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강한 정부’의 본질을 꿰뚫다!
“자유주의 네트워크 형성에 적극 앞장서다”
미국 헤리티지재단과 월스트리트저널이 매년 발표하는 경제자유지수(Index of economic freedom)에서 한국은 올해 157개국 가운데 41위를 했다. 2005년과 2006년에 45위였다가 지난해 36위로 오르더니, 다시 40위권으로 주저앉은 것이다. 경제자유지수는 해당 국가의 시장경제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다. 특히 상위 20%의 국가가 하위 20%에 비해 1인당 국민소득이 5배 이상 높게 나타나, 선진화의 척도가 되고 있다.

「월드뱅크의 한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1965년, 가나의 국민소득은 남한보다 훨씬 높았다. 4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이 가나와 비교도 할 수 없는 나라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간단히 말하자면 재산권과 개방,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이다. … (중략) … 한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 적극적으로 개방정책을 택한 네 나라만이 가난에서 탈출한 것은 세계 시장과의 통합과 시장경제만이 성공의 열쇠임을 알려준다. 이처럼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것은 경제개발계획이 아닌, 시장경제체제의 채택에 따른 것이었다.」
[(재)자유기업원 김정호 원장 인터뷰]

- 한국은 1960년대 이후 눈부신 경제 성장을 달성했다. 고도성장의 원인은 우리 사회가 그 이전에 비해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적 요소를 더 많이 채택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관치경제였지만, 그 이전 시대에 비해서는 더 많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호되었다. 기업가들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여, 도전적이고 진취적으로 행동하기에도 수월해졌다. 그 결과 우리 국민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아직까지도 자본주의는 약육강식의 경쟁이 지배하고, 그로 인한 빈부격차를 초래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며 자유주의를 악의 화신으로 호도해왔다. 반시장, 반기업 정서가 널리 팽배해진 것이다. 이러한 반자본주의 심리는 국민들의 사고와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국가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그대로 내버려둘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1997년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전파하기 위해 자유기업원을 설립했다. 창립 이후 줄곧 그런 활동의 일환으로 연구와 교육, 출판 등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또한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이 대중에게 자신의 생각을 알릴 수 있는 매체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그 결과, 이제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지하게 되었다.
Q. 하지만 여전히 자유주의자들은 소수에 불과하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 적대적이다. 그러한 가시밭길을 걸어온 시간들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 단지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옳은 목소리들이 묻히고, 다수라는 이유만으로 그른 목소리들이 민주주의 양 행세한다. 그리고 이 그른 목소리들은 흡사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근간인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사회주의 이념으로 윤색되어 각종 정부정책에 반영되고 있다. 이러한 전체주의나 사회주의 이념의 발호는 우리 사회에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애써 쌓아놓은 번영의 토대를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1994년, 공병호 박사(1대 원장)와 함께 한국경제연구원에 근무할 당시에도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재벌을 악의 화신으로 여겼다.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재벌은 철저히 규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지식인들 역시 그런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의 생각이 그러하다보니 재벌 규제를 위한 수많은 제도들이 만들어졌다. 다각화에 대한 규제, 재벌에 대한 여신규제, 재벌에만 적용되는 사업 확장 규제 등 수없이 많은 규제들이 정당화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재벌 문제의 본질은 다각화나 규모가 크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재벌의 도산을 인정하지 않는 제도에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우리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리 주장의 논리적 타당성이나 현실 설명 가능성을 보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속한 한국경제연구원의 자금 출처가 대기업의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라는 사실만 갖고 우리의 주장을 폄하하곤 했다.

- 물론이다. 그러한 좌절감은 우리의 관심을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문제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이는 곧 우리의 시장친화적 생각이 옳고, 대중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대중들이 가진 잘못된 생각은 가진 자에 대한 시기심과 같은 인간 본성이 조종하는 것이라는 데에 뜻을 같이했다. 그리하여 인류학과 심리학, 사회생물학, 두뇌과학 등 독서의 경계를 없애고 닥치는 대로 글을 읽었으며, 그 소감을 가지고 일주일에 한 번씩 토론을 진행했다. 하지만 해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하이에크의 논문들을 우리말로 번역해서 모아놓은‘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를 접하면서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후 우리는 하이에크의 저작들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고, 진화라는 개념을 통해서 사회 변화를 해석하는 방법을 익히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본래 목표로 잡았던 인간 본성에 대한 글을 완성했고,‘갈등하는 본능’이라는 이름으로 1996년 출간했다. 상업적으로 그리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공 박사와 내가 공동 작업을 해서 거둔 첫 번째 성과로서 큰 의미가 있었다. 이즈음 손병두씨가 한국경제연구원의 부원장으로 취임했고, 연구원의 분위기를 쇄신하고 싶어 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 시장경제의 필요성을 드러내놓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박사들이 가장 시장친화적이었지만, 대다수의 연구원들은 공개적으로는 시장의 필요성을 주장하지 않았다. 시장이 좋긴 하지만 실패의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시장친화적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는 식의 말들이 주류를 이룬 것이다. 하지만 공 박사와 나는 손병두 부원장에게 한국경제연구원이 공개적으로 그리고 공격적으로 시장경제 원리를 전파해야 한다고 설득해 나갔다. 영국의 경제조사문제연구소나 헤리티지재단 같은 싱크탱크의 설립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고, 그 결과, 한국경제연구원 내의 자유기업센터를 만들게 되었다. 그러던 중 97년 2월, 손병두씨가 전경련의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당시 전경련 회장이었던 선경그룹(現, SK그룹)의 회장 故 최종현 씨가 매우 시장친화적인 사고를 가진 분이었다. 시장경제에 대한 신념이 대단히 강했던 최 회장을 설득한 결과, 전경련내의 자유기업센터라는 독립된 싱크 탱크가 태동하게 되었다.
“자유기업원의 행동 지침은‘No Fear! No Compromise! Least Cost!’다. 두려움 없이, 그리고 타협 없이 시장경제를 전파하며, 최소의 비용으로 운영하겠다는 뜻이다.”

