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 개정논란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접어들어

지난해 7월 대규모 해고로 이어진 ‘이랜드 사태’를 불러왔던 비정규직 보호법이 7월 1일부터 근로자 수 100~299명인 기업으로 확대 적용된다. 지금까지는 근로자 수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만 적용돼 왔다. 비정규직법 확대 시행을 앞두고 경영계와 노동계에서는 또다시 대규모 해고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고용 유연성이 떨어져 기업들이 고용 자체를 꺼리게 되고, 비정규직 일자리라도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부작용이 생겼다. 비정규직 보호법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비정규직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 이 규정은 이미 지난해 7월부터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이미 시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2년이 되는 2009년 7월이 되면 계약직이 정규직으로 자동 전환되는 대신 대거 해고되는 사례가 나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둘째, 정규직과 같은 업무를 맡는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해 임금, 근로시간, 휴일·휴가, 재해보상 등에서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는 것으로 7월 1일부터 확대 적용됐다.

비정규직 근로자는 국민의 기본권인 건강권 보장받지 못해
▲ 지난 7월 11일 오전 서울 충정로 농협중앙회 본관 건물 10층 외벽에서 배삼영 전국사무연대 농협중앙회지부장이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미 쇠고기 수입을 묵인한 농협을 규탄하며 외줄에 매달린채 8시간동안 고공시위를 했다.
철도 청소 업무를 맡고 있는 L씨는 과도한 업무로 인해 매일 밤 허리와 어깨가 쑤시고 아프다. 내일은 병원에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당장 오늘 아침 출근을 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잃을 것 같아 하는 수 없이 일터로 향한다.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으로 소속 용역업체에서 일 년에 한번 건강검진과 매달 한 번씩의 건강휴무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윗사람의 눈치가 보여 떳떳하게 요구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공공근로자인 L씨가 그나마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비정규직 노동단체 관계자는 “일반 사업체는 더욱 열악한 곳이 많다”며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국민의 기본권인 건강권마저 보장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상대적으로 정규직 근로자에 비해 고된 업무를 하고 있어 근골격계 질환을 많이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증상이 없을 경우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없을뿐더러 휴직 기간 동안의 비급여, 재활프로그램의 부재, 희박한 복귀 가능성 등의 문제로 인해 제대로 된 병원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노총 산업 환경연구소의‘산재취약계층의 노동자보호를 위한 산재보험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임시계약직의 28.3%, 파트타임직의 67.9%, 용역파견직의 40%가 산재문제로 해고될까 두려워 산재보험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정규직은 16.5%만이 해고걱정에 산재처리를 못했다고 응답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산재 발생 이후에도 고용불안 때문에 충분한 치료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 발생 이후 치료를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한 적이 있는지를 조사한 결과 정규직은 35%, 용역파견직과 임시계약직은 2명 중 1명이 ‘그렇다’고 응답했으며 조기 복귀한 이유도 정규직은 25.9%가 경제적인 이유를 꼽았지만 임시계약직 41.2%와 용역파견직 54.5%는 고용불안이 1순위였다. 이러한 현실이지만 노동부는 지난 1년 사이 많은 부분이 개선됐다는 평가를 내렸다. 노동부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40%이상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보호법 시행이후 임금, 후생복지가 개선됐다고 응답했으며 정규직에 비해 불합리한 차별적 처우를 받고 있다는 응답은 37.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민노당 관계자는 “여론 조사는 어떤 문항들을 질문하고 누구를 상대로 실시됐는지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로 나오기도 한다”며 “현장에 가보면 비정규직 보호법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노당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건강보험 가입자는 35.8%에 불과하며 유급휴가를 받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는 18.9%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정규직 근로자 숫자는 줄었지만 전체 고용 규모도 줄어
