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었던 기억의 틈으로 새로운 삶을 노래하는 그녀

훌쩍 세월이 흐른 뒤, 그 흐른 세월만큼 머릿속에는 소중한 추억의 실들이 한 가닥씩 매듭지어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한 해, 한 해를 보내면서 그 해의 모습과 그리고 시간들 속에 늘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마돈나, 댄싱퀸 등 수많은 수식어로 20년간 가요계에서 활동해온 김완선, 솔직히 그녀는 가수로서의 세월이 짧지는 않지만, 과거의 김완선 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그녀를 기억해주길 더 원하고 있다.

신성아 기자

김완선은 1986년 열일곱의 나이에 ‘오늘밤’이라는 노래로 가요계에 데뷔한 이후, 20년이란 긴 시간동안 다양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20년 전, TV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현란한 춤 솜씨와 눈매가 치켜 올라간 독특한 외모, 섹시한 음색의 댄스음악으로 열정적이고 화려한 무대를 보여주었다. 아직도 그 때의 김완선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만 시간은 어느새 흐르고 흘러 2005년이 되었으며, 이제는 예전과 다른 수수한 모습으로 팬들에게 자신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이제서야 열일곱의 나를 배웅합니다’
그녀가 3년 만에 발표한 이번 신보는 처음 음악을 시작했던 순수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서 새 앨범 제목을 ‘리턴’으로 정했다. 20년간 가수 생활에서 겪었던 시행착오, 무지와 혼동, 많은 방황을 끝내고 새로운 뮤지션으로 거듭나겠다는 각오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9집 앨범 <Return>은 임창정, UN, 김현성 등의 앨범 작업에 참여한 작곡가 원상우가 프로듀싱 했다. 원상우, 손무현의 곡들과 원태연, 한경혜 등이 작사가로 참여해 보너스 트랙과 함께 총 11곡이 수록된 이번 앨범은 8집까지 댄스 장르 위주의 음반활동을 했던 김완선에게는 큰 변화와 모험을 감행한 앨범이라고 볼 수 있다. 너무 이른 나이에 데뷔하여 빨리 스타가 돼버린 그녀는 17살 어리고 무지한, 그저 가수가 되고 싶은 열정만을 가진 순수하기만 한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그렇게 대중 앞에 서 왔었다. 이런 스스로의 자책과 아쉬움을 표현한 노래가 타이틀곡인 ‘세븐틴’이다. 가수로 데뷔했던 나이를 의미하는 세븐틴은 슬픈 느낌을 주는 부드럽고 편안한 팝 발라드로 당시 자유롭지 못했던 지난 모습을 감싸고 안아 다시 태어났다는 희망과 기대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제는 춤 잘 추고 매력적인 여자 가수가 아닌, 뮤지션으로서의 자신 있고 성숙해진 그녀를 초겨울 바람이 낙엽을 흩날리는 저녁에 만나보았다.

건강한 자유로움이 뿜어내는 힘
기억이 우리의 머릿속에서 누적되고 그것을 훗날 떠올리게 될 때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추억이라 일컫는 것 같다. 아마도 가수 김완선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 추억의 일부일 것이다. 그러나 예전의 추억 속에 살고 있는 그녀는 진정한 김완선의 모습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신곡 ‘만들어진 인형’의 가사에서 비유했듯이 전의 앨범들은 자신의 의견이나 의지는 배제된 채 만들어졌고, 당시 내성적인 성격 탓에 포기해 버린 게 너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날 만난 김완선은 새롭게 비상하여 생동감 넘치는 눈빛이 아름다웠고, 나지막한 목소리는 자유로운 바람을 타고 온 것처럼 강하고 부드럽게 들렸다.
She says : 이번 앨범은 기존의 댄스뮤직 스타일이 아니에요. 솔직히 그 때는 제가 참여하는 부분이 거의 없었죠. 수동적이었고, 데뷔하자마자 춤에 대한 이미지가 강하다보니 개인적으로 다른 거를 할 생각도 못했고, 하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어요. 그러다보니까 한 가수로서 음악에 대한 애정이 식더라고요. 또 내 앨범이 나와도 제대로 듣지 않게 되고, 자꾸 연구하는 것이 의상이나 헤어스타일과 같은 이런 것만 생각하게 됐어요. 하지만 이젠 아니에요. 내가 더 이상의 흥미나 애정을 못 느끼면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그리고 그 전에는 저에 대한 어떤 표현을 안했어요. 얘기도 안하고, 어떤 심정을 하고 있는지 매니저가 모를 정도로 표현하는 것을 아꼈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은 거죠. 나를 표현하고 싶고, 나로서 어떤 음악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자신 있게 말하려고요. 그래서 이번 앨범은 굉장히 자연스럽고 매일 들어도 정말 편안해요. 실제로 전 매일 일어나서 듣고, 차에 타서도 들을 정도로 매우 만족스러워요. 그 동안에 용기가 없었고, 항상 주눅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면 이 앨범으로 인하여 자신감과 나에 대한 자존심이 생긴 거죠.

