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論] 촛불집회와 직접민주주의


미 쇠고기 협상논란으로 시작된 촛불집회의 촛불이 두 달이 지나면서 조금씩 꺼져가는 양상이다. 21년 전 1987년 6·10 민주화항쟁 이후로 가장 많은 시민이 모였던 2008년 6·10 촛불집회가 정점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광화문 일대는 소수이지만 ‘재협상’을 요구하며 촛불을 든 시위자들로 모여들고 있다. 과거의 이념적인 이슈는 일상적 ‘먹거리’ 생활정치 구호로 바뀌고 집회 분위기는 축제행사장을 방불케 했다. 젊은 학생들은 인터넷의 웹2.0 위력을 발휘하며 자발 참여하였고 젊은 주부는 유모차를 끌면서 집회를 즐겼다. 10대 청소년부터 주부, 노인까지 연령도 계층도 다양했다. 그러나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들과 정치권 인사들은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한마디로 ‘대의정치’의 실종이자 ‘간접민주주의’의 죽음이다.

이번 촛불집회의 성격은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를 더 이상 대변하지 못했던 국회에 반기를 들고 국민들 스스로가 민주주의 질서에 참여하여 길거리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했다는 점이다.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촛불집회는 광우병 쇠고기 문제만이 아니라, 대리인들이 마음대로 주인을 배반하는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집결된 것”이며 “인터넷 등을 통해 발달한 한국의 광장 민주주의가 허구적인 대의 민주주의와 크게 맞부딪치고 있는 만큼 촛불집회는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정부의 개별정책안이 국민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직접민주주의’ 실천이 빈번해 진다면 이 역시 ‘포플리즘’ 양상으로 변질될 우려도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와 국회는 우선 국민과의 원활한 소통을 열어야 한다. 국민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대의민주주의’를 하루 빨리 회복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쇠고기 협상논란은 ‘실용주의’를 표명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가 배신감으로 돌아오면서 촛불집회의 도화선이 됐다. 거기다가 ‘먹거리’란 생활이슈에 대해서 누구나 쉽게 공감했기 때문에 더욱 폭발성이 강했다. 이것은 먹거리 안전에 연관된 일상생활정치의 시대임을 의미한다. 사회갈등의 영역이 과거의 전통적인 계급투쟁의 쟁점에서 환경, 생명의 쟁점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리하여 ‘광우병’처럼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는 이념을 초월해서 사실상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생활정치를 촉발할게 된 것이다. 민주당 이낙연 의원은 “식탁 위의 문제를 고정관념에 빠진 정권이나 정치권이 가볍게 여긴 게 아닌가”라며 이명박 정부의 반성을 촉구했다.
디지털시대에는 투표권을 가진 자만의 정치참여가 아니라 남녀노소 모든 계층이 정치참여의 주체가 되고 인터넷매체를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거리낌 없이 주장한다. 하물며 군중동원도 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의 공개와 공유로 국민 모두에게 정보의 평등이 실현된 것이다. 집회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광우병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정보를 서로 공유한 것은 정보의 평등화를 뒷받침해준다. 정부가 여러 정보를 소유하여 국민을 선도하던 정부에 의한 일방 통치는 이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디지털 국민의 민심이반에 대한 설득과 소통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 사회적 문제 소지에 대한 사전예방 정보활동도 미비했다. 이제부터라도 이명박 정부와 국회 그리고 국민은 서로간의 쌍방향의 의사소통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정부는 ‘밀어붙이기’식 개발시대에나 통했던 일방 통행식 통치이념은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

6월 19일 이명박 대통령은 ‘쇠고기 논란’과 관련해 “아무리 시급한 국가적 현안이라 하더라도 국민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국민이 무엇을 바라는지…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고 대국민사과를 했다.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의지를 대통령은 국민 앞에 다짐을 했다. 일단은 지켜봐 주어야 한다. 또 다시 민심을 배반한다면 제2,제3의 촛불이 다시 점화될 수 있음을 이 대통령과 정부는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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