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거짓으로 얼룩진 비례대표제

검찰수사가 도를 넘었다?
계속되는 검찰 조사에 대해 각 당에서는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창조한국당은 지난 달 22일 논평을 통해“이한정 비례대표 당선자에 대한 검찰 수사가 도를 넘고 있다”고 지적하며“당초 이한정 당선자의 허위학력과 전과기재로부터 출발한 검찰수사가 문국현 대표 옭아매기로 방향을 틀더니 이제는 털어도 나지 않는 먼지를 만들기 위해 당직자들을 노골적으로 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친박연대의 서청원 대표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 한다. 서 대표는 검찰이 친박연대 비례대표 양정례 당선자 어머니 김순애씨와 김노식 당선자에 대해 구속영장 재청구를 한 것에 대해 검찰의 표적수사 및 외압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청와대가 뒤에서 검찰에게 매일 전화질한다”며“나는 이번 총선에서 1원 한 장 받은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누가, 어떻게 뽑았길래
이번 총선에서 주요 정당들은 예외 없이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이를 통해 비례대표 후보자의 순번을 정했다. 민주당은 공심위와 별개로 비례대표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각 당이 밝힌 노력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친박연대의 경우 함승희 공심위원장조차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을 후보등록 마감일 오후 늦게서야 받았고, 심지어 함 공심위원장이 봤던 당선자의 서류와 선관위에 등록시킨 당선자의 서류가 일치하지 않는 사례까지 밝혀진 바 있다.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 경쟁은 17대보다 치열했다. 한나라당의 경우 20대1의 경쟁률을 보였고, 야당에서도 평균 5대1이 넘는 경쟁률을 보였다. 한나라당의 경우 지난 3월 비레대표 후보자 공천 신청을 받은 결과 650여명이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고, 이 중에서 장애인도 30여명이나 됐다.
변명은 있다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제가 말썽을 일으켰던 배경적 요인이 몇 가지 있었다. 대선이 끝나고 그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정당에서는 지역구 후보 선정과 비례대표 후보 선정을 황급하게 몰아쳐야 했다. 후보들을 제대로 추천받고 검증할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또 총선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관심은 온통 지역구 후보들에게 쏠려 있어서 각 당의 공천심사위원회만 바빴지, 정작 비례대표 후보 선정 과정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18대 총선의 최대 이변은 바로‘친박연대’의 출범이었다. 한나라당 공천 심사 결과에 불복하고 당을 탈당해‘친박연대’라는 당명으로 새롭게 창당한 멤버들이 본격 선거전에 돌입하면서 총선의 최대 이슈가 되었다. 한나라당의 공천 탈락 후보가 무소속이나 친박연대로 출마해 당선된 수만도 20명이 넘었기 때문에 이들 세력은 선거 기간 내내 화제를 몰고 다녔다. 따라서 여기에서도 비례대표 후보자와 당선자들은 비교적 주목을 받지 못했다. 여기에 각 당에서는 이러한 배경적 요인을 적절하게 활용해 비례대표 후보자 검증을 소원하게 진행했고, 그 결과 비례대표 당선자 여러 명이 각종 의혹에 둘러싸여 검찰 조사와 구속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비례대표제 덕분에 소수자 국회 진출

비례대표제의 기원은 1963년‘전국구’다. 전국을 대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6대 국회에서 처음 도입된 전국구는 지역구 175명과 전국구 44명으로 출발했다. 11대 국회에서는 전국구 의원이 92명으로 늘기도 했었고, 2000년 16대 총선 이전까지 전국구 이름을 달고 의원들은 의정활동을 펼쳤다. 전국구는‘전(錢)국구’라고 불릴 만큼 과거 수십 억 단위의 특별당비가 공천 대가로 오고갔었다. 지난 17대 총선부터 비례대표는 총 유효득표의 3% 이상을 득표하거나 지역구 의원을 5명 이상 당선시킨 정당에 배분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변경됐다. 유권자가 2장의 투표용지를 받아 지역구 후보 한 사람에게 투표하고, 나머지 한 장은 지지하는 정당에 투표를 한다. 18대 총선에서는 299명의 의석 중 비례대표는 54명이다. 전체의 18.1%다.
당헌․당규, 선거법 바꿔야 하나

밀실공천을 가능케 하는 정당들의 당헌 당규를 고쳐서라도 비례대표후보자 선출 과정이 투명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돈이나 실세와의 인연으로 비례대표 공천을 받은 이번과 같은 사례가 다시 번복되지 않으려면 비례대표 후보자에 대한 정보 공개에 관련한 선거법 개정도 필요하다. 독일과 같이 각 정당으로부터 공천심사 녹취록을 제출받거나 하는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아예 비례대표의 순위 결정에 당원이나 일반 시민들을 참여시키는 방안도 나왔다. 또한 검증된 후보를 선정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공천심사를 빨리 하고 비례대표 후보자가 정해지면 선거 전까지 충분한 검증의 시간을 갖게 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비례대표 후보 선정 과정 및 절차 등 모든 상황을 투표일에 앞서 일정 기간을 확보함으로써 유권자들에게 충분한 선택폭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비례대표 공천이 이번과 같이 날림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보다 엄중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비례대표제를 통한 선출 인원을 현행 18%에서 50%로 높여 정당들이 엄정한 심사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위기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됐다. 비례대표 후보자에게도 정치적 의견이 필요하고, 어떤 공약을 가지고 있는지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주변으로부터 추천을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을 받기도 하지만 비례대표로서 출마 자체는 본인이 결단했을 때, 정치의식과 책임의식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출혈 없는 국회 입성을 막자
비례대표 당선자들은 지역구 선거의 치열함을 겪지 않아도 되고, 목이 터져라 외칠 필요도, 손에 쥐가 날 정도로 악수를 건넬 필요도 없다. 비교적 수월하게 국회에 입성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전문성 때문에 그와 같은 대접을 받는 것이다. 비전문성을 극복하기 위해 도입했다는 비례대표제가 각 분야에서 쌓아온 전문적 지식과 경험 때문에 표심을 얻지 않아도 되는 혜택을 줘야 한다면 동의하지 않을 국민은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 씌워진‘전문성’의 탈 내면에는 돈과 연줄로 관직을 얻을 수 있었고, 누구로부터 어떤 검증을 거치는지도 국민에게 떳떳하게 밝힐 수도 없는 그들만의‘룰’이 있었다. NP
장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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