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정부의 민생경제 구제방안 - 국민연금 담보대출>

연금으로 채무를 상환한 그들의 노후대책은?
“국민후생을 위한 사회 안전망의 기능 상실”

국민연금에 가입한 적이 있는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들은 이르면 오는 7월부터 자신이 낸 국민연금 보험료를 담보로 돈을 빌려 금융기관에 진 빚을 상환할 수 있게 된다. 최근 보건복지가족부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신용불량자에 대한 채무상환 대여계획’안건을 심의, 하반기부터 이 같은 방안을 시행하기로 의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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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국무회의에 보고된‘New Start 2008 프로젝트’는 우리사회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지원프로그램으로서 일명‘패자부활전’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특히 금융소외자(신용불량자) 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써‘국민연금담보대출’을 통한 구제방안을 마련해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 담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금융소외자는 전체 260만 명 가운데 29만여 명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자신이 납부한 보험료의 최대 50%를 국민연금기금에서 빌려 은행 등에 진 빚을 갚은 뒤, 대여금을 연 3.4% 이자율로 2년 거치 3년 분할상환하면 된다. 이를 통한 대부금액은 최대 3천 885억원, 연금재정 손실은 최대 420억원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금융소외자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할 경우, 국민연금의 재정 기반을 흔들어 다른 가입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더욱 키울 수 있다며 국민 연금을 활용한 신용회복 대책 폐기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New Start 2008 프로젝트의 기본원칙과 방향은 도덕적인 해이를 최소화하고, 자기 책임의 대원칙 아래서 일시적 어려움에 빠진 이들을 구출해 정상적인 사회경제 생활로 복귀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반발 여론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었다. 무조건적으로 정부재정을 활용해서 구제를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책임아래 패자부활전을 치를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장밋빛 국민연금 담보대출, 약인가 독인가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등으로 인해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자, 국민의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한 소비촉진정책의 일환으로 신용카드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정책들을 추진했다. 그 결과 카드사들은 시장점유 경쟁이 불붙어 더 많은 회원확보를 위해 개인의 신용도 및 소득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신용카드 남발을 감행했고, 카드사를 비롯한 금융기관들은 현금서비스나 카드론 등 마진이 큰 가계대출업무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신용카드의 남발은 상환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카드지급이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했고, 경기 침체와 실업률 증가 등 좋지 않은 경제 여건과 맞물려 신용불량자들을 양산했다. 이후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한 신용불량자 수는 2003년 3/4분기부터 그 증가폭이 다소 둔화됐지만, 2004년 3월 참여정부의 신용불량자 종합대책 수립 이전까지는 꾸준히 월평균 7만 명 수준으로 증가하였다. 400만 명에 육박했던 신용불량자 수가‘배드뱅크(Bad Bank)’등의 종합대책 추진 이후부터는 감소 추세를 보인 것이다. 신용불량자 제도가 폐지된 2005년 4월 28일부터는 더 이상‘신용불량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지만, 신용불량자들이 받았던 금융거래와 취업상의 불이익까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에 새롭게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New Start 2008 프로젝트’는 5대 국정지표 가운데 하나인‘능동적 복지’와 같은 맥락이다. 금융소외자를 비롯해 영세 자영업자, 비정규직, 농민 등 급격한 사회변화의 과정에서 뒤떨어진 소외계층에게 신정부 출범을 계기로 패자부활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경제살리기에 동참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는 곧 신용등급 향상을 통한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용등급이 9~10등급인 금융채무불이행자들이 6등급 이상의 신용회복완료자로 변경이 가능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회복되는 것이다. 이에 청와대는“일방적 시혜조치가 아닌 채무자 자신이 납부한 국민연금 보험료를 활용하자는 것”이라며“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번 대책은 일회성”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기존의 신용회복지원제도가 상당한 효과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재단의 신용회복 지원사업은 우량 채무변제 이행자에 대한 긴급자금 공급 등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한국금융연구원의‘휴먼예금관리재단 운영의 기본 방향’보고서 중에서-