- 2003년 5월, 민병균 원장(2대)이 사의를 표한 후, 그의 후임으로 원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제일 먼저 착수한 것은 커져버린 조직을 슬림화하고, 이메일 뉴스레터 등의 홍보 사업과 교육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전파한다는 본래의 창업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당시의 생각이었다. 19명이던 직원의 숫자를 나를 포함해 10명으로 줄였다. 또한 5만 5천명으로 늘어난 이메일 회원들에게 일주일에 네 번씩 뉴스레터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유기업원이 해왔던 일 중에서 교육과 홍보, 그리고 NGO적 기능에 전념했다. 특히 교육 기능의 강화를 위해 대학 내에 시장경제 강좌 개설을 추진했다. 자유기업원의 역할은 강사료를 지원하고 강사진을 시장경제 지지자들로 구성하는 것이었다. 대학에 시장경제 강좌를 개설하는 것은 대학의 입장에서는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외부의 유명강사를 초빙할 수 있어 좋고, 자유기업원 입장에서도 학점을 주는 정규 과목으로 시장경제 교육을 시킬 수 있어 교육 효과가 확실했다. 남은 문제는 강좌를 이끌어갈 교수 영입이었다. 자유기업원의 필진들 위주로 구성된 하이에크 소사이어트 소속 교수들에게 타진해보았으나, 답은 부정적이었다. 한국의 대학에서 시장경제가 좋다는 말을 내놓고 하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숭실대학교의 전삼현 교수가 해보겠다고 선뜻 나섰다. 학생을 모집해본 결과, 대성공이었다. 수강 신청 30분 만에 230명 정원이 모두 차는 기대 밖의 일이 일어났다. 그것을 보고 다른 교수들의 마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후 개설 학교와 학생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해서 2008년 봄 학기에는 총 19개 학교에서 2596명이 이 강좌를 수강하고 있다. 매년 5천 명의 대학생들이 시장경제 교육을 받게 된 것이다.
Q. 앞서 말씀하신바와 같이 자유기업원은 교육 사업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왔다.

Q. 시민단체 활동을 분석하고 감시하는‘NGO 모니터’에 대한 소개와 향후 계획에 관하여.

Q. 2008년 주요 사업 계획과 앞으로 자유기업원이 풀어가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 여기는가.

Q. 자유시장경제주의자를 대표하여 시사뉴스피플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원리가 확고히 자리 잡은 곳에 번영이 깃든다는 사실은 수많은 역사적 증거들을 통해 확인되었다. 개인의 재산권이 보호되고, 계약과 경쟁의 자유가 허락되며, 정부의 개입이 최소화된 사회는 우리에게 물질적 번영뿐만 아니라 정신적 풍요와 정치적 치유까지 가져다준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당장 눈앞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정부개입의 달콤함에 빠져든다면 끝없는 개입의 악순환에 빠져들게 된다. 다소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개인의 자발적 노력에 의해서 좋은 해법이 떠오른다는 인류사의 경험에 믿음을 가져야 한다. 시민들이 각자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스스로 책임진다는 생각을 가질 때에 시장경제원리는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이제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시장경제를 이야기하고, 시장경제원리대로 세상사를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여과 없이 분출되는 분배욕구가 우리를 국민소득 1만불의 덫에 붙들어 매고 있다. 투자와 세계시장의 개척 없이는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데도 기업과 기업인을 죄인 취급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져 가고 있다. 정부에 기대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풍조 역시 커져간다. 스스로 일하기보다는 남의 것을 빼앗아서 잘 살려는 풍조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의 미래는 밝을 수 없다. 또한 시장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개입주의의 유혹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자유기업원은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고집을 지켜나가겠다. 시민들과 기업들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이 정부가 개입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드리겠다. 국가권력과 재정지출에 기대기보다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평범한 진실을 널리 알리겠다. 법과 원칙보다 타협을 앞세우는 것은 비극으로 이끄는 길임을 설득하겠다. 앞으로도 여러분들의 많은 조언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NP
김미희 기자
elikim@inewspeopl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