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여 관중의 함성 속에 힘차게 출발한 이명박 정부

“여러분과 함께 자신감을 가지고 미래로 가는 길을 찾아 열어 가고자 합니다.”
“머지않아 새 정부가 효율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선진화를 향한 대전진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국민 여러분께 약속 드립니다. 국민을 섬겨 나라를 편안하게 하겠습니다. 경제를 발전시키고 사회를 통합하겠습니다. 문화를 창달하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겠습니다. 안보를 튼튼히 하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다지겠습니다. 국제사회에 책임을 다하고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겠습니다."
제17대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달 25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렇게 취임사를 시작했다.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하게 된 우리는 대통령 취임식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고, 새 대통령에 대한 축복과 기대 속에서 이명박 정부는 탄생했다.


지난 달 25일 제17대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국내외 귀빈과 일반 국민 등 5만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 대통령은 국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취지로 4만여 객석이 차있는 국회 앞마당을 가로질러 무대까지 입장했고, 그 길을 이용해 퇴장하며 시민들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아주는 등 시민과의 밀착된 대통령의 모습으로 직무 첫 날을 시작했다.
제 17대 대통령 취임식에는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참석했다.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엥흐바야르 남바르 몽골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후쿠다 야스오 일본 내각총리대신, 빅토르 줍코프 러시아 연방 총리, 무하마드 유숩 칼라 인도네시아 부통령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취임식에는 국악작곡가인 박범훈 취임준비위원장이 작사 작곡한‘시회연풍 아리랑’이 울려 퍼졌고, 식에 참석한 시민들을 입장 시 받은 빨강, 파랑, 흰색의 머플러를 휘날리며 취임식의 또 다른 조연으로 활약했다. 취임식에 공식 초청을 받은 국민들은 2만5천여명. 행사 시작 시각은 10시임에도 불구하고 오전 7시부터 국회 정문 앞에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렸다. 초청을 받지 못해 행사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국회 정문 밖에서 대형 화면을 통해 취임식 장면을 지켜본 1만여명의 국민들도 있었다. 청와대 경호팀은 취임식 당일 검색대 100여개를 설치해 비표를 일일이 확인하며 삼엄한 경비활동을 펼쳤다. 금속탐지기를 통해 참석자의 몸을 일제히 검색했고, 참석자들의 가방을 모두 개봉해 소지품을 검사했으며, 카메라를 들고 입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카메라를 작동시켜보라고 주문을 하는 등 철저한 경비 활동을 보여주었다. 국회 앞마당에 앉게 된 시민들 외에 단상에 오르는 영광을 누린 시민들도 있었는데 세계를 무대로 활동을 하고 싶다는 꿈을 담아 편지를 보내서 초청된 초등학생 이담현양, 신기술 특허로 받은 특허료 200억원 이상을 기부하기로 한 송명근 건국대 의대 교수, 서해교전 이희완 대위, 스포츠 스타 박태환, 김연아씨 등 국민대표 50여명이 자리했다.
당초 25분으로 예정했던 연설 시간이 36분으로 길어짐에 따라 전체적인 행사 종료시간은 연장됐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것은 아니나 장시간 밖에서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던 모든 행사참여자들은 추위에 몸을 떨었고, 나눠준 머플러를 목에 두르기도 했다.

성공신화 인생 여정, 국민에게도 기회를
▲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끼니조차 잇기 어려웠던 시골 소년이 노점상, 고학생, 일용노동자, 샐러리맨을 두루 거쳐 대기업 회장, 국회의원과 서울특별시장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라며 국민들은 꿈을 가지고 정부는 기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던 시골 소년이 노점상, 고학생, 일용노동자, 샐러리맨을 두루 거쳐 대기업 회장, 국회의원과 서울특별시장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 마지막 부분에서 이 같이 자신의 인생 여정을 토로했고, 그의 상승곡선의 인생에 대해 국민들은 환호했다. 취임사 내내 가장 큰 박수를 받은 부분이었다. 시민들은 저마다“정말 대단한 사람이여”라는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이처럼, 대한민국은 꿈을 꿀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나라입니다”라고 말하며“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꿈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게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그는“가난해도 희망이 있는 나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라, 땀 흘려 노력한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성공의 기회가 보장되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고자 한다”며 연설을 마무리 지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기업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기업 CEO를 20년 가까이 지냈고, 서울시장 4년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비록 과거에는 포항 동지상고 야간부를 다니면서 풀빵을 팔아 생계를 이었고, 달동네 합숙소에서 일당 노동자로 일하면서 고려대학교 상대 입학을 이루어냈다. 지방 야간 상고 출신으로 대학 3학년 때 학생회장에 당선됐고, 한일 국교정상화를 반대하는 6?3 시위를 주도했다가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실제로 6개월간 복역하기도 했다. 그가 정치를 보게 된 첫 번째 계기였다. 운동권 경력으로 이 당선자는 현대건설 입사시험에서 합격을 했지만 입사하지 못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가 취한 행동은 청와대에 편지를 썼다. 수신인 박정희 대통령이었고, 청와대의 답변을 받아냈다. 그렇게 현대건설 입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로부터 샐러리맨의 신화가 시작됐다. 입사 5년 만에 이사가 되었고, 12년만인 1977년 만 35세의 나이로 현대건설 사장으로 취임했다. 현대건설에서의 그의 활약은 불도저라는 별명을 안겼고, 1992년 현대건설 회장직을 마지막으로 27년간 맺었던 현대를 나오면서 정계에 진출했다. 그의 화려한 경력은 14대 15대 총선 승리를 가져다줬다. 그러나 15대 총선에서 법정 선거비용 초과 사용 사실이 밝혀져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사퇴했다. 그가 다시 정계로 돌아온 것은 BBK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경준씨와의 결별에서 비롯됐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인터넷 금융사업에 실패를 맛보고 그는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청계천 복원사업, 버스중앙 차로제, 뉴타운 개발사업 등을 실시하며 기업 CEO다운 면모와 놀라운 추진력을 보여주며 국민들에게 이명박이라는 이름을 분명히 각인시켰다. 특히 이 대통령은‘청계천 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청계천 사업의 성공이 오늘의 이명박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생 여정을 살아왔고, 그의 인생 곳곳에서‘경제인 이명박’,‘정치인 이명박’이 될 만한 화려한 성공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그가 주장하는‘이명박 효과’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의 수직상승하는 경력은 국민들에게도 꿈을 주고, 기회가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하고 있다.

