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인적 자원 확보 위해 이중국적 허용돼야

최근 이중국적의 허용여부가 화제다. 지금껏 정부는 복수국적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해왔으나 지난 10월 법무부는 병역을 마친 한국인과 외국인 전문가에게 제한적으로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무부 검토안에 다르면 병역을 마친 지 2년이 지나지 않은 한국 국적 소유자와 특정 분야의 전문성이 인정되는 외국 국적 소유자가 이중국적 허용대상이다.

지난 10월 25일 법무부는 청와대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부처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2회 외국인정책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방안을 논의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한국 국적을 버린 사람이 17만명을 넘어서는 등 연간 1만명 이상의 인력 유출이 이뤄지고 있으나, 같은 기간 새로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5만명에 그쳤다. 정부는 일단 ‘병역을 마친 한국인’과 ‘전문 지식을 갖춘 외국인’에 대해 제한적으로 이중 국적을 허용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또 내년 상반기부터 유명 글로벌 기업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거나 세계 상위권 대학 학생 및 졸업자들이 초청자 없이도 입국해 국내에서 구직활동을 할 수 있는 ‘구직비자’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아울러 내년 1월부터는 단순 노무인력이라도 자격증 소지나 임금수준 등 일정 요건을 갖춘 외국인에게는 국내 거주 또는 영주 자격이 주어진다.

이중국적 왜 허용해야 하나
▲ 병역회피를 위해 한국국적을 포기한 후 미국으로 건너간 가수 유승준. 유승준의 국적포기 이후 병역기피를 위해 이중국적을 악용한 사례가 드러나기도 했다.
현행 국적법은 만 20세 이전 이중국적자가 된 경우 만 22세가 되기 전에 한쪽 국적을 포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20세 이후 이중국적자가 되면 2년 내에 한쪽 국적을 버려야 한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도 6개월 안에 국적을 포기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에 살면서 한국인이 갖는 권리와 의무를 누리기 위해서는 이중국적자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국적만을 선택해야 한다. 이 같은 현행법으로 인해 이중국적이 된 한국인이나 국내 취업을 희망하는 우수 외국인들을 놓치는 사례가 빈번하다. 국내에서 일하려 해도 한국 국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원래 국적을 포기하기 전에는 취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한국 국적 포기자는 무려 17만 명을 넘어선 반면, 새로이 한국 국적을 취득한 자가 5만 명에 불과하다는 법무부의 통계는 이러한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한국 출신 이공계 미국 박사학위 취득자의 현지 정착률이 최근 들어 50%가 넘었다는 삼성경제연구소의 통계도 있듯, 이중국적 금지가 한국의 인재들을 끌어 모으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해외의 더 나은 경제적 기회를 찾아 떠나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이중국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폐쇄적인 국적법 유지에 한 몫을 해왔다. 특히 몇몇 이중국적자들은 병역을 피하기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사례들이 발생하며, 이중국적에 대한 불신을 더욱 키워왔다. 병역회피를 위해 한국국적을 포기한 후 미국으로 건너간 가수 유승준이 그 대표적인 예다. 유승준의 국적포기 이후 이중국적을 가진 연예인들마다 구설수의 대상이 되었으며, 일부 사회지도층에서 병역기피를 위해 이중국적을 악용한 사례가 드러나기도 했으며, 결국 지난 2005년, 남자들이 이중국적을 가졌을 경우 병역을 마치고 난 이후에만 국적포기가 가능하도록 국적법이 개정되기도 했다.

다중국적 취득은 글로벌 사회의 전형적 흐름
한국의 국적법이 다른 나라의 국적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외국인들에 대한 배타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는 동안 세계의 다른 나라들의 이중국적 허용은 계속 늘어갔다. 전 세계에서 다중국적을 인정하고 있는 나라는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매우 많다. 유럽은 여성이 국제결혼을 한 뒤에도 본래의 국적을 유지하는 것을 허용하는 추세다. 남미 17개 국가 중 15개 국가가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있다. 인도와 필리핀은 이중국적을 허용한 뒤 해외동포들의 자국 내 경제투자가 늘어 쾌재를 부르고 있다. 미국에도 이중국적자가 꾸준히 증가, 4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세계에서 다중국적자가 늘어나는 것은 사회보장, 교육, 취업 등 국적자로서 얻을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와 혜택을 좇아 여러 국적을 취득하는 모습은 글로벌사회의 전형적인 흐름이다. 세계적인 미래학 전문가 군들라 엥리슈는 일자리와 기회를 찾아 유목민처럼 떠도는 현재 인류의 모습을 일컬어 ‘노마드(Nomade, 유랑자)의 시대’라 말하기도 했다. 세계 인구의 1/6이 국경을 넘어 이동하고, 전 세계적인 인적교류가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이중국적자는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것이다. 반면 한국이 여전히 이중국적을 금지하고 있는 한 계속해서 한국을 떠나는 인재는 증가할 것이고, 한국을 찾아올 글로벌 인재도 줄어들 것이다. 이제라도 한국 정부가 제한적으로나마 이중국적을 허용할 의사를 밝힌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15년 전부터 검토됐던 이중국적 허용이 번번이 의결되지 않았던 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번에도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번에야말로 정부가 이중국적 허용에 적극적으로 접근해 국경 없는 세계화에 한층 앞장서야 한다. 이중국적 인정이 바로 글로벌 경쟁에서 한국이 살아남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병역 기피 등 악용될 소지 있어
임지봉 건국대학교 법대 교수는 “이중국적 금지에 대한 국적법 조항들은 주로 외국 국적 보유를 이유로 한 대한민국 국민의 병역의무 이행 기피를 방지하기 위해 국적법에 규정되었다”며 “이러한 입법취지는 우리 국적의 국민들에게 국방의무의 하나인 병역의무의 이행을 공평하게 요구하기 위한 것으로 지극히 정당한 것이며, 실제로 이 조항들이 ‘병역의무의 공평한 이행’이라는 입법취지 내지 입법목적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원래의 입법취지에서 크게 벗어나 이 조항들이 파행적으로 운용되었거나 되고 있다는 보고나 증거도 없다”고 말한다.

