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주의가 허위 학력 부추겨

지난 7월,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학력 위조 사건은 미술계 뿐 아니라 학계에도 큰 충격을 던져 주었다. 광주 비엔날레 예술 감독이기도 했던 신정아씨는 예일대에서 미술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주장했으나 거짓으로 드러났고, 학사, 석사 학위 또한 가짜인 것으로 밝혀져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동국대는 지난 8월 3일 허위 학력으로 물의를 일으킨 신정아씨를 파면했다. 동국대는 이날 서울 중구 필동 대학 본관 대회의실에서 신정아씨가 불참한 가운데 징계위를 열고, 징계위원 7명 중 참석한 5명의 만장일치로 신정아씨의 파면을 결정했다. 이미 학력 위조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정아씨의 가짜학위 사건 이후, 학력 위조의 파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신정아씨의 가짜 학위 파문이 가라앉기도 전에 KBS FM 라디오 ‘굿모닝팝스’의 진행자였던 스타 영어강사 이지영씨 또한 학력을 속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만화가 이현세씨도 최근 출간한 책을 통해 자신의 학력이 대학 중퇴가 아닌 고졸이라고 밝혔다.

신정아, 가짜 학위 파문의 도화선
▲ 가짜 학위 파문으로 물의를 일으킨 신정아씨.
▲1992년 미국 캔자스대 미술대학 입학 ▲1994년 서양화, 판화 전공으로 졸업 ▲1995년 미국 캔자스주립대 경영대학원 석사학위(MBA) 수여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생존자 주장 ▲1996년 미국 예일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과정 입학 ▲1997년 미국 캔자스주립대 유니언갤러리에서 개인전 ▲1998년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금호미술관 방재용 화재가스 누설사고와 어린이 한 명이 죽는 사고, 예일대 박사학위 허위에 대한 의혹으로 권고사직 ▲2002년 성곡미술관으로 이직 후 수석 큐레이터, 학예연구실장 ▲2005년 예일대에서 미술사학으로 박사학위 수여 ▲2005년 동국대 조교수 특채, 교수들의 반대로 수업 못하고 6개월 휴직(임용 당시부터 동국대 예술대학 A교수가 논문표절과 박사학위 위조 혐의를 들어 임용 철회를 학교 측에 수차에 걸쳐 진정) ▲2007년 7월 광주 비엔날레 재단 이사회로부터 예술감독으로 내정. 신씨가 주장하는 이력은 참으로 화려했다. 1997년 신씨는 미국 캔자스 주립대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는 내용이 담긴 이력서를 들고 금호 미술관에 찾아갔다. 전시장 영어 아르바이트생으로 채용된 신씨는 이후 미술관 문제로 수석 큐레이터가 책임자와 결별을 선언하며 동료 큐레이터와 퇴사하자 금호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로 올라섰다. 2002년 성곡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긴 신씨는 그곳에서도 역시 다른 큐레이터들이 퇴사해 유일한 큐레이터 겸 학예실장이 되었다. 미술계 등장 때부터 ‘삼풍백화점 참사 생존자’라는 사실로 주목을 받은 신씨는 이후 예일대 박사과정 중이라는 말로 관심을 모았다. 미 뉴욕 현대미술관의 인턴십을 거쳤다는 그는 2002년까지 주요 미술대학원 강사를 겸임하는 등 승승장구했으며 유명 전시회도 기획해 지난해에만 ‘존 버닝햄 40주년 기념전’, ‘김세중 조각상 20주년 기념전’, 한․불 120주년 기념 ‘알랭 플래셔’ 등 굵직한 미술전을 소화해 냈다. 지난 7월 5일에는 30대 여성으로는 이례적으로 우리나라 최대 미술전시회 중 하나인 광주비엔날레의 예술감독에 선임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신씨의 허위 학력에 대한 의혹은 더욱 증폭되어 왔으며, 지난 7월 12일 이상일 동국대 학사지원본부장은 “예일대에 확인 공문을 보낸 결과 예일대 리처드 레빈 총장 명의로 신정아씨의 예일대 미술사학 박사학위가 허위이며, 학생으로 등록한 기록도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전했다. 또한 신씨가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했다고 주장한 캔자스 대학에서도 “신씨의 졸업사실이 없다”고 전해 그동안 신씨의 허위 학력에 대한 의혹이 사실이었음이 밝혀졌다.

