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일부터 새로이 시행된 가족관계등록부. 혼인이나 이혼, 입양 등 인적사항이 모두 드러내는 호적 대신 생년월일 등 가족관계를 특정하는데 필요한 정보만 담는 가족관계등록부는 아버지의 성만을 따르도록 했던 기존의 호적제와는 달리, 필요한 경우 성을 바꿀 수 있도록 해 시행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다.
5가족관계등록부는 기존의 호적등본을 대체해 호주의 출신지를 기준으로 하는 본적 개념을 폐지, 개인이 자유롭게 결정하고 변경이 가능한 등록기준지 개념을 도입했다. 때문에 호적 등·초본에 호주를 중심으로 모든 가족관계가 편제되던 것이 바뀌어 증명 목적에 따라 가족관계 증명서, 기본 증명서, 혼인관계 증명서, 입양관계 증명서, 친양자입양관계 증명서의 5가지 증명서로 구분된다. 도입된 지 4개월째에 들어선 가족관계등록부. 다양한 편리성을 내세우며 도입되긴 했으나 잘못 등재된 부분이 많고 부당하게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등 가족관계등록부 시행으로 인한 피해 사례가 속속 발생하고 있어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족관계등록부가 혈통주의 강화한다?
▲ 최근 가족관계등록부로 인한 피해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새로운 신분등록제도로 인해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했다는 호소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첫 아이 출생신고를 하러 갔더니 결혼 전에 낳은 아이가 나와 있어요”. 지난 2월 여성의전화 사무실로 전화를 한 A씨는 결혼 전 낳은 아이의 친권과 양육권을 아이 아버지에게 다 넘기고, 새로운 사람과 결혼하여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공무원이었다. A씨는 “첫 아이를 낳아 동사무소에 출생신고를 하러 갔더니, 동사무소 직원이 예전에 낳았던 아이도 가족관계증명서에 나온다는 것을 알려주었다”며“회사에서 가족관계증명서를 가져오라고 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회사사람들이 알게 될까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여성의전화는 “가족관계등록부를 발급하는 담당 공무원조차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이 너무 많다”며 “‘(기록이) 나오지 않게 해달라는데 담당 공무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런 기록들은 나오지 않게 고쳐야 하지 않는가?’라고 문의해왔다”고 했다. 이어“새로 시행된 ‘가족관계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개인별신분등록이 아닌 가족편제’로 되어있다는 데 문제의 원인이 있으며, 가족의 범주 역시 협소하게 혈연 및 결혼의 경로만 인정해, 결국 기존의 호적제도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지적한다. 여성의전화의 한 담당자는 가족관계등록법에서 “혈연이 아닌 가족공동체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졌다”며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부계원칙 폐지와 다양한 가족의 존중과 포용이라는 기대를 가졌지만, 오히려 혈통주의, 가족주의는 더욱 강해졌다”고 덧붙였다. 부계혈통만 중시하는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시민사회는 이제 우리 사회도 혈통주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며 대안을 바랬다. 그러나 현재 가족관계등록제는 부계와 모계를 모두 명시하는 방안을 택함으로써 결국‘혈통주의’가 더 강화된 셈이다.
호주제 폐지 후 성 변경 브로커도 등장해
▲ 가족관계등록부 도입 후 성(姓)변경을 원하는 이들이 늘면서 브로커까지 등장하고 있다.
지난 1월 개정민법이 “자(子)의 복리를 위하여 자(子)의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부모 또는 자의 청구에 의하여 법원의 허가를 이를 변경할 수 있다. 다만 자가 미성년자이고 법정대리인이 청구할 수 없을 경우에는 제 777조의 규정에 따른 친족 또는 검사가 청구할 수 있다”고 규명하면서 자녀의 성과 본 변경이 가능해졌다. 그러자 지금까지의 눌려있던 고통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지난 2월 기준으로 대법원의 ‘자녀 성본 변경 허가 청구 처리 현황’을 살펴보면 성본 변경은 8169건, 친양자 입양은 1007건이 접수됐다. 성본변경은 이중 1600여 건이 인용되고, 35건이 기각됐다. 인용률은 89.7%다. 친양자 입양도 241건의 처리안 중에 185건이 인용됐다. 기각은 15건에 불과하다. 서울가정법원은 가족관계등록제 시행으로 성본 변경이 쇄도하자 비송단독 재판부 1개와 가사단독 재판부 3개를 증설했다. 최근 법률사무소나 변호사사무소 등에도 성 변경 문의 및 신청자가 줄을 잇고 있는 추세다. 성 변경의 방법에는 2가지가 있다. 성본 변경과 친양자 입양이다. 성본 변경은 아버지쪽의 친족관계 변동 없이 성과 본만 변경하는 것이며, 친양자 입양은 친부의 면접교섭권이 박탈되고 친부와 완전히 남남이 되는 경우다. 친부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성본 변경 역시 신청 자체는 동의 없이 가능하지만 가정소송법 자체에 친권에 대해서 물을 때에는 의견을 양쪽 모두에게 구하도록 돼있기 때문에 실제 변경 과정에서 동의를 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녀의 성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성’으로 인해 고통 받았음을 입증해야한다. 아이의 복리를 위해서임을 증명해야 하는 것. 개인이 직접 법원에 가서 신청을 하려고 하면 이 고통의 정도가 심리적, 정서적 상태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자녀의 성 변경을 위한 전문적인 브로커나 법률사무소가 급증하는 것도 고통 증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재혼한 새 아버지의 성으로 바꾸려면 ▶새 아버지가 낸 아이의 병원비, 학원비 납부액 등 지출 현황 ▶새 아버지의 양육 기간 ▶친 아버지의 양육 기간 ▶친 아버지의 면접 교섭권 ▶재혼까지 그리고 재혼 이후의 기간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해야한다. 아이들의 복리를 위해 시행된 제도지만 이 때문에 고통이 가중되는 경우도 많다. 가장 눈살이 찌푸려지는 경우는 친아버지가 성본 변경을 한몫 잡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례다. 성변경 사무소 관계자들은 10명 중 2명은 돈을 요구한다고 입을 모았다. 친양자 입양을 통해 미혼모가 신분 세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친양자 입양증명서가 있긴 하지만 성년이 되기 전까지는 확인할 수 없고 성년 이후에도 본인만 확인가능하기 때문에 신분세탁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많다. 이혼 후 전 남편과의 사이가 나빠서 남편과의 관계 단절의 수단으로 성본 변경을 이용하는 사례도 있다. 아이가 아직 한두 살인데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무리하게 성 변경을 진행하기도 한다.
