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독재를 그리워하는 이라크

역사상 최고의 동맹군을 집결하고 세계 최대의 권력을 가진 미국이 시작한 이라크 전쟁은 전세계로 생중계됐다. 비행기 뒤에 몸을 묶고 촬영을 시도하는 것은 21세기이기에 가능했다. 지난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로 비행기가 돌진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으로 21세기를 시작했던 우리는 그로 인해 시작된 전쟁의 면면도 TV를 통해 지켜볼 수 있게 됐다. 전쟁이 시작된 시발점에는 무역센터가 무너진 시점이라는 주장도 있고, 이전부터 아랍세계와의 잦은 마찰이 결국 전쟁으로 번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시작한 사람들은 있지만 끝내는 사람들이 없다는 이 전쟁은 5년이 흐른 지금도 그 끝을 예측할 수 없다.

▲ 부시 대통령은“전비가 막대하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미국의 국부에 비해 적은 양이며, 이라크가 이른바 미국의 최대 위협 대상인 알카에다와 이란의 주요 지점임을 볼 때 그 정도의 부담을 질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20일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5주년을 맞이했다. 9․11테러가 있은 지 한달 후 미국은 테러를 지시했다고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둔 탈레반 정부를 공격함으로 해서 전쟁을 선포했고, 아프가니스탄은 함락됐다. 오사마 빈 라덴을 손에 넣지 못했지만 미국의 승리로 전쟁은 끝났다. 이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이라크의 무장해제와 세계 평화를 위해, 이라크의 민주화를 위해 군사작전에 돌입했다. 최대 규모의 연합군을 형성했고, 최강국 미국이 이끄는 이라크 전쟁은 일찌감치 성공해 작전 종료를 선언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군과 연합군은 이라크에 주둔하며 자폭테러와 종파․종족간의 분쟁에 얽혀 하루에도 수십명의 사상자를 내며 시간이 흐르고 있다. 5년 동안 이라크 땅에서 숨진 사람은 10~22만 명으로 추산되고, 이를 60만명으로 집계하는 통계도 있다. 그 중 4000여명이 미군이다. 지난 한해만 무고한 이라크 시민 2만 4천여명이 희생됐고, 하루 평균 66명이 죽어나갔다. 전쟁으로 인해 집을 버리고 피난을 떠난 국내외 난민이 450만이고, 선진국에 망명을 신청한 이라크인은 4만 5천명으로 2년 연속 세계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이라크 내에서도 고향을 잃고 떠도는 사람이 250만명이고, 이라크인 10명 중 4명 이상이 유엔의 빈곤측정 기준인 하루 1달러 이하의 돈으로 살아가고 있다. 식량과 식수는 부족하고, 보건․교육제도는 거의 붕괴됐으며, 법 질서나 경제의 회복 등에 대한 희망을 걸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사담 후세인만 사라지만 이라크에도 봄이 올 것 같았는데 더 큰 불행이 찾아왔다고 현재 이라크인들은 급기야 후세인을 그리워한다는 발언까지 하고 있다.

이라크전, 경제적 부담을 질 가치
미국도 잃은 것이 많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최근 저서에서 미국이 지출한 전비가 간접비용까지 합하면 3조달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지난 5년간 지출한 전비를 8459억달러라고 밝혔다. 간접비용과 인플레이션까지 추산하면 5조 달러라고도 전해진다. 부시 대통령이 아무리‘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라크가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대량살상무기 처단을 위해 전쟁을 시작했다고 하지만 대량살상무기가 없었음이 밝혀진 이상 그의 신뢰와 이미지는 추락했다. ‘석유’와‘군수 산업’을 위한 전쟁이었다는 평가를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내리고 있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던 때 1배럴 당 37달러였던 원유가격은 현재 90달러를 넘어섰다. 고유가는 미국 소비자들의 지출에 영향을 미쳤고, 지속된 전쟁은 전비충당을 위해 미국인들의 혈세를 도려냈다. 이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전비가 막대하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미국의 국부에 비해 적은 양이며, 이라크가 이른바 미국의 최대 위협 대상인 알카에다와 이란의 주요 지점임을 볼 때 그 정도의 부담을 질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없었던 대량살상무기
이라크와 미국의 관계는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가 연합군에게 패배한 직후 유엔안보리에서는 이라크가 다시는 이와 같은 침략을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여론이 생겼다. 이후 유엔군축특별위원회는 이라크에 들어가 조사를 했고, 이 조사에서 이라크의 다양한 무기 생산 프로그램들과 정밀한 군사 기밀이 드러났다. 이라크가 화학무기와 생물학무기를 만들고 옮길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된 것이다. 이후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를 여러 차례 공격했으나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2001년 이라크가 결국 유엔 안보리 결의안 1284조에 해당하는 무기 사찰단에 협조를 하지 않고 거부해 유엔 무기사찰을 다시 하기 위한 준비로 미국이 즉각 군사적 위협을 감행한 것이다. 결국 이라크가 보유했다고 알려진 대량살상무기는 없는 것으로 지난 2004년 밝혀졌다.

