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사태 통해 본 비정규직 보호법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비정규직 보호법은 한 직장에서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하고 비정규직의 차별대우를 해소하자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그러나 법이 본격 시행도 되기 전에 정규직 전환에 따른 비용부담을 우려한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해고하면서 곳곳에서 노사갈등이 속출하고 있다. 재계와 노동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 보호법이 우리나라 현실에서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다.


▲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 첫날, 점거 농성중인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
7월 1일부터 비정규직 근로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비정규직 보호법’시행이 노사간 갈등을 악화시키고 있다. 이랜드그룹 노사 간의 극심한 갈등이 대표적 사례다. 여기에 민주노총이 지난 7월 8일 전국의 이랜드 계열 매장에 대한 점거 농성으로 이 문제에 전면 개입하면서 이랜드 비정규직 사태는 경영계와 노동계의 대리전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현재 이랜드 계열인 홈에버와 뉴코아에서 발생한 비정규직 사태의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장기화되고 있다. 이랜드 사태의 발단은 지난 7월 1일부터 시행된 비정규직 보호법과 관련해, 이랜드가 홈에버와 뉴코아의 비정규직 캐시어(현금 계산원)들을 용역직으로 전환하고 기간 만료된 일부 근로자와의 재계약을 해지하면서 비롯됐다.

비정규직 보호법 적용 기업 현황
비정규직을 채용한 중소기업의 18%만이 비정규직 보호법이 자사(自社)에 적용되는 시기가 오면 비정규 직원 모두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인 것으로 조사됐다. 546만 명(2006년 기준)에 이르는 비정규직 가운데 93.2%인 508만 명이 종업원 300명 미만의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중소기업 비정규 직원 중 상당수가 내년 7월 이후 직장을 잃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등 노동시장에 큰 혼란이 예상된다. 이번 조사 결과 조사대상 100개 중소기업 중 18개사만이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 이후 기존 비정규 직원 모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답했다. 또 △31개사는 비정규직 중 10% 미만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고 △10∼19% 전환 3개사 △20∼29% 전환 4개사 △30∼39% 전환 4개사 △40% 이상 100% 미만 전환 20개사 △미정 및 무응답 20개사였다. 압도적으로 많은 중소기업에서 상당수 비정규 직원이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는 직무를 어떻게 바꿀 것이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46개사가 ‘2년마다 새로운 비정규직으로 교체’라고 응답했고 16개사는‘비정규직을 없애고 외주 용역화하겠다’고 답했다. 5개사는 정규직이지만 월급이 낮은 직무급제, 이른바 ‘중규직’을 도입하겠다고 했고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회사도 33개사나 됐다. 이 같은 조사결과는 비정규직 보호법 확대 이후 이랜드 사태 같은 노사분쟁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충격파가 중소기업에 닥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우려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 법은 올해 7월 1일부터는 300명 이상 대기업을 대상으로 시행됐으며 내년 7월 1일부터는 100명 이상 300명 미만의 중소기업, 2009년 9월부터는 5명 이상 100명 미만 중소기업으로 각각 확대 적용될 예정이다. 비정규직 전환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는 37개사가 비정규직의 단순한 업무 성격 때문, 30개사가 비용 때문이라고 답했다. 조사에 응한 중소기업의 사장이나 인사 담당자들은 응답을 하면서 한결같이 불만을 털어놨다. 이들은 “법을 보완하지 않을 경우 당초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노동시장을 불안하게 하고 다수의 비정규직은 임금이나 고용 사정이 지금보다 더 열악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의 비정규직만 혜택을 보는 법이라는 주장이다. 봉제가공업체 A사의 사장은 “대기업은 돈도 많고 정부가 무서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만 노동집약적인 중소업체는 그렇게 하면 문을 닫아야 한다”며 “비정규직보호법이 수많은 비정규직에게 지금보다 더 열악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부가 중소기업에 대한 면밀한 실태 파악 없이 비정규직보호법을 밀어붙인 측면이 있다”며“현실을 감안한 법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보호법이 중소기업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입증됐다. 이번 조사에 응한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수요에 따라 성수기에만 일하거나 본인 사정 때문에 원해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직원이 많다”고 지적했다. 한 봉제업체 관계자는“단순 노무직마저 정규직으로 전환해서 고정 인건비 부담이 늘면 회사가 어려울 때 직원 수를 줄이지 못해 회사가 문을 닫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생활비나 자녀의 과외비를 벌려는 주부와 같은 단(短)시간 노동자들은 본인이 정규직 전환을 원치 않는 경우도 많다. 