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균형한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근본대책 세워야
지난 1월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한 대형할인점에서 40만원 상당의 생선과 김치, 고무장갑 등 생필품류를 훔친 70대 할머니와 두 딸이 경찰에 붙잡혔다. 일정한 수입 없이 지하 단칸방에서 살던 L씨와 맏딸(41)은 지독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서에 연행된 할머니의 손에는 15살 된 손녀에게 줄 학용품과 옷이 들려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지난 2월에는 80대 노부모에게 쇠고기 반찬을 해주려고 대형마트에서 고기를 훔친 60대 할머니가 경찰에 입건되기도 했다. 60세 K씨는 면목동의 한 대형마트에서 쇠고기 1kg 값 3만원을 안 내고 몰래 빠져 나오려다 이를 눈치 챈 점원에게 붙잡혔다.
경찰청에 따르면 생활비를 이유로 한 생계형 범죄는 2002년 4만852건, 2003년 4만2100건이었으나 2004년에는 5만4856건, 2005년에는 4만9708건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개인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바라보는 상황이지만 더 팍팍해진 생활고에 절망하는 서민들이 늘어나는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아닐 수 없다.
대상과 장소 가리지 않는 생계형 범죄 급증해

천태만상 생계형 범죄
전국적으로 별의별 도난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경기도 안양시는 최근 누군가 가로수 보호용 철제 덮개를 집어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1월 범계동 범계로 구간에서 가로수 보호용 철제 덮개 9개가 사라지는 등 지난해 10월 이후 모두 7차례에 걸쳐 91개의 보호덮개를 도난당했다. 또 울산 남구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별관 1층 급식소의 식기 건조기 안에 보관하고 있던 식판 1450개와 수저 1450벌을 몽땅 집어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울산시에서는 지난해 말 학교 교문이 밤새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충북 영동경찰서는 지난 1월 부산·대구·김천·구미 등 전국의 아파트 단지를 돌며 구리로 만들어진 소방호스 노즐 4000여개를 훔친 형제 절도범을 검거했다. 이밖에 화장실의 변기 밸브, 등산로의 안전용 펜스, 구리 전선, 승용차 바퀴 등 고물상이나 중고용품점에서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물품 등도 절도의 표적이 되고 있다.
◈배가 고파서=두부 배달원인 H씨(29)는 임신 중인 아내와 세 살배기 아들이 있었다. 아내와 아들 모두 두부를 좋아했지만 빠듯한 월급으로 이조차 마음껏 사 먹일 수 없어 H씨는 가족들에게 언제나 미안함 마음이 가득했다. 미안함을 참지 못한 H씨는 결국 매장에 진열된 두부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10여 차례에 걸친‘두부 절도’는 지난 2007년 12월 서울 동작구 A할인마트에서 두부를 훔치다 범행 장면이 CCTV에 잡히면서 덜미가 잡혔다.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H씨는 “나쁜 짓인 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고, 가급적 유통기한이 얼마 안남은 것만 훔쳤다”고 말했다. 자녀들이 먹고 싶은 부대찌개 재료를 마련하게 위해 자전거를 훔친 40대도 있었다. 지난 2007년 3월 서울 지하철 장한평역 앞에서 K씨(42)가 자전거 3대를 훔치다 경찰에 붙잡혔다. 그러나 K씨가 훔친 자전거는 고물상에 팔아도 채 1만원이 안 되는 고물 자전거였다. K씨는 지난 2000년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5년 동안 입원치료를 받았고, 그동안 부인은 집을 나갔다. 결국 기초 생활 지원비 60만원과 고철을 주워 팔아 버는 수입만으로는 두 아이를 키우기가 버거웠던 것. K씨는“아이들에게 끓여줄 부대찌개 재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낡은 자전거를 훔쳤다”며“아이들은 먹고 싶은 게 많은데 단 돈 1000원이 없어서 사 주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고 털어놓았다. 뿐만 아니라 직장을 퇴사한 뒤 생활비가 떨어져 대형마트에서 옷가지와 먹을 것을 훔치거나, 아기 분유값을 마련하기 위해 20대 부부가 빈집을 터는 등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일어나는 범죄들도 잇따르고 있다.
◈돈 되는 것은 뭐든지 훔쳐=생계형 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승용차 바퀴·소방호스 노즐·등산로 펜스까지 홈쳐가는 웃지 못 할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소위 돈으로 교환이 가능한 것들은 모두 생계형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S씨(46) 부부는 쪼들리는 생활을 견디다 못해 지난 4월 전남 무안군 일로읍 농공단지 내에서 시가 750만원 상당의 지하수 시추 파이프 50개를 훔쳤다. S씨는 경찰 조사에서 “어려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이 같은 일을 벌이게 됐다”고 힘없이 말했다. 또 지난 5월 인근 주민들의 산책로이자 쉼터인 대구 북구 침산동 침산공원 입구에 설치돼 있던 약 15m 길이의 스테인리스 펜스가 기둥 부분이 날카롭게 잘린 채 감쪽같이 사라졌다. 누군가 도구를 이용해 50m 높이에 설치된 수십㎏이 넘는 펜스를 잘라 간 것이다. 이는 최근 스테인리스 값이 ㎏당 2~3배나 올랐고, 용도가 다양해 단가가 높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공원 화장실의 변기 뚜껑, 전구, 출입구 손잡이나 하수구 뚜껑을 훔쳐가는 경우는 있었지만 등산로 펜스를 도난당한 것은 처음”이라며 혀를 찼다. 한편 지난 4월에는 순천시 풍덕동과 남정동 일대 주택가 이면도로에서는 주차돼 있던 승용차 3대의 앞뒤 바퀴를 모두 빼가는 황당한 절도사건도 있었으며 광주지역 아파트 단지에서는 같은 달 14일부터 4일 동안 옥내 소화전 구리노즐 1300여개가 잇따라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편 돈이 없어 절도·사기 등 생계형 범죄가 늘어나는 동시에 아예 감방에 있기를 자청하는 이른바 환형유치(換刑留置)도 증가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에 따르면 경기침체로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형으로 이를 대신하는 인원이 IMF 당시보다 2배 이상 늘었다.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인용해 이 의원은 지난해 노역형으로 벌금을 대신한 인원이 3만4천19명으로, 하루 평균 93명이 집대신 감방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지난 98년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하면 1만5천139명(하루 평균 41명)이었던 것이 노무현정부 4년차에 이르러서는 2.2배나 많아졌다. 지난해 벌금액수만 무려 총 5천453억원으로 1998년(946억원)보다 무려 5.8배가 늘어났다. 특히 참여정부 출범 이후 환형유치 건수는 더욱 증가하고 있다. 2003년 2만1천104건이던 것이 2004년 2만8천193건, 2005년에는 3만2천643건으로 노무현 정부와 대비해 점점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 전체 벌과부과 인원 중 환형유치비율도 IMF 당시 1.4%보다 1.9배 증가한 2.7%로 나타났다고 이 의원은 밝혔다.
양극화로 인한 빈곤층 확대로 생계형 범죄 증가

생계형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가치관 재정립과 법집행의 확실성 회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인 가치관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복지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개인의 입장에서 만족하고 최선을 다하는 기본적 가치관을 성립할 필요가 있다 NP
장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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