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상의 진정성에 대하여’

아름다운 영상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영화감독이 있었다. 그에게 한 사람이 물었다. 당신의 영상은 참으로 아름답다고, 어떻게 그 화면을 잡아내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이야기했다. 감독은 대답했다. 영화의 아름다운 영상은 우리 일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따라잡지 못한다고 말이다. 그렇다. 우리의 일상이 잘 짜여진 영화보다 아름답고 감동적일 수 있다는 것 잊고 있었다.

임보연 기자

사람들은 자극적이고 현란한 것에 익숙해진 지 오래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러한 영상들은 평범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요즘 사람들은 매일 저녁 다른 사람의 일상에 관심을 기울인다. <인간극장>이라는 휴먼 다큐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화면 속 사람들은 스타이거나 유명인들이 아니다. 그저 한 동네에서 마주칠법한 모습의 아저씨며 아줌마이고 학생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이야기에는 다양한 표정이 들어있다. 굳이 짜여진 각본이 아니라도 이야기는 지루하지 않다. 그들의 일상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고 슬픈 듯 힘차며 즐거운 듯 서글프기까지 하다.
그리고 휴먼 다큐를 만드는 PD들이 있다. 우리가 보는 것은 고작 하루에 30분씩 5일간이지만 그들은 출연자들과 동거동락하며 보통 2~3주간의 촬영을 진행한다. 녹화 테이프만 해도 7~80개에 이른다. <인간극장>팀의 팀장 윤양석 PD는 일 년의 반 이상을 촬영 준비와 촬영 등으로 밖에 나와 있는다고 한다. 힘든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계속해서 다큐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큐를 만드는 사람들의 일상을 잠시 훔쳐보아야겠다.

인간 대 인간
- 윤양석 PD에게 듣다
<인간극장>의 외주제작을 맡고 있는 프로덕션 중 하나인‘리스프로’를 찾았다. 다큐를 만드는 PD들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그려 보이고 싶었다. 리스프로에는 인간극장을 담당하는 7명의 PD가 있다. 현재 두 팀이 촬영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팀은 진해에서 한 팀은 서울에서 촬영중이라고 했다. 기자는 서울에서 진행 중인 촬영 팀의 현장을 견학하기로 했다.
그 전에 사무실에서 만난 인간극장 팀장인 윤양석 PD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사람 좋게 생긴 윤PD는 현재 12년째 다큐를 만들고 있다. 그는 이야기한다. 다큐에서 중요한 건‘진실’과‘진정성’이라고 말이다. 때문에 <인간극장>에서 출연자를 선정할 때 가지는 유일한 기준이 진정성이라고 한다. 이 같은 본질이 시청자들은 진심으로 울고 웃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리라. 그는 우스갯소리로 말하기를“다큐는 자화상이다. 그래서 오래 하다보면 사람이 착해진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말이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척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인생관을 존중해야 한다.”인간극장은 기본적으로 휴먼 다큐이기 때문에 이야기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사이의 관계가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출연자들과의 호흡이 중요하단다.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초반 촬영부분에서는 건질 만한 부분이 없다고 한다. 그만큼 연출자와 출연자간의 친밀도와 믿음이 다큐의 분위기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출연자들과 3주 동안 동거동락하며 지내게 된다. 다들 나에게는 특별하다. 4,5년이 지나도 연락을 하며 지낸다. 자주는 못해도 자신의 집에 좋은 일이 생기면 연락을 주기도 한다. 그런 게 이 프로그램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다큐를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출연자들 섭외의 어려움부터 그들을 카메라 앞에 세우는 일,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일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실종된 아이를 찾는 다큐를 찍을 때였는데 촬영을 시작한 지 며칠 만에 아이가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의 촬영을 진행할 수 없지 않겠는가. 또 간혹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오는 비판의 글들로 출연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일들이 힘든 부분이라고 토로한다.“3회분 정도가 방송되면 대부분의 비판들은 수그러진다. 그런 것을 아는 우리들은 괜찮지만 출연자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많이 힘들어한다. 예전에 열 번째 아이의 출산을 앞둔 목사 부인의 이야기를 촬영한 적이 있었다. 촬영장 분위기도 좋았고 내용도 좋았었다. 그런데 1부가 방영되고 나서 게시판에 이런 글들이 올라왔었다. 저게 인간이냐, 기계냐, 시골 할머니들 낸 돈으로 애 키우는 거냐 라는 등의 글들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 분한테 편지가 왔다. 나는 재미있게 봤는데 사람들은 다른 걸 보는 것 같더라고 말이다. 결국 이야기는 수그러들지만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 법이니까 아마 오래도록 괴롭혔을 거다.”그는 이야기한다. 다큐를 만드는 일은 힘들다. 그런데 보람이 있는 것도 사람 때문이고 힘이 든 것도 사람 때문이다.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내야 하기 쉽게 할 수 없다. 출연자와 연출자의 감정이 충돌하기도 한단다.“어떤 작가는 이렇게 말하더라. <인간극장>작가를 오랫동안 하면서‘인독’이 올라 힘들다.”