이라크의 참된 민주화를 위하여
오랜 전쟁으로 인해 이라크는 정치, 사회, 문화, 환경, 경제, 교육 등 전 분야에 걸쳐 막대한 피해가 유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워싱턴의 민간 연구기관인 브루킹스연구소는 최근 전세계 141개 개발도상국의 정부의 역할을 분석한 조사를 발표했다. 여기에서 아프가니스탄은 소말리아, 콩고공화국과 함께 가장 낮은 부류인‘실패한 국가’로 판정됐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정권이 붕괴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재건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고, 정부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내전도 계속됨에 따라 실패한 국가로 낙인찍힌 것이다. 이런 실패한 국가들에게는 국제사회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개입해줌으로써 그들의 자립을 도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미국 민주당의 아담 스미스 하원의원은 실패한 국가에서 또 다른 비극을 낳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아프가니스탄이 실패한 국가였기 때문에 알카에다가 그곳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미국에 대해 9․11 테러공격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스미스 의원은“만일 아프가니스탄이 실패한 국가가 아니었다면 알카에다의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테러분자들이 안전하게 숨어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의견은 9․11 테러 발생 이후 부시 행정부가 실패한 국가에 대해 적극 개입한 행적을 뒷받침해준다. 올바른 민주주의의 정착과‘세계 평화’를 도모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우는 것도 이러한 논리다. 실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6개월 만에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무너졌지만 이후에도 미국의 군대가, 연합군이 이라크에 계속 주둔하고 있는 이유는 이라크를 실패한 국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소수 테러분파들이 여전히 남아 내분을 일으키고, 민간인에게 위협을 가하기 때문에 미군이 이들을 막고 이라크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이 있다.

재건할 수 있는 희망마저도 상실
미국이 침공하기 전 이라크는 독립주권을 지닌 독립국가였다. 그러나 미국의 침공 후 이라크는 취약해졌고, 침공 이후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폭력사태로 혼란을 겪고 있다. 이에 대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자신들이 전쟁이라는 틀을 통해 이라크를 보호하고 재건하는데 함께하지 않았다면 이라크는 지금보다 더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이라크는 현재 회복단계에 접어들고 있고, 점차 안정된 민주국가로 거듭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미국은 취약한 환경에 처한 국가의 자립을 돕는 방법으로 군사적 개입을 택했다. 군사적 개입은 결국 엄청난 인명피해와 재산 낭비 등의 현실적인 문제들이 걸림돌이 되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군사적 개입은 피해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개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민주주의를 특정 국가에 강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민간단체들을 통해 사회적 불만을 배출하고 이를 줄이고 치유하는 법치주의 환경을 발전시키는 시도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UN의 제인 홀 루트 평화유지활동 담당 사무차장은“평화적인 변화에는 장기적인 공약이 필요하다”며“세상의 주목을 끌던 위기와 분쟁이 가라앉은 후에도 국가 재건이라는 힘든 작업에는 10년에서 20년이란 시간이 더 걸린다”고 말했다. 전쟁의 상처로부터 회복 과정에 있는 국가들은 치안을 확립하고 경제를 재건한 후, 사회안정과 안보를 유지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에 그만큼의 기회비용이 또 발생되는 것이다. 워싱턴 소재 케이토연구소의 크리스토퍼 프레블 외교정책 담당 국장은“민주주의를 강요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기 보다는 자금과 전문지식을 활용해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민주주의 제도와 규범은 몇 년에 걸쳐 자생적으로 발전돼야 하는 만큼, 미국 정부가 이 과정을 지시하거나 계획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냥 우리를 두고 모두 떠나달라”
▲ 영국 BBC방송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라크인 4천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이라크인의 70%가 미군을 비롯한 다국적군의 철수를 희망했다. 다국적군의 주둔이 이라크의 국익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힌 사람은 23%에 불과했다.
전쟁 5주년을 맞이해 영국 BBC방송의 여론조사를 보면 이라크인 4천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이라크인의 70%가 미군을 비롯한 다국적군의 철수를 희망했다. 다국적군의 주둔이 이라크의 국익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힌 사람은 23%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1/4은 가족이 폭력과 테러 등으로 살해된 경험이 있고, 특히 바그다드에선 응답자의 반 정도가 가족을 잃었다. 국제인권단체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최근‘대학살과 전망’이라는 보고서에서“미국 주도의 침략은 사담 후세인을 제거했지만 이라크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의 하나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아랍인들은 현재 미국이 이라크에 대해 불의를 저지르고 아랍과 이슬람을 압제했다고 분노를 나타낸다. 지난 2005년 알제리에서 열린 아랍 정상회담에서 아랍국가들이 밝힌 뜻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중동 정치 질서 개편보다는 유엔이 주도해서 국제사회의 규준에 따른 이라크 재건 계획을 요구했다. 미국식 민주주의와 자유사상은 이슬람 세계에서 정치적 이데올로기, 아랍 부족주의, 아랍 민족주의, 종교적 배타성에 가려 단기간에는 성과를 거두기가 힘들어 보인다. 물론 미국이 당장 이라크를 떠난다고 해서 이라크의 모든 정치적인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쿠르드족에 대한 아랍족의 오랜 인종차별과 이슬람의 순니와 시아파 간의 갈등, 이슬람 세력이 이라크의 기독교인을 박해하는 문제, 세속적 민족주의자들과 이슬람 근본주의자 간의 대결 등 이라크가 가지고 있는 정치, 종교, 인종의 문제는 아직 산재하다.
결국 이 기나긴 전쟁은 미국의 부시 정권이 물러나는 순간 즈음에야 종결의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 대선후보인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은 전쟁을 반대하고 있다. 최근 부시 대통령은 오는 7월 이후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수를 무기한 중단할 것을 지시했다. 오늘도 여전히 이라크에서는 미군을 중심으로 하는 연합군과 무장세력들간의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무장세력들은 로켓 추진식의 수류탄과 기관총, 소총, 도로변 폭탄으로 공격하고 연합군은 무선비행기와 탱크를 이용해 미사일을 발사한다. 끊임없는 공습과 미사일 세례가 일어나고 이라크 주민들은 길에서도, 시장에서도, 밤에 잠을 자다가도 목숨을 잃고 다치고 있다. 전쟁은 미움을 낳고, 미움은 복수심을 만든다. 테러는 그렇게 시작된다. 전쟁을 시작한 사람들은 많은데 끝내려는 사람은 아직 없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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