계속되는 허위 학력 파문
▲ KBS 2FM라디오 굿모닝팝스 진행자였던 이지영씨는 허위 학력을 바탕으로 7년간 방송을 진행하고 여러 권의 영어 교재를 펴낸 인기강사였다.
신정아 학위 위조 파문 이후로 저명인사들의 허위 학력이 속속 밝혀지고 있어, 허위 학력 파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영어 강사 이지영=KBS 2FM라디오 굿모닝팝스 진행자였던 이지영씨는 허위 학력을 바탕으로 7년간 방송을 진행하고 여러 권의 영어 교재를 펴낸 인기강사였다. 이씨는 그동안 중학교 3학년 때 영국으로 건너가 브라이튼대를 졸업한 후 1996년 언어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고 알려졌다. 영국에서 돌아와 한 영어학원에서 인기강사로 이름을 알린 이씨는 지난 2000년부터 굿모닝팝스의 진행을 맡았으며, 2004년과 올해 2월『영치탈출24』『이지영의 토킹 보카(VOCA)』를 출간하고, 지난 2006년 말에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굿나잇 팝스’라는 개인 방송을 시작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지난 2004년 KBS TV․라디오 부문 최우수 MC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씨는 지난 7월 19일 자신의 학․석사 학력이 허위임을 시인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창하=‘이창하 디자인 연구소’대표, 김천과학대학 공간리모델링 학과장 이창하씨는 미국 뉴브리지대학(New Bridge University)에 1992년 입학해 1966년 8월에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2001년 7월 건축설계 회사인 ‘이창하 디자인 연구소’를 설립한 이씨는 그해 8월부터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기코너였던 ‘신동엽의 러브하우스’에 출연해 유명세를 탔다. 2002년 1월 김천과학대학 도시디자인 계열 학과장으로 취임한 이씨는 같은 해 3월에는 숙명여대 환경디자인대학원 및 한양대학교 응용미술 박사과정에 출강했으며 지난 2006년부터 대우조선건설 관리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학력 위조 의혹이 제기된 후 이씨는 자신의 학력 위조가 사실임을 인정하고 재직중인 김천 과학 대학의 교수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동국아트센터 대표 김옥랑=1984년 꼭두극단 ‘낭랑’창단한 김옥랑씨는 1989년 동숭아트센터 건립, 1991년 옥랑문화재단 설립, 1994년 하이퍼텍나다 개관 등 공연을 중심으로 문화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경기여중, 경기여고, 이화여대 영문과 출신으로 미국 퍼시픽웨스턴대를 졸업했다는 이력을 바탕으로 김씨는 2000년 ‘민간 운영 문화공간의 경영방안에 관한 연구: 동숭아트센터의 운영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성균관대 예술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지난 2002년 단국대 산업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이어 2003년에는 성균관대에서 ‘한국 문화공간으로서 동숭아트센터의 역할과 의미에 관한 연구: 문화연구 개념 적용과 수용자 연구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예설경영학 박사학위 1호로 주목받았다. 지난 7월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한 김씨는 학력 위조 사실을 대부분 시인했으며, 성균관대에서는 “미국대사관 쪽과 해당 대학 등에 자료를 요청해 놓은 상황으로, 자료가 들어오는 대로 대학원위원회를 소집해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며 “학사 학위에 문제가 있다면 석·박사 학위는 취소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학력 위조, 학원가도 예외 없다
▲ 동숭아트센터 대표인 김옥랑 교수는 허위 학력을 바탕으로 성균관대 석·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단국대 교수로 임용되었다.
