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시장에는 대형 로펌 체제가 점차 본격화되고 있다. 판.검사 출신의 변호사들이 늘어가고, 전문분야를 가진 변호사들이 팀을 이루어 보다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국내 법조계의 선진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중이다. 그 중심에 거물급의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서있다. 전직 대검차장을 퇴임한 후 법무법인 바른에 둥지를 튼 정동기 변호사는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을 받고 있다.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국내 로펌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변호사를 영입하며 규모를 키우고, 로펌끼리의 인수합병 등 탄탄한 토대를 마련하기에 여념이 없다. 법무법인 바른도 그 중의 하나로 상당수의 변호사를 영입하며 대형 로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경쟁력 강화에 한발 앞서겠다는 의미다. 바른은 강남사무소만 100명을 바라보는 규모고, 강북사무소를 더하면 120명에 육박한다. 또한 대검차장 출신의 정동기 변호사를 비롯해 한명수, 이성훈, 김재협, 김한용 변호사 등 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4명이 나란히 입성해 업계에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본래 송무에 강한 바른은 최근 자문분야 강화 방침에 따라 남정애 중국변호사와 김종환 미국변호사를 새로이 영입했다. 법무법인 바른은 올해로 설립 10주년을 맞이했다. 설립 초기부터 탁월한 소송 및 분쟁해결 능력으로 명성을 쌓았고, 2005년 이래 국제 기업자문 및 지적재산권 관련 업무까지 서비스분야를 확대했다. 다양한 국제거래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변호사들이 의뢰인들에게 최고의 법률자문 및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나날이 증대하는 지적재산권 부문의 법률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전문 지식을 갖춘 변호사들을 영입했다. 매년 100여명 이상의 판.검사들이 퇴직을 하는 현재의 추세로는 바른의 문을 두드리는 예비 변호사들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실제로 법무법인 바른은 내년에도 상당수의 신규변호사를 영입할 계획이다. 법무법인 바른은 이미 서울시내 유수의 대학과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지난 달 14일에는 경남 경상대학교와 업무협약을 체결하여 변호사와 직원의 업무와 관련한 특강을 경상대 법과대학 학생들에게 실시해 학생들의 폭넓은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가고 싶은 로펌, 법무법인 바른 정동기 대표변호사는“법률시장 개방 일정에 흔들리지 않는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바른은 단순한 몸집불리기보다는 전문영역의 재정비를 통한 서비스의 차별화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무법인 바른에는 유난히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많다. 따라서 송무분야에 관한 환상의 드림팀이라고도 볼 수 있다. 현재 송무분야의 구성원변호사와 소속변호사 비율이 1대1이 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소속변호사보다 파트너 변호사의 수가 많다는 것도 바른의 강점이다. 정 변호사는“바른의 송무시스템은 파트너변호사가 사건유치에서부터 소송의 마무리까지 책임지고 수행하며 소속변호사는 도우미 역할만을 한다는 것”이라며“판.검사 출신 파트너변호사의 높은 책임의식은 높은 승소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정 변호사가 대형 로펌들 중에서 바른을 선택한 것은 대형로펌으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바른은 1998년 재조출신 변호사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된 법무법인으로 설립된 지 몇 년 만에 일반 민형사소송과 행정소송, 특허소송 등 각종 송무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은 자타가 공인하는 송무전문 법인이었다” 법무법인 바른은 송무와 기업법무 등 전 법률분야에서 최상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채비를 갖추었다. 기업은 물론 개인에 이르기까지 간단한 법률자문에서 각종 소송, 국제거래에 이르기까지 매우 확대된 법률서비스를 제공한다. “법을 다루는 로펌의 특성상 도덕적인 윤리의식의 중요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소통이 자유로운 로펌이 되어야 한다” 바른은 변호사들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매월 정기적으로 저녁식사와 운동을 한다. 실력과 여유를 모두 가지고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변호사들이 있어 법무법인 바른은‘가고 싶은 로펌’으로 꼽힌다.
26년의 검사생활
정 변호사는‘변호사’라는 직함이 아직 어색한 듯“변호사 일을 시작하게 됐지만 26년간의 검사생활이 있어서인지 아직 내가 변호사마인드가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전한다. 정동기 변호사는 대검차장직을 끝으로 지난해 11월 26년간의 검사생활을 마무리했다. 그의 말대로‘약관의 나이에 검찰에 들어와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떠난 것이다. 대검차장 퇴임사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나 자신의 보잘것없음에도 내 무언의 기도는 응답을 받은 듯이 검사 생활을 보냈다. 모든 사람 중에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정 변호사는 서울지검 북부지청 검사로 임용된 뒤 부장검사, 차장검사, 검사장, 고검장 직을 두루 거치고 법무부차관과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역임했다. 그는“능력도 경륜도 부족한데 어려운 직위들을 차질 없이 수행하여 검찰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퇴직할 수 있게 된 데 대해 마음 뿌듯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정 변호사는 오랜 검사 생활 동안 세운 공도 많다.
