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다시 생이 주어진다 해도‘진호 엄마’이고 싶습니다”
<진호야 사랑해>의 진정한 주인공은 엄마인 유현경일런지도

엄마의 일기
2005년 12월 5일 월요일
진호를 연습장으로 들여보내놓고 모처럼 오랜 시간동안 운전을 했다. 4시간에 걸쳐 달려간 곳은 광주.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의 직원연수교육 특강을 맡아달라는 강의 요청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남북보다 동서로 가는 것이 더 힘이 들다. 영남 호남이 화합되기 위해서는 교통수단부터, 길부터 좋아져야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 본다.
모처럼만에 장시간 운전을 하면서 많은 생각들을 했다. 마치 시한폭탄 같던 진호. 단 1분 1초도 눈을 뗄 수 없었던 아이. 하지만 16년이란 세월이 지난 오늘 나는 무려 12시간이란 시간동안 진호를 홀로서기 연습을 시키고 있다. 새벽운동을 마치고 들어서는 아이에게 아침밥을 챙겨주고 혼자만의 공간에 남겨둔 채 서둘러 집을 나섰다. 진호는 혼자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성경읽기와 영어공부를 마치고 잠깐의 휴식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바둑학원과 학교를 갈 것이다. 행여나 하는 맘에서 집을 나서기 전 진호에게 물어봤다.
“진호야, 엄마랑 같이 갈까?”
돌아오는 진호의 대답에 나는 가슴 한 가득 행복감에 젖었다.
“난, 잠깐 쉬었다가 오후 운동하러 가야 되요. 엄마 혼자 다녀오세요.”
16년 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아니었던가? 참으로 굽이굽이 많은 일들이 있었던 16년이었다. 서너 시간을 차를 몰아 달려간 동해 바닷가에서 소리 내어 엉엉 대성통곡을 하던 때도 있었고, 극심한 외로움에 떨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의젓하게 자라나 이 세상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선 한 청년이 내 앞에 서 있다. 장난스런 웃음과 따뜻한 손과 마음을 가진 진호. 이젠 엄마의 피곤함과 몸살감기도 배려해주고 아침마다 비타민도 꼭꼭 챙겨 입에 넣어주기까지 하는 친절한 모습으로 말이다.
오늘 하루도 감사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더 허락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좀 더 진호가 성숙한 모습으로 이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저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습니다. 미운 아기오리새끼였던 진호는 이제 그 꼬질꼬질한 깃털 속에 감춰졌던 새 하얀 깃털을 맘껏 펄럭이며 창공을 힘차게 날아오르려고 합니다. 그 푸른 창공 속에 계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찬양합니다. 제게 주신 진호라는 아이가 너무도 소중하여 보배라고 이름 짓습니다. 그를 통해 알게 된 하나님의 마음,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진호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오락 프로그램에 등장하던 말끔한 모습의 수영선수 김진호 군. 진호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들은 처음 그를 보고 자폐아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폐아 수영선수 진호가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감동을 느끼고 가슴 속에 희망을 하나씩 품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진호 군의 뒤에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라는 어머니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의 고백은 눈물겹기도 하였으나 오늘날의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 살이 넘도록 엄마라는 단어를 이야기하기는커녕 듣기에도 끔찍한 쇳소리를 내던 아이. 유리 액자를 부숴 자기 얼굴에 뿌려대는 자해를 가하기 일쑤였던 아이가 바로 진호였다. 아홉 살이 되어서도 세상과 소통하지 못한 채 오로지 엄마라는 출구를 통해서만 세상을 보려 했던 아이가 또 진호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철저하게 격리되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인 유현경 씨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남몰래 흘렸을까. 자폐라는 장애는 그것 자체보다 세상의 편견과 맞서야 하는 것이 더 큰 장애였다. 열 살이 되어도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던 아들을 보면서 극단적인 방법을 꿈꾸었다고 고백하는 진호 엄마의 모습이 가슴에 짠하게 와 닿는다. 하지만 용기 내어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그녀에게 진호는 어엿한 청년의 모습으로 성장하여 웃음을 전하고 있다.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발탁되어 물살을 가르는 모습에 이제는 유현경 씨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관심과 사랑을 쏟고 있다.