유명 인사들의 학력 위조가 속속 드러남에 따라, 학원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강남&#8228;강동교육청 등이 제출한 학원 강사 3,200명의 학위 진위 여부를 조사한 서울 송파경찰서는 학위 위조 전문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가짜 대학 졸업증명서 등을 발급받은 김모씨 등 전&#8228;현직 학원 강사 31명을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적발된 강사들은 대부분 대학을 중퇴하거나 전문대 졸업, 담당과목과 관련이 없는 학과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브로커로부터 허위 유명 사립대 졸업 증명서를 구입하거나 인터넷에서 졸업증명서 양식을 내려 받아 학력을 위조했다. 학원 강사들의 가짜 학위에 대한 경찰 수사도 전국으로 확대된다. 경찰청은 학원 강사의 학력 위조 실태가 만연하고 있다는 판단 하에 학원 강사들의 허위 학력을 단속하고자, 전국 지방경찰청에 전면 수사에 나설 것을 지시했다. 경찰청은 “서울과 부산, 대구 등을 우선 수사한 결과 학력 위조가 예상보다 심각했다”며 “전국의 학원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수사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의 허위 학력에 대한 단속이 시작되자, 허위 학력으로 적발된 강사가 근무한 학원에서는 소문이 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각종 경시 대회 전문인 서울의 A학원은 경찰이 학력을 조사하기 시작한 이후 강사 3명이 소리 소문 없이 관뒀고, 급히 다른 강사로 대체했다. 학원측에서는 강사의 개인 사정이라는 말로 상황을 설명했으나 학부모측에서는 “이번 주부터 일부 과목부터 각종 경시대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강사가 바뀌다니 말이 되느냐”며 “알아보니 석사라고 학력을 위조했던 사람들이 수사 결과가 다 나오기 전에 관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교육청에서도 학력을 속인 강사들을 학원가에서 퇴출시키는 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시교육청은 올 연말까지 수사당국에서 이미 조사받은 7000여명 외에 4만1000여명에 이르는 서울 지역 모든 학원 강사의 최종학력을 조회할 계획이다. 시교육청은 우선 11개 지역교육청별로 조사계획을 수립한 뒤 학력 위조 가능성이 높은 입시·보습·어학 학원 총 6838곳의 강사 3만5023명의 학력을 대학 등의 협조를 통해 조회할 방침이다. 이어 행정고시와 기술고시 학원 등 성인고시학원을 조사한 뒤 기술학원이나 바둑학원 등 학력을 속일 가능성이 적은 직업평생교육학원 강사들의 학력까지 조회키로 했다. 이와 함께 시교육청은 지난 5월부터 실시해온 신규 강사 학력조회 대상을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등 서울 주요대학에서 지방대학을 포함한 모든 대학으로 확대키로 했다. 시교육청은 조사결과에 따라 학력 위·변조 강사를 수사당국에 고발하고 필요할 경우 학원 설립·운영자에 대해서도 영업정지 등 강력한 행정조치를 가할 방침이다.

학벌주의가 학력 위조 조장
연일 불거지고 있는 학력 위조 문제는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학력 위조로 물의를 빚은 유명인사는 한 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학력위조는 갈수록 그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나 교육계에서의 학력 위조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올해 초 경찰청 특수수사과에서는 서울대&#8228;연대&#8228;고대 졸업생을 사칭한 학원 강사 20여 명을 적발했으며 지난 13일 서울경찰청은 비인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현직 대학교수 등 60여 명을 입건하기도 했다. 이 같은 학력 위조 적발 건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검색 포털사이트 엠파스에서 최근 ‘잇따른 학력 위조,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789명의 응답자 중 2160명(77%)은 대학 간판만 보고 뽑는 학벌 사회가 문제라고 답했다. 반면 학력을 속인 개인의 욕심이라고 답한 응답자도 629명(23%)이나 나왔다. 네티즌 ‘샤미는정보통’은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능력이 좋아도 학력이 낮거나 학벌이 안 좋으면 푸대접을 받기 일쑤”라며 “좋은 대학만 나왔다고 하면 무조건 뽑아주고 대접해주는 이 사회가 문제”라고 말했으며, 또 다른 네티즌 ‘e2000news’는 “개인의 실력을 인정해주는 사회 풍토가 일찍부터 만들어졌다면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취직을 하려면 명문대가 우선시되고, 말로는 학력 철폐라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고 전했다. 그러나 네티즌 ‘be9789’는 “개개인의 능력을 평가할 잣대가 많지 않고, 평가하기 위해 드는 시간과 돈, 노력 등이 배로 들기 때문에 학벌위주의 사회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며 “결국 학력 위조도 개인의 욕심이나 만족감 때문에 생겨난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끊임없이 학력 위조 사건이 발생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학벌 중심의 사회다. 이제는 능력 위주의 사회라고 하지만도, 실상 학벌이 뒷받침되지 않는 능력은 자신의 그 능력을 인정받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학력 위조가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포착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적발된 일련의 학력 위조 사건들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능력 위주의 사회가 아닌 학벌 위주의 사회임을 다시 한 번 일깨운 사례라 할 수 있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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