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가 정치의 직접적 액터로 변질되는 양상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본격화한 1987년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우리 노사관계는 아직도 과격한 투쟁과 ‘뗏법’이 통용되는 노동운동이라는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외국투자가들을 만나보면 투자를 결정하기에 앞서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과격성과 폭력성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다.

우리나라 노사관계에 대한 이미지가 매년 반복되는 파업, 노조의 빨간 머리띠와 투쟁 조끼, 공장점거 등으로 기억되고 있어 외국의 투자를 유치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지난 4월 방미 과정에서 “노사관계를 개선하는 일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밝히면서 투자 유치에 나섰지만 외국 투자가들이 노사관계 불안을 이유로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마음을 얼마나 움직였는지는 미지수이다. 또한 정부의 노사관계 안정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노사관계 불안은 크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불법적 노동운동에 대해서 엄단하겠다”는 뜻을 수차례 밝혀왔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와 더불어 하계투쟁시기가 돌아오면서 주요 산별노조들과 대기업 노조 임단협의 본격화로 파업은 좀처럼 사그라질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노조는 기업 현안보다 정치·사회적 이슈에 집중
▲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등을 요구하는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파업이 정당성이 담보되지 않은 불법파업이라는 지적이 많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등을 요구하는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파업이 정당성이 담보되지 않은 불법파업이라는 지적이 많다. 뿐만 아니라 상당수 시민과 일부 노조원은 “생계를 위한 파업이 아닌 반정부 투쟁,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등의 정치색 짙은 파업을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 및 일선 지부 집행부는 “소고기 총파업은 국민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라며 파업의 정당성을 내세우고 있다. 이 같은 노조측의 주장에 정부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등의 파업은 목적이나 절차상의 정당성이 담보되지 않는 불법파업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불법 파업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노총의 ‘소고기 총파업’에 대해 “우리는 우리의 법이 있고 10년간 유지돼 왔다”며 “(우리 법은) 정치적 총파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장관은 이어 “이는 민노총 지도부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지도부는) 국가 경제에 책임 있는 근로자 대표로서 자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네티즌 및 노조원도 금속노조 홈페이지 등에 파업을 주도하는 노조의 행위에 대해 “정치적 욕심에 눈이 멀어 동지들의 아우성에는 귀를 틀어막는 너희는 노동자와 민주투사의 이름을 팔아 먹을 자격이 없다”고 비난했다. 또 다른 노조원은 “소고기 문제라면 보건의료노조에서 파업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조합원을 떠난 지도부는 의미 없다. 정치경력 쌓기 파업을 그만 두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한편 지난 6월 한국의 노사(勞使) 관계가 여전히 대립적인 것은 노조와 사용자, 정부, 협의기구 등 모든 부문이 총체적인 문제점을 보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안정적 경제성장을 위한 노사 선진화 방안’보고서에서 “국내 노사관계는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일시적으로 협력 관계를 형성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계급 투쟁적, 대립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노조는 기업 현안보다 정치·사회적 이슈에 집중하고 있고 일부 노조는 ‘귀족노조’행태를 보이면서 노동계 내 갈등을 유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등 사용자는 기업 경영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노조의 고통 분담을 이끌어내기보다는 파업으로 인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기 급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또 정부는 법집행의 일관성을 잃어 노사 양측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으며 협의방식에 있어서도 1998년 노사정위원회가 설립돼 운영되고 있지만 실질적인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보고서는 “정부는 불법 정치파업에 단호히 대처하고, 기업은 경영 정보를 노조와 공유해 고통을 분담하고, 노조는 기업별 협상에서 정치이슈를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년 반복되는 현대차 파업을 두고 엇갈리는 여론
