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박근혜파 의원들을 공천에서 대거 탈락 시키고 서울대, 영남, 법조인으로 구성된 이른바 ‘이명박 코드’ 공천 결과가 발표되었다. 사실 계파보스의 입김이 공천에 깊숙이 개입하는 사당私黨)이 되어버린 꼴이다. 한나라당이 민주 정당임을 표명한다면 이명박파와 박근혜파 자체가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개혁공천'이라는 포장을 뜯고 나면 사실상 이명박 계파만 남아 있는 위장공천이나 다름없다. 이명박파 자리에 또 다른 이명박파를 공천하고, 박근혜파 자리에 이명박파를 공천하는 식이라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벌써 공천 후유증이 ‘친박연대’라는 모양새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계파 나눠먹기에 밀려 끝내 진정한 ‘개혁공천’의 의지가 꺾여 버린다면, 국민들은 한나라당의 행태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의 안일함이 지속되면 과반 이상의 의석수 확보의 안정론은 타격을 받고 오만 독선적인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한 견제론이 득세하여 새 정부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한나라당은 엄격한 기준으로 부패, 비리 연루 정치인, 무능 정치인, 철새 정치인 등 부적격 인사를 과감히 퇴출해야 진정한 ‘개혁공천’ ‘공정 공천’으로 집권당으로서 정치개혁을 주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민주당의 공천 혁명은 오히려 신선한 충격을 준다. “비리, 부정으로 금고형 이상의 처벌을 받은 사람은 예외 없이 총선 공천에서 배제한다”는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의 방침을 민주당 최고 위원들은 묵묵히 따르고 있다. 민주당이 대선 참패를 딛고 기사회생할 방법은 이것 밖에 없을 것이다. 다소 전략적인 측면이 있지만 국민들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하다. 어쨌든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된 인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과 전 비서실장 박지원, 국회 부의장 이용희, 당 사무총장 신계륜, 전 노동부장관 이상수와 전 국정원장 신건, 설훈, 김민석, 이호웅, 김대중 정부의 핵심 인사들과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등 당선 가능성이 확률적으로 높은 사람들이다. 두 전직 대통령의 측근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은 무엇보다도 의미가 있다. 일부 공천 탈락자들은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시도하겠지만 이번 민주당 공천은 민주당에게 자기반성을 요구한 국민의 뜻으로 가히 혁명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전략지역을 제외하고는 3월 17일 공천 작업을 사실상 마무리하면서 전체적인 결과를 놓고 보면 용두사미에 가깝다. 후보교체 내용이나 범위가 상대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다. 특히 2004년 17대 총선 때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을 타고 어부지리로 당선된 열린 우리당의 386 초선 의원들을 대거 재공천한 것은 대선 패배에 대해 과연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아무튼 4,19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의 공천 작업이 늦어지면서 유권자들은 후보자의 정책이나 능력을 평가하고 검증할 수 있는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다. 다시 집권 여당이 된 한나라당은 ‘안정의석’을 애걸(哀乞)하고 정권을 빼앗긴 통합민주당은 ‘견제의석’을 복걸(伏乞)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 18대 총선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우리 사회의 미래발전을 위해 올바른 비전을 제시하는 무대이며 또 각 정치 세력들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심판 받아야 할 중요한 선거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안정론’, ‘견제론’ 틈바구니에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당과 계파를 초월해서 누가 서민을 위해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인물인지 선택하여 심판하면 될 것이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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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태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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