▲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1년, 오히려 외주 용역화를 확대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난 현재, 비정규직 근로자 숫자는 눈에 띄게 줄었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올해 3월 비정규직 근로자는 563만8000명으로 지난해 3월에 비해 13만5000명이 감소했다. 지난해 우리은행을 비롯해 광주은행, 신세계 백화점 등이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 효과다. 수치상으로는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그러나 부정적인 효과도 만만찮다. 비정규직 근로자 수가 줄어든 것과 함께 전체 고용 규모도 줄었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300인 이상 기업 104곳과 300인 미만 기업 181곳 등 총 285곳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39.7%가 ‘비정규직 보호법으로 인해 비정규직 채용 규모를 줄였다’고 대답했다. 부천에서 제조업을 경영하고 있는 C씨는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근로자를 고용하는 게 조심스러워졌다”며 “가뜩이나 경기도 안 좋은데 유연성이 떨어지는 인건비를 늘리는 건 큰 부담된다”고 토로했다. 비정규직의 고용불안 상황도 여전하다. 일부 업체들은 아직까지 기간 및 파견제 근로자 등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기 위해 무더기 계약해지를 하거나 외주화 해 버린다. 대표적 사례가 이랜드와 기륭전자, 코스콤 등이다.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것이 임금 차이다. 올해 3월까지 비정규직 근로자가 받은 평균 임금은 127만 2000원으로 정규직 181만 1000원의 60.5%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오히려 3.6%가 떨어진 수치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노동력이 여전히 저평가되고 있다는 증거다. 차별시정제도에 따르면, 비정규직보호법 적용 사업장은 정규직과 같은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해 임금과 근로시간, 휴가 등의 차별을 못하게 돼있다. 위반 사항이 적발됐을 시, 노동위원회가 일차적으로 차별행위 중지와 근로조건 개선 등의 명령을 내리고 이를 무시할 경우, 해당 사업주는 1억 원의 과태료를 내야한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은 ‘고용안정’과 ‘차별시정’이라는 비정규직보호법의 애초 목표는 전혀 달성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민주노총 김경란 비정규직 정책국장은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이후 나타난 장점은 정규직화인데, 이는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며 “대다수는 계약해지, 외주대체, 분리직군을 통한 무기계약 등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비정규직 근로자 계약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파견제 업무를 확대하며, 차별시정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한 노동계 반응은 냉담하다. 한국 비정규직 문제는 법 개정과 사회안전망 강화 등이 핵심이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임신이나 육아휴직 등의 특별한 경우에만 비정규직을 사용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하고, 현재 비정규직 근로자에게만 있는 차별시정 신청자격을 노조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정규직 감소 효과, 성별 격차도 뚜렷해
▲ 기획재정부와 재정경제부는 “법적으로 계약기간을 늘리고, 파견 업종을 확대함으로써 계약기간 만료를 앞두고 벌어지는 비정규직 해고가 줄어들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정부의 입장은 그간 사용자들이 요구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노동계의 강한 반발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 감소 효과 역시 뚜렷한 성별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가 펴고 있는 노동정책과 경제정책은 공기업 민영화 조치를 비롯해 각종 ‘규제완화’에 초점 맞추고 있어, 비정규직 문제가 더욱 취약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7월 8일 전국여성노동조합과 한국여성노동자회가 공동주최한 ‘비정규직법 시행 1년, 차별시정의 실효성 강화’를 위한 토론회에서, 한국노동연구원 은수미 연구위원은 비정규직법 시행효과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은 연구위원은 “기간제 근로자는 전년 동월대비 32만 1천명, 파견은 3천명 감소”했지만 “상대적으로 근로조건이 나쁜 ‘계속 근로를 기대할 수 없는 한시적 근로자’, 용역, 일일근로는 모두 증가해 비정규입법이 비정규직 내부의 고용구성을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 결과에 따르면 특히 성별 비정규직 증감추이는 남성이 12만5천명(-4.2%) 줄어든 반면, 여성은 1만 명(-0.4%) 줄어든 것에 불과해 성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기간제의 감소효과는 남성과 여성이 유사하지만, 계약 반복갱신이나 단기고용의 경우 남성은 7만2천명(-14.5%) 감소한 반면 여성은 변화가 거의 없이 0.1%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은수미 연구위원은 “단기고용의 경우, 비정규직 입법 시행 이후 감소추세가 증가추세로 반전되었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추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차별문제에서 핵심적이라 할 수 있는 임금격차도 더 커진 것으로 드러났다. 기간제, 반복갱신도 규모나 비중은 감소했지만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는 커졌다. 