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 둘러싼 종족분쟁으로 이어져

대통령 선거 부정 의혹으로 촉발된 케냐의 유혈소요 사태가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났다. 이미 천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끝없는 폭력과 학살 사태가 거듭되자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을 수행중이었던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지난 달 18일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 들러 음와이 키바키 케냐 대통령과 야당 지도자 라일라 오딩가와 각각 회담을 갖고 케냐 정치 위기 해결을 위해 양자가 서로 합의협력할 것을 당부했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도 케냐 폭력 종식을 위한 중재를 지원하기도 하는 등 케냐 유혈사태 두 달을 맞이하는 시점이 되어 세계 각계의 관심과 중재가 쏟아졌다.


세계 최대 홍차 수출국인 케냐에서 일어난 유혈사태는 양질의 홍차가 다량 수확되는 것을 방해해 전세계 홍차값을 급등시켰다. 케냐의 주 수입원인 커피와 코코아 역시 불안한 정국과 파괴된 생산지, 인력난 등으로 인해 올해 사상 최악의 시장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아프리카의 유혈사태와 분쟁은 매우 일상적이라서 세계인의 주목을 못 받고 있는 현실속에서 케냐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였다. 그러나 역사상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장 심각한 위기로 떠오른 이번 케냐의 유혈사태는 지난해 12월 27일 실시된 대선에서 시작됐다. 2002년부터 집권하기 시작한 키바키 대통령은 경제 성장과 정국 안정론을 내세우며 이번 대선에서도 재선을 노리고 있었다. 이에 맞선 상대가‘오렌지야당운동(ODM)’이다. ODM의 오딩가 대표는 정권교체를 원했다. 케냐인들 역시 다수가 정권교체를 원했고 높은 참여율을 보이며 선거를 치렀다. 그러나 개표 도중 키바키 대통령이 돌연 작업을 중단시키고 이어 근소한 표 차이로 자신이 승리했다고 발표하자 야당의 오딩가 대표는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며 부정 선거라고 반발했다. 여론조사는 물론 대선 직후 실시판 개표에서 오딩가 자신이 앞서 있었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키바키가 선거 결과를 조작했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시작된 선거 부정을 둘러싼 논란은 양 진영의 사람들을 곧 거리로 쏟아냈고, 거리에서 육탄전이 벌어지는 등 심각한 폭력사태가 시작되게 되었다. 수도 나이로비 외곽의 대규모 슬럼가인 키베라 등을 중심으로 시작된 소요는 급속도로 케냐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경찰이 강경 진압에 나섰지만 다수의 케냐인들은 방화와 보복 살인을 저지르며 폭력 사태를 이어나갔고, 폭동이 일어난지 20여일 만에 700명 이상 숨지고 25만여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이는 키바키 대통령이 속한 키쿠유족과 오딩가 후보의 루오족 간 종족 갈등으로 비화되면서 소요의 심각성과 규모를 키워나가게 됐다.

