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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희생의 정점
[시사뉴스피플 김준현 대 기자 겸 칼럼니스트]

 19년 전 일본 도쿄 신 오쿠보역에서 대한민국 청년 이수현이 선로에 치어 목숨을 잃었다. 이 청년의 죽음을 보고 일본 열도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꽃을 들고 찾아와 조화를 바치며 눈물을 흘렸다.
왜 일본인들은 한국 청년의 죽음 앞에 이토록 슬퍼했을까. 그가 철로에 떨어진 한 일본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인간을 감동시키는 데는 고귀한 희생처럼 와 닿는 것은 없다. 50년 전 아프리카 지역에서 발생한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했을 때 한 어머니의 품속에서 어린아이가 살아있었다. 극한 상황에서 어머니는 온몸으로 아이를 안아 생명을 지킨 것이다.
충북 청주시에 내려오는 조선시대 어머니의 희생 설화가 있다. 엄동설한 한 어머니가 젖먹이를 업고 산길을 가다 폭설을 만났다. 산은 이미 눈에 덮여 어머니는 길을 잃고 말았다. 한 치 앞을 걷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머니는 아이를 가슴에 안고 눈보라와 추위를 피했다. 그 이튿날 동네 사람들이 달려와 보니 눈에 덮여 동사한 어머니 가슴 속에 젖먹이는 평온한 얼굴로 색색거리며 자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민담 속의 바리공주 설화는 버린 딸이 나중에 부모를 살려낸다는 효행 드라마다. 한 나라의 국왕에겐 여섯 딸이 있었는데 나중에 낳은 딸을 궁에서 쫓아냈다. 그런데 왕이 병들자 궁중에서 자란 공주들은 약을 구하러 가지 않았다.
약이 있다는 곳이 바로 인간이 가기 힘든 저승이었기 때문이다. 부왕의 병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들은 바리공주는 저승으로 간다. 그녀는 온갖 고생 끝에 부왕의 약인 양유수 꽃을 구해 돌아오는 것이다. 집안에서 부모 사랑을 받고 곱게 자란 자식들보다는 거칠고 힘겹게 산 자녀들이 더 효자가 된다는 속설이 생긴 것인가.
헐리웃 명배우 오드리 헵번은 은퇴 후 아프리카로 떠나 63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희생적인 삶을 살았다. 유엔 친선대사로서 기아와 질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버림받은 흑인들을 도운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아프리카로 떠날 때 언론과 교인들은 쇼를 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헵번은 개의치 않고 자신의 길을 갔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영화배우 리즈테일러는 다음과 같이 애도하며 눈물을 흘렸다. ‘하늘이 가장 아름다운 천사를 갖게 됐다.’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만찬 하면서 친히 모두의 발을 씻겨 주었다. 자신을 고발한 유다의 발도 씻겨 주었다. 요한복음에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예수는 모든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라는 교훈을 주었다.
병자를 간호하고 치료하며 가난한 이웃들에게 사랑과 봉사만을 실천해 왔던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밖은 장본인들은 이민족이나 로마병정도 아니었다. 같은 이스라엘 민족, 바리새인과 권력에 유착된 제사장들이었다. 예수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앗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헵번은 자신들을 비난하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보냈다.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봐라’라고. 바른 심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희생은 감동으로 와 닿는 것인가. 

김준현 기자  junhye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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