한 소프트웨어 업체 임원은 “학업, 투잡 등의 이유로 정규직 전환을 원치 않는 비정규직 프로그래머도 상당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 비정규직의 계약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지 말고 3년으로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부 중소기업인들은 “인건비 상승으로 문을 닫을 바에야 차라리 불법적으로 비정규직을 계속해서 고용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상우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제조사팀 전문위원은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중소기업에서는 해고가 조용하게 이뤄질 것”이라며“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양극화 사회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랜드 비정규직 사태 왜 불거졌나
비정규직 보호법은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은 의무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 ‘동일 업무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 금지’ 등 2가지 내용이 핵심이다. 민주노총이 전면 개입한 것은 이번 이랜드 비정규직 사태가 이 2가지 핵심 내용의 부작용으로 드러난 결과라고 본 데 따른 것이다. 기업들이 2년이 되기 전에 비정규직 근로자와의 계약을 해지해 정규직으로 전환을 회피하거나, 아예 외주로 돌리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으로서는 이랜드그룹을 타깃으로 삼아 집중 투쟁함으로써 다른 기업에서 비슷한 사례가 나타나지 않도록 압박하겠다는 의도를 강하게 갖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경영계는 이랜드 사태가 비정규 보호법이 노동계 주장을 지나치게 반영해 고용시장을 경색시킨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이 비정규직 근로자를 쓰는 것은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고용을 탄력 있게 하기 위한 것인데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을 의무적으로 정규직 전환하라는 것은 경영 현실을 너무도 모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국경총 이동응 전무는 “2년이라는 기간을 정해 놓고 의무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조항은 폐지하는 게 오히려 비정규직 대량 해고를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이랜드그룹 계열의 뉴코아는 계산대에서 일하던 320여명의 직원 가운데 정규직 100여명을 다른 업무에 배치했다. 반면 비정규직 223명에 대해서는 외부 용역업체로 돌리거나 재계약을 하지 않는 형태로 무더기 해고했다. 또 홈에버는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1100여 명 중 521명만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한편, 계약기간이 만료된 비정규 직원 350명은 재계약하지 않고 해고했다. 이 과정에서 이랜드 측은 비정규직 근로자와 계약을 해지하기 쉽게 계약기간을 아예 명시하지 않은 ‘0개월 계약’을 맺었다 는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뉴코아 등이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은 비정규직 보호법에 규정된‘차별 시정’조항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동일한 업무를 하는 정규직 근로자와 비정규직 근로자를 급여나 근무조건에서 차별할 경우, 최고 1억 원까지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따라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계산대에서 함께 근무하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이에 대해 노조는 “비정규직 보호법의 허점을 악용해 오히려 비정규직을 대량 해고했다”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랜드그룹 측은 “지나친 인건비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영상 조처”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신세계 이마트는 비정규직 전원을 정규직원으로 바꾸고, 롯데마트는 정규직과 같은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식으로 이 문제를 비켜갔다. 이런 점에서 이랜드그룹이 지나치게 경직된 태도로 대처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랜드 사태, 정부와 사측 책임 커
이랜드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뉴코아 이랜드 유통서비스 비정규 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랜드 공대위)’가 지난 7월 24일부터 25일까지 전국의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민의 10명 중 7명은 이번 사태의 책임이 정부와 이랜드 사측에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50.4%가 이번 사태의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대답했으며, 27.2%는 이랜드 사측에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 “과도한 요구를 내 건 노조의 책임”이라는 응답은 13.1%였다. 또한 정부의 농성장 공권력 투입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60.5%가 잘못이라고 답했으며, 정당한 법집행이라는 의견은 32.8%였다. 장기화되고 있는 이 갈등의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회사가 노조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응답자의 56.7%가 “회사가 노조의 요구를 수용해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답했고, “노조가 회사의 요구를 수용해 단체행동을 중지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응답은 32.6%였다. ‘고용 보장, 외주 용역화 철회, 민형사상 고소 취하’라는 노조의 요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응답자의 60.3%가 정당하다고 답했다. 