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의해야 할 의제만 수십개
대선을 두달 여 앞두고 벌어지는 남북정상회담이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정상회담의 시기 부적절성과 대선과 관련지어 바라본 시각이 있었다. 실제 범여권의 대선주자들은 남북정상회담을 적절이 이용하여 저마다 자신들이‘평화통일시대를 열어갈 적임자’라며 정상회담 특수를 보이기도 했다. 이에 한나라당측에서는 대선을 앞둔 가시성, 홍보용 정상회담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는데, 결국 양국 두 정상이 만남을 가져야 한다는 데에는 지지의사를 보였다. 정상회담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 역시 일차적으로는 반기는 분위기였고, 국정브리핑과 청와대브리핑 홈페이지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에서 논의되길 바라는 의제 제시에 활발함을 보였다. 국민들은 새로운 세대에 맞는 통일교육을 위한 남북간 유초등부 교육 프로그램 교류, 북한근로자에 대한 직업훈련과 투자, 휴전선 일대의 문화유산과 생태환경 남북공동조사 등 거시적인 담론부터 구체적인 아이디어까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함으로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상회담의 대선 영향력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비리 사태로 청와대가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오로지 이 난관을 해쳐나갈 수 있는 방안은 성공적인 정상회담을 도모해내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임기 말 레임덕 현상을 만회할 수 있고, 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두달 후 있을 대선 판도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정부나 대선주자들이나 정상회담에 대한 관심은 집

대통령 임기 말에 열리는 정상회담이니만큼 이번 회담을 통해 도출되는 합의사항들은 차기 정부에 그래도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차기 정부에 정상회담의 공과가 이어질 경우 의사소통의 입장차에 따른 문제 해결이 원활하지 못하게 될 확률도 있다. 이러한 일각의 시각에 대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어떤 얘기를 할 것인지 국민에게 밝히고 가야 한다”며“핵문제는 진전되지 않고 (평화선언 같은) 다른 문제가 너무 앞서가면 차기 정권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클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지금 상황에서는 정상회담에서 무슨 얘기가 어느 정도 오갈지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해 정상회담 의제 공개 필요성이 더욱 크다는 입장이다.
평화체제선언 가능할까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달 기자간담회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에서“이제 선언도 할 수 있고 협상의 개시도 있을 수 있다”며“협상은 종전(終戰)에서 평화체제로 나아가는 일련의 협상과정이 아니겠느냐”고 말해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 논의 의지를 표명했다. 북한 비핵화 과정은 6자회담을 통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노대통령은“북핵 문제는 풀려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 다음 단계가 중요하며 다음 단계가 바로 평화 정착”이라고 밝혀 정상회담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남북 정상간의 평화체제 논의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과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다. 이에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관건이 되는 것은 남북 정상이 한반도의 지속적 평화를 보장할 평화협정 관련 선언 도출이다. 청와대쪽에서도 이‘선언’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함으로 해서 평화협정 체결에는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지난 달 7일 호주 시드니에서 노 대통령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의 연쇄 양자 정상회담을 했고 여기에서 양 정상으로부터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논의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은 평화체제 당사국인 북한의 의지와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평화선언이 이루어진다면 남북 당사자 차원의 구체적인 협의 및 군사적 신뢰 수준 승격, 대북개발지원체제의 본격화 등 남북교류의 제도화가 가능해진다. 경제, 정치, 군사 등 상호간의 확실성이 보다 증가되고 상호의존성 또한 깊어질 것이다. 또한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향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협상이 북·미 협상 위주로만 진행되지 않고, 북·미 협상과 남북협상이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한 당국간 대화는 장관급회담에서 경제와 사회문화 분야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많은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외교 및 군사문제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협의를 도출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 회담이 이루어내야 할 의제는 더욱 분명해진다.
