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의 나이들어감

유니버설 발레단의 <지젤> 100회 공연을 마친 다음 날, 문훈숙 단장을 만났다. 그녀가 생각하는 나이 들어간다는 것의 단상들을 들어보기 위하여.
사실 젊은 시절 지금의 나이를 상상해 본 적은 없다. 무용수는 생명력이 짧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나이와 무용수의 나이는 다른 것 같다고 한다. 스물넷, 스물다섯이면 무용수로선 젊은 나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훈숙 단장은 나이 들어가는 것이 반갑다. 주름이 더 생겨서 우글쭈글해질 때면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요즘 사람들은 더 젊게 보이려고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다. 젊음에 아름다움이 있다면 나이 들어가는 것에는 또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20대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40대의 아름다움을 흉내 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주름 하나하나에는 그 사람의 인생과 이야기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훈숙 단장은 오드리 헵번을 좋아한다.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모습이 좋다고 말한다. 나도 저렇게 늙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고 했다. 물론 마음가짐에 따라 나이가 다르게 들어가는 것 같다고 한다. 오드리 헵번이 유니세프의 홍보대사로 많은 활동을 하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아프리카 등지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찍힌 사진들을 보면서 참 아름답다고 느끼곤 했단다. 그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여유로움이 생겨서 좋다고 한다. 열여덟, 스무 살 때보다도 지금이 더 좋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라고 한다면,“No thank you."다.(웃음)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은 애정을 쏟아 온 것은 바로 발레이다. 발레를 하는 것이 너무 힘이 들 때에는 왜 시작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다른 일로 눈을 돌려본 적은 없다. 발레는 몸의 아름다움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그래서 몸에 많은 투자를 하고 훈련을 해서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몸은 악기라는 것이다. 때문에 몸이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서러움은 있다. 무용수는 무대 위에서 신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단다. 그녀는 <지젤>에서의 아름다운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2막에서 알브레시트가 지젤을 배신하여 괴로워하다가 죽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했던 그 순간을 소중히 여겨 그를 죽음에서 구하기 위해 애쓰는 그 모습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참 어려운 거라면서 말이다. 어제의 공연을 마치고 한가로운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이 보였지만 사실은 이 날 아침 미팅부터 본격적인 스케줄이 시작되고 있었다고 한다. 폭풍후의 고요함과 같은 시간, 문훈숙 단장과 나이 들어감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임보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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