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직무유기로 인한 공교육 붕괴’라는 목소리 높아

교육과학기술부가 일선 학교 운영에 자율권을 부여하고 개입하지 않기로 한 ‘4·15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을 발표한지 한 달이 지났다. 지난 4월 24일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학교자율화 세부추진계획’으로 교육자율화가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교육계 안팎에서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

정부의 교육자율화 정책에 대하여 교육단체들은 입시경쟁의 심화와 공교육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며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 단체는 “단위 학교 현장은 정부 관료들에 의해 외면당한 채 학교 자율성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에 의해 처참한 입시 학원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수준별 수업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우열반 편성이 진행되고 있고 0교시 또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학원기업을 학교 현장으로 끌어들이면서 사교육시장에 날개를 달아주고 학생들을 입시만을 위한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보수단체들은 정부의 학교 자율화 계획에 대해 지지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라이트교사연합은 “교과부의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은 지난 10년 동안 역주행했던 공교육을 이제야 정상화할 수 있는 희망을 제시했다”고 했으며, 서울자유교조도 “하향 평준화 해제를 위한 1단계 조치로 선진교육을 향한 학교자율화는 선의의 경쟁 유도와 사교육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이는 학교 활성화 조치로, 규제에서 벗어난 단위학교 자율화를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과거에도 교육자율화 정책은 있었다
▲ 전교조는 “이명박 정부의 ‘4·15 학교 자율화조치’ 이후 각 시·도교육청이 발표한 개별과목 성적에 의한 수준별 이동수업 확대 실시·운영하는 것도 임의적인 기준에 의한 학생들의 인격을 파괴하는 명백한 평등권 침해 행위임에 틀림없다”며 학교 자율화의 철회를 촉구했다.
사실 교육자율화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처음 나온 교육정책이 아니다. 시작은 김영삼 문민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민정부에 이어 김대중 국민정부 또한 교육자율화를 교육정책의 기조로 내세웠으며, 교육공공성을 천명한 노무현 참여정부에서도 자립형 사립학교 확대를 통해 교육자율화가 계속 진행됐다.
◈김영삼 문민정부의 교육정책=김영삼 정부는 군사문화의 억압적이고 획일적 교육체제 극복을 위한다며 교육민주화, 교육환경 개선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세계화와 정보화 추세에 맞춰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방안으로 학습자 중심교육, 교육선택권 확대, 교육의 다양화, 자율적 학교운영을 위한 정책이 추진됐다. 교육대통령이라 자임할 만큼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교육개혁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다. 그 일환으로 대통령 직속기구로 교육개혁위원회(교개위)를 둬서 교육개혁을 추진했다. 당시 교개위가 교육개혁 방안을 발표하면 교육부가 그 지침에 따라 세부정책을 추진할 정도로 교개위 위상이 높았다. 교개위를 주축으로 문민정부는 지난 1995년 5월 31일 창의성, 특성화, 다양성, 자율성, 수월성 등의 가치를 담은 5·31교육개혁안을 발표했다. 5·31교육개혁안의 핵심전략은 교육소비자의 선택권을 위한 공교육 시장화와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자사고) 설립을 통한 학교민영화였다. 자사고 경우 교육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착수에 어려움을 겪어 결국 실행하지 못했다. 문민정부 하에서 4차에 걸쳐 발표된 초중등교육 관련 56개의 정책 중 교육과정 운영의 다양화, 특성화를 위한 정책으로는 방과후 교육활동의 활성화, 영재교육의 강화, 세계화교육 실시, 외국어교육 강화 등으로, 교직사회 활성화를 위해 능력중심 승진 및 차등보수 체계로의 개선책도 나왔다. 아울러 사립 초중등학교 운영의 자율성 확대와 학교교육의 개방화 체제구축이 강조됐다. 반면 경쟁원리 도입으로 인한 교육 불평등을 확산하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라는 이유로 교육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교육혁신방안 수립이 지체되다가 이후에 일부만이 추진되기도 했다.
◈김대중 국민의 정부의 교육정책=김대중 정부는 IMF구제금융의 영향으로 지식기반사회로의 진입을 위한 교육경쟁력 확보를 강조했다. 이에 따라 집권 초반에는 문민정부에서 추진해온 교육자율화 정책을 효율적으로 현장에 착근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후반에 이르러 국가인적자원개발 차원에서 교육과 노동시장과의 연계에 초점을 둔 교육정책이 추진됐다. 국민의 정부는 새교육공동체위원회(새교위),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인자위), 교육인적자원부(교육부)를 통해 8차에 걸쳐 교육개혁안을 발표했다. 새교위에서는 초중등교육의 내실화와 다양화 차원에서 능력중심 인사와 승진제도 및 교원수급체제 개선, 자사고 시행, 특성화 학교 자율성 확대 등을 추진하려 했다. 이후 인자위에서는 학교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시스템 구축으로 자사고 도입 및 확대, 교원평가체제 확립 등이 진행됐다. 교육정책의 권한이 교육부로 집중되면서 교육행정관료의 권한이 높아졌다. 탄력을 받은 교육부는 교원성과상여금제, 특목고와 자율학교 등의 학교유형 다양화, 자사고 6개 시범운영, 영재교육 정착을 위한 기반조성 등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당시 교육부는 자사고 30개 설립을 목표로 했으나 교육단체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6개 시범운영으로 후퇴했다.
◈노무현 참여정부의 교육정책=노무현 참여정부는 집권 초 경쟁과 효율 중심의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공교육 내실화와 교육복지 확대를 개혁기조로 내세웠다. 그리고 교육행정관료의 독단운영에 대한 비판으로 교육의 민주화를 추구하고자 했다. 교육개혁 의지가 강력했던 참여정부는 교육정책의 입안, 조정, 평가기능 등을 수행하는 교육혁신위원회를 상설화해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면서 개혁적인 교육단체 및 시민단체의 요구를 수렴, 동의와 지지를 기반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은 집권 초 시민사회의 높은 기대 하에 광범위한 지지를 얻기도 했다. 집권 중반에 이르러 참여정부는 교육의 공공성 확보와는 상반된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집권 초 강조했던 평준화 정책 유지와는 모순되게 평준화 보완책으로 자사고, 특목고 확대를 추진했다. 그 결과 2004~2006년 신설된 외국어고등학교만 해도 전국적으로 11곳에 이른다. 또 경제자유구역에 외국인학교를 설립해 내국인 입학을 허용하려 하기도 했다. ‘경제통’인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를 교육부총리로 임명하면서 참여정부의 교육개혁 방향은 시민사회의 의아심과 함께 강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10명 중 8명은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에 반대
▲ 학교 자율화, 어떻게 생각하나
교육정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자율과 통제의 방식은 바로 교육의 구조와 운영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따라서 교육체제의 자율과 통제의 방식을 검토하는 것은 교육정책을 분석하는 과제가 되며 자율과 통제를 실제로 어떻게 인식하고 전개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가 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산하 참교육연구소와 주간 <교육희망>이 서울 지역 고등학교 2학년 학생 127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학교 자율화 추진 계획에 대해 고등학생 10명 중 8명이 정책이 취소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 따르면 고교생 83.4%는 이번 계획을 취소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그대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응답은 16.6%에 그쳤다. 하지만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는 자기 학교에서 우열반 편성, 야간 보충수업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 가운데 43.3%는 우열반 편성 실시 여부에 대해서 그렇다고 대답했으며 6.2%는 이미 실시하고 있다고 답했다. 야간 보충수업도 38.4%가 실시할 것이라고 내다봤으며 이 역시 이미 실시하고 있다는 응답이 18.9%였다. 또 응답자의 48.3%가 자기 학교에서 사설 모의고사를 실시할 것이라 내다봤으며 0교시 수업 실시 여부에 대해서도 30%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또 이번 규제 철폐 정책이 학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는 비율도 낮았다. 응답자의 78.2%는 0교시 수업 허용이 학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으며, 우열반, 야간 보충수업, 사설 모의고사 허용에 대해서도 각각 50%가 넘는 학생들이 학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뿐만 아니라 교과부의 규제 철폐가 학교 교육 정상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 응답자가 75.7%에 달했다. 이번 조치로 인해 사교육비가 더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 응답자 중 74.8%가 동감하지 않는다고 밝혔으며 입시 경쟁 교육이 심해질 것이라는 의견에는 84.9%가 동의했다. 학생들 사이의 위화감이 커질 것이라는 의견에도 79.7%의 응답자가 동의했다.

