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조항 파기 후에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

국내 최대 규모의 놀이공원인 삼성 에버랜드. 일 년 내내 화려한 공연과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에버랜드에서 지난 6월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 퍼레이드 공연을 하고 있는 외국인 무용수들이 노예계약과 다름없는 열악한 조건으로 고용되어 일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파문을 일으켰다.


관객들에게 환한 웃음과 열정적인 춤으로 즐거움을 선사하는 외국인 무용수들이 무대 뒤에서는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받으며 눈물로 얼룩진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용인 에버랜드에서 무용수로 일하던 옥사나씨의 사연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관한 비인간적 처우에 대한 사회적 파장이 크게 일었다. 이번 사건은 삼성 에버랜드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는 점에서 충격이 더욱 컸다. 다산인권센터, 이주노조, 민주노총 경기본부, 민주노동당 경기도당 등 10여 개의 단체로 구성된‘삼성 에버랜드 공연단 이주노동자 노동권과 인권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6월 21일 용인 삼성 에버랜드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연단 이주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보장을 촉구했다.

외국인 무용수, 겉모습처럼 화려하지 않아

▲ 노예계약으로 고통을 받았던 옥사나씨.사진출처는 다산인권센터의 박김형준씨.
현재 에버랜드에서 근무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략 150여 명으로 이들 중 대부분은 퍼레이드 등 공연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에버랜드에서 근무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대부분이 러시아 사람들이며 남미와 중국에서 온 노동자들도 있다. 이들 중 우크라이나에서 온 무용수들은 모국에서 무용을 전공한 이들이며 에버랜드 용역회사인 동일엔터테인먼트가 직접 우크라이나 무용학교와 접촉하여 학교가 중간에 연결을 해주고 팀으로 한국에 들어온 경우가 많다. 이 밖에도 다양한 경로로 에버랜드에서 근무하게 된 외국인 무용수들은 옥사나씨의 사건이 보도되기 전까지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주 6일 근무를 해야 했다. 이밖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들이 서명한 근로계약서에 의해 다음과 같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산재 사고 발생시 산재신청을 하지 못하고 강제출국 ▲장시간 매우 힘들게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지급 ▲2회 이상 메이크업(분장)을 잘못하면 월급에서 10만원을 공제 ▲ 연습할 때 힘들다고 앉거나 공연을 잘 못할 경우 10만원을 공제 ▲휴게시간에도 자유롭게 쉬지 못하고 지정된 휴게장소가 아닌 곳에서 쉬면 10만원을 공제 ▲지각을 3회하면 월급에서 10만원을 공제 ▲근로계약서 작성 당시 맨 겉장과 마지막 장만 보여주고 서명을 강요 ▲임금은 통장으로 주지 않고 직접 지급하는데 얼마의 임금을 지급했는지에 대한 명세서 주지 않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삼성 에버랜드 측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인권을 침해하는 비인도적인 처우를 보이기도 했다. ▲옷 갈아입는 장소가 없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복도에서 옷을 입음 ▲금발머리로 강제 염색을 해 심한 탈모증상이 나타남 ▲추운 겨울에도 연습이건 공연이건 얇은 옷 하나만 입고 춤을 춰야 하기 때문에 감기에 잘 걸림에도 심한 감기에 걸려 열이 나는 경우에도 일을 강행시킴 ▲무거운 복장의 어깨끈에 의해 피가 나는데도 어떠한 조치 없이 계속 춤을 추게 함 ▲공연 도중 호스로 물을 뿌리는데 이 물이 눈에 맞아 고름이 생기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을 근처의 지하 어딘가로 데려가 의사도 아닌 사람이 수건에 싸 가지고 온 칼로 수술을 시행함. 이렇게 에버랜드 측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비인간적 처우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들은 남몰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 무용수, 이래서 울었다
▲ 지난 6월 삼성에버랜드 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과 인권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출처는 다산인권센터의 박김형준씨.
에버랜드의 무용수인 옥사나씨는 지난 2006년 11월 공연 도중 2m 10cm 높이의 계단에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옥사나씨는 용인서울병원에서‘좌측 족관절 염좌’판정을 받고 2주간 깁스를 하게 됐다. 병원 측에서는 이후 2주의 휴가를 권유했으나 회사의 근로 강요와 임금공제에 대한 부담 때문에 옥사나씨는 곧바로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다리와 허리에 계속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으며 발가락과 발바닥 감각이 없어지고 다리가 붓는 등의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옥사나씨는 이에 대해 산재처리는 물론 의료보험도 적용받지 못했다. 사고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옥사나씨는 지난 3월 13일부터 또다시 6.5kg의 나비날개를 허리에 부착하고 공연을 시작해 허리 통증이 더욱 가중되었으나 이를 참아가며 공연을 계속하다가 4월 19일 공연 도중 쓰러졌다. 아주대학병원에 입원한 옥사나씨는 디스크 판정을 받았으며 당시의 충격으로 10여 일 동안 하혈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 에버랜드 측에서는 산부인과의 진료를 받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은 비단 옥사나씨 뿐만이 아니다. 옥사나씨는 에버랜드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처우에 대하여“에버랜드에서는 몸에 맞지 않는 무거운 옷을 입히고 춤을 추게 합니다. 감기에 걸려도 계속 일을 시킵니다. 생리통이 심해도 일을 시킵니다. 가발을 쓰는데도 한 달에 한 번 염색을 꼭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머리도 많이 빠집니다. 염색을 안 하는 경우 100달러의 벌금을 냅니다”라며“에버랜드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많이 아픕니다. 카챠라는 분은 허리를 다쳤는데도 회사에서 병원에 데려다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4일 만에 우크라이나로 돌려 보냈습니다. 로마라는 분도 디스크로 쓰러졌는데 일어나지도 못하는 사람을 그대로 누워 있는 상태로 비행기에 실려 보냈습니다. 그 분은 모스크바에서 수술을 했고 지금 두 번째 수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아파서 일을 못하는 동안 월급을 못 받았고 심하면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라고 밝혔다.