넘쳐나는 난민들 인근 국가로 이동
사태는 겉잡을수 없이 커져만 가던 중 양 진영의 대표들은 대선을 다시 하자는 요구와 이를 거절하는 등의 의견마찰이 계속 일어났고, 급기야 아프리카연합(AU) 의장직을 맡고 있는 존 쿠푸오르 가나 대통령이 중재를 하기 위해 케냐에 도착했지만 결국 협상을 도출해내지는 못했다. 키바키 대통령이 정부 요직을 측근들로 채워 새 내각을 구성 발표했고, ODM측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다시 한 번 협상을 거부했다. 사태가 점차 커지고 심각해짐에 따라 넘쳐나는 난민을 수용할 곳이 없어 인접 국가로 난민을 이동시키고 있는가 하면, 아프리카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던 케냐의 경제 사정은 곤두박질쳤다. 전염병과 물자부족 등으로 10만 여명이 기아에 처했고, 고질적인 식량 위기 또한 케냐인들의 힘겨운 삶에 짐을 더했다. 칼과 창, 방망이를 손에 든 폭도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길 한쪽에서는 죽은 부모를 붙잡고 울고 있는 어린아이들, 사람을 산 채로 불에 태우고, 흉기로 난자하는 모습까지 모두 동시에 최근 케냐에서 보여 졌던 모습들이다. 키바키 측과 ODM측의 공격과 복수를 거듭하는 유혈전쟁으로 인해 나머지 부족들도 서로 편을 나눠 살육전에 가담하고 있다. 여전히 키바키 대통령은 자신이 적법한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라고 버티고 있고, 대선 결과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며 키바키에 강하게 대응하고 있는 오딩가 역시 사태를 진압시킬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 양극화 불러온 키바키 정권에 대항
1963년 케냐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했다. 케냐타를 초대 대통령으로 하고 본격적인 독립국가로서의 입지를 굳혀나갔다. 이후 1978년 케냐타 사망 이후 대니얼 아랍 모이가 부통령에서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1982년 개헌을 통해 공식적으로 케냐는 일당 체제를 갖추었다. 1991년 국민들의 요구로 일당 체제를 폐기하고 이윽고 1992년 다당 선거가 치러졌다. 역시 모이 대통령이 재선되었지만 당시에는 야당도 의회석의 45%를 차지했다. 그러나 2002년 헌법상 모이가 재선을 노릴 수 없게 되자 야당이 연합해 현 대통령인 므와이 키바키를 대표로 내세웠고, 그가 당선되었다. 임기 5년을 끝내고 지난 해 12월 재선이 치러지면서 그와 같은 폭력 사태가 일게 된 것이다. 케냐 정치법상 부통령과 내각도 대통령이 임명을 하는데 대통령의 권력은 막강해 모든 권한을 쥐고 있다.
40개가 넘는 종족으로 구성된 케냐는 키바키 대통령을 배출한 키쿠유족이 전체의 약 22%를 차지한다. 키쿠유족은 매우 부유한 종족으로 1963년 케냐가 독립한 이래 이들이 정치․경제 등 케냐 전 분야의 주요 자리를 독점하고 케냐를 지배해왔다. 케냐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모 케냐타 역시 키쿠유족이었는데 비옥한 땅이 많은 케냐의 서부에 키쿠유족들을 집단이주 시키는 등 타종족을 몰아내고 그곳을 차지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하나 둘 키쿠유족을 우선하는 정책과 경제성장을 지속시켰고, 이는 심각한 경제 양극화를 불러일으켰다. 키바키 정권 하에서 케냐는 연평균 5~6%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지만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져 케냐 전 국민의 55%가 하루당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간다는 조사가 있어 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한쪽에만 특혜를 준 키쿠유족의 통치는 종족 간 대립으로 이어졌다. 케냐의 이번 유혈사태가 종족간의‘인종청소(ethnic cleansing)’로 비춰진 것도 이런 배경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키쿠유족은‘오딩가는 살인자고, 권력에 굶주려 있으며, 그가 속한 루오족은 게으르고 도둑질을 일삼는다’는 내용을 담은 노래를 부르고, 오딩가를 지지하는 루오족은‘키바키 등 개코 원숭이들을 몰아내자. 우리의 땅을 점령한 몽구스(사향고양이과의 동물)를 몰아내자’는 구호로 대응하고 있다.