원칙에 근거한 재기의 기회 마련 시급
▲ 연금제도 정상화를 위한 연대회의와 금융채무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연석회의 대표들이 보건복지부 앞에서 국민연금을 담보로 한 신용회복대책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민연금 담보대출에 대한 기대와 함께 염려의 목소리도 매우 높다. 연금가입기간의 단축으로 최소 가입기간(10년)을 채울 수 없게 될 경우, 연금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서민들의 노후가 더욱 불안해 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가 된 것이다. 최근‘국민연금 담보대출, 노후가 무너진다’라는 성명을 발표한 한국은퇴자협회(KARP)는 이번 조치를 제고할 것을 요구하며, 시행의 전제조건으로 정부가 원금과 이자에 대한 보증을 반드시 서야한다고 강조했다.“신용불량자들로서는 당장 신용불량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겠지만, 이들의 노후는 장담할 수 없게 되어 더 큰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고 지적한 한국은퇴자협회는“우리 사회가 급속하게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를 위한 안정적이고 신뢰받는 제도로 정착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청와대의 이번 조치는 사회적 합의나 의견수렴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안정적인 노후를 위한 1차 안전망인 국민연금을 채무탕감에 사용되도록 함으로써 노후보장이라는 국민연금제도의 설립 취지를 크게 훼손시켰다”고 비판했다. 당초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은 채무 보증 대상이 될 수 없으며, 해외 주요 국가들에서도 국민연금에 대해서는 담보 설정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한편, 상당수 서민들은 대부업체를 거쳐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가 많아 고금리 대부업체들의 수익성만 높여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논란이 거듭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대책에서 제외된 나머지 금융소외자들에 대해서는 지난 3월 출범한 소액서민금융재단을 통해 신용회복지원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휴면 예금과 보험금으로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소액서민금융재단은 저소득층의 창업과 취업 뿐 아니라 교육과 의료비 등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하고, 저소득층에게 보험 가입 혜택을 주는 사업도 함께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한 금융권 출신 법률 전문가는“금융소외자들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개인파산과 개인회생 절차를 간소화하고, 금융소외계층을 상대로 소액신용생계대출을 전담하는 국책은행 설립 등 적극적인 재기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피력했다. NP


국민연금 담보대출 방안에 대한 단상

최근 발표된‘뉴 스타트 2008 프로젝트’에 따르면, 금융채무불이행자(소위 신용불량자)에 대한 국민연금 담보대출 방식의 한시적 구제 방안이 올 7월경에 시행된다고 한다. 국민연금을 적립해온 금융채무불이행자가 신용회복위원회에 신청하면, 신청자가 그동안 내왔던 국민연금 적립액을 담보로 최대 50%를 대출해준다는 내용이다. 대출금은 신청자 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금융회사 계좌로 이체돼 빚을 갚는 데 사용되므로 신용불량자 약 29만 명에게 신용회복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채권은 양도·압류·질권설정이 금지되는 채권(국민연금법 제58조 제1항)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현재를 위해 미래를 희생한다면 가뜩이나 불안한 노후대비가 전무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기금 고갈시기 논란이 있는 마당에 국민연금재원을 금융기관들의 채무변제로 사용하는 것은 기금고갈을 더욱 앞당길 수 있다. 근본적으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도 시장원리의 기초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워크아웃, 배드뱅크를 운영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그런데 시장주의를 한층 더 강조하는 신정부가 채무 일부를 곧바로 탕감해주는 것은 금융시장원리를 훼손하는 반시장적 정책일 수 있어 모순이라 여겨진다. 물론 금융소외자들을 위한 정책을 입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정책의 초점이 문제인 것이다. 기초수급자보다 오히려 형편이 더 어려운 계층(차상위계층)에게 거시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하고, 소득증가율보다 앞서가는 물가와 폭등한 주거비용, 사교육비 부담을 경감시키는 정책이 더욱 시급하다. 또한 미시적으로나마 약탈적 사금융이나 고율의 연체이자를 피하여 대출받을 수 있는 소액금융재단 등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은행, 보험, 증권회사의 휴면계좌재원을 기금으로 생각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돈을 빌리면 갚을 의무’가 있는 것처럼‘인간다운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채무자의 현재와 미래, 그 자녀의 삶까지 희생해가면서 변제할 의무는 없다’는 사실을 인식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이 헌법과 통합도산법(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의 이념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채무자의‘도덕적 해이’이전에‘인간 생존의 문제’이고,‘국가, 사회, 채권자의 시혜’가 아닌‘채무자의 법적 권리’임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함으로써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보다‘대출이익에 깊이 병들어 적극적인 투자보다는 무작위 대출을 일삼는 채권자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 채권자들의 도덕적 해이 때문에 많은 금융기관이 쓰러지고, 이를 회생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적자금이 들어갔던가를 잊지 않아야 하겠다.

▲ 노문기 변호사
민사 전문 노문기 변호사(법무법인 정현) noh1m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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