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담보로 떠나는 저가여행
6월 25일 오전 10시 13분(현지시각)에 PMT항공 소속 U4-241(안토노프-24)편은 시엠리아프 공항을 출발해 목적지 시아누크빌로 향했으나 이륙 37분 만에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한국인 관광객 13명을 포함해 22명이 탑승한 PMT 여객기는 관광지 앙코르 와트가 있는 시엠리아프를 출발해 서남부 해안의 시아누크빌로 가던 도중 보꼬르산에 추락했다. 사고 발생 직전 관제탑은 고도가 낮다고 경고했으나 사고기의 조종사는“이곳 지형은 내가 잘 안다”는 응답을 남겼다. 사고발생 사흘 째, 실종 여객기는 프놈펜에서 167km 떨어진 경사가 심한 산악 밀림 속에서 발견되었으며 여객기에 타고 있던 탑승객 22명이 전원 사망한 채 참혹한 모습을 드러냈다.
도마 위에 오른 동남아 저가여행

중견 여행사 일부를 빼고는 만성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여행업계의 현실이다. 특히 관광산업을 막연히 블루오션으로 착각하고 하루에도 수십 여 곳의 여행사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어 고정시장을 두고 여행사간에 벌이는 경쟁은 혈전이라 부를 정도다. 이는 필리핀, 태국, 중국 등의 동남아 현지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서도 업무 수행력조차 검증되지 않은 중소 여행사가 난립하고 있어 저가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져만 가고 있다. 문제는 여행사들의 피 튀기는 경쟁이 아닌 여행을 떠나는 여행객들의 안전이다. 여행사들이 값싼 상품을 계속 만들어내려다 보니 여행객들의 안전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며, 여행상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운송수단에 드는 비용을 낮추려다 보니 노후 항공기, 선박, 차량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저가상품의 근원 하드블럭
지난 6월 사고가 난 하나투어의 캄보디아 여행상품은 1인당 59만 9000원으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사한 여행 상품이 27만원 대까지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상품이 결코 저가상품이 아니며, 그나마 여행 상품 중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고 말한다. 59만 9000원 중 국제선 왕복 항공요금 23만 8000원, 캄보디아 국내 항공료 4만원, 국내 여행사 마진 4만원, 대리점 수수료 5만 3000원이다. 남는 12만원으로 4박 6일간의 특급호텔 숙박료, 식사,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관광지 입장료, 차량, 발 마사지, 보험료를 해결해야 한다. 대한항공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캄보디아 행 왕복 항공료는 62만 4000원이다. 그렇다면 하나투어에서는 어떻게 23만 8000원이라는 항공료가 가능했을까? 정답은 하드블럭이다. 하드블럭이란 여행사가 특정 구간의 좌석수요에 대비해 그 비용을 항공사에 선납하고 좌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이른다. 물론 선납에 따른 할인율을 적용받는다. 문제는 비수기다. 독점적 우위에 있는 항공사는 여행사에게 성수기 좌석 확보의 대가로 비수기 좌석 구입까지 요구한다. 부당해도 어쩔 수 없다. 다음 시즌 장사를 위해서는 무조건 요구에 따라야만 한다. 떠넘겨지다시피 받은 항공권 중 성수기의 경우 선점한 항공권은 웃돈을 받고 다른 여행사에 판매하거나 패키지 상품을 만들어 이익을 챙긴다. 비수기 항공권은 최소의 구입비용만 받고 이른바 299(29만9000원), 399(39만9000원)식의 초저가 마이너스 상품을 만들어 본전 확보에 주력하게 된다. 항공사들은 15명 이상의 그룹에게 미리 좌석을 판매할 때 대폭 할인혜택을 준다. 티켓은 날짜 변경이 되지 않는 것이므로 항공사 측에서는 빈 좌석으로 인한 손실을 줄일 수 있고, 여행사 측에서는 저렴하게 항공권을 확보할 수 있다. 캄보디아 씨엠립의 경우 대한항공은 24만원대, 아시아나 항공은 33만원대의 요금으로 여행사에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가여행의 함정은 쇼핑과 옵션 강요
저가여행이 성행하는 시기는 비수기이다. 동남아를 기준으로 3-6월, 10-11월이 이 시기에 해당된다. 일반적으로 최저가 패키지 상품의 경우 상품 가격이 항공권보다 더 싼 경우가 많다. 심지어 태국, 중국 등지를 19만 9000원에 다녀올 수 있다는 상품도 있다. 여기엔 항공, 호텔, 현지 교통, 입장료 등의 전 일정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대체 이런 상품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답은 현지에 공짜 여행객을 보내는 것이다. 국내 여행사가 하드블럭 좌석 소진을 위해 상품가로 비행기 원가만 챙긴 채 현지의 여행사에 비용을 전혀 지급하지 않고 여행객을 떠넘기는 행위가 그것. 현지 여행사는 평소 고객 확보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여행객을 맡게 되고, 그 순간 영문도 모르고 여행길에 오른 고객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다. 현지 여행사들은 호텔비용, 차량비용 등의 현지 행사비용 충당과 이윤 창출을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게 되는데, 이 중 쇼핑과 옵션 강요가 가장 일반적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여행사는 모객(손님을 모으는 것)이 15명 이상 되어야 이윤을 남길 수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여행사들은 랜드사(한국인 현지 여행사)에 현지 진행비를 주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캄보디아 여행상품에서 보듯이 항공료 등을 제하고 남는 돈은 12만원이다. 랜드사는 이 돈으로 4박6일간 특급호텔 숙박료, 식사,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관광지 입장료, 차량, 발 마사지, 보험료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일단 특급호텔이라고 해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가격은 훨씬 저렴하다. 개인적으로 호텔을 방문하는 것과 여행사를 통하는 요금이 다르고 게다가 비수기에 블럭을 잡는 방식을 택하면 가격은 뚝 떨어진다. 지역적으로 약간 외진 곳이라면 가격은 거기서 더 내려간다. 그렇다고 해도 그 가격에서 여행사 측에서 이익을 내기는 힘들다. 때문에 랜드사나 가이드 입장에서는 면세점이나 관광 상품 판매점과 연계해 손님을 넘길 수밖에 없다. 가이드나 랜드사가 받는 커미션은 상품 판매 가격의 30%가 넘기 때문에 서로 마진을 남기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판매가격의 몇 배나 되는 가격이 매겨지게 된다. 태국에서 일하는 한 가이드는“299(29만9000원), 399(39만9000원) 같은 여행 상품으로 오는 손님을 받으면 여행사에서 한 푼도 진행비를 못 받은 상태에서 30만원 정도 호텔비 등 현지 진행비가 들어간다. 심지어 1명당 3만원 정도를 여행사에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부 가이드들은 패키지 상품으로 와서 친척 방문 등 개인 사정으로 옵션 투어에 참가하지 않는 관광객에게‘마이너스 옵션’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강요해 마찰을 빚기도 한다. 10년 넘게 여행업에 종사해온 조모씨는“동남아의 일부 가이드들은 한국에서 오는 그룹을 돈을 주고 사는 경우까지 있다”며 “그들 입장에서 30만 원짜리 상품으로 온 관광객을 상대로 30만 원을 뽑아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고 밝혔다.
싼 게 비지떡이다

IMF로 국내 경기가 장기 불황의 늪에 빠져 들자 국내 여행경기도 급속하게 얼어붙은 후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299(29만9000원, 39만9000원)등의 초저가 여행상품. 여행사 입장에서는 위기의 타개책이었고, 소비자로서는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선택지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번 캄보디아 참사를 계기로 여행사와 소비자는 안전한 여행을 즐기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NP
장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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