학교 자율화 조치 한 달, 무엇이 달라졌나
학교 자율화 조치의 핵심은 ▶실력에 따른 반 편성(우열반 포함) ▶사교육업체의 방과 후 학교 참여 ▶0교시 수업(정규 수업 전 오전 7시대 수업) 허용이다. 학교 자율화 조치가 발표된 지 한 달이 넘은 현재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에서 결과 실력에 따른 반 편성을 허용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반면 학생 수준에 따른 과목별 이동수업은 활성화될 전망이다. 방과 후 학교를 사교육 업체에 위탁 운영할 수 있게 자율화한 곳도 서울·부산·대구 등 3곳에 불과하다. 김성기 서울시교육청 교육과정정책과장은 “고교 대상으로 방과 후 학교 영리법인 위탁 운영에 대한 의향을 조사 중”이라며 “지금까지 학원 측에 강좌를 내주려는 학교는 10곳이 안 된다”고 말했다. 강좌도 영어·수학 같은 주요 과목이 아닌 통합논술이나 예체능 과목을 가르칠 학원을 찾고 있는 정도다. 유수열 단대부고 교장은 “사교육 업체가 학교에 들어오는 것은 학부모 요구가 있어도 기존 교사들의 반발 등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설 모의고사도 허용됐지만 아직까지 참여 의사를 밝힌 학교가 많지 않다. 자율화 조치 뒤 지난 23일 첫 사설 모의고사를 주관한 유웨이중앙교육은 “사립고와 공립고의 호응도가 다른 것 같다”며 “사립고는 학교 단위 시험을 치르겠다는 문의가 들어오고 있지만 공립고는 아직 연락이 없다”고 말했다. 중3짜리 자녀를 둔 L씨는 “학교가 바뀌면 비싼 사교육비를 들여가며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필요가 없다”며 “1학기는 어렵겠지만 2학기부터는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기성 경기고 교장은 “수준별 수업 내실화를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추가 교사 확보 문제나 교실 공간 부족 때문에 큰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며 “차근차근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박원영 여의도고 교장은 “1학기, 1년 단위로 정해지는 학교 교육과정 운영상 지난달에 나온 자율화 조치가 현장에 바로 적용되기는 쉽지 않다”며 “곧 학교 정보 공개 등이 법령으로 결정되고 서울 지역의 고교 선택제가 내년으로 다가와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사교육 업체들은 관망 중이다. 종로학원 관계자는 “갑작스레 자율화 조치가 발표돼 학원들도 방과 후 학교 진출을 고민 중”이라며 “수익성이 낮아 학교 진출은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을 포함한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의 근간은 자율화와 다양화로 압축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향후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대학입시 3단계 자율화’‘영어 공교육 완성’등과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을 방침이다. 그러나 ‘자율화 등을 통한 교육살리기’라는 정부의 주장과 ‘정부의 직무유기로 인한 공교육 붕괴’라는 교원노조 등의 주장 사이의 접점 찾기가 쉽지 않아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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