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발로인가 개인적 복수심인가

연일 핵폭탄급 폭로를 터뜨린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 핵심으로 잡을 수 있다. 첫째는 삼성의 불법 비자금 조성과 비자금을 이용한 정·관계 및 법조계, 언론 로비 의혹이고, 둘째는 삼성그룹 지배권 승계 불법행위 및 에버랜드 사건 증인 조작의혹이다. 김 변호사는 2002년 제공된 대선자금도 바로 이 비자금에서 나온 것이라고 폭로하고 있으며, 또한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인 에버랜드 재판의 경우 2심까지는 삼성 측의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에버랜드에 대한 수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삼성 측이 증인 조작 등을 통해 진짜 책임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피고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 대하여 삼성 측은 의혹제기 배경과 동기, 순수성 등 김 변호사의 개인적 도덕성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일부 주장의 사실관계가 틀리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진실의 비일관성을 강조하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 그는 누구인가

삼성 비자금 폭로의 배경

삼성 비자금 폭로의 쟁점

▲그룹 승계 과정, 검찰 재수사 이뤄지나=김 변호사의 폭로가 메가톤급으로 인식되는 것은 삼성그룹이 경영권 불법 승계 과정 재판에서 증인 조작 등 사법 방해를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삼성은 회사에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을 것에 대한 변호인들의 조언을 ‘증인 조작’으로 과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검찰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증인 조작을 입증할 충분한 근거와 자료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김 변호사의 폭로는 한 발짝 더 나아간다. 2000년 삼성그룹이 이재용씨가 소유한 e-삼성에 대한 공정위 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치밀한 각본을 짰다는 주장도 최근 제기했다. 김 변호사는 공정위 조사와 관련된 삼성 내부문서는 전 직원이 갖고 나온 것으로 짐작되며, 삼성은 당시 해당 인물의 입을 막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또, 에버랜드 사건뿐 아니라 국세청의 세무조사, 공정위의 부당거래조사도 치밀한 각본에 따라 진상이 은폐됐으며, 자신도 직접 세부적인 대응 방안 마련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2000년께 작성된 삼성 내부문서에는 ‘사전에 작성된 시나리오에 맞도록 관련자와 진술을 맞추고, 사전에 짠 시나리오와 맞지 않는 문서는 모두 삭제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해당 문서는 그룹 차원에서 만든 게 아니라 공정위 조사 경험이 없는 e-삼성 측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자료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검찰 수사를 통해 김 변호사의 주장이 근거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경영권 불법 승계 과정 수사는 재수사 과정을 밟아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삼성 측은 김 변호사의 모든 주장이 근거가 없으며 향후 수사 과정을 통해 그 진실이 모두 밝혀질 것이란 입장을 개진하고 있다.
▲떡값 검사 존재, 과연 밝혀질 수 있나=삼성그룹이 조직적으로 관리했다는 ‘로비검사 명단’이 실제로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김 변호사는 “문서로 작성된 떡값 검사 리스트”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업무 속성상 메모를 했더라도 지우거나 폐기하고 메모를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김 변호사가 작성했다는 로비검사 명단의 신뢰성에 강한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문서로 된 명단이 없을 경우 그 실체적 진실을 어떻게 입증하느냐의 문제가 대두할 수 있다. 김 변호사는 “내 말을 듣고 일리가 있느냐, 신빙성이 있느냐는 것은 수사나 재판하는 사람이 판단해야 할 것”이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 변호사의 명단에는 구체적인 숫자와 뇌물 전달 기록이 담겨 있지 않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이나 삼성 측에서는 떡값 검사 명단이 삼성그룹에서 조직적으로 관리한 로비대상 명단이 아닌 것으로 주장할 여지가 생겼다. 삼성 측은 그간 현직 검사 출신으로는 최초의 영입이었기 때문에 ‘예우 차원’에서라도 그런 일을 맡기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김 변호사 문제제기, 변호사 윤리강령 어겼나=대한변호사협회가 김 변호사 대해 징계를 검토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불거진 쟁점이다. 지난 8일 대한변협 김현 사무총장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지난 5일 상임이사회에서 다수 이사가 ‘변호사로서 의뢰인에 대한 비밀 준수 의무를 위반했으니 조만간 징계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의견을 냈고 일단 수사 진행 상황을 지켜본 뒤 정식 절차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설혹 불법이라도 변호사는 의뢰인 비밀을 밝혀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밝힌 것이다. 김 사무총장은 “김 변호사는 너무나 중요한 비밀 준수 의무를 위반했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이라서 감싸는 게 아니라 강자든 약자든 비밀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김 사무총장의 주장이다. 그러나 시민단체, 상당수 네티즌의 견해는 다르다. 대표적인 전문가 집단인 대한변협의 인식세계가 일반 국민과 따로 놀고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의 폭로는 내부고발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 그들의 인식이다. 그동안 재벌그룹에 의해 교란되어온 우리나라 경제 질서와 사법 질서의 부끄러운 현실에 대한 양심고백이니만큼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김 변호사는 변호사 신분을 갖고 있었지만, 고용주 삼성의 피고용인이었을 뿐 ‘의뢰인의 비밀을 지켜야 할 변호사’로서의 지위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폭로의 배경과 동기는 무엇인가=일찍이 김 변호사는 삼성그룹에 들어간 것 자체가 일생일대의 실수였음을 회고했다. 재직 중 좋은 보수와 대우를 받았지만 삼성이 자신에게 ‘범죄행위’를 강요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삼성이 법무법인 서정에 압력을 넣어 자신을 퇴출시키려 했다는 것도 배경으로 거론했다. 그 외 가정사 등의 문제도 계기 중 하나였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삼성그룹 최상층부의 부패와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좌시할 수 없었다는 것이 그가 주장하는 동기와 배경이다. 삼성 측은 김 변호사의 행동과 동기 자체가 허구라고 주장한다. 김 변호사가 개인적 비리, 내부 변호사들과의 마찰과 갈등, 부적절한 처신과 변호사 직업윤리 위반 등의 문제가 있어 파트너 회의에서 2개월 휴직을 결정했으며 휴직 이후에도 같은 문제가 계속돼 퇴출을 결정했다는 서정 측의 해명을 인용해 반박했다. 삼성의 현 법무실장은 김 변호사가 퇴출될 것이라는 소문을 전해 듣고, 오히려 서정의 선배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김 변호사가 서정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게 해줄 수 없겠느냐”는 부탁까지 했으나 선배 변호사는 서정 내부의 사정과 김 변호사의 개인 문제를 들어 거절했다는 것이 삼성 측의 주장이다. 김 변호사는 삼성과 10년 이상 직접적인 인연을 맺어 왔으며 1997년 입사 이후 2004년까지 7년간 구조조정본부 재무팀·법무팀의 임원으로 재직하면서 스톡옵션 차익, 급여 등으로 일반인이 생각하기 힘든 거액을 받았다는 것이 삼성 측의 주장이다. 삼성 근무 중에도 한 번도 문제나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으며 퇴직 후 3년간 고문변호사로서 정기적으로 고문료를 받을 때까지도 아무 말이 없었다는 것이다. 회사 재직, 고문변호사 기간 중에는 아무 말도 않다가 고문 계약이 끝난 시점에서 근거없는 주장을 하는 것은 양심의 움직임이 아니라고 단정한다. 천주교사제단 측은 개인적인 동기와 배경은 삼성그룹의 부패와 비리 실체와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개인적 양심 혹은 앙심