오딩가 “평화유지군 파견해 달라”
▲ 케냐 국민들은 독립 이래 가장 불행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하루빨리 정부와 ODM측의 정치적 협상이 이루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생업에 지장을 받고 있으며,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대외적으로 국가 이미지가 쇠락해 향후 케냐 경제 사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달 2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케냐 유혈사태를 직접 중재하기 위해 아프리카 케냐를 방문했다. 반 총장은 지난 1월 31일 에티오피아에서 열린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에서 키바키 케냐 대통령을 만난 이후 이번 사태의 상대 진영인 ODM의 대표 오딩가를 만나기 위해 케냐를 직접 방문한 것이다. 그는 방문을 통해“각 정치 지도자들이 사태 해결에 대해 건설적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다소 희망적”이라고 평가했다. 즉 양측 지도자들이 현재의 폭력이 중단돼야 한다는 데 뜻을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 총장은 최근의 폭력사태가“현대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도 또 참을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하며“케냐는 이미 이번 사건으로 국가적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고 경고했다. 공교롭게도 반 총장이 케냐를 방문한 날 ODM 소속 데이비드 키무타이 투 의원이 피살됨에 따라 보복 살인이 이루어져 현지의 분위기는 매우 극도의 긴장된 순간이었다. 수도 나이로비에서 서쪽으로 380Km 떨어진 이콩지(IKonge) 마을에서 100여명의 남성들이 6명을 난도질해 죽이고 또 다른 2명을 독화살로 사살한 것이다. 이어 살해당한 투 의원의 고향에서는 활과 화살, 칼 등으로 무장한 폭도 3000여명이 경찰관 1명을 살해한 것으로 확인됐다. 야당 의원의 피살이 야당 측 의원들의 수를 줄이기 위한 정부의 탄압이라며 ODM의 오딩가는 분개했다.
야당 ODM측의 오딩가는 지난 달 3일 유엔과 아프리카연합(AU)에 평화유지군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유엔이 사태 해결을 도모하기 위해 파견한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과 반기문 사무총장의 중재를 통해 정부와 야당이 유혈사태 종식에 거의 합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폭력 사태가 전국적으로 줄어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CNN에 따르면 오딩가가“폭력이 심각한 만큼 평화유지군을 파견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폭력의 수준이 전례 없던 매우 잔인한 양상을 띠고 있고 매우 공포스러운 규모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케냐 정부나 ODM측이나 폭력을 막을 능력이 부족하고 살인이 벌어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는 경우도 있다고 CNN은 보도했다.

“외부 압력에 의한 해결은 하지 않겠다”
미국은 케냐를 아프리카 대테러전 전초기지로 삼고 지원을 해왔다. 영국도 키바키 정권이 출범한 1년쯤 뒤에 반부패 정책을 총괄하던 이가 영국에 망명해 부패 실상을 폭로했음에도 이에 대해 대처하기보다는 오히려 지원을 확대했다. 결과적으로 서구 세력이 키바키 정권의 성장에 일조한 셈이다. 미국은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을 현지에 파견함으로써 대화를 돕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모세스 웨탄굴라 케냐 외무부 장관은“사태를 중재하기 위해 외부 인사들이 아무리 많이 와도 정답은 케냐인들에게 있다”고 말해 외부 압력에 의한 사태 해결은 있지 않을 것을 드러냈다. 키바키 정부는 196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룬 케냐의 국내분쟁에 외세 개입설이 돌지 않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에 백악관 대변인은 라이스가 최종 협상을 기대하지도 않고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는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코피 아난 전 UN사무총장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방문 압력에도 불구하고 케냐 정부는 자신들의 국내 문제라며 외부세력의 우려를 외면하고 있다. 라이스 장관의 협상이 일부 진전되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케냐 정부는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며“우리도 국내 법이 있고, 우리 나름의 방법으로 잘 해결할 것이다. 아직 협상에 대한 그 어떤 결론도 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 달째 협상만, 해결책 미궁
지난 달 15일 정국 혼란이 지속된 지 약 두 달 만에 케냐 정부와 야당 ODM은 1년 안에 새 헌법을 제정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양측이 새 헌법 제정 등 주요 문제에 대해 합의를 했지만 과도정부 구성 방식 등 주요 쟁점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사태 종결을 미리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케냐의 이번 사태는 그 심각성으로 봐서 최소 1년 정도의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정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은“양측이 하루빨리 인종 분쟁 종식 방안과 피해 지역에 대한 인도적 지원 제공 방안, 당장의 정치 위기 해결 방안 등을 논의해야아 할 것”이라고 전했다. 최소한의 합의를 이루어 내야 케냐의 정치 안정과 회복, 경제 매진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케냐인들은 의견이 분분하고, 케냐 정부 관계자들은 야당 의원들에게 의석 절반을 확보해 주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고, 여기에 야당은 여전히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케냐 국민들은 독립 이래 가장 불행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하루빨리 정부와 ODM측의 정치적 협상이 이루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생업에 지장을 받고 있으며,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대외적으로 국가 이미지가 쇠락해 향후 케냐 경제 사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와 오딩가를 대표로 하는 ODM측은 약 한 달째 협상을 거듭하고 있지만 지난 달 20일 현재까지 돌파구를 찾지 못한 상태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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