내 자신의 변화를 즐겨라
변화는 때로는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저항과 맞물려 시끄럽기도 하지만 변화의 당위성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변화의 중심이자 출발점은 주어진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자신의 깊은 내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김완선은 변화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처음으로 스스로 앨범을 프로듀스 했고, 기획부터 심지어는 보도 자료까지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
She says : 가수 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음반 제작자의 요구에 맞추느라, 때로는 댄스가수라는 틀에 사로잡혀서 정작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못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소극적이었어요. 이번에는 달라요. 직접 작사가와 만나서 노래에 영감을 맞추지 말고 나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나의 입장에서 가사를 써달라고 이야기도 하고, 작곡가들과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등 적극적으로 앨범에 참여했어요. 참여가 아니라 거의 제가 한 거나 마찬가지죠. 그 전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엄두가 안 났고,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도 않았어요. 또 나 스스로의 확신도 없었고요. 이러한 내 모습들이 보기 좋은지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좋아요. 저는 혹시 약간 외면당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오히려 댄스뮤직을 들고 나왔으면 외면당했을 텐데 뜨거운 반응을 보여줘서 바쁜 스케줄에도 하루, 하루가 즐거워요.

나도 한때는 인생이 슬펐다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온 김완선은 2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1집부터 8집까지 내면서 여러 장르의 음악을 시도했지만 정작 자신이 원하는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없었다고 한다. 이른 나이에 찾아온 인기가 부담이었다는 그녀는 이후 몇 번의 음반활동과 음반제작자로서의 변신 모두 실패했고, 홍콩과 대만에서 활동하던 시기엔 갖가지 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현재 가장 인간적이고 제 모습을 찾았다는 그녀가 온전한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말했다.
She says : 그동안 힘든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굉장히 편안해요. 일단 여유도 있어지고요. 누구나 다 고민이 있고, 힘든 점, 어려운 점이 있잖아요. 그런 모든 것을 하나씩 헤쳐 나가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싶어요. 단지 시간의 차이일 뿐이지, 그런 시기가 늦게 오는 사람도 있고, 저처럼 일찍 오는 경우도 있는 거 같아요. 지난날 저는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걸 극대화시켜서 생각하고, 왠지 세상이 금방 끝날 것 같고, 죽을 것만 같았어요. 근데 이제는 담담해졌어요. ‘이런 것도 인생의 하나구나’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도 하나의 삶이고, 다른 사람이 그러하듯이 저도 그렇게 된 거죠. 결국은 과거를 되돌아봄으로써 한 번쯤 인생에 대해 정리라는 것도 하게 되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돼는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해요.

젊음 하나만으로도 아름답다
원하는 햇살을 향해서 자라 오르는 꽃줄기의 용오름처럼 젊다는 것과 같다. 그리고 용감하기도 하다. 섹시가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김완선에게 묻는다. 요즘 대부분 젊은 여가수들의 섹시 콘셉트에 대해 부정적이지는 않은지.
She says : 대개 그런 가수들 보면 ‘아 예쁘다! 이래서 옛날 어른들이 젊은 애들을 보면서 젊음이 아름답고 예뻐서 부럽다고 하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많은 여가수들이 잘하든 못하든, 섹시하든 섹시하지 않든지 그저 젊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 아름다움을 인정하게 돼요. 나쁘게 생각할 게 뭐있겠어요. 어차피 보는 거라면 예쁘게 봐야 좋죠. 오히려 데뷔하는 연령대가 낮아진 것이 좀 안타까워요. 그리고 요즘은 가수만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하게 엔터테이너로 활동하는 것으로 변화하는 것 같아 그 부분도 아쉽고요. 하지만 예전보다 더 똑똑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표현이 아주 솔직하고 뚜렷해서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지, 나쁘게 보진 않아요.

그녀의 일상에서의 모습은 책과 함께
데뷔 한 이후 지금까지 쉬어본 날이 없는 김완선은 취미생활을 할 시간이 없었고, 여가를 즐긴 적도 없었다. 게을러서 밖에 나가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시간 나는 대로 책을 읽고 있다. 내가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인디언 추장들의 이야기인 ‘나는 왜 네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책에 대해 소개해주었다.
She says : 요즘엔 계속 활동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내서 책을 읽지 못하지만, 그동안 앨범준비하면서 천체나 종교,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었어요. 집에서 혼자 DVD도 즐겨보고요. 근데 무서운 영화는 못 봐요.
앞으로는 음악에만 전념하여 가수로서의 길을 걸어 갈 생각이라는 김완선은 나이 때문에 결혼을 억지로 빨리 하고 싶지 않다며, 결혼엔 때가 있다고 생각하고 언젠가는 꼭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가수 활동과는 별개로 동대문 쇼핑몰에 입점해 직접 자신이 만든 옷을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가수생활 2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제야 제 모습을 표현하고 찾게 된 그녀의 오늘, 내일이 아름다운 기억들로 채워지기를 바라며, 과거의 고난을 잘 다스려 희망의 잎을 피운 것처럼 주변의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기를 그려본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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