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통해 제 2의 인생 찾은 주부들
-힐티
인생은 연극이고 우리 인간은 모두 무대 위에 선 배우다. 일찍이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뜻대로 하세요>라는 작품에서 “온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여자와 남자는 배우일 뿐이다. 그들은 등장했다가 퇴장한다. 어떤 이는 일생 동안 7막에 걸쳐 여러 역을 연기한다”고 했다. 그렇다. 어릴 적 우리는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수많은 꿈을 꾸며 자란다. 때로는 황당무계하기도 하지만 또 때로는 멋들어지기도 한 그런 꿈을 말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는 순간 그 꿈들은 사라지기 일쑤다. 누구 하나 내가 가야 할 길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다.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그토록 원하던 꿈은 퇴색해 버리거나 잊혀져 버리기 쉽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꿈은 나 자신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가장 큰 무기임에도 불구하고.
강남주부극단 ‘유리구두’

올해로 창단 15년 째, 상업극단이 아니기에 겪는 어려움 많아

아마추어 같지 않은 아마추어 극단
대한민국에서 주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며느리로 살아가다 보면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게 되는 경우도 있으며 때때로 우울함에 젖어들 때도 있다. 유리구두는 삶에 활력을 느끼고 싶거나 인생의 계기를 갖고, 그동안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 극단의 문을 열어두었다. 강남주부극단이라고는 하지만 극단의 단원들이 모두 강남에 거주하는 주부들은 아니다. 실제 강남에 거주하는 단원은 3명 정도이며, 구리시, 수원 등 여러 지역에서 오는 이들이 더 많다.
아마추어 단체이기 때문에, 상업극단이 아니기 때문에 주위에서는 돈을 받고 직업으로 삼으면 넘어갈 수 있는 부분들도 오히려 취미이기 때문에 “그래봤자 취미일 뿐인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느냐” “투자를 한다고 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도 아닌데”라는 말도 많이 들었단다. 대학시절부터 연극을 했었다는 조성아씨는 “물론 연극을 하지 않고 주부로서의 삶이 지속될 수도 있지만 주부의 삶 속에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적잖아요. 한 번씩 연극을 무대에 올려놓으면 내가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는 열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에 나 자신이 행복감을 느껴요”라며 “힘들지만 이러한 작업을 할 때 또 다른 문학, 또 다른 캐릭터에 도전한다는 것이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해요. 나의 존재감에 대해 확신이 있을 때 주변에 잘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아마추어 극단이라고는 하지만 실력은 이미 아마추어의 수준을 넘어섰다. 지난 2001년에는 삼송리문화축제 초청공연에서 대상인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으며 2005년에는 정통뮤지컬 <가스펠>로 제 1회 서울시민 예술제 연극부문 그랑프리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실력 있는 몇몇 단원들은 과거 유리구두를 연출했던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이미 대학로의 프로무대에 서 보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가스펠>
대부분의 단원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가스펠>을 꼽았다. 사실 아마추어 극단에서 뮤지컬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가스펠>을 준비하던 시기의 유리구두는 홈페이지 개설, 기존의 회원들과 해체 분리가 되는 등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홈페이지를 만들고 신입회원들이 많이 입단해 부단한 연습과 준비 끝에 서울시민 예술제 연극부문에서 그랑프리 대상을 받았다.
어려운 시기에 준비한 공연 <가스펠>
서울시민 예술제 연극부문에서 그랑프리 대상 수상
춤과 노래, 연기가 전부 들어가는 공연이었기 때문에 힘들긴 했지만 가장 즐거웠었고 가장 기억에 남았고 결실도 있었다고 단원들은 입을 모은다. 윤수진(36)씨 “<가스펠>할 때 가장 단합도 잘 됐고 재미있었고 사건도 많았어요. 좋은 일 나쁜 일도 많았지만 그때 그 분위기를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네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유리구두의 단원들은 몇 달 공들인 <가스펠>을 하루 공연으로 끝내기도 아깝고, 단원들의 재능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자는 뜻을 모아 자선공연을 계획해 소아암 백혈병 어린이를 돕기로 했다. 입소문을 내고 단원들이 쫓아다닌 끝에 인덕원 새중앙교회에서 첫 자선공연도 가졌다.
가족이 가장 든든한 후원자

올해로 극단에서 활동한지 9년째 되는 손경옥(52)씨는 “아이들을 키워놓고 외국생활을 하다 들어왔을 때 많은 병을 얻었어요. 여러 가지 수술을 하고 난 후에 다시 사는 제2의 인생은 덤으로 사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동안 하고 싶은 것을 하자 마음 먹었지요”라며 “연극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과적으로 몸도 좋아지고 우울증도 없어지고 젊은 친구들과 함께 생활을 공유할 수 있어 누구한테든지 권하고 싶은 활동이예요. 연극은 내 인생의 비타민, 영양제예요”라고 말한다. “올해로 극단에서 연극을 한 것도 벌써 15년째네요. 그때보다 사람들은 많이 바뀌었지만 다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볼 때면 기특해요. 왕언니인 내가 한발 물러서 있어도 극단을 잘 이끌어 나가고 있어 뿌듯하지요. 앞으로는 뒤에서 더욱 많이 받쳐주려고 해요”라고 말하는 손영실(53)씨는 극단 창단멤버이자 왕언니다. 유리구두의 왕언니답게 지난여름 손경옥씨와 함께 대학로의 프로 무대에 서기도 했을 정도의 실력도 갖추고 있다. 유리구두에 입단해 단원으로 활동하다가 아동극단을 창단한 윤수진(36)씨는 “어릴 때부터 저는 연극에 관심이 많았어요. 하지만 그럴 만한 형편이 되지 못해 그동안 접고 있었어요”라며 “유리구두는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나의 길을 가져다 준 고맙고 큰 선물, 친정 같은 존재예요”라고 털어놓는다. 유리구두 단원들에게 연극이란 단순히 취미활동 이상의 것이다. 박경림(51)씨는 “무대에 서는 것, 모여서 작업할 때 가장 즐거워요. 다들 각자의 개성들이 있지만 부딪히지 않고 융화가 되요”라며 “다른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연극의 매력이지요. 또한 자신을 깨는 작업이기에 연극이 더욱 좋아요”라고 말한다. 아마추어지만 그 열정만큼은 프로 못지않은 주부극단 유리구두. 자신의 숨겨진 끼를 발견하고 또 다른 나를 찾아가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유리구두는 언제나 활짝 열려 있다. 유리구두와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은 홈페이지 ‘주부극단 유리구두’(http://cafe.daum.net/kangnamtheatre)로 문의하면 된다. 오는 5월 15일 강남구민회관 목요상설무대에서 유리구두는 제 19회 정기공연 <아비>를 공연할 예정이다. NP
장정미 기자
haiyap@inewspeopl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