반면 27.8%의 응답자는“경영권에 대한 과도한 간섭으로 부당하다”고 답했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이랜드 갈등이 불거지면서 비정규직법에 대한 국민 여론도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73.6%는 “비정규직법은 문제점이 많으니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현행법을 그대로 두고 잘 지키도록 하면 된다”고 답한 사람은 18.9%였다. 이랜드 공대위는 이 같은 내용의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며“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비정규직 보호법이 실제로는 2년 주기 해고법, 전면 외주화법으로 전락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법을 빌미로 한 이랜드 사측의 집단 해고와 전면 외주화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주장했다. 공대위는 “뉴코아-이랜드 노조가 오늘 다시 뉴코아 강남점에서 점거농성에 들어간 것은 사측의 불성실한 교섭과 노조에 대한 가처분, 가압류, 그리고 추가 구속 등 적대적 태도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며 자기 사업장의 영업을 중단시킴으로써 사측을 교섭으로 끌어내려는 지극히 상식적인 파업 행위”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정부와 이랜드 사측은 그동안의 무리한 노조 탄압 행위를 중단하고 국민의 뜻을 받들어 이랜드 사태를 올바르게 해결하기 위해 결자해지의 자세로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2, 제3의 이랜드 사태 벌어질 수 있어
노동계에서는 비정규직보호법이 자체적으로 모순을 안고 있어 제2, 제3의 이랜드 사태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관련법에 따르면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비정규직이라도 같은 사업장내 같거나 비슷한 업무를 할 경우 정규직과 임금 등에서 차별적 처우를 받지 않게 돼 있다. 하지만 이랜드그룹의 경우처럼 비정규직과의 계약을 아예 해지하거나 그 일을 외주용역업체에 맡기는 것도 불법이 아니어서 논란이 끊이질 않을 전망이다. 노조원들과 노동계에서는 또 사측의 완고한 노조관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노동관련법을 무시하면서 노조와 타협하지 않는 ‘깐깐한’ 회사측 노무관리가 노사불신으로 이어졌고, 최악의 파국으로 귀결됐다는 것이다. 실제 사측은 지난 16일 밤샘협상에서 1년 유예기간을 두고 뉴코아 외주화를 철회하겠다는 내용의 진전된 안을 내놨지만 노조는 믿을 수 없다며 거부했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를 비롯해 시민·교수·대학생단체가 노조의 투쟁에 합류하자 대선국면에서의 이념대결 양상까지 겹쳐져 사태는 장기화됐다. 게다가 이상수 노동부장관은 사태 초기부터 쟁의에 깊숙이 개입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사용자측이 교섭에 성실하게 나서도록 만들지 못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은수미 연구위원은 “노사간 교섭은 원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인데 정부가 너무 성급하게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바람에 오히려 자율적 교섭시스템 구축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이랜드그룹의 노동쟁의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지만, 전반적인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을 둘러싼 대립적 견해들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크게 부각됐다. 대책은 크게 관련법의 재개정이나 제도보완 등 단기대책과 사회보험 인프라 확대 등 중장기대책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노동계 중에서도 민주노총은 현재 법 개정을 통해 정규직 근로자의 임신, 육아휴직 등 특정한 사유가 있을 때만 기간제(계약직)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간제 사용사유제한’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측에서는 비정규직보호관련법은 노동시장에 대한 지나친 규제로 인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늘려‘일자리 감소’라는 부메랑으로 근로자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규제를 더 완화하는 쪽으로 법개정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국노총과 노동부 등은 지금 단계에서 법 개정에 나서면 수년간의 진통 끝에 제정된 현행법이 사실상 무력화될 것이라며 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성균관대 조준모 교수는 “이번 이랜드사태는 노사관계의 실패와 노동법의 실패라는 두 가지 악재의 합작품”이라며 “특히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한을 관련법안 원안대로 3년으로 했더라면 문제가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기간제 사용기간을 지금의 2년보다 더 넉넉히 잡거나 모법에는 기간설정을 할 수 있다는 정도로만 정하고 시행령에서 직무별로 신축적으로 기간을 정하게 하는 것도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노동계가 요구하는 기간제 근로자 사용사유 제한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직무가 명확히 정의돼 있지 않아서 적용이 곤란하다”고 말했다. 