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물들기 시작하면 금방이다”
- 민주노동당 심상정 초선의원

“국민이 386세대 의원들에게 거는 기대는 인정을 받으라는 것”
- 대통합민주신당 우상호 초선의원

2008년은 제18대 총선이 오는 4월 열린다. 지난 17대 국회에 입성한 초선의원들은 4년의 성적표를 들고 다시 국민들 앞에 서게 된다. 재선이 될지, 외면을 받을지의 관건은 그들이 걸어온 4년의 행적에 있을 것이다. 17대 총선에서는 초선의원의 비율이 62.5%로 16대 총선의 40.7%에 비해 무려 21.8%나 증가했다. (「17대 초선의원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윤종빈 명지대 정외과) 12대 국회 이후 초선의원의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초선의원의 대폭 증가는 유권자들이 부패 정치에 등을 돌린 결과였다. 국민들은 17대 국회의 정치신인들에게 타협과 상생의 정치를 보여주기를 기대했다. 국민들의 이같은 기대에 부응했는지는 이제 4월 총선에서 초선의원들의 재선 여부에 달렸다.
정치 신인에 해당하는 초선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정치인들을 봐온 정치부기자들에게 인정을 받은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과 대통합민주신당 우상호 의원은 적어도 그들의 의정활동 4년 성적표가 객관적으로 우수함이 입증됐다. 지난 해 긴박한 대선정국이 한창일 당시 제9회 백봉신사상 시상이 이루어졌다. 백봉신사상은 독립운동가이며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백봉 라용균 선생을 기리기 위해 우석대 라종일 총장 등 유족들이 지난 99년 제정한 상이다. 올해는 국내 언론사 정치부 기자가 204명을 대상으로 정치적 리더십, 업적과 성과, 교양과 지성, 모범적 의정활동 등 4개 분야에 대한 평가를 통해 선정됐다.
정치부 기자가 선정하는 백봉 신사상‘신사의원 베스트 10’에 우수 정치인으로 선정된 민주노동당의 심상정 의원과 대통합민주신당의 우상호 의원을 만나 초선정치인으로서 17대 국회를 지낸 소감과 4월 예정된 총선의 계획을 들어보자.

[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

▲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Q. 초선의원으로서 17대 국회를 지내시면서 그간의 소감은 어떤가.

- 진보정당의 첫 원내진출이라는 역사적 책임감과 민주노동당에 많은 기대를 갖고 계신 노동자 서민들에게 실망시켜 드리지 않기 위해 4년간 정말 열심히 뛰었다. 흔히들“정치가 밥 먹여주냐”고 하지 않나. 저는 처음부터 줄곧 “서민들 밥 먹여주는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의정활동을 해왔다. 정치가 바로 서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아니겠나. 그런 노력을 인정해주신 덕분에 매년 우수의원 상도 받고 과분한 평가를 받아온 것 같다. 이제 17대 국회가 종반인데 마지막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더 열심히 일하겠다.

Q. 17대 국회에서‘민주노동당’소속 국회의원으로서 가지고 있는 남다른 의식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 처음에는 국회에 들어갔는데 교섭단체끼리 회의 일정과 안건을 논의하다보니 우리는 회의가 언제 어떻게 소집되는지도 몰랐을 정도였다. 또 299명 의원들 중에 9명밖에 안되기 때문에 남들보다 두 세배 이상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됐다. 국민들이 민주노동당을 원내에 진출시킨 이유가 뭐였겠나. 보수정치와는 좀 다른 정치를 보여 달라는 거였을 거다. 한미FTA나 쌀개방, 비정규직법 등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다수 국민들의 이해를 대변하려고 노력을 했다. 장애인들을 위한 저상버스 도입, 학교급식법 개정, 6세미만 무상예방접종 실시를 담은 전염병예방법 통과, 지나친 고금리를 제한한 이자제한법 개정 등 눈에 띄는 성과도 냈다.

