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기술력이 관건

지난 달 15일 미국 정부가 한국에 무기 및 군사장비 부품을 판매하려고 할 경우 미 의회의 심의대상 및 기간을 대폭 줄이는 내용의 법안이 최근 미 의회에 제출됐다. 한국은 지난 10년간 69억달러에 달하는 많은 무기와 군사장비를 미국으로부터 사들여 미국의 5대 무기 구매국이다. 세계 무기 시장을 선도하는 나라는 물론 미국이지만 세계는 지금 우리나라 방산산업의 눈부신 성장에 주목하고 있다.


군사전문지 <디펜스뉴스>가 선정한 100대 방산업체에 한국의 한국항공우주산업이 79위를 차지했고 로템은 93위를 차지해 국내 방위산업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게 되면서 무기 제조 방위 산업에 대해 국내외 기업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대자동차 그룹 계열의 로템은 지상 무기체계 중 최고 기술력이 요구되는 전차를 전문 생산하는 기업이다. <디펜스뉴스>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3~4년 뒤에는 방위산업 수출액을 10억달러로 전망한다고 밝히며 지난 해 2억5천만달러를 기록한 한국의 방위산업 수출은 올해 3억4천만달러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과거 한국의 무기체계는 미국에서 수입하거나 외국 업체들과의 공동개발 형식을 띠고 있어 수출과 실질적 수익에 제약이 있었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방위 산업은 독자적인 하이테크 무기로 세계 시장에서 주목 받고 있다. 비록 아직은 세계 100대 방위산업체의 후방에 머물러 있지만 총 한자루도 우리 손으로 만들지 못했던 한국의 방위산업체가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자축해 마땅한 일이다.

해외 시장에서 인정받는 국내 방위 산업
▲ XKT-1은 지난 달 터키 정부와 55대(5억 달러 상당)를 2013년까지 수출하기로 결정됐다. XKT-1은 수직기동, 옆으로 돌기, 급선회 비행이 가능하고 무게 225㎏의 폭탄이나 70㎜ 로켓탄, 기관총 등을 장착, 마약사범과 게릴라 소탕작전에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최근 한국항공우주산업이 기본훈련기인 KT-1 50대를 터키에 수출하기로 한 것도 외국 업체들과의 경쟁을 거친 계약이어서 더욱 의미가 부여된다. 계약금액만 5억 달러로 국내 항공기 수출 사상 최대 규모다. 또한 KT-1을 개조한 XKT-1은 지난 달 터키 정부와 55대(5억 달러 상당)를 2013년까지 수출하기로 결정됐다. XKT-1은 수직기동, 옆으로 돌기, 급선회 비행이 가능하고 무게 225㎏의 폭탄이나 70㎜ 로켓탄, 기관총 등을 장착, 마약사범과 게릴라 소탕작전에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마약조직 소탕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일부 남미 국가들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이유다. 이 업체가 독자 개발한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은 아랍에미리트연합의 고등훈련기 50~60대 구매 계약을 두고 현재 영국과 이탈리아 기종들과 경쟁에 있다.
이밖에도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한 한국형 장갑차 K-21은 국내뿐 아니라 성능대비 저렴한 가격 때문에 수출 효자 품목이 되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93년 말레이시아에 장갑차 110대를 수출하기 시작한 후 14년 만에 터키에 대규모 전차용 엔진 수출을 예상하고 있다. 삼성테크윈의 K-9 자주포와 현대중공업의 잠수함, 대우조선해양의 경구축함, 프리깃함의 동남아시아 수출길도 조만간 열릴 전망이다.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초음속 훈련기와 수십억 원에 달하는 전차, 척당 수천억 원짜리 잠수함 등 우리 손으로 만든 첨단 무기들이 무기 선진국들을 제치고 잇따라 수출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결과들은 크고 작은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와 첨단 전투기 제조의 기반 기술력 등 국내 방위산업체가 꾸준히 노력한 결실이다.

2008년부터 방산업체의 전문화 및 계열화 제도 폐지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방산업체들은 지정된 품목에 한해서만 개발, 생산 판매할 수 있었다. 두산인프라코어와 삼성테크윈은 장갑차와 자주포 전문화업체고, 로템은 전차 전문화 업체다. 풍산은 탄약 중에서도 탄체와 성형파편 등을 생산하고, 한화는 탄약 중에서 신관과 폭약 등을 생산해왔다. 포스코는 방탄재와 철강제품을 담당했고, 한국항공우주산업은 항공기 관련 무기를 생산하고 있다. 방산업체의 전문화 및 계열화는 정부가 효율적 방산물자 조달을 위해 지정한 것으로 지난 83년 방위산업의 전문화와 중복투자 방지를 위해 제정한 법이었다. 전문화 업체 지정으로 인해 해당품목에 대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현재 전문화 및 계열화 업체로 지정된 곳은 총 11개 사업 분야 38개 업체로 계열화 업체가 부품을 공급하면 전문화 업체가 조립, 생산해 공급하는 형태가 많다.
▲ 두산인프라코어는 93년 말레이시아에 장갑차 110대를 수출하기 시작한 후 14년 만에 터키에 대규모 전차용 엔진 수출을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정부는 방산부문의 대형화, 특화를 통한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24년 만에 이 법의 폐지를 예고했다. 따라서 지정업체의 관리 감독 아래 사실상 독과점으로 방산물자를 납품해오던 중공업, 탄약 등 방산업체들의 무한경쟁이 예상되고 있다. 모든 기업들은 이제 정해진 품목만 개발 생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무기들을 연구 개발할 수 있게 됐고, 국내시장 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을 상대로 그 판로를 넓힐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방산물자 전문화 및 계열화 폐지 법 발효에 대한 부작용도 예상되어 보다 심층적인 분석과 예측이 필요하다. 중복투자의 위험성을 노출하고 있고, 과다 경쟁으로 인해 지나친 가격 경쟁을 부추겨 오히려 질적 저하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방위산업에 대한 지원과 성장 동력 마련에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의견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업계에서는 시장을 해외로 넓혀 보더라도 폐지가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인 덕분에 방위산업은 국내 시장 규모만도 5~6조에 달하지만 세계 시장으로 시야를 넓히면 수 백조원대의 수익도 올릴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사업이기 때문에 이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관측이다.

