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멀티플레이어가 각광받는 시대다. 배우도 하면서 가수를 하고, 가수를 하면서 사진도 찍고, 디자이너를 하면서 글도 쓴다.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어설프게 하는 사람도 없다. 이들이 멀티플레이를 하는 데에 있어서 본인의 욕심이든, 외부의 압력이든 간에 대중은 이들의 플레이를 즐긴다. 최근 새음반을 들고 파리에서 돌아온 뮤지션 정재형은 음반과 더불어 에세이집을 풀어냈다. 그가 파리에서의 9년여 생활 속에서 나온 보따리들이다. 그의 음반이 매우 농축된 느낌이라면, 에세이집은 풍성하다. 파리를 배경으로 자신의 삶을 풀어낸 『Paris, Talk』는 지난 1년여의 일상이 고스란히 배어있고, 수년 간의 파리 생활 노하우가 들어있으며, 그의 주변이 담겨 있다. 그것이 사람이든, 요리이든, 음악이든, 카페든지 간에 유학생으로서 견뎌냈던 고독과 애환이 보태져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두가지 측면에서 『Paris, Talk』는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 정재형을 알고 있거나, 파리를 좋아하거나. 두가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면 책은 쉽게 독자의 손으로 들어갈 것이고, 둘 중 하나만이라면 잠시의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음악을 하는 정재형이 글을 쓴 것이 궁금한 호기심, 파리에 대해서 정재형이 이야기했다는 또 다른 호기심이 발동해줘야 하겠다. 아는 만큼 보이고 즐긴다. 정재형의 음악을 알면, 군데군데에서 접했던 정재형의 글을 알면, 정재형의 오랜 파리의 삶에 대해 알면, 정재형의 '『Paris, Talk』는 훨씬 더 재미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전지식이 없더라도 그가 하는 ‘파리 이야기’를 즐기기에 충분할 만큼 정재형 작가의 필력이 예사롭지 않다. 솔직하고, 깊이도 있으며, 위트도 있고, 문장력도 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길고 긴 수식어가 있는가 하면, 절제의 미학도 가지고 있다. 책은 크게 다섯 개의 파트로 구분되어 있다. 일상, 파리지엔, 음악, 우울함, 그리고 친구까지. 다섯 개의 테마로 나누어져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책 말머리에 나오는 목차에서 뿐이다. 전체적으로 매우 일상적이고, 파리에서의 삶이 어느 한 부분에 더할 것도 없고, 덜한 것도 없다. 직업인 음악은 꾸준히 하고 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의 반은 그의 친구들이다. 따라서 중간 중간의 에피소드들이 있긴 하지만 그것들이 별로 에피소드적이지 않음은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겠다. 우리는 그가 내어놓은 결과물들로만 인식하는 편이라 가끔씩 영화음악을 만들고, 오랜만에 음반을 내고, 처음으로 에세이집을 내는 그의 행보가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책을 통해 밝히는 정재형의 생활은 매우 바쁘고 치열하다. 그 고단함들이 만들어내는 하나하나의 작품들임을 알면 작품들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진다. 파리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정재형의 이야기에 더 가까운 에세이집인 만큼 ‘파리’에 대한 최대의 칭찬은 이 정도다. “서울에서는 왠지 결혼을 해야 할 것 같고, 내집 마련도 해야 할 것 같지만, 파리는 그렇지 않다.” 이렇게 인식하고‘파리’로 떠나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앞으로 몇은 더 나오지 않을까. NP
『오마니별』 김원일 지음 / 강 펴냄
등단 43년째를 맞는 소설가 김원일의 일곱 번째 소설집으로 4년 만의 신작이다. 40년이 넘도록 소설을 써 왔다는 작가는‘이제 종착점 언저리에서 서성이고 있다’고 표현할 정도다. 한결같은 보폭으로 걸어온 사십여 년이다. 신작 소설집 『오마니별』에는 표제작을 비롯해 모두 여섯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전쟁과 분단이 빚어낸 민족의 고통과 그늘은 이번 소설집에서도 여전히 작가의 중요한 문학적 관심사다. 그러나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역사적 수난의 소설적 증언에 충실하면서도 고통의 세월 속에서 인간적 선의가 이루어내는 환한 순간을 기어코 찾아 보여준다. 표제작 ‘오마니별’은 피난길에 어머니와 누이를 잃은 충격으로 어린 시절을 상실한 채 전쟁고아로 평생을 살아온 한 노인이 죽은 줄 알았던 누이와 반세기를 넘어 혈연을 확인하고 재회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노인의 캐릭터를 그 실제 인생의 비극성으로부터 일정하게 분리해놓는 아이러니한 묘사를 함으로써 감상적 동일시를 적절하게 견제하고 있다.