Q. 삼성비리 적발, 한미FTA반대 운동, 대선예비후보 등 4년 동안 걸어온 의정 활동은 우리 사회의 굵직한 정치적 이슈들로 대변된다. 그동안의 의정활동 중에서 가장 힘들고 지쳤던 사안은 어떤 것인가.
- 비정규직법이 통과됐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정부여당은 이 법이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이라고 주장했지만 민주노동당이 볼 때는 분명 비정규직 확산을 가져올 악법이었다. 상임위와 본회의에서 법안 상정을 못하도록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온몸으로 막아내려 했지만 결국 소수정당의 한계 때문에 막아내질 못했다. 그런데 비정규직법이 시행되고 나서 지금 어떻나. 홈에버 여성노동자들의 사례가 보여주듯 곳곳에서 이 법을 악용해 비정규직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지 않나. 지금도 그때 법안통과를 막지 못했던 죄송스러움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

Q. 초선의원으로서 17대 국회에서 경험하면서 스스로를 칭찬하고 자랑스러워 한 적은 언제인가.
- 제가 4년 동안 줄곧 재정경제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해왔다. 처음에 상임위를 가보니까 옆에 앉아있는 분들이 재경부장관 출신, 경제학 교수 출신 이런 분들이 대부분이더라. 저는 초선인데다가 25년 동안 노동운동만 하던 사람이다. 그리고 25명 중에서 민주노동당은 저 한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 4년 내내 흔적도 남기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문가들 모시고 일주일에 두 번씩 경제공부도 하고, 국감 때는 보좌관들과 사무실에서 밤새면서 질의서도 만들고 하면서 남들보다 두 세배 더 열심히 파고 들었다. 그렇게 하다보니까 어느새 경제전문가라는 소리도 듣게 되고, 재경부에서도“심상정의원이 무슨 말을 할지 제일 무섭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가 되었으니 뿌듯하다.

Q.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그동안을 되돌아볼 때 아쉽거나 후회되는 것은 무엇인가.
-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하면서 연초부터 줄곧 바빴다. 경선 끝나고 나서는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지방을 순회하느라 바빴고. 그러다보니 집에서 새벽에 나갔다가 다시 새벽에 들어가는 일이 많고 지방에 있을 땐 며칠씩 집에 못들어갔다. 아들이 중학생인데 사춘기라 엄마 손길이 많이 필요한 때인데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하니까 많이 미안하다. 대선 끝나면 가족여행가자고 약속했는데 총선 준비 때문에 틈이 날지 모르겠다.

Q. 초선의원이 의정활동을 펼치는데 있어서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우리나라의 정치 환경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 17대 국회가 초반에 기대를 모았던 부분이 바로 초선의원이 절반 이상 됐다는 것이었다. 국회개혁이라든가 정치개혁에 있어서 초선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치고 나가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실제로 초반에는 정당을 뛰어넘어 초선의원모임도 만들어져 국회개혁 의지를 보여주는 등의 활동이 있었다. 아직 기득권세력에 물들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다. 그런데 한번 물들기 시작하면 금방이다. 그러다보니 오래지않아 초선의원, 재선의원 구분이 없어지더라. 선배들한테서 좋은 것만 배워야 하는데 나쁜것부터 배우게 된다고 할까. 의정활동을 하면서‘저런 분을 본받고 싶다’는 역할모델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Q. 차기 정부에 대한 기대는 무엇인가.
- 850만이 넘는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사회 양극화 해소와 60년 분단체제를 해소하고 통일한반도를 실현하는 등의 많은 과제가 차기 정부 앞에 놓여 있다. 그런데 차기 정부가 과연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차기 대통령이 그런 국가통치능력을 갖춘 분인가 하는 점에 있어서는 회의적이다.

Q.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치적 목표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 대부분의 서민들이 원하는 건 집 걱정, 일자리 걱정, 애들 교육걱정, 노후걱정 없이 사는거 아닌가.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떤 위치에서든 미력하나마 역할을 다할 생각이다.

Q. 내년 총선에 대한 계획은 무엇인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출마할 계획이다. 다른 분들은 1,2년 전에 지역구를 정하고 준비를 한다는데 저는 최근에야 지역구를 확정했으니 많이 늦었다. 내년 총선을 민주노동당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기 위해서 지역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 대통합민주신당 우상호 의원 ]

▲ 대통합민주신당 우상호 의원
Q. 우 의원님의 우수한 의정활동은 2년 연속 받으신 백봉 신사상이 대신해주는 것 같다. 초선의원으로서 17대 국회를 지내시면서 그간의 소감은 어떤가.