“삼성에 관한 좋지 않은 정보들을 공개해서 (삼성 간부들의) 명예를 우리가 당한 만큼 밟아줘야 한다면 그건 제가 할 겁니다”
“지금도 김 변호사 이름으로 주식도 통장도 있겠죠.. 김용철은 왜 검찰에, 금감원에 고발하지 않을까? 왜 그냥 내 주식이라고 우기지 않을까?”
“이달 8월로 김에 대한 대우가 끝나나요. 김의 이름으로 된 주식도 처분했다죠“
“세상사람 다 알도록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죠”
“난 많이 참는 사람이지만 보복은 철저히 합니다”
삼성 측은 또한 편지에 중진 법조인의 실명을 거론하며 그가 김 변호사를 두 차례나 배신했다고 비난하고 있고 고위 공직자인 다른 선배가 부하 부인들을 상습적으로 성희롱해 문제가 됐을 때 김 변호사를 해결사로 동원했다는 주장도 담겨 있다고 밝혔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편지의 명의는 김 변호사 부인으로 돼 있지만 편지 내용을 보면 1인칭이 자꾸 혼동(김 변호사와 부인으로)되고 있다”며 “사실상 김 변호사가 보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은 “당시 편지 내용이 터무니없어 아무런 응답이나 대응을 하지 않았는데 이로부터 한두 달 지나 김 변호사가 언론사에 찾아가 뭔가를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삼성은 특히 “이 편지를 보면 그 자체로 김 변호사 부부가 어떤 인물이며 어떤 심리 상태에서 무엇을 주장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겠지만 내용 자체가 워낙 근거가 없고 많은 사람이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어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김 변호사는 “(삼성이) 내 아내가 보낸 편지를 빌미로 돈을 바라는 부부 공갈단으로 만들고 있다”고 반박했다. 삼성이 논란의 쟁점을 흐르기 위해 개인적 문제로 몰아가려고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김 변호사의 처가 삼성의 고위 임원에게서 농락당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삼성은 “김 변호사와 처가 부탁을 해 고위 임원이 김 변호사의 처를 세 번 만나 김 변호사의 직장 적응에 대해 공개 장소에서 대화한 것 뿐이며 면담 내용도 그때그때 김 변호사에게 알려줬다”고 반박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동기에 대하여 여전히 ‘배은망덕’이니 ‘기업 권력에 대한 견제’니 말들이 많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 대하여 무차별 인신공격도 시작됐다. 김용철 변호사가 개인적인 양심에서, 혹은 앙심에서 삼성 비자금을 폭로한 것인지는 그 외에는 하지 못한다. 그러나 비록 그가 개인적인 복수심에서 폭로를 시작했을지언정, 삼성 비자금 문제는 개인차원의 것이 아닌 국가적 차원의 것으로 확대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떡검’으로 전락한 검찰, 이에 분노하는 국민들. 하지만 지금은 섣불리 그 폭로의 진실 여부를 논하기는 힘들다. 특검이 도입된 이상, 수사가 종결될 때에야 비로소 모든 진실은 밝혀지게 될 것이다. NP
장정미 기자
haiyap@inewspeopl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