그녀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어머니라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가장 강하지 않으면 아들을 세상에 나갈 수 있을 만큼 강하게 키울 수 없었기에 그녀는 이를 악 물고 강해져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진호가 가르는 물살을 보며 진호를 통한 세상을 보기도 한다. 어린 시절 엄마와의 소통이 유일했던 진호 군을 통하여 엄마 유현경 씨는 또 다른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요즘 그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유현경 씨에게 들어보았다. 그녀의 일상과 진호 군의 일상으로 들어가 보려한다.

그들의 일상을 공유하다
요즘도 진호군은 훈련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동계 훈련에 참가하여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새벽 운동과 오후 운동으로 나누어 하루에 4~5시간에 걸쳐 체력 보강 훈련과 수영 훈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유현경 씨는 진호 엄마로써의 일상에 충실하고 있단다. 아이의 뒷바라지와 건강관리는 물론 최근 들어 여기저기서 강연 요청이 들어와 틈틈이 강연을 다닌다고 했다. 항상 진호군의 엄마로서의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을까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내 엄마라는 사람을 너무 과소평가한 질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던진 질문을 어찌할 수 없었다.“진호의 교육이 바로 내 생활이고 우리의 생활이 곧 진호의 교육이기 때문에 생활과 교육이 분리되어 있지는 않아요. 그리고 지금 현재는 진호와 함께 하는 시간이 예전만큼 많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생각할 정도는 아닐 거예요. 그런데 책임감이나 부담감이라면 오늘 같은 날이 없을 거예요. 그런데 진호와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울 뿐이죠.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가르쳐 주고 변화되는 아이의 모습을 통해 얻어지는 기쁨은 아마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를 겁니다.”
진호군이 매스컴에 보도되기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였다. 2002년 아?태 장애인 경기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2개를 획득했지만 장애인 경기의 경우 보도가 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2003년 비장애인대회인 제 75회 동아수영대회 중등부 자유형 100m 종목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것을 계기로 하여 매스컴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003년 KBS'피플 세상 속으로‘와 SBS'휴먼 스토리 여자’, 2004년 KBS인간극장‘ 등의 다양한 매체에 소개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2005년 4월 MBC로부터 출연섭외를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방송에 출연하면서 사람들에게 진호군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경우는 없었을까. 대중들과의 소통으로 어떤 것들을 얻고 어떤 것들을 잃었을까.“방송을 통해 진호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짐으로 인해 알아보시는 분들이 생각보다는 많은 것이 사실이예요. 그 전부터 진호를 생활 속에서 교육해 오다 보니 일상에서 마주치는 분들에게 일일이 진호의 장애를 알리고 협조를 구해야 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진호의 사정을 다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일일이 설명과 양해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편하죠. 반면에 외출했을 때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진호에게 설명과 더불어 교육을 하고 있는 중에도 사인이나 사진 촬영을 요구하시는 바람에 교육의 맥이 끊어져 버릴 때는 좀 난감하기도 해요. 사실 아직도 진호는 고쳐야 할 행동들도 많고, 설명해서 이해시켜줘야 할 일들도 많거든요. 진호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점은 고맙지만 진호 역시 장애를 갖고 있는 그래서 앞으로 극복해야 할 일들이 많은 과정 중에 있는 수영선수이며 학생이라는 점들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도‘진호야 사랑해’라는 방송을 통해서 진호군은 여러 가지 사회체험과 도전 과제를 이루어냄으로서 자신감을 많이 회복했다고 한다. 그 동안 자신과의 생활이 조각그림을 만들어 온 것이라면 방송이라는 기회를 통해서 조각 그림들을 맞추어가는 것이었단다. 진호군은 이제 고등학교 졸업반이다. 때문에 진로에 대한 고민이 현재 가장 큰 고민거리라고 했다.“대학 진학 쪽보다는 실질적으로 진호의 인생에 있어 필요한 취업을 희망하고 있어요. 실업팀에 진출해서 경제적, 사회적 자립을 이루기 위한 출발을 하고 싶은 거죠. 현재 수영 실업팀은 시청과 도청팀 뿐이지만 진호의 경우 특별한 경영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민간 기업의 후원을 받아 그 기업의 소속을 가지고 졸업 후 몇 년간 더 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현재 이 문제로 많은 고심을 하고 있어요. 전례가 없었으므로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문을 두드릴 생각이에요.”