일본 방위산업, 정부의 주문이 계속 이어져
국내 방위산업을 효율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정부의 역할이라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국가의 방위산업을 키우는 정책은 대규모 자본과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하지 않으면 힘들다는 분석이다. <디펜스뉴스>에서 세계 100대 방산업체 중 1위를 차지한 미국의 록히드마틴은 방위산업부문 매출 세계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절대강자다. 웬만한 제 3세계 국가의 전체 전투기 수량을 한 달이면 만들어낸다는 록히드마틴은 미 국방부 및 정보당국, 국토안보, 해외판매가 총매출의 90%이상을 차지한다. 미국은 80년 초 중소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SBIR(Small Business Innovation Research)라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국방성·항공우주국(NASA) 등이 중소벤처기술개발 제품을 적극 구매해 줘 오늘날과 같은 벤처대국을 이루었다. SBIR가 미국벤처기업의 국방기술로 세계시장을 선도하게 만들었다. 미국처럼 세계적으로 군사 전략을 구사하는 국가는 무기의 자체 수요가 많고 여러 나라에 수출을 할 수 있어 자연스레 개발비를 회수한다. 이것은 우리 방위산업도 개발비를 회수할 수 있는 품목에 집중해야 하는 구실이 되기도 한다.
일본 또한 세계 방위산업에서 강자의 위치에 서 있다. 일본은 미국의 첨단 전투기 엔진이나 날개 제작에 소요되는 티탄 등의 경금속이나 탄소섬유 수지 기술이 세계 정상급이기 때문에 부품 수출로 돈을 벌어 9개의 방위산업 기업이 세계 100대 방위산업체에 올라 있다. 가와사키중공업의 모토야마 지카시(元山近思) 상무는 “일본의 방위산업 기업이 글로벌 파워로 부상한 배경에는 정부의 주문이 마치 보증보험처럼 계속 이어져 왔지만 뼈를 깎는 기술 개발이 회사 차원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2년에 한 번꼴로 1조 원에 가까운 잠수함을 건조하는 일본의 가와사키중공업은 연간 수주액의 70%가 일본 정부의 주문이다. 국가가 방위산업을 육성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의 국방 분야 우수중소기업지원 육성 방침
현재 방위산업 분야의 90%는 실질적으로 중소벤처기업들이 담당한다. 하지만 대기업 위주의 방산물자 및 방산업체의 전문화 및 계열화 제도 때문에 사업추진 자체가 방산 대기업 위주로 흐르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정부는 국방 분야 우수중소기업지원 육성을 위해 중소기업청과 방위사업청의 협약 체결을 시도했다. 국방기술과 민간기술의 조화를 통해 방위 산업의 세계화 발판을 만든 것이다. 이로 인해 그간 제한적이었던 국방분야의 핵심기술을 보유한 중소벤처기업의 사업참여가 활발히 이루어질 전망이다. 한 방위 사업 중소벤처기업가는“협력업체 관련 부분을 명확히 나타내도록 규정하고 중소벤처기업의 참여범위가 얼마나 되는지, 컨소시엄에 참여한 중소벤처기업의 능력은 어떠한지 등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방산 물자를 수출한 나라는 미국을 비롯해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과테말라, 멕시코, 터키, 아랍에미리트연합 등 아시아와 중남미 국가에 국한돼 있다. 이에 방위사업청은 아프리카 등지에 무기수출을 추진함으로써 국산 무기의 수출시장을 다변화하는 동시에 이미 포화상태에 있는 세계 무기시장 외에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위사업청의 한 관계자는“제 3세계 국가들의 경우 미국,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지역 선진국들이 이미 주요 무기수출국으로 자리 잡고 있어 시장 진출을 낙관하기가 쉽지 않다.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품목들을 선정해 진출을 꾀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방사청은 이집트와 알제리, 모로코 등과 같은 아프리카 국가에도 수출을 추진하고 있고, 우리 기업이 이들 나라의 군 현대화 사업 참여 등 방산 분야 협력을 가속화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점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첨단 부품 기술 개발에 집중 투자
지난 달 열렸던‘제 11회 대한민국 과학축전’에 참가한 국방과학연구소의 홍보관에는 우리나라의 첨단 국방과학 기술에 놀라는 청소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홍보관을 찾은 시민들은 국방 R&D 투자의 기술과 경제적 파급효과, 무기 속에 숨어있는 국방과학기술에 대한 설명을 접하면서 세계 10위권 수준의 핵심 무기 체계 연구개발 기술력을 확보한 한국 방위산업 현실에 자랑스러움을 느낀다고 밝혔다. 홍보관의 관계자는“선진국들의 무기수출 제한 등의 규제로 국내 무기개발 수준을 높이려면 자체 연구밖에 없다.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국내 연구진에 의해 순수기술로 독자 개발된 무기의 해외 수출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방위산업은 정부의 주문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자칫하면 안주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기술 개발에 끊임없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미국의 첨단 전투기와 경쟁할 항공기를 제작하는 것 역시 끊임없이 시도해야 할 과제이지만 이는 단기간에는 불가능하다. 첨단 부품 기술 개발에 집중 투자해 세계 경쟁력을 키워 서두르지 않고 세계시장에서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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