민법 개정안 내용 및 호주제 폐지 이후 달라진 것들
▲ 2008년 1월 1일 가족관계등록부 도입 후 달라지는 것들.
① 장인·장모도 가족=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은 가족의 범위를 ‘부부, 그와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 부부와 생계를 같이하는 그 형제자매’로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새로 규정된 가족의 범위에 따르면 결혼한 아들딸은 물론 생계를 같이하는 장인·장모도 한 가족으로 정의되어 가족의 개념이 크게 달라진다. 그러나 그 내막을 보면 대신 형제자매 가족이 아니다. 생계를 같이 안하면 친정, 시가 부모도 가족이 아니다. 과거 ‘家’라는 관념적 집단으로서 현실가족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재혼가족의 경우 실재하지 않으면서도 전처의 기록이 고스란히 아이들 등록부에 그대로 존치된다. 또 아이를 동반하지 않는 재혼녀의 경우도 그대로 전 부와의 관계에서 생긴 아이들은 같이 살지 않는데도 그대로 기록부에 올라 쫓아 다닌다. ② 엄마 성을 쓸 수 있다=자녀는 아버지의 성(姓)과 본(本)을 따르도록 되어 있는 ‘부성 강제’조항을 폐지하고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예외적으로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부성 원칙’을 신설했다. 어머니 성을 따를 때도 아무 때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혼인신고 시 부부가 합의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모두 따르거나, 같은 부모 사이에서 출생한 2명 이상의 자녀들이 서로 다른 성을 따르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내막을 살펴보면 엄마 성이라는 것도 엄밀히 따지면 엄마의 아빠, 즉 외할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셈이다. ③ 재혼 가정, 자녀 성(姓) 바꿀 수 있다=자녀의 복리를 위해 성(姓)과 본(本)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는 아버지, 어머니 또는 자녀의 청구에 의해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변경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재혼 여성이 자녀에게 계부(係父)의 성을 물려주거나 이혼 여성이 자신의 성을 주려고 할 때 가정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하며 이때 전 남편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자녀의 복리’가 필요하다고 법원이 판정할 경우에만 성의 변경이 허용돼 자녀의 성 변경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 90% 이상 성본 변경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예상외로 쉽다. 자녀복리는 너무 광의적이고 포괄적 개념이어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판사마다 제각각이고 법리 서로 일치하지 않아 제멋대로다. 또한 친부는 형식적으로 참고인 진술 정도로만 그치는 정도이며, 재혼남 전처 자식들의 기록부에서는 현재 살고 있는 계모가 母로 안 나오고 전처가 母로 나온다. ④ ‘혼인 외 출생자에 대한 남녀차별’조항 삭제=혼인관계가 아닌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을 경우, 반드시 아버지의 호적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성 가운데 아무 것이나 따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전 호적 데이터를 빌려오기 때문에 기록부에서는 모가 사망하거나 아예 나오지도 않는 경우도 있어 죽은 사람으로도 나올 수 있다. 또한 미혼모,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자녀들의 법적 권리 또한 문제다. 이들의 법적권리가 인정된다면 혼인신고 하고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아 낳은 아이와 어떻게 구분하느냐 하는 문제가 걸려 있다.
신분변동사항이 그대로 드러나는 등 피해 심각해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르면, 개인은 기본증명서를 포함해 목적에 따른 증명서(가족관계, 혼인관계, 입양, 친양자입양)를 발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신분관계를 보여주는 증명서’와 ‘신분변동사항을 보여주는 증명서가 분리’되어 있지 않아 이혼, 개명, 입양과 파양, 성별변경 등 신분변동 사항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또한 혈연에 기초한 이성애 핵가족을 일반적인 가족의 범위로 한정해서 생기는 피해도 심각하다. 권정순 변호사는 “피해 사례 등을 통해 가족관계등록에 관한 법률이 개인의 신분에 관한 사항을 목적별로 분류한 이외에 신분에 관련한 개인정보의 등록 및 증명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개인정보 과다노출의 문제를 간과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성부 관계자는 “가족관계등록부는 실질적인 발급제한범위는 확대됐을지 몰라도 기업이나 관공서에서 불필요한 서류를 과도하게 요구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개선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가족관계등록부는 개인 중심으로 등록부를 기재하고, 목적별 발급으로 개인정보 보호의 수위를 한층 높였으며, 원하는 경우 성과 본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등 긍정적 변화에 대한 기대를 안고 시행됐다. 그러나 민감한 개인정보가 부당하게 노출되는 것을 시정하기 위해 마련된 가족관계등록부가 오히려 가정 파괴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분명 시정해야 할 문제다. 새 제도를 다양한 가족의 존중과 포용이라는 당초의 취지를 살리고, 국민의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하루빨리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