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무기구매국 지위 향상, ‘득’ 아닌 ‘실’ 될 수도

한국의 미국 대외군사판매(FMS) 지위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3국(일본.호주.뉴질랜드)’ 수준으로 높이는 내용의 법안이 지난 5월 15일(현지시각) 미국 하원에서 가결됨에 따라 그 효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날 하원을 통과한 ‘2008년 안보지원 및 무기수출통제개혁법안’이 상원을 거쳐 최종적으로 발효되면 직접적으로 신속한 부품조달이 가능하고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의회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되는 등 의회 심의가 완화되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게 군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현재 한국은 중요 군사장비의 경우 1천400만 달러 어치 이상을 구매하려면 미 의회 심의를 받아야 하지만 무기구매국 지위가 한 단계 높아지면 심의 대상이 7천500만 달러 이상으로 완화된다. 7천500만 달러 미만을 구매하면 의회 승인이 필요 없어지는 것이다. 또 일반 군사장비는 현행 5천만 달러에서 2억 달러 이상으로, 설계기술 도입 때는 2억 달러에서 3억 달러 이상으로 각각 의회 심의 대상이 완화된다. 의회 심의기간도 최장 50일에서 15일로 대폭 단축돼 신속한 부품 조달이 가능하다는 게 방위사업청의 설명이다. 또한 연구,개발에 투자한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부과되는 비순환비용(NRC)도 종전에는 개별 협상을 통해 결정됐지만 이마저 전액 면제받게 된다. 지난 5년간 정부는 개별협상을 통해 NRC 일부를 감면받아 약 2만6천 달러를 지불했다. 그러나 군 일각에서는 이 같은 직접적인 효과 외에 추가적인 협상에 따라 조정될 가능성이 있는 계약행정비와 군사교육비 등의 변화와 같은 간접적 효과도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 국방비는 세계 11위
전 세계적으로 무기 소비에 사용된 비용이 지난해에도 계속 늘어났으나 군축회담에 대한 희망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고 스웨덴의 싱크탱크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지난 6월 9일 밝혔다. 이날 SIPRI가 출간한 2008 연례보고서의 요약본 및 보도자료에 따르면 세계 각국의 지난해 총 군사비 지출 규모는 1조3천400억달러(약 1천383조원)에 이르렀으며 한국은 226억달러(24조원)를 지출, 국가별 순위에서 11위를 차지했다. 이 같은 전 세계 국방비 지출은 2006년에 비해 약 6%, 1998년 이래 45%가 증가한 것으로,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5%에 해당한다. 지구촌 인구 1인당 국방비 부담액은 202달러이다. 미국의 작년 국방예산은 총 5천470억달러(약 560조원)로 전 세계 국방비 지출의 45%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 이어 국방예산을 많이 쓴 나라는 영국(597억 달러)과 중국(583억달러)이었으며, 프랑스(536억달러)와 일본(436억달러), 독일(369억달러), 러시아(354억달러), 사우디아라비아(338억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지난해 전 세계 100대 방위산업체에 속한 미국 기업은 1위를 차지한 보잉사를 비롯해 모두 41개였으며, 이들 기업이 2006년에 판매한 무기는 2천2억달러 어치에 달해 100대 기업 전체 판매액의 64% 가량을 차지했다. 대륙별로는 지난 10년간 국방비 지출 증가가 두드러졌던 러시아가 속한 동유럽에서만 지난해 국방예산이 162%가 늘어 증가 비율이 가장 높았으며, 미국이 속한 아메리카 지역도 같은 기간 63%가 늘었다. 세계 100대 방산업체가 2006년 올린 매출은 3천153억달러였다. 1위인 보잉이 307억달러의 매출을 올린 것을 비롯, 미국의 록히드마틴과 영국의 BAE시스템즈가 각각 281억달러와 241억달러를 기록하며 뒤를 이었다. 이와 함께 SIPRI는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파키스탄 등 8개 핵보유국들이 보유한 핵 탄두는 2008년 초 기준으로 2만5천개 이상이며, 그 가운데 1만여개는 미사일이나 비행기로 운반될 수 있는 것들이라고 밝혔다. 특히 미국은 2008년 1월 현재 4천75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고, 러시아는 5천189개를 갖고 있는데, 이들 양대 핵강국은 전력 강화를 위해 새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그러나 SIPRI는 북한이 핵기술을 ‘무기화’ 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면서 핵 보유국에 포함하진 않았다. 바테스 길 SIPRI 소장은 “인류가 위협에 직면한 상황에서 무기 통제에 대한 가치를 재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적 입장 차를 떠나 나오고 있다”면서 “각국의 국민과 정부는 올바른 방향으로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길 소장은 미국, 러시아와 같은 핵을 보유한 강대국들의 군축이 매우 중요하며 이 국가들이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히면서 “미국 차기 행정부가 무기 통제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방위산업체의 한국시장 공략은 이미 진행중
▲ 미국산 무기 도입이 예산낭비에 불과하다고 규탄하는 목소리도 높다.
