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하루’통해 제2의 인생 시작해

최근 마포FM(100.7MHz)의‘행복한 하루’라는 프로그램이 주목을 받고 있다.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인‘행복한 하루’가 마포구에서만 들을 수 있는 지역방송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유는 하나다.‘행복한 하루’를 제작하는 사람들이 아주 특별한 사람이 아닌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노인’이라는 점이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또한 너무나 특별한 마포 FM의‘행복한 하루’팀을 만나보았다. 평균연령 68.4세의 라디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월요일 오후 4시 30분, 마포FM 스튜디오는 녹음 시작 전이라 분주하다. 월요일 녹음을 담당한 ‘행복한 하루’의 팀원은 PD 김도환(63)씨, 진행 김영미(70)씨, 아나운서 곽기순(73)씨, 문화산책장성자씨(63), 장옥순(73)씨. 이들은 각각 자신이 맡고 있는 코너의 원고 작성부터 게스트 섭외까지 직접 담당하고 있어, ‘행복한 하루’는 더없이 진솔하고 사실적이다. 주된 청취자가 노년층인‘행복한 하루’로서는 노인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김도환(63)씨-행복한 하루 PD, 방송 1년 1개월 차.
▲ 담당 PD 김도환 씨.
“행복한 하루를 제작하고 있는 사람들은 끼가 잠재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라며“나이가 들어서도 방송생활을 하고 있는 사실에 모두들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전직 공무원 출신인 김도환씨는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을 녹음하지만 일주일 내내 이 프로그램에 신경을 쓰고 있다. 섭외에서부터 원고작성, 녹음에 이르기까지 신경을 쓰지 않는 부분이 없는 그로서는 일주일이 짧기만 하다. 최근 방송하는 재미에 푹 빠진 김도환씨는 “만약 제가 젊었을 때 방송했더라면 잘했을 겁니다. 지금 하는 사람들을 보면 놀라워요. 무척 기발하고 상상도 못했던 것들이 튀어나오는 것들을 보면 말이예요”라고 한다. 특유의 구수한 입담으로 게스트를 편안한 분위기로 이끌어 주는 김도환씨는 ‘행복한 하루’를 시작하면서 노인문제에 조금 더 가까이 접하게 되었다. “‘행복한 하루’에 출연하는 게스트들은 대부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많아요. 사실 나이가 드신 분들은 보통 방송에서 소외되는 일이 많잖아요. 그래서 행복한 하루프로그램에 나와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할 때 나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다는 평점을 주고 싶어요”. 미국으로 이민 간 중학교 동창이 전화를 걸어 인터넷에서 프로그램을 다시듣기를 한 후‘이번엔 잘했다’‘잘못했다’하며 꼬박꼬박 들어 평을 해줄 때, 다른 곳에 가서 잘 모르는 사람에게 소개할 때 “방송국 PD입니다”라고 말할 때 뿌듯해진다는 김도환씨.‘행복한 하루’의 담당 PD답게 그는 노인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노인교실 등 노인 복지 프로그램에 관한 홍보 플랜카드가 걸려 있긴 하지만 홍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노인들은 노인복지관이나 문화센터가 아닌 탑골공원으로 향합니다. 물론 노인들의 인식도 미흡한 탓도 있지요”라며 “지금 노인세대는 고생하며 사신 분들입니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잊어버린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노인들에 무관심한 것 같아요. 주위의 어르신들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남겼다.

김영미(70)씨-행복한 하루 진행. 방송 1년 1개월 차
▲ 진행 김영미 씨.
“1955-7년 여학교 다닐 때부터 방송에 관심이 많았지만 늘그막에 할 줄은 몰랐어요”.원래부터 방송에 관심이 많았다는 김영미씨. 빠른 듯 하면서도 절도 있는 그녀의 목소리는 출연진들과 청취자들을 단번에 휘어잡았다. 전직 교사출신인 김영미씨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즐겁다. TV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요즘, 그녀는 라디오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있단다. “우리 연령대는 6·25동란을 지나고, 9·28서울 수복 이후 제일방송, (구)경기여고 자리에 방송국이 있을 때 곧잘 그 동네에 갔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우리 노인네들은 TV보다 라디오가 더 친근하게 느껴져요. 방송에서 구수한 옛 노래라도 나온다 치면 향수에 젖게 되는 거지요”. 김영미씨는 “주위에서는‘ 너는 옛날부터 끼가 있었어’라는 위로와 격려의 말을 많이 들어요. 주변에서 제 방송을 듣고 칭찬해주고 흡족해할 때 보람을 느끼게 되요”라며 “우리 스스로가 직접 원고를 작성하고, 논설을 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일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원고작성부터 방송 모니터링까지 직접 하고 있는 그녀는 자신이 한 방송은 자신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단다. 건강이 따라주는 한, 계속해서 방송 일을 하고 싶다는 김영미씨. 오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이제는 정당정치 시대라 하니 개인적인 인물보다는 당을 지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저는 진보적인 정당을 지지하고 있어요”라고 슬쩍 귀띔해주기도 했다.

