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추가 협상․인적 쇄신 등 급한 불부터 끄자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극적 전망이 지배적이라는 점이 현 시점에서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 ‘현재 위기상황의 극복이 쉽지 않아 지지도 침체가 지속될 것이다’라는 의견은 80.7%로 조사됐고, ‘현재의 위기는 일시적이므로 곧 지지도를 회복할 것이다’라는 낙관적 전망은 19.3%에 불과했다.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이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문제와 한반도 대운하 등의 정책들로 인해 국민 근심과 걱정을 가중시키는 현실에 대해 국민 대다수는 소극적인 반대가 아닌 적극적인 의사표시로 맞붙었다.
100만 민심의 촛불 도전

그러나 대국민 담화에 대한 반응은 오히려 촛불민심을 자극한 결과를 초래했다. 이 대통령의“무엇보다 제가 심혈을 기울여 복원한 청계천 광장에서 어린 학생까지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는 발언에 국민들은 대통령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 국민 분노의 원인을‘광우병 괴담’탓으로 돌린다고 비판했다. 야당과 정치권에서도“대통령 담화는 국민을 우롱하고 야당을 협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담화문에는 잘못된 협상에 대한 진심어린 대국민 사과와 재협상에 대한 결단이 담겼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때만 해도 이명박 정부는 쇠고기 문제에 관한‘재협상은 없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고, 어떻게 해서든지 국내 분위기가 가라앉고 민심이 수그러들기를 바라는 식이었다.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이명박 정부 첫 내각이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내각 개각이라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달 10일 국민들은 6․10항쟁 21주년 최대 촛불집회를 개최했고, 이날의 촛불집회에는 서울에서만 광우병국민대책위원회 추산 70만명, 경찰 추산 8만 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부터 남대문 앞까지 이어진 촛불의 현장은 주요국 외신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미국 언론은 다음 날 한국 촛불시위를 일제히 1면 주요기사로 보도하고 자국산 쇠고기에 대한 한국민의 수입 반대 움직임을 소개했다. ‘쇠고기 문제가 중심이었지만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불만 등의 반정부 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이에 지난 달 12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미국과 쇠고기 추가 협상’을 시도했다. 13일 미국을 방문한 김 본부장은 수전 슈워브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와 5차례에 걸친 장관급 추가 마라톤협상을 벌였고, 30개월 미만 쇠고기임을 품질인증 방식으로 보증하는 합의안을 만들어냈다. 두 달간의 여정은 국민도, 정부도, 협상단도 모두 지칠 대로 지친 나날의 연속이었다.
대운하 포기, 수도․가스․전기․의료보험 민영화 안 한다

그의 발언 중 가장 큰 이슈가 된 것은“국민이 반대하면 대운하 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과“가스, 물, 전기 등의 민영화 계획은 애초부터 전혀 없다. 의료보험 민영화도 계획에 없다.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발언이다. 쇠고기 협상으로 인해 국민들의 불만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지만 사태는 새 정부의 공약과 정책에 대한 반대로 이어졌고, 결국 국민들의 촛불을 이용한 도전이 먹힌 셈이 됐다. 1970년대 말 현대건설 사장 시절부터 한반도 대운하를 구상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오랜 꿈은 80%가 넘는 국민적 반대에 부딪혀 좌초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의 대운하 공약은 대선 후보 시절 경선에서 큰 역할을 했고, 영남 지역에서 지지율을 얻는 소재가 되었으며, 당시 경북 일부 지역 땅값 폭등과 건설주들의 오름세까지 감안했을 때 이 대통령의 대운하 정책 포기는 중대한 결심이 아닐 수 없다. 대운하를 둘러싸고 1년 넘게 각계 각층 전문가들의 의견 교류, 수십차례의 토론회, 비정부기구와 시민단체의 과학적 근거를 내세우는 반발, 시민들의 반대 시위 등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 대통령과 새 정부는 이에 흔들리지 않던 모습을 보여 왔다. 당선인 시절에도 이명박 대통령은“국민적 합의를 중시하겠다”고 하며 정부는 국토해양부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운하 추진 방안을 모색했다. 그랬던 대운하 공약은 끝내‘촛불 여론’에 두 손을 들었다. 다행히도 특별기자회견 이후 이명박 정부의 국정 지지도는 20%를 탈환했다. 약 2개월 만의 일이었다.