노예계약서 파문, 누구의 잘못인가
현재 에버랜드에서 근무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는 동일엔터테인먼트와 일대일 근로계약을 한 뒤 파견 근로자 신분이다. 에버랜드에서는 이번 외국인 노동자와 관련된 노예계약에 대하여 에버랜드는 동일엔터테인먼트에서 보내주는 인력을 파견 받아 활용했을 뿐, 이들이 어떤 근로계약을 맺었는지 알지 못했다고 해명하고 파견근로법상 관여할 수도 없다는 주장을 했다. 법적 관계로만 보면 에버랜드 측의 해명이 틀리지는 않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에버랜드의 해명은 궁색한 핑계에 불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근무하는 곳은 에버랜드이고, 이들의 근로를 지휘·감독하는 곳 역시 에버랜드이기 때문이다. 에버랜드 측에서는 개별 계약에 건건이 관여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실제 공연노동자의 업무지시나 관리 감독 그리고 의상까지 에버랜드가 다 관여하면서 일을 시켜왔다. 때문에 계약서의 내용을 전혀 모른다거나 개별계약에 관여할 수 없다는 에버랜드 측의 해명은 타당성이 없다. 중요한 것은 계약서의 독소조항 적용 여부가 아니라 노동법과 노동자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를 전혀 모르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그런 노예계약을 강요했다는 그 자체다. 이러한 전반적인 상황을 살펴보았을 때 동일엔터테인먼트는 노동자들에게 통역과 기본적인 관리만 했을 뿐, 그 밖에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직접적인 업무지시와 관리감독은 실질 사용주인 삼성 에버랜드가 해왔다. 때문에 지난 10여 년 동안 외국인 무용수들을 이끌고 공연을 해온 에버랜드는 도덕적․사회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독소조항 파기, 여전히 개선의 여지는 남아
▲ 화려한 의상을 입고 공연을 펼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이들은 현대판 노예계약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각종 언론에 노예계약 사건이 보도된 이후 삼성 에버랜드 측에서는 옥사나씨를 비롯한 공연단 이주 노동자들과 맺은 계약서의 심각한 인권침해 내용을 인정하고 공연 노동자들에게 15%의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조건 개선안을 담은 새로운 계약서를 노동자들에게 제시했다. 그러나 계약서에는 여전히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침해하는 독소조항들이 남아 있다. 다음은 새로운 근로계약서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이다. ▲식당과 기숙사에 대한 조항을 개선하라. 기존 근로계약서에는 기숙사 출입 제한과 반드시 기숙사에 기거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새로이 작성된 근로계약서에도 노동자는 반드시 정확히 식사를 하고 기숙사에 거주해야 하며 기숙사 외의 다른 곳에는 기거하지 못한다. 특히 기숙사에는 감시카메라 6대가 부착되어 있어 외국인 노동자는 반 감금상태에 놓여 있다. ▲산업안전에 대한 에버랜드의 의무가 반영되지 않았다. 에버랜드에서는 무거운 소품과 산업안전에 대한 소홀로 외국인 노동자의 산업재해가 빈번히 일어난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산업안전보건법상‘건강진단’과‘작업중지권’,‘안전보건관리규정비치’ 등 안전관리와 산재예방에 대한 조항이 반드시 필요하다.‘파견근로자보호등에 관한 법률’에서도 사용사업주인 에버랜드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강도 높은 공연노동에 대한 적정한 임금 책정하지 않았다. 현재 에버랜드에서 근무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은 최저 수준이다. 그들의 힘든 노동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에 적정한 임금 인상이 필요하며 매년 임금은 물가변동 등을 고려하여 인상되어야 한다. ▲퇴직금과 연차유급휴가를 부여할 수 있도록 근로기간을 1년으로 정정해야 한다. 기존 노동자들의 공연기간은 1년보다 짧다. 공연비자의 기간이 1년임에도 불구하고 옥사나씨의 기존 계약서는 2006년 10월 14일부터 2007년 9월 7일로 되어 있다. 계약기간이 1년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 사업주는 퇴직금과 연차 휴가 등의 의무에서 벗어나며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1년을 조건으로 받을 수 있는 법정 퇴직금과 연차유급휴가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연습시간과 대기시간을 근로시간에 포함시켜야 한다. ▲파견사업주와 사용사업주의 책임을 잘 모르는 노동자와의 계약체결은 파견사업주와 이루어질 지라도 계약서에 파견사업주와 사용사업주의 책임을 서문에서 함께 명시해야 한다. 현재 에버랜드에서 근무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몇 가지 변화된 노동 조건을 반기고 있으나 에버랜드의 노동자들에 대한 관리 감독은 더욱 철저해졌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외부인과의 만남에 대한 경계가 강화되었으며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필요한 새로운 근로계약서에 사인을 강요당하고 있다.
삼성 에버랜드의 외국인 노예계약에 관한 사건은 에버랜드에서 근무하고 있는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나라를 찾아 온 모든 외국인 노동자들의 문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비인간적 처우에 대해 다시 한 번 각성해야 할 것이다. NP