뜨거운 감자 NLL
지난 달 15일 국가비상대책협의회(이하 국비회)와 국민행동본부 등 30여개 보수우파 단체 회원들은‘9·15 자유 대행진’을 개최하며 이번 제 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보수우파의 의견을 피력했다. 김상철 국비협 의장은“10월 2일에 예정된 남북정상회담에서 NLL을 양보하거나 연방제통일의 추진에 합의하는 것은 반헌법적이고 반국가적 행위다. 정상회담에서 위헌적이고 반국가적인 합의나 선언은 있을 수 없다. 북한이 주장하는 주한미군철수, NLL양보, 국가보안법 폐지, 연방제 통일론 등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NLL(서해북방한계선)논의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의제 체택 여부에 있어서도 의견이 분분했지만, 의제로 선택되어 논의가 되더라도 그 내용에 대한 예측과 주장이 엇갈렸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달 13일 국회에서 NLL 문제의 남북정상회담 의제화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문 비서실장은“이번 정상회담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NLL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우리가 희망하지 않아도 북측이 제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이번 정상회담 정부 공식 수행원에 국방장관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더욱 분명해지고 있는 대목이다.

북측의 입장은 NLL이 휴전협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UNC가 일방적으로 결정 통보한 잠정선이므로 무효라는 것이다. NLL문제는 남북의 입장차 뿐만 아니라 남남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의제이다. 한나라당과 보수우파를 비롯한 일부 시민들은 NLL이 휴전선의 해상연장선이므로 엄연히 현실적 국경선으로 봐야 하고, 지난 반세기 동안 국권의 행사를 일관성있게 해온 대한민국의 정당한 영역이라는 입장이다. NLL문제에 대한 한나라당은“국민적 동의 없는 NLL협상은 심각한 국론 분열을 가져올 수 있다”고 밝힌바 있다. 또한 NLL문제를 영토주권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입장과 안보개념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의 대립도 있다. 즉 북측이 NLL을 인정한 다음 논의를 하는 것, NLL 자체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 남측이 NLL 문제를 영토주권의 국경선 문제로 타협 불가 입장을 고수한 다음 논의를 하는 것 등의 다양한 기본 전제가 나올 수 있다. NLL논의가 시기상 부적절함을 주장하는 논거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남북정상회담이 정례화되고 남북 간에 실질적 긴장완화가 이루어진 후 NLL이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는 NLL문제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통일 방안 도출은 시기상조
남북정상회담이 전격 발표되고 북한의 수해 피해로 인해 10월로 연기되면서 정부와 국민들은 보다 면밀히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대비할 시간이 생겼다. 북핵폐기를 위한 실질적 성과마련, 평화선언,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문제, 북한 주민인권 개선 문제, NLL문제, 이산가족 상봉문제, 남북경제협력추진 문제 등 그간 거론된 정상회담 의제만도 수십가지에 달한다. 이에 더불어 투명하고 가시적인 성과가 있는 회담이 되기를 정부나 국민들 모두 기대하고 있다. 1차 남북 정상회담이 있은 후 남북관계는 여러 분야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였지만‘북핵문제’가 터져나와 남북관계가 냉각기에 접어들기도 했다. 그렇기에 2차 남북정상회담은 그 자체만으로도 깊은 의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남북은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담은 합의서를 통해 이번 회담에서‘평화, 번영, 조국통일’의 세가지 큰 의제가 논의될 것임을 밝혔다. 남북은 지난 1차 정상회담 6·15공동선언 에2항에서“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내용의 통일 방안을 합의한 적이 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그 통일 방안을 발전시키고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평화, 공영 정책 전체가 사실상 통일을 염두에 둔 방안임을 생각해 볼때 통일 문제가 이번 회담의 본격적인 의제로 다루어지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 있지만 의제에 포함된 사안인 만큼 통일의 과정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북한 김정일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이나 특사 만남, 개별 만남 등 모든 회담이나 만남에서 실패한 사례는 거의 없다. 또한 북미관계를 비롯한 6자회담의 진정 등 이번 정상회담을 둘러싼 주변환경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그간의 협조체계를 잘 이어온 만큼 성과에 대해서도 공유하려는 노력과 의지를 차기 정부에서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은 단순히 참여정부의 성과나 흔적이 아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에서 우리나라의 적극적 역할 기반이기 때문에 차기 정권을 잡으려는 세력들은 회담 전의 충분한 협조도 중요하지만 회담 이후의 파급효과와 변화양상에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입장을 가질 필요가 있다. NP
장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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