미국 정부와 의회가 최근 한국의 대외군사판매(FMS) 프로그램 지위 격상을 적극 추진하는 가운데 미 방위산업체들의 한국 시장 공략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 6년간 국방부가 추진한 수조 원대의 각종 대형 무기 도입 사업을 휩쓴 주인공은 미국 보잉사. 보잉은 4월 말 한국 공군에 F-15K 전투기 21대를 판매하는 2차 차세대전투기(FX) 사업(약 2조3000억 원)을 따냄으로써 2002년부터 지금까지 총 10조 원에 이르는 판매액을 기록했다. 이 금액은 올해 국방예산(약 26조6000억 원)의 약 38%에 해당한다. 보잉은 2002년 당시 건군 이래 최대 규모의 무기 도입사업인 5조4000억 원 규모의 1차 FX 사업에 이어 2006년에는 1조5000억 원 규모의 공중조기경보통제기(EX) 사업을 따낸 바 있다. 또 2006년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군 당국은 북핵 대비전력 확보를 위해 통합정밀직격탄(JDAM)과 장거리공대지유도탄(SLAM-ER) 등 수천억 원대의 정밀유도무기 도입 계약을 보잉사와 체결했다. 군 안팎에선 보잉이 한국에서 막대한 무기 판매 실적을 올린 주된 이유로 좌파정권에서 추진된 자주 편향의 안보정책을 꼽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반미 분위기를 등에 업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강행하면서 한미동맹은 금이 갔지만 국방개혁과 대북 억지력 확보를 위해 고가의 미제 첨단장비들이 잇따라 도입되는‘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 군 관계자는 “전시작전권 전환은 한미 간 정치 외교적 갈등을 초래했지만 미 방산업계엔 최대 호기였다”며 “2012년 전시작전권을 전환한 뒤에도 한국 시장은 미 방위산업계의 핵심 시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군내에선 미 록히드마틴사가 보잉의 ‘바통’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국방부가 내년부터 적의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제5세대 스텔스 전투기 도입 사업을 본격 추진할 계획인데 가장 유력한 후보로 록히드마틴이 개발 중인 F-35가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대 초 개발이 끝나는 F-35는 현존 최강의 스텔스 전투기인 F-22 랩터와 대등한 스텔스 성능을 보유하면서도 가격이 저렴해 군 당국이 도입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은기 공군참모총장도 차장 시절인 2006년 11월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F-35를 차기 전투기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군 당국은 수조 원을 들여 최대 60대의 5세대 전투기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록히드마틴은 한국 언론 등을 상대로 관련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군 고위 관계자는 “스웨덴과 프랑스 등 유럽업체들도 도전장을 내겠지만 대부분 4.5세대 전투기”라며 “한국의 FMS 지위가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회원국 수준으로 격상되면 미 업체가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긍정적인 효과 VS 예산낭비에 불과
현재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직접상업구매(DCS) 또는 FMS 방식으로 무기를 획득하고 있으며 지난해 FMS 방식으로 구매 계약한 미국산 무기는 모두 38건, 약 13억2천만 달러 상당에 달한다. 미국의 FMS 제도는 동맹국들이 미 정부를 통해 미국산 무기를 구입하는 방식으로, 미 정부는 ‘이익을 취하지도, 비용을 지불하지도 않는다(No Gain, No Loss)’는 원칙으로 이 제도를 운영하는 대신 모든 행정비용을 계약행정비(CAS)라는 이름으로 구매국에 부과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개별 협정에 따라 평균적으로 전체 사업비용의 1.5%를 계약행정비로 지급하고 있으나 ‘NATO+3’ 국가 중 개별 협정을 맺은 국가들은 0∼0.85%를, 그렇지 않은 국가들은 1.5%를 각각 계약행정비로 지급하고 있다. 