- 2004년 당선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간의 소감을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니 세월의 흐름이 빠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지난 4년을 돌아보면 아쉬움과 보람이 교차한다. 아쉬움이라면 정치적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충분히 받지 못했다는 것이고, 경제적으로 심해지는 양극화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람은 미래산업인 문화산업의 발전을 위한 법적, 정책적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점, 언론의 건전한 발절을 위한 법적 환경을 정비하였던 것, 그리고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깨끗한 정치문화 정립에 힘썼다는 것 등이 있다.

Q. 17대 국회에서‘대통합민주신당’소속 국회의원으로서 어려움은 없었나.
- 정치인으로서 시대정신에 맞는 생각과 행동은 무엇인지에 대해 늘 고민해왔다. 제가 속한 정당을 놓고 보자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지만 목표와 가치가 분열된 과정은 아니었다고 본다. 민주와 평화의 가치는 차이가 없었고, 정권 재창출에 대한 목표 또한 다름이 없었다. 다만 그것에 대한 방법론이 달랐고 그것이 탈당의 형태로 나타났었다고 본다. 그러나 국민의 준엄한 요구에 따라 다시 뭉치는 과정이 대통합민주신당의 창당으로 이어졌고 이런 과정에서 학생운동과 재야운동의 시정을 통해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경험한 단결의 소중함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미FTA 등 국가경제와 민생과 관련되는 주요 이슈들을 접하면서는 많은 고뇌가 있었다. 그것은 가치와 실용의 충돌이 늘 있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실용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판단하려고 애썼고, 그런 과정에서 국회의원으로서의 전문적인 능력의 중요성을 실감하면서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했던 것 같다.

Q. 그동안의 의정활동 중에서 가장 힘들고 지쳤던 때는 언제였나.
- 대선 때가 아닌가 싶다. 지치지는 않았지만 힘든 것은 사실이었다. 국민이 지지해주지 않는 만큼 정치인으로서 힘든 것은 없다. 그런데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상식적인 판단만 해보아도 거짓과 진실이 구분될 수 있는 상황인데 국민의 지지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상대방의 약점을 통해 성장하지 않고, 자신의 장점과 능력을 통해 성장하는 정치세력을 국민이 더 신뢰하고 지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Q. 국회에 입성하기 전에 생각했던‘정치인’이라는 타이틀과 국회의원으로서 직접 활동을 하면서 경험하는‘정치인’에 차이가 있나.
- 큰 차이가 있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이 됐다. 2000년 낙선된 이후 원외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원내의 선후배 의원들과 많은 만남을 했기에 간접적인 경험은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막상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활동하다 보니 달랐다. 무엇보다 국민의 생활과 국가의 현재와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법과 정책, 예산을‘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법안, 수많은 정책, 막대한 국가예산 등을 발의하고 심의하고 논의, 의결하는 과정은 늘 국민에 대한 긴장감을 놓지 않아야만 합리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주장하고 요구하는 사람이 아닌 결정을 해야 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 변화, 이것이 원외와 원내의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Q. 초선의원으로서 17대 국회 의정활동 중 스스로를 칭찬하고 자랑스러워 한 적은 언제인가.
- 백봉신사상 2년 연속 수상에 자부심을 갖는다. 당 대변인이 백봉신사상을 수상하는 것이 어렵다고들 하신다. 상대를 비판하고 때로는 거친 언사도 해야 하는 대변인의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변인을 오랫동안 맡으면서도 신사 정치인으로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비방과 비난, 대립과 갈등의 정치문화를 상대에 대한 존중과 건전한 비판의 문화로 바꾸어 나가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했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여진다. 상을 받은 것 자체보다는 정치문화의 변화에 더 자부심을 갖는다. 또 하나는 언론관계법의 통과다. 당시 4대개혁 입법을 놓고 연말 국회가 심각하게 대치하고 있었는데 이 법안만이 205년 1월 1일 새벽 극적으로 통과되었다. 당시 소관상임위인 문화관광위원회의 간사이자 법안심사소위원장으로서 이 법안의 통과를 위해 주도적으로 노력하였는데 좋은 결실을 맺게 되어 보람을 느낀다.

