000원이다. 그렇다면 하나투어에서는 어떻게 23만 8000원이라는 항공료가 가능했을까? 정답은 하드블럭이다. 하드블럭이란 여행사가 특정 구간의 좌석수요에 대비해 그 비용을 항공사에 선납하고 좌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이른다. 물론 선납에 따른 할인율을 적용받는다. 문제는 비수기다. 독점적 우위에 있는 항공사는 여행사에게 성수기 좌석 확보의 대가로 비수기 좌석 구입까지 요구한다. 부당해도 어쩔 수 없다. 다음 시즌 장사를 위해서는 무조건 요구에 따라야만 한다. 떠넘겨지다시피 받은 항공권 중 성수기의 경우 선점한 항공권은 웃돈을 받고 다른 여행사에 판매하거나 패키지 상품을 만들어 이익을 챙긴다. 비수기 항공권은 최소의 구입비용만 받고 이른바 299(29만9000원), 399(39만9000원)식의 초저가 마이너스 상품을 만들어 본전 확보에 주력하게 된다. 항공사들은 15명 이상의 그룹에게 미리 좌석을 판매할 때 대폭 할인혜택을 준다. 티켓은 날짜 변경이 되지 않는 것이므로 항공사 측에서는 빈 좌석으로 인한 손실을 줄일 수 있고, 여행사 측에서는 저렴하게 항공권을 확보할 수 있다. 캄보디아 씨엠립의 경우 대한항공은 24만원대, 아시아나 항공은 33만원대의 요금으로 여행사에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가여행의 함정은 쇼핑과 옵션 강요
저가여행이 성행하는 시기는 비수기이다. 동남아를 기준으로 3-6월, 10-11월이 이 시기에 해당된다. 일반적으로 최저가 패키지 상품의 경우 상품 가격이 항공권보다 더 싼 경우가 많다. 심지어 태국, 중국 등지를 19만 9000원에 다녀올 수 있다는 상품도 있다. 여기엔 항공, 호텔, 현지 교통, 입장료 등의 전 일정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대체 이런 상품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답은 현지에 공짜 여행객을 보내는 것이다. 국내 여행사가 하드블럭 좌석 소진을 위해 상품가로 비행기 원가만 챙긴 채 현지의 여행사에 비용을 전혀 지급하지 않고 여행객을 떠넘기는 행위가 그것. 현지 여행사는 평소 고객 확보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여행객을 맡게 되고, 그 순간 영문도 모르고 여행길에 오른 고객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다. 현지 여행사들은 호텔비용, 차량비용 등의 현지 행사비용 충당과 이윤 창출을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게 되는데, 이 중 쇼핑과 옵션 강요가 가장 일반적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여행사는 모객(손님을 모으는 것)이 15명 이상 되어야 이윤을 남길 수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여행사들은 랜드사(한국인 현지 여행사)에 현지 진행비를 주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캄보디아 여행상품에서 보듯이 항공료 등을 제하고 남는 돈은 12만원이다. 랜드사는 이 돈으로 4박6일간 특급호텔 숙박료, 식사,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관광지 입장료, 차량, 발 마사지, 보험료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일단 특급호텔이라고 해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가격은 훨씬 저렴하다. 개인적으로 호텔을 방문하는 것과 여행사를 통하는 요금이 다르고 게다가 비수기에 블럭을 잡는 방식을 택하면 가격은 뚝 떨어진다. 지역적으로 약간 외진 곳이라면 가격은 거기서 더 내려간다. 그렇다고 해도 그 가격에서 여행사 측에서 이익을 내기는 힘들다. 때문에 랜드사나 가이드 입장에서는 면세점이나 관광 상품 판매점과 연계해 손님을 넘길 수밖에 없다. 가이드나 랜드사가 받는 커미션은 상품 판매 가격의 30%가 넘기 때문에 서로 마진을 남기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판매가격의 몇 배나 되는 가격이 매겨지게 된다. 태국에서 일하는 한 가이드는“299(29만9000원), 399(39만9000원) 같은 여행 상품으로 오는 손님을 받으면 여행사에서 한 푼도 진행비를 못 받은 상태에서 30만원 정도 호텔비 등 현지 진행비가 들어간다. 심지어 1명당 3만원 정도를 여행사에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부 가이드들은 패키지 상품으로 와서 친척 방문 등 개인 사정으로 옵션 투어에 참가하지 않는 관광객에게‘마이너스 옵션’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강요해 마찰을 빚기도 한다. 10년 넘게 여행업에 종사해온 조모씨는“동남아의 일부 가이드들은 한국에서 오는 그룹을 돈을 주고 사는 경우까지 있다”며 “그들 입장에서 30만 원짜리 상품으로 온 관광객을 상대로 30만 원을 뽑아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고 밝혔다.

싼 게 비지떡이다
▲ 저가여행의 함정은 바로 쇼핑과 옵션강요다.
저가 여행 상품은 대개 바가지 패키지 상품이 대부분이다. 바가지 패키지의 경우 3박4일 여행에서 상점이나 면세점만 8군데 정도 들어가는 경우가 보통으로 대부분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여행객들을 차에 태우고 관광이란 명목으로 끌고 다닌다. 일반 상점에 손님들이 들어가서 자신들이 비싸게 팔아넘긴 물건 가격을 비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다. 같은 여행지라고 해도 상품 구성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중국 베이징 4일 여행상품을 취급하는 모여행사의 경우 7월 기준으로 1인당 19만9000원짜리가 있는가 하면, 119만9000원짜리도 있다. 19만9000원짜리도 왕복항공료, 인천공항세, 관광지 입장료, 차량비, 식사, 숙박비(2인1실 호텔), 여행자 보험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일정표를 자세히 살펴보면 19만9000원짜리는 중국항공사, 119만9000원짜리는 국적항공사를 이용한다. 호텔도 일반호텔에서 5성급 호텔로 바뀐다. 119만9000원짜리는 각종 옵션투어와 가이드, 기사, 인솔자 팁까지 상품 가격에 포함돼 있고, 저가 상품에는 없는 디너쇼까지 들어 있다. 반면 19만9000원짜리 상품 일정표에는 행사 일정 중 한약, 진주, 옥, 찻집, 실크, 라텍스 쇼핑 센터를 방문한다고 적혀 있다. 당연히 인솔자, 가이드, 기사 팁으로 총 40달러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안내 문구도 있다. 결국 다른 쪽에서 돈을 뽑아내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이 여행사들이 저가 정책을 쓰는 것은 국내 소비자들이 유독 ‘저가’에 집착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가격을 19만9000원, 29만9000원 이라고 적어 놓아야 문의 전화가 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계약을 할 때쯤이면 각종 옵션이나 일정 변경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필리핀 관광청에서는“여행을 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관광객의 안전이다. 저가 상품이 남발하고 있는 가운데 여행사가나서서 품질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단시간 내에 고쳐지기 힘든 문제다”라며“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인 관광객 스스로가 싼 가격만을 쫓아 구매하는 소비 패턴을 고쳐야 한다. 가격이 싼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상품을 구매하기 전 상품 가격이 적정한가를 고려하고 여행 일정과 비행편, 음식, 기타 자세한 스케쥴을 확인해야 안전사고를 막을 뿐 아니라 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전했다.
IMF로 국내 경기가 장기 불황의 늪에 빠져 들자 국내 여행경기도 급속하게 얼어붙은 후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299(29만9000원, 39만9000원)등의 초저가 여행상품. 여행사 입장에서는 위기의 타개책이었고, 소비자로서는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선택지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번 캄보디아 참사를 계기로 여행사와 소비자는 안전한 여행을 즐기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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