따라서 계약행정비에 대한 추가 협상을 통해 평균적 지불 비용을 최대 0.85% 이하로 감축한다는 정부의 방침이 실현된다면 2003∼2007년 5년간 지불한 계약행정비로 추산했을 때 연 평균 280만 달러 정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게 방사청의 계산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FMS 지위 향상에 따라 계약행정비 감액을 추진하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로 미국 정부 또한 한국의 군사교육비를 증액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실제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됐던 방사청 내부문건에 따르면 FMS 지위 향상에 따라 ‘NATO+3’ 수준으로 군사교육비가 인상된다면 연간 약 270만 달러를 더 지불하게 될 수도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은 동맹국을 1단계(면제)에서 5단계(전액지불)로 5등급으로 나눠 군사교육비를 받고 있으며 한국은 1998년부터 3등급을 적용받아 현재 평균 40% 정도 감면된 군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의 한 소식통은 “올해 미국에서 교육을 받는 한국 군 관계자는 모두 1천여명”이라며 “한국 정부는 이들에 대해 군사교육비의 30∼70% 정도만을 지불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FMS 지위 향상으로 미 의회 심의 기준이 완화되는 직접적인 효과 외에 금전적 편익과 직결되는 계약행정비 및 군사교육비는 미국의 무기수출통제법 개정 이후 미측과 추가적인 협상에 따라 결정되며 군사교육비가 대폭 인상되면 오히려 미 무기구매국 지위 향상이 ‘득’이 아니라 ‘실’이 될 수도 있을 전망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하여 “미 의회 심의를 완화하는 직접적인 효과를 기회비용으로 환산할 수만 있다면 상당한 액수가 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FMS지위 향상은 한국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면서도 “추후 열리는 관련 협상에 철저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황선 자주평화통일위원장은 지난 4월 논평을 통해 “예상했던 대로 한미정상회담 후 미국산 무기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며 “미국에서조차 판로가 막힌 광우병 쇠고기와 전쟁용품을 이성을 잃고 끌고 들어왔다”고 질타했다. 황 위원장에 따르면 “글로벌호크, F-15K 전투기, 사거리 400km급 합동 공대지미사일(JASSM) 등 미제 무기 구입비용만도 3조원에 달하고, 한미동맹 유지비로 퍼줄 요량인 방위비분담금, 기지이전비용, 미사일방어체제 구축비용 등도 22조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황 위원장은 이어 “영유아 전염병 무료접종 법안이 통과됐는데도 단 몇 백억 원이 없어서 무료접종을 무기한 연기한 나라에서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고 힐난하기도 했다. 이미 지난 4월 방위사업청은 F-15K 전투기 20대 추가 구매사업(2차사업)과 관련, 미국 보잉측과 20대 구매비용으로 21대를 도입하는 계약 협상을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공군과 방사청은 2조3000억원을 투입해 2010~2012년 3년간 20대의 F15K를 보잉에서 도입할 계획인데 공군의 요청으로 1대를 더 인도받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5월에는 최첨단 F-15K 전투기를 처음 도입한 2005년 10월부터 작년 말까지 부속품 등에서 총 1,200건이 넘는 하자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2005년 10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미국에서 반입된 F-15K 수리부속품 등에서 발생한 하자 건수는 총 505종에 1,200건이 넘었다. 금액으로는 이 전투기 1대 값인 1,000억여원에 달한다. 정부는 “비행 안전에 영향은 없는 수준”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최근 F-15K 추가 도입까지 결정한 만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막대한 예산을 소요하면서까지 추진되고 있는 미국산 무기 도입. 과연 미국산 무기 없이는 국내 안보가 불가능한 것인지 이쯤에서 한번 생각해볼 때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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