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의 두 가지 목적 - 하나 나로 살기, 또 하나 행복하기

사람들은‘처음’을 잊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의 입학식을 상상해보라. 강당에 모여서 교장선생님의 환영 인사를 듣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세상 밖으로 첫 발을 내딛는 초등학교 입학식 날 아이와 아이의 부모는 밤잠도 설치고 다음날 학교로 향한다. 예쁜 옷을 단정히 입고 작은 보폭으로 학교로 향하는 아이의 마음에는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새로운 세상으로 내딛는 첫 발걸음에 무수한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임보연 기자

처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나는 종종‘길’에 관한 이야기를 생각하곤 한다. 길은 처음부터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땅위에 한 사람이 지나가고 두 사람이 지나가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지나면서 어딘가로 향하는 길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 처음의 한 사람이 내딛는 첫 발, 그것은 두려움이자 설렘이자 용기이다. 그 첫발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 비로소 가보아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도나 이정표도 없이 자신에 대한 믿음만으로 만들어 보는 길, 생각해보면 꽤나 근사한 일이다.

첫발에 들어있는 두 가지, 첫 눈 같은 두려움과 설레임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예측할 수 없는 세계이다. 그러나 이 세계에 분명 존재하는 것, 바로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이다. 다시 말해 다수가 선택한 길과 소수가 걷는 길로 규정지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성애자이다. 때문에 성적소수자들은 그 대부분의 기세에 밀려 자신의 정체성조차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2000년 용기 있는 한 사람이 커밍아웃을 선언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커밍아웃의 주인공이 연예인이었기 때문에 몰고 온 파급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커밍아웃을 한 이후 홍석천은 한동안 방송에 출연할 수 없게 되었으며 소위 이야기하는 주류의 판에서 비주류의 판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제 5년이 지난 요즘 그는 간간히 드라마에서 연기도 하고 뮤지컬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른다. 그리고 그가 꾸려나가는‘our place'에서 즐거운 수다를 이어나간다.
커밍아웃 이후 방송도 다 끊기고 경제적인 자립과 누군가와의 소통 공간이 필요했던 홍석천은 이태원에‘our place'라는 레스토랑을 오픈 했다. 처음 몇 년간은 운영이 힘들었지만 이제는 단골들도 많은 멋스러운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홍석천을 만나러 그의 공간으로 들어가던 날, 하얗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2006년에 내리는 첫 눈이었다. 커다란 유리로 둘러싸인 레스토랑에서 바라보는 눈의 느낌이 인터뷰의 주제와 제법 어울렸다.

our place에서 만들어가는 그의 행복

홍석천에게 물었다. 처음이라는 단어에 어떤 것들이 들어있을지.“설레임이겠죠. 두려움도 있겠고. 그런데 설레임이 두려움보다 크기 때문에 처음을 시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눈이 내렸을 때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밟을 때의 첫 발의 설레임과 비슷한 것 같아요. 위험성과 기분 좋은 감정의 공존이죠.‘첫’이라는 단어에는 두려움과 설레임이 들어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그렇다면 첫사랑에 대해서 잠깐 얘기해 볼까요?“음, 내 기억에 첫사랑은 대학교 3학년 때였어요. 마음이 아팠죠.(과거형의 그의 단어 선택에 기자의 마음도 순간 아파온다) 왜 처음 사랑은 실패하는가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생각해보니 제일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사랑일 수 있는데 말이죠. 사랑이라는 게 조금은 기술인 것 같아요. 아직 사랑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힘이 든 거 아닐까요. 그런 과정에서 많이 배우고 느끼고, 지금의 사랑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거죠.”
그렇다면 당신의 또 다른 처음, 연예인 최초의 커밍아웃이라는 타이틀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단순해요. 행복하게 살자였어요. 결국에는 큰 의미를 부여했지만. 내 삶을 좀 더 행복하게 살아보자 라는 거였어요. 왜 나를 거부하고 남들에게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걸까? 그 상태에서 어떤 발전도 할 수 없었죠. 서른이 되어서 커밍아웃을 했어요. 성공과 일, 돈 때문에 개인적인 삶을 희생할 수 없었죠. 행복하지 않았어요. 이대로 살 것인가, 새롭게 행복하게 살 것인가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 신문 기사에서는 홍석천의 선택과 결정에 딴지거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더라. 그의 커밍아웃으로 동성연애자로 살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의 커밍아웃을 통해서 동성애자의 존재를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반가워하기도 한다.“커밍아웃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나는 나만의 선택이 있고 그들에게는 그들의 선택이 잇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첫 발을 디디지 않으면 변할 수 없어요. 선배들이 지하에서 비밀리에 가정도 만들고 사랑도 하고, 그 삶 역시 그들의 선택이라는 거다. 본인들이 느끼지 못하면 할 수 없는 거다. 그들이 날 싫어하면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다. 인정하면 감사할 뿐이죠. 나는 지금 자유로워졌다.”떳떳하게 사랑하고 떳떳하게 살아가고 싶어서 그래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커밍아웃을 했던 그의 선택을 나는 존중하고 싶다. 그렇다면 지금의 사랑은 현재진행중인가 궁금하다.“지금 사랑하는 사람 있어요. 사랑을 하면 행복하기도 하고 구속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그래요. 하지만 날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해요.”문득 그의 결혼 계획이 궁금해진다.“지금 작은 누나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요. 자식 같이 잘 키우고 있죠. 나중에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법적으로는 허락이 안 되고 있어요.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고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나눔의 소중함을 살짝 배우고 있어요. 한 아이의 인생에 큰 버팀목이 된다면 참 행복할 것 같아요.”
우리가 이야기 나누고 있는‘our place'는 어떤 공간인가, 어떤 공간으로 만들어나가고 싶은가.“궁극적인 목표는 우리들의 공간이에요. 우리 집에 사람들을 초대해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었어요. 이 곳에서는 백인도 흑인도 기독교도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함께 어우러질 수 있어요. 나와 다른 사람과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집이죠. 그래서 our place죠.”
요즘 뮤지컬‘footloose'에 출연중인 홍석천은 레스토랑일 이외에도 바쁜 일상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올 해는 책을 한 권 발표할 예정이란다. 쓰고 싶은 말들이 많다고 한다. 진짜‘홍석천’을 보여주고 싶어서이다.

그의 처음에는 행복을 향한 꿈틀거림이 있었으며 그가 커밍아웃의 첫 발을 내딛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 행복하다.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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