사회봉사명령제도를 실무에 도입해 정착시켜
지금은 많이 일반화된 사회봉사명령제도를 실무에 도입해 정착시킨 주인공이고, 한양대에서‘사회봉사명령제도의연구’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보호관찰 분야의 전문가다. 또한 80년대 후반 소년법을 개정해 보호관찰의 하나인 사회봉사 명령을 소년범에 도입할 때 실무 작업을 주도했다. 현재 사회봉사명령제도는 일반 형사범으로까지 적용범위가 넓어졌다. 정 변호사는“법을 지키면 이익이고, 법을 어기면 손해를 보는 것이 법치주의”라며“법을 어기면 누구나 예외 없이 처벌해야 하고, 또 그런 인식을 범법자에게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뜨거운 난로의 법칙’에 대해 설명했다. “뜨거운 난로에 손을 데면 뜨겁다고 반응을 한다. 법을 어기면 그에 따른 응징과 손해가 반드시 뒤따른다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엔 아직 이런 공감대가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 변호사는 지난 2004년 기업경영혁신 기법인‘6시그마’를 검찰에 처음 도입한 공적도 있다. 이것 역시 법치의 연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대구지검장 시절 검사결정오류축소, 검사실 업무분담 적정화 실현, 조사 소요시간 단축, 민원서류 발급 소요시간 단축, 추징금 징수 프로세스 개선, 불구속사건 배당 준비시간 단축, 형사부 검사의 수사 프로세스 맵핑 등 7대 과제를 도출해 개선활동을 벌였다. 덕분에 본래 3일 이내였던 민원서류 발급기한은 신청 후 1시간 이내로 개선됐다. 정 변호사는“조사해보았더니 민원인들이 1시간 정도는 기다릴 수 있다고 해 그렇게 했다”며“그러나 기록을 찾아 복사해주는 내용의 민원서류를 제외하고 88%가 5분 이내에 발급됐다”고 덧붙였다. 6시그마의 효과는 검찰 전체로 확산되어 추진될 만큼 성과가 큰 공적이었다.
“검사가‘갑’이라면 변호사는 종속변수”
대검차장 퇴임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법무행정분과위 간사로 두 달간 활동한 뒤 법무법인 바른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이다. 인수위에서 활동할 때에는 법무부, 대검찰청, 행정자치부, 경찰청, 소방방재청, 국정홍보처 등을 관장하여 새정부 출범의 기초를 다졌고, 특히 ‘선진화를 위한 법령정비 T/F팀’을 구성하여 기업활동을 진작시키기 위한 규제완화를 위한 법령정비의 방향을 설정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규제는 풀고, 자금조달을 쉽게 해 기업하기 편한 환경을 조성하자는 것이 그의 핵심이었다. 26년의 검사 생활 이후로도 그는 쉴 틈이 없다. “퇴임 이후 단독개업을 할까도 생각했었지만 다양한 사건을 접하기 어려웠고, 로펌의 다른 파트너들과 함께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장점이 많아서 로펌을 선택했다” 정 변호사는 법무법인 바른의 대표변호사로서 로펌의 후배와 동료변호사들에게 고객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법률서비스를 강조하고 있다. 요즘 정 변호사는 오전 9시에 출근해 직접 의뢰인을 만나기도 한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마음을 잘 읽고, 이를 검.판사에게 잘 전달해야 하는 임무가 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하면 되는 검사직보다 챙겨야 할 것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는“검사가‘갑’이라면 변호사는 종속변수”라고 전했다.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의 뜻에 따라 4남1녀 중 둘째로 자라면서 학창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했던 신문배달, 막노동 등의 경험이 있는 정 변호사는“지금이야 여러 아르바이트를 통해 학비를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만 그때 시절에는 학비를 벌어서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형제들 모두 그렇게 학업을 이어갔다. 자신의 경험은 단단한 자립심을 길러줬고, 결국 성공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한양대학교의 장학금을 받게 되었고, 이 때문에 오늘의 자신이 있게 되었다”고 모교에 깊은 감사와 애정을 표했다. 한편으로는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도 그런 자립심을 갖출 수 있었으면 했다. “오랜 검사생활로 지방 근무가 많아 아비로서 많은 관심을 쏟지 못했음에도 대견스럽게 잘 자라주어 감사하고, 또 그렇게 도와준 아내에게도 고마운 마음이다.” 지금의 정 변호사가 있기까지 가족이 따뜻한 지붕이 되어줬다면, 그에게 종교는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해왔다. 그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다. “저에게 있어서 종교는 사람을 버티게 하는 기둥이다. 긍정과 열정을 가지고 성공적인 검사의 길을 걸어올 수 있게 만들어 준 중요한 요소였다.” 그는 매일 아침 기도와 성경읽기로 시작하여 아령을 들고 1시간씩 양재천을 걷는다. 체력도 젊은 사람 못지않다. 철저한 자기관리 덕분에 수십년의 공직생활도 가능했다. 마지막으로 정 변호사는 카톨릭신자이면서도 불교에 대한 관심도 깊어‘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의 가르침을 강조했다. 그는‘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고,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 말고, 억울함을 당할지라도 굳이 변명하려고 하지 말라’의 뜻에 따라 사는 삶을 살고자 매일 최선을 다한다. NP
*** 약력 및 경력 *** 1972 경동고등학교 졸업 1976 한양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1976 제18회 사법시험 합격 1978 한양대 대학원 졸업(법학석사) 1978 사법연수원 제8기 수료 1978 공군법무관 1981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검사 1987 법무부 보호과 검사 1997 서울지방검찰청 공판부장검사 2003 법무부 보호국장 2006 법무부차관 2007 대검찰청 차장검사 2008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법무행정분과 간사 2008-현재 한양대학교박사 동문회 회장 2008-현재 법무법인 바른 공동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