『미래인재의 조건』 공병호 지음 / 21세기북스 펴냄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공병호는 그동안 『공병호의 자기경영노트』, 『황금의 씨앗을 뿌려라』, 『80/20법칙(역)』등을 모두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았다. 다수의 매체에서 고정칼럼을 쓰고 있고, 강연과 집필, 방송 및 기고 활동, 경영자문으로 바쁜 그가 미래의 삶을 주제로 신간을 냈다. 직장인들이 느끼는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에서 출발해 이러한 불확실성의 시대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미래 인재’로 성장하라는 것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조만간 도태될 것인지, 아니면 변화를 이끌어가는 ‘미래 인재’가 되어 성공적 삶을 누릴 것인지 여부는 결국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 미래가 요구하는 변화에 맞추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키우는 사람. 그런 ‘미래 인재’로 성장하려면 부단히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 바로 그 자기계발을 위한 지침서가 이 책에 담겨있다.
수십 년간 라틴아메리카의 농부들과 함께 생활한 프란스 판 데어 호프 신부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공정 무역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삶의 구체적 현장에 대한 고민 없이, 실현 가능성에 대한 검토 없이 유토피아만 제시하는 지식인을 비판한다. 작가는 어떤 ‘주의’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는 철학을 강조한다. 책은 공정 무역 제품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생산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소비자에게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으며, 품질과 가격에 대한 기대도 충족시켜야 한다는 발전적인 자기 반성을 담아내며 노동운동을 억압하면 살아남기 위해 극단적인 길을 택하게 되지만 활동의 장을 마련해 주면 좀 더 느긋하게 점진적인 발전을 향해 나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더불어 저자들의 삶, 커피 재배 농부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공정 무역 제품을 어디서 살 수 있는지 궁금하게 만들고 있다. ‘어떤 물건’을 사는 것보다 중요한, 그것을 ‘어떤 사람’이 ‘어떤 환경’속에서 생산했는지를 따져보자.
『지도없이 떠나는 오리엔트 여행』 이혜승 지음 / 청년정신 펴냄
저자 이혜승은 러시아 문학사에서 철학박사로, 지금은 보혜미안이 되어 세계를 여행한다. 현지가이드나 길을 가다 만난 이들과 친구가 되어 가끔씩 함께 다녔지만 대부분은 혼자였다. 세계 어디라도 내 집처럼 편안하고 스스럼없이 지내는 그녀의 오리엔트 여행기가 출판됐다.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부터 이스탄불, 모로코로 이어지는 아랍권 국가를 홀로 여행했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부하라, 카자흐스탄의 이식 평원을 지나고, 태국의 방콕,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인도의 캘커타를 다녀왔다. 모로코에서는 산악지역에 사는 유목민이 3일 밤낮으로 결혼식을 열고, 흥정을 위해 사돈에 팔촌 얘기까지 하느라 한나절을 보내는 시장이 있고, 좁은 골목길만 있어도 나귀가 교통수단이 되는 도시가 있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여행객을 붙들어 차를 권하고, 아껴둔 등갈비를 꺼내 요리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의 향기, 평원의 모래, 지중해의 푸른 하늘을 껴안고 돌아온 그녀는 이 책에 여행의 기억을 담아 정리했다.
『아버지의 위대한 유산』 게리 스탠리 지음 / 위즈덤하우스 펴냄
책에 등장하는 아버지 G.L. 스탠리는 평범하고 실수투성이지만 인내심과 아이를 사랑하는 방식을 알고 있다. 그는 아들과 함께 낚시와 수영을 하고,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주는 등 자신의 일상과 태도를 통해 어린 아들에게 상다를 이기게 하는 방법과 정직하게 돈을 버는 법, 사랑을 나누는 법 등 주변을 배려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소중한 지혜를 알려준다. 거기에는 어떤 어려운 말이나 강요도 없다. 위엄 있고 권위적인, 사회적으로 성공한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라 장난기 많고 마음 따뜻한 평범한 친구같은 아버지가 있을 뿐이다. 성공을 향한 경쟁과 가치 있는 삶의 경계에서 자녀들에게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고픈 아버지들의 바람을 담고 있다. 부모의 자리와 역할, 아이와의 관계 맺기를 고민하고 있는 아버지들에게 그리고 아버지와의 추억이 아련한 자녀들에게 따뜻한 감동을 선사하게 될 것이다. 책은 돈이나 명예, 몇 마디의 훈계로는 결코 물려줄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