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직무유기로 인한 공교육 붕괴’라는 목소리 높아

과거에도 교육자율화 정책은 있었다

◈김영삼 문민정부의 교육정책=김영삼 정부는 군사문화의 억압적이고 획일적 교육체제 극복을 위한다며 교육민주화, 교육환경 개선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세계화와 정보화 추세에 맞춰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방안으로 학습자 중심교육, 교육선택권 확대, 교육의 다양화, 자율적 학교운영을 위한 정책이 추진됐다. 교육대통령이라 자임할 만큼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교육개혁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다. 그 일환으로 대통령 직속기구로 교육개혁위원회(교개위)를 둬서 교육개혁을 추진했다. 당시 교개위가 교육개혁 방안을 발표하면 교육부가 그 지침에 따라 세부정책을 추진할 정도로 교개위 위상이 높았다. 교개위를 주축으로 문민정부는 지난 1995년 5월 31일 창의성, 특성화, 다양성, 자율성, 수월성 등의 가치를 담은 5·31교육개혁안을 발표했다. 5·31교육개혁안의 핵심전략은 교육소비자의 선택권을 위한 공교육 시장화와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자사고) 설립을 통한 학교민영화였다. 자사고 경우 교육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착수에 어려움을 겪어 결국 실행하지 못했다. 문민정부 하에서 4차에 걸쳐 발표된 초중등교육 관련 56개의 정책 중 교육과정 운영의 다양화, 특성화를 위한 정책으로는 방과후 교육활동의 활성화, 영재교육의 강화, 세계화교육 실시, 외국어교육 강화 등으로, 교직사회 활성화를 위해 능력중심 승진 및 차등보수 체계로의 개선책도 나왔다. 아울러 사립 초중등학교 운영의 자율성 확대와 학교교육의 개방화 체제구축이 강조됐다. 반면 경쟁원리 도입으로 인한 교육 불평등을 확산하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라는 이유로 교육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교육혁신방안 수립이 지체되다가 이후에 일부만이 추진되기도 했다.
◈김대중 국민의 정부의 교육정책=김대중 정부는 IMF구제금융의 영향으로 지식기반사회로의 진입을 위한 교육경쟁력 확보를 강조했다. 이에 따라 집권 초반에는 문민정부에서 추진해온 교육자율화 정책을 효율적으로 현장에 착근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후반에 이르러 국가인적자원개발 차원에서 교육과 노동시장과의 연계에 초점을 둔 교육정책이 추진됐다. 국민의 정부는 새교육공동체위원회(새교위),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인자위), 교육인적자원부(교육부)를 통해 8차에 걸쳐 교육개혁안을 발표했다. 새교위에서는 초중등교육의 내실화와 다양화 차원에서 능력중심 인사와 승진제도 및 교원수급체제 개선, 자사고 시행, 특성화 학교 자율성 확대 등을 추진하려 했다. 이후 인자위에서는 학교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시스템 구축으로 자사고 도입 및 확대, 교원평가체제 확립 등이 진행됐다. 교육정책의 권한이 교육부로 집중되면서 교육행정관료의 권한이 높아졌다. 탄력을 받은 교육부는 교원성과상여금제, 특목고와 자율학교 등의 학교유형 다양화, 자사고 6개 시범운영, 영재교육 정착을 위한 기반조성 등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당시 교육부는 자사고 30개 설립을 목표로 했으나 교육단체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6개 시범운영으로 후퇴했다.
◈노무현 참여정부의 교육정책=노무현 참여정부는 집권 초 경쟁과 효율 중심의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공교육 내실화와 교육복지 확대를 개혁기조로 내세웠다. 그리고 교육행정관료의 독단운영에 대한 비판으로 교육의 민주화를 추구하고자 했다. 교육개혁 의지가 강력했던 참여정부는 교육정책의 입안, 조정, 평가기능 등을 수행하는 교육혁신위원회를 상설화해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면서 개혁적인 교육단체 및 시민단체의 요구를 수렴, 동의와 지지를 기반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은 집권 초 시민사회의 높은 기대 하에 광범위한 지지를 얻기도 했다. 집권 중반에 이르러 참여정부는 교육의 공공성 확보와는 상반된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집권 초 강조했던 평준화 정책 유지와는 모순되게 평준화 보완책으로 자사고, 특목고 확대를 추진했다. 그 결과 2004~2006년 신설된 외국어고등학교만 해도 전국적으로 11곳에 이른다. 또 경제자유구역에 외국인학교를 설립해 내국인 입학을 허용하려 하기도 했다. ‘경제통’인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를 교육부총리로 임명하면서 참여정부의 교육개혁 방향은 시민사회의 의아심과 함께 강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10명 중 8명은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에 반대