청와대․국회 재정비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달 20일 대통령 비서진 전면 개편을 단행했다. 청와대 진용은 새 정부 출범 117일 만에 완전 물갈이 됐다. 대통령실장에 정정길 울산대 총장을 비롯해, 정무수석에는 맹형규 전 한나라당 의원, 민정수석은 정동기 전 법무부 차관, 국정기획수석은 박재완 정무수석, 외교안보수석은 김성환 외교통상부 2차관, 경제수석은 박병원 전 재정경제부 1차관, 사회정책수석은 강윤구 전 보건복지부 차관, 교육과학문화수석은 정진곤 한양대 교수가 각각 기용됐다. 홍보특보는 박형준 전 한나라당 의원이 내정됐고, 이동관 대변인은 유임됐다. 청와대 비서진 교체와 함께 청와대는 7명의 수석비서관을 정무팀과 정책팀으로 나눠서‘팀제’로 운용하고, 대국민 소통 기능을 강화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는 명목상 1기 청와대가 대통령실장에게 권한과 책임을 집중시켰다며, 2기에서는 정무수석과 경제수석한테 책임을 분산시킨다는 전략이 숨어있다. 1기 청와대의 류우익 대통령실장에게 주어진 업무의 범위가 지나치게 큼에 따라 업무 부담으로 이어져 결국 국정 혼란을 초래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따라 문제점을 개선코자 세운 청와대의 두 번째 시스템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기자회견에 이어 한미 쇠고기 추가협상 타결, 청와대 비서진 전면 개편 등 정부의 쇄신안이 잇달아 발표됨에 따라 국회는 정상화에 의견 접근을 보이고 있다. 통합민주당 조정식 원내대변인은 정부의 쇠고기 추가협상 발표 직후“쇠고기 추가 협상에 대한 정부 여당 인식이 국민과 야당의 요구와 인식과 동떨어져 있다”며“이런 상태에서 고시가 강행된다면 국회 정상화는 대단히 힘들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등원 여부와 관련해서는“국민 여론과 한나라당의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등원할 것인지를 결정하겠지만 현재 정부 여당 분위기를 봐서는 우려가 든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에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를 위한 장관 고시의 관보 게재와 검역 개재는 국민 여론이 진정될 때까지 유보할 것”이라고 말해 국회 정상화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부에 대한 신뢰 회복이 우선
취임 초기 이명박 정부가 마주한 대국민 도전은 이 대통령의 고백대로‘소통’의 문제였을지 모른다. 쇠고기 협상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구하려는 시도도 없었고, 대국민 반발에 대한 발빠른 해명을 하지도 못했으며, 내각구성에 쏟아지는 비판과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비난 여론에도 뚜렷한 대응책을 펼치지도 못했다. 이 모든 것들이‘국민과의 소통’에 해당하는 항목들이라면 이명박 정부 초기는 낙제점에 가깝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사회갈등을 제어할 수 있는 소통의 시스템이 이명박 정부에서는 작동해오지 않았다. 어느 나라이건 정부에게 부여된 양대 과제는 자신의 비전에 걸맞은 정책의 추진과 갈등 제어를 통한 사회통합의 제고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유례없는 고유가 행진과 내수 경기 침체, 물가 폭등, 파업사태, 악화된 민심 등 정부가 처한 현실은 잔인하리만치 냉혹하다. 어느 한 군데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정부는 한 걸음 내딛기도 매우 조심스러워 보인다. 그 중에서도 우리 정부는 가장 먼저‘정부에 대한 신뢰 구축’에 한 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결국 우리 국민의 가장 취약점인‘정치에 대한 신뢰’의 문제다. NP
장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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