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구 전농동 밥퍼나눔운동본부를 찾아가다

현대는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사회다. 일신의 안위와 행복만을 추구하며 다른 이들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는 개인주의적 풍토가 조성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사회 곳곳에서 어려운 이웃에게 뻗치는 도움의 손길이 있어 아직까지는 따뜻한 세상이라 말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 한다.


우리나라에 노숙인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다. IMF 이전, 역 지하도를 중심으로 노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식적 용어는 부랑인이었다. 그러던 것이 IMF 경제위기 이후 실직상태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들이 급증하자 이들은 노숙인(노숙자)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즉 노숙인 발생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경제위기와 대량 실업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실직을 이유로 길거리로 나선 것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가족관계의 악화, 저렴한 주택의 부족, 이웃공동체의 붕괴, 알코올중독, 정신질환 문제 등 상황이 악화되면서 노숙에 처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노숙인의 문제는 본질적으로는 우리 사회 불평등의 심화, 빈곤문제와 관련이 깊다.

올해로 20년째 맞는 밥퍼나눔운동
▲ 밥퍼나눔운동본부 앞에서 배식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OECD국가이자 세계원조 지원국인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2,000달러를 상회하지만 우리 주위에 끼니를 거를 수밖에 없는 형편에 처한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다일공동체는 결식 위험에 노출된 국내 80여 만명, 북한 및 제3세계의 결식자를 대상으로 무료급식사업을 시행하고자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나눔의 정신과 나눔의 문화를 확산시키고 무료급식사원의 재원을 확보하고자 전국민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는데 이것이 밥퍼나눔운동인 것이다. 올해로 20년째를 맞이한 밥퍼나눔운동은 1988년 최일도 목사가 청량리 역전에서 사흘간 밥을 굶고 쓰러져 있는 노인을 만남으로 비롯된 운동으로 냄비 하나로 지극히 작은 것(라면)을 무의탁 노인, 행려자, 노숙자 등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과 나눔으로써 시작되었다.
청량리 야채시장 쓰레기 더미에서 처음으로 밥상이 차려진 이후 이름 모를 사람들과 동네 주민들의 협력으로 운용된 라면공동체는 이후 이웃 일곱 교회의 후원을 시작으로 수십교회와 단체들의 협력이 이어져 매일 500명 이상의 도시 빈민들을 위한 밥상공동체가 되었다. 그러나 줄을 잇는 밥상공동체 식구들을 감당하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사람들은 비바람을 맞고 추위에 떨며 길바닥에 앉아 주린 배를 채워야 했다. 1998년 <사회복지법인 밥퍼>가 설립된 이후 밥퍼나눔운동을 보다 조직적으로 전개하여 운동의 성과를 높여나갔으며 이듬해인 1999년 6월에는 중국 다일공동체를 창립하고 어린이집을 개원하여 조선족 고아들을 돌봐왔다. 2002년 8월 14년 만에 동대문구청을 비롯한 주위에서 내민 도움의 손길 덕분에 14년만에 거리 배식을 끝내고 비바람과 추위를 피해 최소한 인간답게 식사할 수 있는 다일밥퍼운동본부를 열었으며 베트남 다일공동체를 창립한 2004년 3월에는 캄보디아 다일공동체 창립 후 밥퍼사역을 시작했다.