학교 자율화 조치 한 달, 무엇이 달라졌나
학교 자율화 조치의 핵심은 ▶실력에 따른 반 편성(우열반 포함) ▶사교육업체의 방과 후 학교 참여 ▶0교시 수업(정규 수업 전 오전 7시대 수업) 허용이다. 학교 자율화 조치가 발표된 지 한 달이 넘은 현재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에서 결과 실력에 따른 반 편성을 허용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반면 학생 수준에 따른 과목별 이동수업은 활성화될 전망이다. 방과 후 학교를 사교육 업체에 위탁 운영할 수 있게 자율화한 곳도 서울·부산·대구 등 3곳에 불과하다. 김성기 서울시교육청 교육과정정책과장은 “고교 대상으로 방과 후 학교 영리법인 위탁 운영에 대한 의향을 조사 중”이라며 “지금까지 학원 측에 강좌를 내주려는 학교는 10곳이 안 된다”고 말했다. 강좌도 영어·수학 같은 주요 과목이 아닌 통합논술이나 예체능 과목을 가르칠 학원을 찾고 있는 정도다. 유수열 단대부고 교장은 “사교육 업체가 학교에 들어오는 것은 학부모 요구가 있어도 기존 교사들의 반발 등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설 모의고사도 허용됐지만 아직까지 참여 의사를 밝힌 학교가 많지 않다. 자율화 조치 뒤 지난 23일 첫 사설 모의고사를 주관한 유웨이중앙교육은 “사립고와 공립고의 호응도가 다른 것 같다”며 “사립고는 학교 단위 시험을 치르겠다는 문의가 들어오고 있지만 공립고는 아직 연락이 없다”고 말했다. 중3짜리 자녀를 둔 L씨는 “학교가 바뀌면 비싼 사교육비를 들여가며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필요가 없다”며 “1학기는 어렵겠지만 2학기부터는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기성 경기고 교장은 “수준별 수업 내실화를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추가 교사 확보 문제나 교실 공간 부족 때문에 큰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며 “차근차근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박원영 여의도고 교장은 “1학기, 1년 단위로 정해지는 학교 교육과정 운영상 지난달에 나온 자율화 조치가 현장에 바로 적용되기는 쉽지 않다”며 “곧 학교 정보 공개 등이 법령으로 결정되고 서울 지역의 고교 선택제가 내년으로 다가와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사교육 업체들은 관망 중이다. 종로학원 관계자는 “갑작스레 자율화 조치가 발표돼 학원들도 방과 후 학교 진출을 고민 중”이라며 “수익성이 낮아 학교 진출은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을 포함한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의 근간은 자율화와 다양화로 압축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향후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대학입시 3단계 자율화’‘영어 공교육 완성’등과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을 방침이다. 그러나 ‘자율화 등을 통한 교육살리기’라는 정부의 주장과 ‘정부의 직무유기로 인한 공교육 붕괴’라는 교원노조 등의 주장 사이의 접점 찾기가 쉽지 않아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NP
장정미 기자
haiyap@inewspeopl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