<강조구문>“이중국적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헌법적 의무는 외국 국적 보유를 이유로 회피하며 그 권리의 주장에서는 대한민국 국적 보유를 이유로 향유하겠다는 얌체집단을 양성할 가능성 높아”<강조구문>

이중국적을 반대하는 이들은 “이중국적의 허용은 국방의 의무 중 병역의무의 이행과 관련하여 형평성의 문제를 일으킨다”며 “이중국적의 허용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헌법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헌법적 의무는 외국 국적 보유를 이유로 회피하면서 그 권리의 주장에서는 우리 국적 보유를 이유로 이를 향유하겠다는 얌체집단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 외국 국적 보유를 이유로 납세,근로,환경 보전 등 국민으로서의 헌법적 의무는 회피하면서 권리는 행사하려고 할 게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또 현재로서는 ‘이중국적 금지’규정을 폐지할 명분도 없다며, 이 규정이 정당하지 못 하다거나,원래의 입법 취지에서 벗어났다는 등 관련 법을 개정할 만한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또한 이중국적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나라는 거의 없을 정도로 이중국적 허용은 세계적 추세도 아니라고 지적하며 두 나라에서 다른 이름의 여권을 사용하므로 출입국&#8228;체류 관리가 어려운 것은 물론 국제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어느 나라 국민으로 취급하며 당사자에 대해 어느 나라의 외교적 보호권을 우선 적용할지 등을 놓고 논란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는다. 만약 정부 방침대로 병역의무 이행이 허용 조건이 될 경우 국내 여성 인재들은 이중국적을 취득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국적에 대한 개방적 사고는 불가피한 시대적 요청
현택수 고려대학교 사회학 교수는 “한국은 심화되는 고령화와 저출산 시대를 맞아 인재 확보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노동력 확보에 비상이 걸려 있다”며 “자본과 인적 자원이 더욱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시대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국적법 개정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중국적의 허용을 찬성하는 이들은 국내 고급 인력이 해외에서 활동하기 위해 국적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고,외국인 전문 인력의 국내 유입은 적어 글로벌 시대의 인재 유치 경쟁에서 크게 뒤처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강조구문>“글로벌 체제 속의 무한경쟁을 헤쳐 나가고
다문화 시대의 다양성 살리기 위해서 이중국적 허용은 불가피”<강조구문>


지난 10년 동안 한국 국적을 버린 사람은 17만명이 넘는 데 반해 새로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5만명에 불과하다는 법무부 통계가 이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이중국적의 허용을 찬성하는 이들은 글로벌 체제 속의 무한경쟁을 헤쳐 나가고 다문화 시대의 다양성을 살리기 위해선 이중국적 허용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700만명에 이르는 해외 거주 한국인의 능력을 결집하고,한국을 찾는 글로벌 기업인들의 다양하고 자유로운 사업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국적에 대한 개방적 사고는 불가피한 시대적 요청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 등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글로벌 일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이중국적 허용 등을 통해 자국 내의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택수 교수는 “한국이 복수 국적을 완전히 인정하기에는 아직 국가경쟁력에 자신이 없고 국민 정서가 호의적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라며 “다양한 병역의무 방식의 도입과 함께 한국 국적의 세계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적이 국내외 한국인이나 외국인에게 ‘운명’으로서의 국적이 아니라 ‘선택’으로 취득하고 싶은 국적이 되도록 경쟁력 있고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정책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중국적 허용문제에 관해 재외동포사회의 열화와 같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국내 사회가 보여 온 태도는 이중국적의 의미가 무엇이며, 왜 이중국적자가 생기는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 없이 부정적 반응이 주류를 이루었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정치권 일각에서의 논의를 제외하면 사회적 논의 자체가 금기시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인재가 이중국적이란 장애물로 인해 국내에서 활동할 기회를 잃는다면 국익의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중국적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정서가 그대로 남아있는 만큼 국민으로서의 권익은 물론 의무를 다할 수 있는 기본 소양을 전제로 그 허용 폭을 점진적으로 확대해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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