새 정부, 경제·환경·외교·문화·교육·정치·남북관계에 이르는 방대한 스펙트럼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는 36분에 달하는 대통령 취임사가 단연 돋보였다. 방대한 분량의 취임사는 류우익 대통령실장을 비롯해 18명의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해 마련했다. 실무진들이 취임사를 작성한 뒤, 외부 인사들의 자문을 받았고, 최종적으로 류우익 실장이 다듬었다. 오래 전부터 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담당해 왔던 류 실장은 취임사의 마무리까지 도맡아 하기는 했지만, 최종적으로 마무리 검토를 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수차례의 검토를 거치고 수정을 한 후에 탄생한 취임사에는 경제, 환경, 외교, 문화, 교육, 정치, 남북관계에 이르는 방대한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기업은 국부의 원천이요, 일자리 창출의 주역이다”고 밝히며 기업활동을 방해하는 규제를 풀 것으로 미래를 예시했다.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제한폐지 등이 그에 해당하는 정책들이다.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한 법인세 인하도 들어갈 것으로 기업인들은 기대하고 있다. 또한 공공부문에도 경쟁을 도입해 공무원 수를 점진적으로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는 빠른 시일 내에 혁파할 것을 약속했다.
취임사에서 언급한‘남북관계’에 대한 이 대통령의 생각도 눈에 띈다. 이명박 대통령은“남북의 정치지도자들은 어떻게 해야 7천만 국민을 잘살게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들을 함께 나눠야 한다. 남북 정상이 언제든지 만나서 가슴을 열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기회는 열려있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개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그것을‘제안’하는 포즈를 취하지는 않았다. 북핵문제 해결을 먼저 강조했다. 그는“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을 택하면 남북 협력의 새 지평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골고루 주기 위해 이 대통령은“교육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육개혁은 무엇보다 시급하다. 획일적 관치교육, 폐쇄적 입시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고 교육현장에서 자율과 창의, 그리고 경쟁의 숨결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는 학교 유형을 다양화해서 교사들의 경쟁력을 높이고, 그로 인해 공교육이 정상화를 찾으면 사교육도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대학의 자율화를 추진해 국가경쟁력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선진화를 이루기 위한 교육 경쟁 체제를 고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교육과 연구의 역량을 늘려서 세계의 대학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나 꿈을 꿀 수 있어야 하고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기회’는 국민 모두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처럼 이명박 정부는 교육 복지를 철저히 실현해 나갈 것을 약속했다. 그는“형편이 어려워도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 복지로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다.”고 말해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가장 강조했던 슬로건은‘일자리 창출’에 대한 정부의 계획도 드러냈다. 청년세대의 고통을 외면하게 않겠다는 이명박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해냄으로서 최고의 복지를 이루어 내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일자리 창출 이외의 복지 체제에 대해서
▲ 지난 달 25일 제17대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국내외 귀빈과 일반 국민 등 5만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 대통령은“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고, 다 함께 건강하고 편안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도움이 절실한 사람은 국가가 보살피되, 시혜적 사후적 복지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양성평등 정책을 추진해 여성의 사회참여를 도모하여 여성이 시민사회 국가발전의 당당한 주역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육 복지가 따라주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생애주기와 생호라형편에 따른 수요에 맞추어 맞춤형 보육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정부가 보육의 짐을 덜어주면 저출산 문제가 개선될 뿐만 아니라 삶의 질과 인적 자원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첫 날부터 14개의 일정을 소화는 강행군을 보여주었다. ‘국민 성공시대’를 약속했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5년 동안 매일이 강행군이어야 할지 모른다. 대통령이 강조하는‘실용’과‘변화’를 위해서 그를 둘러싼 수많은 각료들과 공직자, 국회의원들이 함께 보조를 맞추고, 보탬이 되며, 더욱 진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출범 초기부터 장관 내정자를 둘러싼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여전히 찬반양론이 분분한‘한반도 대운하’정책이 도마 위에 있다. 많은 국민들이 새 대통령의 교육과 대외정책, 정치개혁 등 여러 면에서의 변화를 공감하고 있다. 그 공감에 부응하는 결과를 어서 보여주고 싶은 정부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어도, 그 결과만을 위한 서두름은 보이지 말길 바란다. 비록 국민들의 재촉이 부담스러울지라도 무리한 강행군이 최선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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