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고미술품에 대한 30년의 애정

명성황후의 영정 그림도 최초로 공개
정호천 화백은 지난 10월 고향인 원주시 원주치악예술회관에서‘오천년 역사문화사료전- 소박한 아름다움, 조상의 얼展’을 성공리에 마쳤다. 그는“일본의‘오구라’라고 하는 골동품상이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국보급 보물 문화재가 컨테이너 17개나 되는 막대한 양이었습니다. 그 골동품상은 그 유물을 팔아 일본 전역에 오구라호텔 8개를 지었고요. 얼마나 통탄스럽고 가슴 아픈 일입니까. 저는 일찍이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우리나라를 지배했거나 관계한 나라 5개국을 대상으로 우리의 문화재를 환수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정 화백은 일본을 대상으로 빼앗긴 우리의 문화재를 되찾아 오는 일에 열과 성을 다했다. 일본을 왕래하며 사재를 털어 우리 선조의 고미술품을 환수해 온 그의 노력은 범애국적이다. 따라서 지난 10월의 전시회는 정 화백의 그런 취지를 비롯해 그간 겪은 고초를 짐작케 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전시회에서 지난 30여 년간 수집한 고미술품 수천 점 가운데 엄선한 그림 200여점, 간찰 150여점, 서책 100여점, 청자 70여점, 백자 80여점, 토기 120여점, 민속품 30여점 등 총 760점을 선보였다. 그중 명성황후의 영정 그림도 최초로 공개 돼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정 화백은“‘살짝 곰보’인 명성황후의 얼굴 그림은 일본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을 토대로 일본 화가에 의해 4개월에 걸쳐 그려졌습니다. 7개월 후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시호가 내려진 후 그림위에 다른 작가가 경과에 대한 글을 적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그림 위에 적힌 글로 미루어 보면 명성황후의 시해는 물론 그림 작업까지도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이뤄졌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라며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밖에도 선조의 얼굴이 담긴 영정들, 금동약사여래입상을 비롯한 불교 조각품들, 청동제은입사정병(靑銅製銀入絲淨甁)을 위시한 불구(佛具)들, 안평대군과 추사를 비롯한 대가들의 서예작품, 청자압형수적(靑瓷鴨形水適)을 포함한 각종 도자기들, 단원 김홍도를 비롯한 화가들의 그림들, 고구려인의 기상을 표상한 귀면와(鬼面瓦)와 각종 와당들, 단계연(端溪硯)과 신라토기 등도 이번 전시회에서 주목을 받았던 진귀한 명물들이다. 우리 민족의 질박한 심성과 아름다운 자연산천, 유구한 역사성이 녹아 스민 작품들로 관람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깊이 빠질 수밖에 없는 오묘한 아름다움
정호천 화백은 1987년 불교미술로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97년 일본 도쿄21C모리노홀에서 제2회‘전통불교당채화전’을 개최했던 고문화재 전문인이다. “우리 선조들의 얼과 정신과 예술혼이 담긴 작품들을 보면 볼수록 깊이 빠질 수밖에 없는 오묘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기하학적인 선과 그윽한 문양, 심원한 예술철학과 해학이 투영된 작품들은 저마다 독창성을 가지고 있고, 우리 선조들의 체취가 그대로 묻어 있습니다.” 정 화백은 단순히 고미술품 예찬론자나 소장가가 아닌 방대한 규모의 우리의 문화재를 되찾아온 장본인이다. 외국을 제집 드나들 듯 다니며 세계 곳곳에 있는 우리의 빼앗긴 문화재를 되찾는 일에 30여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다. “대개 골동품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경영상 10개 중에 8개를 되팝니다. 저도 그런 유혹을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어려워도 참고 수장가 본연의 계획을 초심으로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는 조만간 원주시 흥업면에 자신의 호를 딴 청곡박물관 건립을 예정하고 있다. NP
황인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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