엄마의 사랑은 절제의 미학
진호 군의 교육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의 하나는 엄마로서의 사랑을 절제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제해야만 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한다. 진호가 좋아하는 것을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호에게 좋은 것을 주기 위하여 당장은 참아야만 했던 엄마로서의 고통이 그녀를 힘들게 했던 것이다. 사실 수영이라는 종목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그래서 엄청난 체력의 소모와 고통이 따르는 운동이라고 한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내야만 가능한 운동이 바로 수영이다. 진호 군의 경우는 어려서부터 워낙에 물을 좋아했으나 선수로서 그 고통을 견뎌내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하면서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 한 구석에서 대견한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현경 씨는 진호에게 쉽게 칭찬의 말을 건네지 않는다. 혹여 나태해지거나 약해지지 않을까 싶어서란다. 오히려 더 힘든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당연히 땀을 흘려야 할 때 흘리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고 했다.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대견하고 물살을 가르는 모습에 감격스러우면서도 엄마이기에 강한 아들로 키워야 하는 엄마이기에 칭찬의 말에도 조심스러워하는 유현경 씨의 모습에 새삼 감동을 한다. 진호 엄마 유현경 씨에게는 앞으로의 소망이 있다. 진호 군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가정적으로 독립을 이루었으면 하는 마음이다.“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가는 세상에서 비록 작더라도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에 최선을 다햐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회인이 되었으면 해요. 설령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그 도움을 최소화시킬 수 있도록 해야겠죠. 엄마인 제가 진호 곁에 있을 때까지는 진호의 홀로서기를 위해 치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구요. 진호와 함께 지내는 사람으로 하여금 조금은 부족한 부분이 있을지언정 함께 있고 싶은 사람으로 여겨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나 사실 엄마의 도움으로 홀로서기 준비를 하는 진호는 그저 세상의 모든 아들과 딸이 해오던 일들을 조금 더 오래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녀가 그린 꿈은 현실이 되고
진호 군의 또 다른 희망이 된다
그녀가 내린 행복에 대한 정의는 과연 어떤 것일까.“행복은 물론 내 마음 속에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건보다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으냐가 아니라 눈 뜨면 미주치는 내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얼마나 평안과 사랑을 느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지요. 물론 그 속엔 내 자신도 포함되어 있어요. 나를 포함한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안정적이고 기쁘고 사랑이 넘친다면 그야말로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진호 군이 한창 자폐 증세를 보이고 있었던 여섯 살적에 그녀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루하루가 진호와의 밀고 당기는 싸움으로 보내던 전쟁 같은 시절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때 주변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주일 예배 시간에 목사님이‘바라봄의 법칙’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설교를 하던 중 자신이 소망하는 미래의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게 떠올랐다고 한다. 너무나도 선명한 영상에 놀라 자신도 모르게 그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한 장의 그림은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장면이었고 다른 한 장은 예쁜 교복을 차려 입은 진호가 교실 뒷자리에 앉아서 선생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녀가 그린 그림을 거실에 걸어두고 매일 같이 기도를 했단다. 그림 속의 모습이 현실이 되어주길 간절하게 바라면서 말이다. 그저 꿈으로 끝날 것만 같던 일들이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 지금 다시 한 번 도화지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가? 그녀는 진호를 기르면서 경험 부족과 이해 부족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한다. 다시 시작한다면 조금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단다.“다시 내게 생이 주어진다 해도 역시나 진호엄마이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유현경 씨의 이야기에 눈시울이 시큰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을까.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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