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귀향 대통령되는 노무현 대통령

반(反)한나라당 진영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지난 2002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당선인은 이번과 달리 단독 회동을 가졌었다. ‘민주당’이라는 같은 뿌리를 가진 두 사람의 분위기는 당연 화기애애했고, 연신 폭소가 터져 나왔었다. 그리고 다시 5년이 흘러 다른 양상의 회동이 진행됐다. 청와대의 주인이 바뀌는 날이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떠나는 노무현 대통령과 그 뒤를 잇는 제17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당선 직후인 지난 해 12월 28일 저녁 만찬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시종 화기애애하고, 정중한 대화를 주고받았던 두 사람은 10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루는 주인공들이었다. 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퇴임 후 고향으로 내려가는 최초의 대통령이기에 이 당선자는“후임자가 전임자를 예우하고 잘 모시는 아름다운 전통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퇴임 후에도 정책비판을 할 수 있겠지만, 대통령직에 대한 권위와 신뢰를 지키는 데는 도움을 드리겠다. 필요하면 국민들에게 설명도 하겠다”며 후임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갖추었다.
노 대통령은 지난 2005년 말부터 정권 인수인계를 대비한 다양한 준비를 해왔다. 대통령 기록관리법을 만들어 지정기록, 또는 비지정기록 체제를 수립했고, 실무적인 시스템을 직접 구축했다. 청와대가 그동안 중점적으로 관리해왔던 정책들에 대해 정책수행 과정을 다 기록하도록 노 대통령은 지시했고, 그것을 공개할 생각이라고도 밝혔다. 전자 문서관리시스템, 국정관리시스템에 관련해 보관된 문서가 60만건 정도이고, 청와대 서버에 남아 인수인계 되는 양이 약 20만건 정도다. 초기부터 문서폐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청와대와 노 대통령측은 강력히 주장한 바 있다. 특히 부동산과 교육 정책은 역사를 짚어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노무현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대한민국 부동산 40년’,‘대한민국 교육 40년’이라는 책을 출판했고, 이 당선인은 지난 해 만찬회동때 노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그 책들을 건너 받았다.


노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매달 1515만원씩을 평생 받는다. ‘연금지급액은 지금 당시의 대통령 보수연액의 100분의 95 상당액으로 한다’는 해당 법에 따른 금액이다. 대통령 연금의 기준이 되는 보수연액은 연봉월액의 8.85배다. 지난 해 노 대통령의 연봉은 1억6358만원으로 총급여는 급식비를 포함해 2억354만원이다. 한 달에 1696만원 정도를 받아온 셈이다. 따라서 이 정도의 보수 대비 노 대통령은 퇴임 후 매달 1515만원 정도의 연금이 나온다는 것이다. 김영상, 김대중 전 대통령도 거의 비슷한 액수로 매달 1400만원 정도의 연금을 받고 있다. 이런 연금제도에 대해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전직대통령에 대한 특권 폐지를 제안했다. 권 의원은“일반 서민은 국민연금을 40년간 넣어야 평균소득액의 50%를 받는 상황에서 전직 대통령들은 재직 시 월급의 95%를 매달 연금으로 받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 연금 뿐만 아니라 전직 대통령은 교통, 통신 및 집무실 제공, 비서관 3명 고용, 기념사업 지원, 국공립병원 및 민간의료 기관 비용 국가부담의 혜택도 받는다.
노 대통령은 퇴임 후‘농촌복원운동’의 꿈을 이루고자 한다. 그 동안 노 대통령의 퇴임 후 행보를 두고 부산 시장 출마설과 국회의원 출마설이 돌기도 했으나 임기 말 노 대통령은 현실 정치와 멀리 떨어져 있고 싶은 마음을 내비쳤다. 퇴임한 대통령이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 등의 공직 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불법이 아님에도 우리나라에서는 퇴임한 전직 대통령에게 그 같은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그저 재임 기간의 경험을 사회화 하는 차원에서 전직 대통령들은 저술과 강연 활동을 하는 것뿐이다. 워낙에 대통령의 은퇴 문화에 대한 선례가 없기 때문에 이번 노 대통령을 통해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새 지평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목소리도 높다. 미국의 카터 전 대통령의 경우 재임시절에는 비호감이라는 지적도 받았지만 퇴임 후 해비타트(집 짓기)운동을 통해 존경 받는 대통령 대열에 올랐다. 따라서 아직도 현실 정치에서 전직 대통령의 입김이 살아있는 우리의 퇴임 대통령 문화를 정립하는 기회로 이번 퇴임이 작용할 가능성도 크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최근 이런 말을 했다. “2002년 서울시장 취임 당시 4년 후 퇴임의 모습을 생각했듯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날에도 5년 후 퇴임할 때 국민과 세계가 어떻게 보고 평가할 것인지를 생각하며 능력은 부족해도 열심히 바르게 하겠다.” 그가 앞으로의 5년을 열심히 준비하는 동안 청와대에서는 지난 5년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국민과 세계가 참여정부 5년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고심하느라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달 노 대통령은 올해 경제운용방향을 논의하는‘2008 경제점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우리가 올해 경제운용방향 얘기해봤자 말짱 헛방 아니냐. 안 하려니까 사보타주하고, 게으름을 부리는 것 같고, 하려니까 계속 정책을 안할 사람이 보고받으려니까 좀 이상하고 그렇다.” 퇴임을 앞둔 대통령의 솔직한 허탈감을 드러낸 것이다. 2월은 정권교체의 과도기다. 정권 인수 과정에서부터 변화와 개혁을 원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마지막까지 주어진 권한을 행사해 자존심을 지키고픈 노무현 대통령이 공존하고 있다. 현 정권은 새로운 정치 계획을 세워 발표하지도 못하고, 차기 정권은 지금의 제도와 규칙들을 급하게 저지할 수도 없다. 가는 사람은 올 사람에게 책임은 물려주되 계획을 주진 못하고, 오는 사람은 갈 사람에게 계획을 들려주되 실전에 옮기지 못한다. 아직은 과도기이기 때문이다. 정권인수 작업이 이루어지는 두 달 동안 일어날 수 있는 잡음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서로에 대한 예우를 다하는 모습을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NP
장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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