반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이호근 전문위원은 “법을 고친다고 해서 (비정규직)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있는 법과 고시, 지침 등이라도 현장에서 잘 지켜지도록 일관성 있게 이를 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업장 대비 근로감독관 수가 일본의 3분의1, 독일의 4분의1에 불과해 이들의 충원이 시급하고, 새로 임용되는 감독관을 비정규직 보호전문으로 양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한 “2010년까지 비정규직 차별 해소에 책정된 1조2000억 원을 사회보험료 일부를 지원하는데 쓰는 것을 비롯해 사업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되 일정 경우 정규직 전환을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룰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은수미 연구위원은 “비정규직보호법들의 가장 큰 문제가 실제로 취약한 계층에는 정작 보호의 우산이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4대 보험 가입확대, 면세혜택 등 사회보장의 인프라 확대와 내실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기업의 현실 고려하지 않아
이번 이랜드 사태는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되자마자 터짐으로써 법의 부작용이 집중적으로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정부는 1년 정도 법 시행 후 보완점들을 찾아 법개정사항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비정규직 보호법을 두고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불안정하게라도 이어지던 생존권을 박탈하는‘비정규직 추방법’이 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게 일고 있다. 이는 비단 비정규직 보호법을 두고 노사 간에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이랜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법의 맹점을 악용하는 기업들의 잘못도 크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기업들을 일방적으로 나무라기도 어렵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필연적으로 기업의 비용 부담을 가중시킨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꿨다고 자랑하는 일부 대기업과 금융기관조차 기존 정규직과 직무ㆍ인사 체계를 달리 적용하는 반쪽자리 중규직이라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상흔 홈에버 대표이사도 “현 상황에서 모두 정규직으로 하면 기업이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기업이 이럴진대, 중소기업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내년부터 종업원 100~300인 사업장, 2009년부터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된다. 비정규직은 소규모 사업장에 더 많다. 중소기업들은 전체 비정규직 548만명(정부 통계)의 약 90%를 고용하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50%가 비정규직이다. 이들 기업은 재정 여력이 없어 정규직화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내년 이후 더욱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부터라도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우선 정부는 보완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사실 이랜드 사태는 법 통과 때부터 이미 예고됐던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들에게 주화와 계약해지라는 편법을 쓸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업종별 특성과 재정 능력이 판이한 기업들에 정규직화를 강제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기업들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둘 게 아니라, 정부가 정책적 지원을 통해 자연스럽게 정규직화를 유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정규직 전환을 시도하는 기업에 대해선 일정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법인세ㆍ공적보험료 감면과 같은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기업주들은 고용 관행과 의식을 바꿔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제도에 의지해선 결코 해결되기 어렵다. 비용 문제로만 접근할 일도 아니다. 도요타 창업자 도요타 기이치로(豊田喜一郞)는 “직원을 해고하지 않는 것이 경영자의 도리”라며 고용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여겼다. HP 듀폰 등 글로벌 기업의 핵심가치도 직원 존중이다. 이들 기업은 경영여건이 아무리 어려워도 인위적 고용 조정보다는 업무시간 단축과 급여 삭감 등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근로자들을 내 가족처럼 존중하고 고용 안정을 최우선 할 때 생산성도 높아진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정규직 노조도 변해야 한다. 정규직을 늘리기 힘든 구조를 존속시키는 주원인 중 하나는 정규직의 이기주의다. 정규직의 기득권 집착과 정규직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비정규직의 증대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렵다. 대기업 및 공공부문 정규직에 대한 고임금과 장기고용 등 과잉보호 부담은 비정규직 고용조건의 악화와 하청단가 인하로 전가되기 마련이다.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지 않는 한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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