은 연구위원은 비정규직 입법이 뚜렷이 제한적인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상황에서, 지식경제부에 이어 노동부에도 규제완화 전담팀이 구성되는 등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더욱 ‘부정적인 신호를 전해줄 것’으로 보인다며 우려했다. 현재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이 모두‘규제완화’에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노동정책의 부재’로 ‘사각지대에 있는 비정규와 근로빈민에 대한 대책이 적극적으로 모색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다. 은수미 연구위원은 기륭전자, 뉴코아, 코스콤, KTX 등 “비정규직 장기 쟁의 사업장이 증가하고 있고 근로손실일수가 전년대비 2.8배 정도가 증가하였다는 사실을 보았을 때, 더 이상 노사 자율과 법치를 통해 비정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노동자 입장에서의 법 개정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어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비정규직 보호법. 하지만 시행 1년이 지나면서 따가운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정규직 노동자는 혜택을 봤지만, 그보다 많은 노동자들이 하청이나 용역으로 전환돼 근로조건이 더욱 악화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사용자측을 대변하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입장을 내놨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2년 사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한다는 규정이 기업에 부담을 줘 오히려 채용을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한상의는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현재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할 것과 50세 이상 준고령자에 대해서는 기간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노동부에 건의했다. “비정규직 사용기간이 2년으로 지나치게 짧아 기업 인력운용의 유연성을 저해하고, 대규모 계약 해지를 초래하는 요인이 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두 노총은 비정규직의 평균 근속연수가 2년에 불과한 실정에서 사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는 것은 사실상 비정규직을 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쓰겠다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노총 김종각 정책본부장은 “100인 미만 사업장에 차별금지조항을 적용하지 않을 경우 비정규직법에서 가장 핵심요소인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금지 조항이 사실상 무력화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 법 개정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양대 박수근 교수는 ‘비정규직법 시행 1년 평가’토론회에서 “외주화로 전환하는 과정에 대한 절차적 제한과, 불법파견과 위장도급으로 근무하는 근로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의 금지와 시정절차에 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여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기간제 근로계약의 해지에 대한 남용을 방지하고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도모하기위해서는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우선적 고용의무조항을 비정규직법에 신설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노동부는 지금은 법 개정보다 비정규직법 정착에 힘을 쏟아야 한다며 소극적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노동부 이기권 근로기준국장은 “법에 따른 비정규직 전환은 내년 7월부터 이뤄진게 된다”면서 우선 현행법이 제대로 산업현장에 안착되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이 노동부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비정규직법 개정논란은 이미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사용자측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기업의 부담을 덜어줘야 고용도 보장된다”는 입장인 반면, 노조측에서는 “서둘러 법개정을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지만 비정규직법의 부작용 해소에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보호법은 법 시행 전부터 비정규직의 집단해고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컸으며 이는 지난 1년 동안 현실화됐다. 사측에선 비정규직법의 보호를 받지 않는 외주용역노동자들을 고용해 법을 피해갔고, 이로 인해 비정규직근로자들이 대량 해고됐다. 차별시정제도의 경우는 사측의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한 계약해지 통보 앞에 무력했다. 회사의 압력과 해고에 대한 불안 등으로 비정규직 근로자가 선뜻 차별시정을 신청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실효성 확보 차원에서 차별시정의 신청을 노조가 대신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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