다산인권센터 김경미 활동가
이 같은 문제의 발단 원인을 거슬러 올라갔을 때 이주(외국인)정책에 대한 부분과 마주하게 된다. E-6(연예비자)로 들어오는 노동자들의 문제는 이번 한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2000년대 초반 연예비자로 들어온 여성들이 브로커들의 잘못된 정보에 의해 한국에 들어와 강요된 노동과 성매매까지 강요당했다. 이렇게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어왔지만 법적인 제도나 정책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현실이기에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공연예술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임금도, 쉴 시간도 보장받지 못하고 아프면 바로 쫓겨나야 하는 가장 극악한 처지로 내몰린 공연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경우다. E-6 비자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특수한 조건은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이 그러하듯이 단기 체류에 6개월 단위로 갱신을 해야 하고 1년간의 체류만 허용되기 때문에 더더욱 업체가 강요하는 노동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6비자는 이른바 공연/예술 활동을 하는 비자라 하여 취업 활동이라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노동법 상의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고 노동시간도, 임금도 사용주 마음대로다. 또 다른 옥사나씨가 나오지 않게 하기위해서는 삼성 에버랜드뿐만 아니라 E-6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일하고 있는 다른 공연 노동자들에 대한 철저한 노동실태 조사가 정기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일을 하다가 부당한 일을 당했을 경우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공연 노동자로서의 권리가 어떤 것이 있는 사전 정보를 제공해 주어야하고 기본적인 한국어 교육을 포함한 한국생활에서 필요한 교육을 보장해 주어야한다. 마지막으로 옥사나씨의 산재인정과 공연/예술이주노동자들의 노동자성과 인권이 보장 될 때까지는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본다. 삼성 에버랜드의 싸움이 더 큰 이주 노동자운동과 권리 확대로 번져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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