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 넘게 양분된 태권도의 내막과 진실 -
  한국 태권도의 양대기구 WTF, ITF 화합과 이해 필요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가 태권도마저 분리 되서는 안돼

왜곡된 내용이 때로는 진실을 외면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랜 시간동안 젖어있고 익숙한 일상이 진실을 외면하고 있을 때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용기와 희생이 요구되어진다.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들이 진실과 다를 때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안상호 기자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故최홍희(태권도창시자, 前국제태권도연맹회장)의 태권도가 32년 만에 한국에 상륙하였다. 한국태권도의 뿌리이자 한국태권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태권도연맹(現총재 최중화 International Taekwon-Do Federation)이 2004년 제14회 세계태권도대회를 한국에서 개최 하면서 48개국 27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그 위용을 드러냈다. 태권도 창시자 최홍희 선생의 망명과 함께 우리에게 잊혀져 갔던 한국태권도의 원조격인 ITF는 국내의 정치적 상황에 묘하게 말려들면서 심지어는 최 전 총재의 친북성향으로 인하여 ‘빨갱이 태권도’로 내몰리기까지 했던 것이다. 국내에서는 점차 잊혀졌던 정통태권도인 ITF는 대전에서 열린 ITF국제태권도 세계대회를 계기로 하여 우리에게 새롭게 부각되어 또 하나의 우리의 태권도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태권도문화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과연 무도에 이념이 존재하는 것인가. 세계태권도연맹과 국제태권도 연맹의 양극화 현상은 군사정부시절부터 발생된 문제이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남북분단의 또 다른 상징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민정부 이후 이데올로기의 완화와 민주화의 흐름이 ITF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색을 배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에도 ITF특별지부(사무총장 오창진)가 창설되었다.

정치적 이념에 밀려난 정통 태권도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태권도의 역사는 군사정권의 시작과 함께 많은 부분이 왜곡 되어왔다. ITF에서 주장하는 태권도의 역사는 50년이라는 것이다. 이는 태권도가 당수나 공수를 기반으로 출발한 우리 민족 고유의 무도라는 데에서 기인하고 있다. 태권도 원로들의 주장은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군 시찰 때 군인들의 당수도 시범을 보고“태껸이구먼”이라고 말한 것에서 착안하여 최홍희 씨가 태(跆)와 권(券)이라는 말을 붙였다고 주장했다. 태권도가 4,000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왔다고 말하는 WTF에서는 고대 야생 동물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자기 방어의 수단의 하나로 태권도의 기본 움직임이 나왔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이 형태가 삼국 시대에 이르러 무술 형태로 변화했으며 고려 시대부터는 태권도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태껸인 것이다. ITF의 전 총재인 최홍희는 1955년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태권도라는 명칭을 정식으로 인가받는다. 그리고 1959년 9월 대한태권도 협회를 창립하여 회장을 역임하게 된다. 하지만 공수도와 당수도라는 명칭에 집착했던 당시의 관장들의 반발로 1961년 대한태수도협회로 개칭을 하기도 했다. 이어 1965년 다시 대한태권도협회를 만들고 66년 9개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오늘날의 국제태권도연맹을 창립했다. 그러나 5.16군사쿠데타로 등장한 전박정희대통령과의 불화로 최 전 총재의 입지가 약화되면서 ITF와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인 대립관계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 후 1966년에는 대한태권도협회에서 불명예 퇴진을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1971년 그 자리에 김운용 씨가 협회장으로 취임을 했으며 박 전 대통령은 태권도를 국기로 지정했다. 그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던 최 전 총재는 ITF를 이끌고 캐나다로 망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태권도의 통일을 기대하며
최 전 총재의 망명이 태권도 협회를 이원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국내 태권도는 정부의 지원 아래 승단 품새도 새롭게 만들면서 WTF를 중심으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최 전 총재는 북한의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북한의 태권도 전파 요청을 받고 고심 끝에  1983년도에 시범단을 이끌고 북한에 태권도 보급에 나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2002년 최홍희 총재가 사망하자 북한은 최홍희의 유언장을 날조하여 임의로 장웅이라는 인물을 총재로 선출하였다. ITF 113개국 3800만 태권도인들로부터 무도인의 정신을 망각한 북한은 따돌림의 원인을 제공하였으며 한국은 ITF의 내막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북한의 무술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으로 이 협회를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ITF의 핵심 관계자들은 북한은 국제태권도 연맹의 일개 회원국에 불과하며 ITF의 뿌리는 남한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얽매인 또 하나의 문제가 바로 113개국 3800만명의 회원의 연맹비와 각종 자격증,승단비용 등이다. 각국의 도장들은 따로 연맹에 연맹비를 납부하고 있으며 그 액수만 해도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ITF의 종주국이 된다면 연맹회비는 고스란히 북한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최 총재는 남북한 태권도의 통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바 있었다. “남북한 태권도의 통합 주체는 북한이 아니며 한국을 뿌리에 둔 ITF와 WTF가 한국 내에서 교류하고 통합해야 진정한 태권도의 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
ITF에 뿌리를 둔 태권도는 WTF에 뿌리를 둔 태권도는 그 느낌이 다르다. ITF의 태권도 시범 경기를 보았던 사람들은 규격화된 움직임이 아닌 우리의 전통 무예에 가까운 모습에 색다른 충격을 받곤 한다. 우리가 보아오던 태권도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받게 되는 문화적인 충격일 것이다. 그 뿌리와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결국 우리 민족의 정신을 담고 있는 하나의 무예라는 것에서는 분명 통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컵의 모양에 따라 물의 형태는 바뀔지 모르지만 물의 성분은 분명 하나로 통하는 것처럼 말이다. WTF와 ITF의 태권도의 차이점이 오히려 다양성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풍요로운 무예의 흐름을 만들어갈 그들의 모습을 기대해볼 일이다.