우리나라 나눔운동의 대표적 상징, 밥퍼나눔운동
▲ 자원봉사자들이 반찬을 만들기 위해 식재료를 다듬고 있다.
따뜻한 봄날의 햇살과 아직은 차가운 공기가 남아 있던 지난 3월, 동대문구 전농동의 굴다리 옆에 위치한 밥퍼나눔운동본부를 찾았다. 자원봉사가 시작되는 오전 9시에 찾아간 밥퍼나눔운동본부의 입구에는 벌써부터 배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밥퍼나눔운동본부 안에도 이미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배식은 11시부터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1층에는 100여명이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과 주방이, 2층에는 사무실이 있었다. 주방은 식사를 준비하는 자원봉사자들로 분주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한 팀은 무를 썰고 있었고 다른 한 팀은 불 위에 커다란 프라이팬을 올려놓고 열심히 무언가를 볶고 있었다. 몇몇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파를 다듬고 있었으며 한쪽에서는 마늘을 다지고 있었다.
준비하는 반찬의 양이 만만치 않은 것 같아 자원봉사를 하는 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 자원봉사를 한 지 3년 정도 되었다는 한 자원봉사자는 “하루에 준비하는 식사량은 평균적으로 500인분에서 1000인분 정도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식판에는 수북하게 쌓아올린 흰 쌀밥과 된장국 김치와 고추볶음 등이었다. 밥퍼나눔운동의 한 직원은 “자원봉사자들은 9시에 본부에 오지만 직원들은 6시 30분이면 나온다. 반찬 재료는 모두 그날 새벽 청량리 야채 시장에서 직접 주문해 아침 8시쯤 배달된다”고 말했다. ‘밥퍼’에서 제공되는 식단은 재단병원의 영양사가 짜며 하루 식비로 소요되는 비용은 150만원, 한달 4500만원 정도로 1년에 약 5억원 정도지만 정부의 지원은 단 한푼도 받고 있지 않다. 현재 밥퍼나눔운동은 연간 1만여명의 사람들이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한다. 지난 4월 배식 300만 그릇을 돌파한 밥퍼나눔운동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나눔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이날 밥퍼나눔운동본부를 찾은 이들은 약 30명 가량으로 몇몇 유명한 기업들과 교회 봉사단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한 끼의 무료 급식으로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
배식이 시작되는 11시, 본부 안은 이미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찼다.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 좌석 중간 중간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배치가 되었는데 처음에는 왜 그렇게 서 있는지 알지 못했으나 배식이 시작되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최일도 목사는 자원봉사를 기업의 대표자들을 일일이 소개한 후 간단하게 기도를 끝냈다. 기도가 끝나고 배식이 시작되었다. 주방 안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식판에 수북이 쌓인 흰 쌀밥과 된장국, 김치, 고추볶음 등을 차례로 담기 시작했고, 음식물이 담긴 식판은 군데군데 배치된 자원봉사자들의 손을 거쳐 배식을 기다리는 이들의 앞에 놓여졌다. 이윽고 식사가 시작되자 다들 별다른 말없이 먹는 데에만 집중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자신의 식판에 놓인 밥이 적었던 모양인지 투정 아닌 투정을 했더니 앞에 앉은 한 남자가 “내 밥 좀 더 드세요”하며 자기 식판의 밥을 뚝 덜어 할아버지의 밥 위에 얹었다. 몇몇 이들은 주섬주섬 비닐봉지를 꺼내더니 자신의 밥을 덜어 비닐봉지 안에 넣기도 했다. 아마도 저녁 식사를 미리 챙겨놓는 것인 듯 했다. 얼핏 보기에도 성인 남자 두 명이서 먹어도 될 정도로 많아 보이는 양의 밥인데도 그들에게는 부족한 듯 보였다. 한 자원봉사자는 “밥퍼나눔운동은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한 평일에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계속 되어 왔다. 이곳에서 밥을 먹는 분들은 밥퍼에서 제공하는 한 끼만으로 하루를 때우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하루 평균 1000여명의 사람들의 배를 채우다
▲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은 하루 평균 1000여명 정도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되는 배식은 낮 12시 40분이면 마무리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식당이 운영되는 시간을 알고 있다. 100여개의 식판을 다 돌리고 나면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하고 또 다른 사람들이 그 빈자리를 메운다. 4인용 식탁 25개가 꽉 들어찬 이 식당에서 동시에 먹을 수 있는 인원은 100명, 100여분 동안의 식사시간에 최소 10번 이상 ‘회전’하는 셈이다. 한 번의 식사에 걸리는 시간은 10분 안쪽이다. 식판을 받고 자리를 잡고 반납하는 시간을 따지면 한 사람의 식사시간은 10분보다 짧아지기 마련이다. 동행이 없어 밥을 먹을 때 대화할 경우도 거의 없으며, 무엇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다 먹고 빈 식판과 수저를 주방에 내밀면 주방의 또 다른 자원봉사팀은 개수대에서 그 빈 식기들을 씻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설거지거리는 줄지 않고 계속 쌓여만 간다. 배식을 담당하는 자원봉사자들도, 식판에 음식을 담는 자원봉사자들도, 설거지를 담당하는 자원봉사자들도 모두 쉴 틈이 없다. 식사를 끝마친 한 노숙인은 “반찬이 짜다. 맛이 없더라”라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식사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맛있게, 아무런 불평 없이 잘 먹었다. 하루에 한 끼만으로 주린 배를 채워야 하는 그들에게 배부름이라는 느낌이 들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무리한 욕심일런지도 모른다. 12시 40분이 되며 식당 문은 닫힌다. 청소 및 뒷정리를 하다 보면 1시는 금방이다. 자원봉사는 9시부터 2시까지다. 김윤옥 여사도 영부인이 되기 전에는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밥퍼나눔운동본부를 찾아 자원봉사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밥퍼나눔운동본부 및 국내 지부의 밥퍼급식소에서 식사준비, 배식 및 설거지, 청소 및 뒷정리 등에 자원봉사를 할 수 있다. 자원봉사는 오전 9시부터 시작되며 9시에서 11시까지는 음식준비 봉사, 11시에서 오후 1시까지는 배식 및 설거지, 1시부터 2시는 청소 및 뒷정리를 한다. 개인(2명 이하)으로 봉사를 원할 경우 늦어도 일주일 전에 연락을 해야 하며 늦어도 배식 전 오전 9시까지 밥퍼나눔운동본부로 가면 된다. 또한 단체(3명 이상)아로 봉사를 원할 경우, 한 달 전에 연락을 해야 자원봉사 일정을 잡을 수 있다(본부급식소 문의전화 : 02-2214-0365). NP

