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태유 논설위원

 [시사뉴스피플=진태유 논설위원] 우리는 세계적인 유행병인 코로나19 위기의 영향으로 세계의 지정학적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이런 세계사적 변화의 동력은 그 시대의 기존 사회적 추세의 가속화 혹은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는 지금보다 더 좋아질지 더 나빠질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세계의 모든 나라는 2개월 동안 앞으로의 사회적·경제적 미래에 대한 제 각기 다른 고민을 안고 이 위기를 겪고 있는 중이다. 이에 당장의 발밑에 떨어진 위기의 지속 기간, 규모 또는 극복 방법을 찾기에 매몰되어 있어 미래의 국제질서의 변화에 대응할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코로나19에 의한 지금의 충격이 오히려 ‘각자도생(各自圖生)’, ‘홀로서기’ 위기 이후의 국제질서를 관측할 수 있는 계기도 된다.

첫 번째 관측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초강대국 미국의 시대에 세워진 국제 질서가 더 이상 21세기 다극화된 세계권력 균형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코로나 위기이전에도 미국 주도 국제질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더 멀리 1989년 공산주의 국가들의 블록(bloc)이 붕괴되면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냉전의 종식, 소련의 붕괴, 중국의 부상(浮上), 미국-소비에트의 양극성에 기반을 둔 세계의 균형이 점차적으로 불균형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국제관계의 양극성 질서가 다극성 무질서로 대체되었으며 이는 사실상 다자간 글로벌 지역관할 방식으로 재편성되었다.

역설적으로 다자간 국제질서의 변화가 이번 코로나19의 위기에 치명적인 함수로 작용했다. 즉, 코로나19의 발생지라 할 수 있는 중국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위기에 봉착하게 되면 지정학적 결함을 야기하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또한 다극성 국제질서의 큰 축인 중국의 부상(浮上)이 전체 시스템을 어느 정도 불안정하게도 만들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 사회에 전염병 위험에 대해 경고를 지연시킨 배후에는 중국이 있다. 이러한 지연경고는 WHO를 중국이 장악하고 유엔에 대한 침투공작 정책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이로 인해 중국과 다극성 국제질서의 또 다른 큰 축인 미국의 경쟁은 바이러스의 발생지 논란에 대한 상호 비난의 배경으로 악화되었다. 이 두 강대국은 종종 자신의 국가 내에서 코로나 위기를 더 잘 극복하려는 의지보다는 양자 간 대결에 더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두 번째 관측은, 미국은 지난 20세기에 부여된 글로벌 리더십의 역할을 더 이상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 스스로가 최근 몇 년 동안 점점 더 그 역할을 꺼려왔다. 미국은 특히 코로나 위기로 국력이 약화되면서 글로벌 리더십을 완전히 상실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화상회의를 통해 의장직을 맡은 국제회의에 참석했지만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 즉, 미국 주도의 유엔안전보장 이사회가 마비되면서 미국의 위상은 추락되고 말았다.

한편, 다극성 국제질서의 또 다른 한 축인 유럽연합(EU)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 공격에 저항하지 못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전염병에 직면하여 가장 피해를 입은 회원국들 간의 연대를 조직하지 못했다.

유럽 국가들의 이기심과 국경봉쇄는 유럽연합의 두 기둥인 1985년에 서명된 솅겐(Schengen) 조약이 적용되는 유럽의 26개 국가의 영역과 단일시장을 위태롭게 했다. 미국에 버림받고, 중국에 먹잇감이 되고, 러시아와는 냉담한 EU는 여전히 다자주의를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EU는 동아시아(한국, 일본)와 함께 지금의 위기를 넘어 더 공정하고 더 안전한 위기 이후 국제질서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경제재건을 서로 굳게 결속하여 과감하게 조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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