지난해 한국에서 ITF의 세계대회를 개최하게된 취지는
양대기구로 분리된 국제태권도 연맹이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아닌 진정한 무도로서 정통태권도의 참모습을 한국국민에게 보여주고 또한 태권도의 종주국인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자 국제대회를 유치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국제태권도연맹이 본토로 귀환하는 발판이 될 것입니다.


WTF와의 관계에 있어 마찰이 예상되는데
ITF에서 한국은 특별회원국으로 되어있고 독자적인 길을 갈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113개의 회원국가와 3800만 여명의 회원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중화 총재도 언급 하였지만 저 역시 태권도는 하나라는 것은 변함이 없으며 반드시 한국으로 귀환되어야 하고 그 뿌리는 한국이라는 것입니다.  

ITF와 WTF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도의 태권도에서 올림픽경기로 변한 WTF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게다가 한국은 이미 WTF의 경기에 익숙해져 있지만 이와 달리 ITF는 무술 그 본질에 중점을 두고 경기자체가 박진감이 넘치게 진행되며 무술의 깊이를 느낄 수 있고 관중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술입니다. 오히려 해외에서는 한국보다 높은 인기를 누리고 많은 관중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작년 국제대회만 보더라도 엄청난 반응이 그것을 증명하는 거라 생각 합니다. 게다가 일본 동경에서 열린 일본의 K-1측과 테스트경기로 개최된 무신(武神)전도 입장표가 모두 매진되는 등 ITF 선수단의 실전성 태권도에 관중들과 K-1선수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내년쯤 국기관 설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국기관 업무에서 전 세계 고단자 승단심사 및 각종 자격에 관한 연수교육이 주된 업무가 될 것입니다. 아울러 해외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전 세계  태권도인들에게 한국을 알림과 동시에 한국관광에도 일익을 담당할 것으로 보여 집니다. 또한 전국지부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정치사회에 휩쓸리지 않고 무도인 으로서의 긍지를 지켜나갈 것입니다.


1955년 태권도 창시자 최홍희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태권도라는 명칭 정식인가 받음.
1959년 대한태권도협회 창립(최홍희 회장)
1961년 당수도와 공수도를 사용한 관장의 반발로 대한태권도협회는 대한태수도협회로개칭.
1965년 최홍희 회장은 대한태권도협회 재창립
1966년 국제태권도연맹 창립(9개국 대표참석)-ITF의 출발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의 군정부와의 마찰로 대한태권도협회 회장 불명예퇴진.
1971년 대한태권도협회 회장 김운용취임 - 태권도 국기지정
1973년 김운용회장 세계태권도협회(WTF)창설 - 이때부터 한국의 태권도는ITF와 양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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