▲ 밥퍼나눔운동본부 대표 최일도 목사
Q. 20년 째 밥퍼나눔운동을 해오고 있다. 어려움은 없나.
-외부 단체의 도움은 일체 받고 있지 않다. 각 기업체 자체, 혹은 주부나 학생들이 십시일반으로 주머니를 털어서 도와주는 것이지 구청이나 시청에서는 일체 한 푼도 받지 않고 있다. 요즘 어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나. (식당에서 밥을 먹으러 오는)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더 아프다. 직장이 없는 백수도 300만명이 넘는다. 물론 그들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괴롭겠지만 그런 고통보다는 집이 없는, 홈리스(homeless)들의 아픔,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의 아픔이 더 크지 않겠는가. 결국 의식주 문제가 가장 절박하지 않겠는가. 양극화 현상으로 강남의 부자들은 더욱 부자가 되는데 없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 빈곤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러한 양극화 현상이 더 어렵고 힘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가진 사람들의 사회적 책임이, 솔선수범을 해야 할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다. 한국에는 존경받는 부자가 없다. 많은 사람이 부자를 부러워는 하지만 부자를 존경하지는 않는다. 미국에는 존경받는 부자들이 여럿 된다. 우리 한국에서도 그런 부자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Q. 우리나라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풍토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전시행정, 탁상행정 등의 부분이 새 정부에서는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공무원들은 철밥통이다. 일반 기업체는 회사가 어려우면 월급도 못 받는 경우도 있지만 공무원들은 나라가 아무리 어려워도 월급을 꼬박꼬박 받는다. 이런 점을 대통령 자신이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머슴이 되겠다고 말을 하며 “머슴이 주인보다 먼저 일어나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하는 말을 듣고 아직 희망은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이 정부가 섬기는 정부를 표방한 만큼 섬김의 모범을 보여주면 달라지지 않을까 한다. 영부인도 이곳에서 10여년 동안 봉사를 하셨다. 청와대 들어가실 때 영부인에게 “그동안 한 달에 한 번씩 오셨는데 청와대 들어갔다고 발길 끊지 말고 청와대에서 계시면서 세 달에 한번 넉달에 한번 정도는 오십시오. 오실 거라 믿겠다”고 말씀드렸다. 영부인처럼 이러한 모범을 보이면 좋지 않겠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모범을 보인다면 훨씬 한국사회에서 도덕적 의무들이 곳곳에서 이루어질 것이라 보인다.

Q. 진정한 봉사, 나눔이란.
-거액 후원자 혹은 정부예산을 한 번도 요구한 적이 없었다. 소액헌금, 이곳에 천원, 이천원, 만원, 이만원 이렇게 놓고 가는 사람들의 눈물어린 헌금들이 모여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나눔은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다. 이것이 공동체의 정신이다. 그리고 ‘now and here, here and now’(지금부터 여기부터, 여기부터 지금부터. 나눔을 미루지 말고 언제나 지금부터 나부터 시작하자)다. 우리가 맨 처음 라면을 작은 냄비에 끓인 것부터 (밥퍼나눔운동을) 시작한 것처럼 작은 것부터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다.

Q. 최근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목회자로서 보는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얼마 전 행자부 장관을 만났다. 지금도 서해안에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오는데 그동안 백만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현재 뚝 끊겼지만 그래도 찾아가는 사람들이 기독교 신자라고 말한다. 백만명 중에 어마어마한 숫자,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기독교 신자들이라 했다. 그렇게 모범을 보이는 단체들이 많다. 세상에서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거나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은 소위 대형교회지, 저 농촌에 있는 작은 교회를 누가 뭐라 하나. 나름대로 지역사회에서 사랑을 나누고 부모들을 섬기고 어린 학생들과 쓰러져 가는 가정을 돌보는 교회가 얼마나 많은데. 문제는 대형교회가 어마어마한 물질과 모든 풍요로움이 곧바로 자식에게 세습이 된다든가 어마어마한 권력들을 남용한다던가 하는 이런 문제들이 지적의 대상이 되는 것인데 그것도 일부의 대형교회들만 그런 것이지 전부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 않냐. 싸잡아 그렇게 얘기하는 것은 안 된다. 교회는 앞으로 그러한 아픔을 스스로 정화할 능력이 있다고 본다. 교회 자신이 자정의 역할, 정화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우려하지 않아도 교회는 반드시 본연의, 자기 본질의 모습을 회복할 것이고 또 이러한 상처를 치유해서 21세기 한국사회에 반드시 해야 할 일, 가야할 길을 알려주는 선구자의 역할을 하리라 본다.

Q. 이명박 정권에 바라는 점
-17대 정부가 섬기는 정부를 표방했는데 입으로만 섬기는 정부가 될 것이 아니라 정말 머슴이 되어 국민을 섬기는 정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머슴이 주인보다 먼저 일어나지, 주인이 머슴보다 먼저 일어나는 법은 없다.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한다”고 대통령이 말씀하셨는데 머슴론을 가지고 백성을 잘 섬기는 머슴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은 대통령 한 사람의 노력으로만 가지고 되는 일은 아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잘 정착이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모범이 된다면 희망이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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