- 임은정 피디에게 듣다
서울에서 진행 중인 촬영은‘연탄 3부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연탄배달을 하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두 아들이 연탄 배달일에 나섰다. 1월 말부터 방송되는 인간극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담게 된다. 연탄 배달이다 보니 새벽부터 그들을 쫓아다녀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 촬영을 진행하고 있는 임은정 PD, 9년차 PD지만 병원 24시를 시작으로 휴먼 다큐만을 고집한지 만으로 5년째이다. 그녀는 한마디로 사람이 좋아서 휴먼 다큐 PD를 시작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삶을 통해 울고 웃으며 인생을 배워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촬영하면서 어려운 점도 있다.“인간극장과 같은 6mm 휴먼 다큐는 출연자의 일상을 밀착취재를 통해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나 낯선 사람들(PD와 카메라감독)과의 2-3주간 동거 아닌 동거를 하게 되는데 이 같은 과정이 출연자에게 많은 부담을 주게 된다. 이 거북함을 단 시간 내에 해소해야지만 보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진솔한 삶을 끌어낼 수 있다. 따라서 제작진을 신뢰하고 자신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거리낌 없이 보여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일 중에 하나이다.”임 PD가 살짝 속내를 털어놓는다. 솔직히 출연자와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한다는 건 제작진에게도 부담이라는 것이다. 하루 24시간 중에 잠자는 시간만 빼고 모든 시간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촬영 기간동안 사적인 일은 전혀 볼 수 없고 남들 다 하는 연애도 못하는 신세란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프로그램을 통해 갓 태어난 아기에서 100세가 넘는 노인, 서울역 노숙자부터 고위 관직자, 가난한자와 부유한자 등등 각종 다양한 인간의 군상들을 그 안에서 만나게 된다. 그러나 33세의 나이는 그들의 삶의 깊이를 헤아리고 통찰하기엔 너무 부족한 나이다. 과연 내가 이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고 담아내고 있는지... 항상 내 안에 나와 싸우게 된다.”
그럼에도 그녀가 오늘도 내일도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하여 촬영장으로 향하는 것은 이웃들의 진솔한 모습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시회의 희망을 볼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섬이다. 바다 위에 외로이 떠있는 하나의 섬이다. 그러나 깊은 바다 속을 들여다보면 어딘가에서 그 섬들은 이어져있다. 휴먼 다큐는 섬들의 이어진 부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정현종 시인은 말하지 않았던가.‘사람과 사람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섬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외로운 섬들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 된다고.NP


임은정 PD가 말하는 다큐 PD로서의 희노애락에 대하여
희 -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촬영하면서 출연자의 살아가는 모습 또는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같이 울고 웃으며 인생의 희노애락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 할 수 있어서 좋다. 갓 난 아기부터 백발의 노인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인생을 보고 느끼고 배우고 있다.
노 - 방송 제작 PD는 보통 사람들 보다 1년을 2-3배 빠른 속도로 산다고 생각한다. 왜냐? 1년에 인간극장 5편 하다보면 어느새 1년이 후딱 지나가 버린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거! 휴먼 다큐 피디로선 좋으나 여자로선 서글픈 현실이다.(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 & 노처녀 신세! ㅋㅋ) 노화의 속도도 빠르다. 촬영 기간 내내 스토커 신세로 있다가 편집하러 들어와선 날 새길 밥 먹듯 하고 며칠째 씻지 못해 몸에서 냄새가 나도 참아야 한다. 그러다 몸이라도 아파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 혀 차시며 하시는 말씀이 몸 나이 중년이라며 일 그만하고 쉬란다.
애 - 다큐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서 삶에 대해 겸허해졌다. 출연자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위로도 받고 지혜도 얻는다.
락 -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거움 이다. 다음엔 어떤 사람을 만나 무슨 인생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까? 싶어 기대된다.(하지만 다 좋은 것만은 아니죠. 사람들을 상대로 하고 그들의 삶을 끌어내다 보면 사람들한테 치일 때도 있고 실망 할 때도 많아요)            



‘연탄3부자’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의 매력남 장희남(32)씨와 그의 동생 장희준(29)씨
그들은 2년 전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버지의 대를 이어 연탄배달 일을 시작했다. 청년 실업 50만을 육박하는 현실 앞에서도 힘들고 더러운 일은 기피하는 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탄 배달이라는 힘든 일을 선택한 두 형제. 일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세상에서 연탄 배달 만큼 재밌고 신나는 일이 없다며 자신들의 천직임을 자랑한다. 얼마든지 더 좋은 조건과 환경 속에서 일할 수 있는 그들이 왜 연탄 배달 일을 선택했고 그 안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열심히 최선을 다해 자신을 삶을 일구어 나가는 건강한 두 청년을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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