Q. 한 해를 보내면서 뒤돌아 볼 때 아쉽거나 후회되는 것은 없나.
- 후회되는 것은 없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글로벌 감각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 2005년 후반기부터 2007년 상반기까지 비서실장 2번, 대변인 2번 등 총 4번에 걸쳐 제일 바쁘다고 할 수 있는 당직을 맡으면서 해외 사찰이나 견학, 해외 인사들과의 교류를 왕성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 개인적으로는 회화 능력도 업그레이드 시키고 싶었는데 이 또한 계획만큼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정치를 계속한다면 이 부분만큼은 꼭 보완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정치인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하고 싶다.

Q. 초선의원이 의정활동을 펼치는데 있어 우리나라의 정치환경은 어떤가.
- 초선의원의 장점은 신선함과 도전정신이다. 똑같은 사회현상이나 정책을 보아도 다른 각도로 보고 창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접근을 많이 시도하게 되고 이것이 정부정책 전번의 건강한 자극이 되어 새로운 정책의 추진과 기존 정책의 개선에 기여를 하게 된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정당을 숲으로 비유하자면, 숲에는 고목만 있는 것이 아니라 풀도 있고, 어린 나무도 있어야 조화로운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처럼 초선의원은 숲을 이루고 있는 정당정치의 생태계가 조화롭게 유지될 수 있는 활력소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초선의원이 가지는 경험의 부재에서 오는 미숙함은 여전한 단점이다. 초선의원으로서는 잘 안보이는데 재선, 삼선 의원들은 문제 해결방안을 잘 찾는다. 정책만 좋으면 움직일 줄 알았는데 그게 또 아니다. 관료사회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적절한 관계의 형성이 매우 중요한데 초선의원으로서 이런 능력을 갖추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Q. 차기 정부에 대한 기대는 무엇인가.
- 무엇보다도 민생을 잘 챙기는 정부였으면 한다. 부동산, 사교육비, 청년실업, 비정규직, 소득양극화, 노후안정 등 국민의 민생과 관련된 사안들이 많이 산적해 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못하겠지만 밀어붙이는 개발 중심의 경제성장 보다는 미래산업 중심의 건강한 경제성장을 통하여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길 바란다. 또한 남과 북 사이의 평화와 경제협력을 보다 구체적으로 심화시켜 발전시켜 나갔으면 한다. 이것은 이념적인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것이고 민족이 공동으로 번영할 수 있는 길이기에 후퇴 없는 전진을 꼭 이루어 내야 한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는 정부 역시 차기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단절은 고통이지만 소통은 서로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준다. 국민과 즐거움과 행복을 나누는 정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Q.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치적 목표는 무엇인가.
- 신뢰받고, 인정받는 정치인이 되는 것이다. 신뢰는 그 사람의 인성과 관련된 것이라면 인정은 능력의 문제다. 국민이 386세대 의원들에게 거는 기대는 인정을 받으라는 것이다. 학생운동과 재야운동을 통해 자기를 버리고 대의에 헌신했고, 도덕적 흠결 없이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 대해, 국민의 신뢰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본다. 그럼에도 비판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능력을 보여달라는 얘기다. 이 점에 충실하고자 한다.

Q. 내년 총선의 계획은 무엇인가.
-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것이다. 저의 능력과 가능성을 서대문 유권자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4년 동안 지역을 위해 노력했던 일,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노력했던 일, 우리 한국정치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일들을 꾸밈없이 전달할 계획이다. 구석구석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자 뛰어다녔고, 초선이지만 주요 당직을 맡았고, 대변인으로서 2년 연속 백봉신사상을 받았고, 미래산업 발전을 위해 초석을 다졌던 4년의 성적표를 수험생의 마음으로 서대문 유권자들께 그대로 보여드리겠다. 그리고 앞으로 4년에 대한 우상호의 비전과 도전도 적극적으로 보여드려 객관적인 총선상황과 관계없이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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