곽기순(73)씨-실버뉴스 담당. 방송 5개월차
▲ 실버뉴스 담당 곽기순 씨.
“행복한 하루는 아침 6시부터 방송을 해요. 노인들은 잠이 없어 4-5시정도면 깨기 때문에 당연히 주 청취자들은 노인들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노인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뉴스를 선별해서 코너를 진행해요”. 곽기순씨는 패션분야에서 활동했던 만큼 옷차림 또한 세련됐다. 그녀는 예전부터 신문을 그냥 보지 않고 일일이 다 체크하고 스크랩해 보아왔다. 신문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열심히 신문을 보기 때문에 식구들이 그녀보다 먼저 신문을 읽겠다고 할 정도다. 행복한 하루에서 실버뉴스를 담당하고 있으니, 그녀로서는 자신의 적성에 맞는 최적의 분야를 맡은 셈이다. 방송 5개월차로 접어든 곽기순씨는 스스로가 아직도 어설프다고 생각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많은 것을 생각하고 공유할 수 있는 뉴스를 선별하기 위해 일주일 내내 고심한다. “전에는 신문을 봐도 나 혼자만 봤었는데, 이제는 방송을 하기 때문에 나 자신이 더 공부를 하게 되요. 그래서 보다 더 깊이 있는 뉴스를 보도를 할 수 있어요”. 방송일을 시작하기 전에 TV만 봤었던 곽기순씨. “소출력이다 보니, 노인들이 일한다 하니 여기저기서 취재가 많이 들어와요. 주변에서 그런 모습들을 보고 괜찮다며 많이 격려를 해주네요”라며 “함께 일하는 팀원들끼리 부족한 점은 서로 보태주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어요”라며 팀웍을 자랑하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하이레벨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헤매는 것을 보면 안타까워요. 얼마 전 택시타고 갈 때 그런 우려 섞인 말을 했더니 운전사가 뒤를 돌아보더니 ‘할머니 세대가 더 안됐어요. 젊었을 땐 고생하며 애들 가르쳐 놨더니, 나이 들어서는 젊은 사람들을 걱정하고 있잖아요’라는 말을 하더라구요”.

장성자(63)씨-문화산책 담당. 방송 5개월차.
▲ 문화산책 담당 장성자 씨.
“7월부터 방송을 시작했어요. 새로운 분야다 보니 재밌게 하고 있고 또 그렇게 하려고 해요”. 내레이션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목소리의 소유자 장성자씨.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서도 목소리가 방송에 잘 맞을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단다. “라디오 방송이라는게 TV와는 다르잖아요. 실버방송이면서도 아침 6시부터 7시에 하는 거라 사실 정확한 청취자층을 파악하기 힘들어서 나름 방송을 한다고는 하는데 많이 부족하죠” 김도환씨와 함께 팀의 막둥이인 장성자씨는 휴식시간엔 김도환씨와 함께 팀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한다. 대학 여자 동문 장학팀장을 맡으며 한 달에 한 번 시 한편과 안내장을 보내는 일을 하기도 했던 장성자씨. 그녀는 다시 한 번 시를 읽어보고 어느 시가 좋을까 고르는 동안 한층 젊어진 듯한 기분이 든다. “예전 같으면 뒷방 할머니 같은 기분이 들었을텐데, 이제는 젊은 날의 상념, 아름다운 추억에 젖어 들 수 있어 행복해요”. 소출력이다 보니 피드백이 그만큼 잘 되지 않는 것이 아쉬운 그녀다. “라디오는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심도 있는 얘기를 할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라디오 앞으로 모여서 나중엔 우리 행복한 하루가 지역방송이 아닌 전국방송으로 발전해 정말 제대로 된 방송을 하고 싶어요”라며 소박한 꿈을 밝히기도 한다. “대통령이요? 경제 살리는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어요. 국민도 무서워할 줄 알고, 세금을 적재적소에 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노인분들이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장옥순(73)씨-명상 담당. 5개월 차.
▲ 명상 담당 장옥순 씨.
“친구들은 제가 부럽대요. 어떻게 매일 그렇게 원고를 쓰느냐며 자기들이 보기에 대단하대요”. 명상을 담당하고 있어 그런지 차분한 목소리의 장옥순씨. 차분한 목소리만큼이나 온화한 인상은 함께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없이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소질은 많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방송 일을 하고 싶은 욕망이 더 커지는 것 같고 의욕이 생겨서 꼭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었어요. 아직 부족한 점은 많아요”. 장옥순씨는 담당하고 있는 명상 코너에서 일곱 살 때부터의 일생을 써서 이어가고 있다. 그 일을 끝까지 해내는 것이 목표라는 그녀는 그 소소한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노력중이다. 그녀의 코너는 어떻게 하면 듣는 이가 더 즐겁고 편안하며 친근하게 들을 수 있을까 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평상시에 수줍음이 무척 많은 그녀가 방송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소질이 없는 것 같아 자신감도 조금 부족해요. 그냥 어떻게 하면 프로그램에 더 잘 어우러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녀가 바라보는 노인들의 세계는 참 안타깝기 그지없다.“복지관에서는 셔틀버스로 지역을 순회하면서 노인분들을 모셔오는데, 그분들은 대부분 학교 등교시간처럼 가방을 메고 일정한 시간에 나오셔요. 그 중에는 물론 건강하신 분들도 있지만, 몸이 성치 않은데도 움직이겠다는 집념 하에 나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노인들이 집에 있으면 식구들이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날이 갈수록 힘이 약해지고 초라해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워요. 그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현재 우리나라의 고령화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오는 2017년에는 초고령사회로 접어들게 된다. 각종 매스미디어에서는 노인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떠들어댄다. 하지만 지금 황혼의 시기에 있는 이들이 모두 현실 앞에 무기력하게 좌절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 중 우리 역사의 힘든 과거를 극복해 온 저력으로, 그리고 20대 못지않은 열정으로 묵묵히 자신의 인생을 완성해가는 이들이 있다. 열정, 그 단어만큼이나 뜨거울 그들의 제 2의 인생이 기대된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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