▲ 지난 7월 총파업에 들어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촛불 시국미사에 합류해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금속노조 산하 현대기아자동차 지부는 지난 7월 18일 6시간씩 조업을 중단하는 사실상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현대차는 울산공장을 비롯해 전주와 아산 등 7개 공장과 위원회가 참여했고, 기아차도 소하리와 광주, 화성공장이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현대기아차 노조는 또 주·야간조 모두 2시간씩 잔업을 거부하기로 해 사실상 8시간 동안 파업을 벌였다. 7월 18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주간조 파업에 이어 야간조는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파업을 벌였다. 현대기아차 노조의 파업은 이달에만 4번째로 이로 인한 생산차질만 3000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현대차는 7월 18일 부분파업으로 생산차질은 5676대(매출 차질 878억 원), 기아차는 2800여대(매출 차질 370여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또 지난 2일, 10일, 16일에 2~6시간 부분파업과 잔업거부를 포함하면 이달 들어 모두 2만3200여대, 매출 차질은 3392억 원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노조가 중앙교섭 참가를 요구하면서 임금협상을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고 있어 파업에 따른 생산차질만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금속노조현대자동차지부의 파업을 두고 한쪽에선 자제를 촉구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정당성을 들고 나와 여론이 엇갈리고 있다. 울산지역 시민, 사회, 경제 등 각계 140여개 단체로 구성된 행복도시울산만들기범시민추진협의회(행울협)는 7월 18일 울산지청 프레스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대자동차지부의 파업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행울협은 이날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파업입니까?’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 경제는 초고유가와 원자재가 상승, 경기침체로 스태그플레이션마저 대두될 정도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서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노사에 호소했다. 이어 행울협은 “100년 이상된 선진국 자동차 회사도 부도 위험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노와 사는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라 같이 머리를 맞대고 생존을 걱정해야 할 때”라고 지적하고 “현대차 노사 모두에게 비생산적인 노사문화를 청산하고 상생의 선진노사문화를 이룩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고 밝혔다. 반면 광우병쇠고기 재협상 쟁취 촛불수호울산행동은 이날 오후 울산시청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을 미국산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지키고, 국가의 검역주권의 사수하고, 사회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의 고뇌에 찬 파업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또 “물가폭등, 기름값 폭등, 교육비 폭등, 비정규직 확산, 실업난 등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고단한 삶속에서도, 생존권적 요구보다 국민의 건강과 공공의 이익을 앞세운 현대자동차노동자들의 파업은 국민으로부터 칭찬받아야 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지부는 휴가 이후에도 진전이 없을 경우 8월 5일 쟁의대책위원회를 열고 투쟁수위를 높여나가는 한편 대정부투쟁까지 전개할 계획이어서 사태가 점점 꼬일 것으로 예상된다.

‘전부가 아니면 全無’식의 투쟁 고집해
현대자동차 노조는 1987년 노조가 생긴 이래 94년을 제외하고 매년 파업을 하고 있다. 노조원들의 의견이 무시되기 일쑤고 불법파업도 적지 않다. 현대자동차 노조의‘파업 중독’은 왜 매년 반복되는 것일까? 정갑득 금속노조 위원장은 현대차 내 노동운동 계파인 ‘실천하는 노동자회(실노회)’소속이다. 그는 96~97년과 99~2000년 현대차 노조위원장을 맡았다. 현대차 안에는 이런 노동조직이 10여 개나 된다. 이들 계파는 선거 때마다 이합집산을 하며 권력투쟁을 벌인다. 현대차의 한 조합원은 “선거 때만 되면 상대 조직을 누르기 위해 온갖 음해가 난무한다”며 “이러다 보니 계파별로 선명성 경쟁을 벌이게 되고, 파업은 그 부산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현대차 노조의 한 대의원은 “작업화 하나를 바꿔도 회사에 요청하는 것보다 노조에 얘기하는 게 더 빠르다”고 말했다. 작업반장에게 부탁하면 절차를 밟아 교체하게 된다. 대의원에게 얘기하면 곧장 새 작업화가 나온다. 회사가 즉시 지급하기 때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생산라인을 세워 버려 노조가 요청하면 어쩔 수 없이 거의 수용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 12~13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묻는 총파업 투표에서 현대차 노조원들은 48.5%만 찬성표를 던졌다. 처음으로 파업을 거부한 것이다. 하지만 같은 달 27일 실시한 ‘임금협상’관련 파업 찬반투표에서는 67%가 파업을 하자고 했다. 김정한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현대차는 98년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6개월 만에 기아자동차를 인수했다”며 “이때 회사에 배신감을 느낀 조합원들이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한다’며 눈앞의 경제적 이해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06년 현대차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비 납부를 거부했다. 경총이 한국노총과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에 합의하면서 복수노조 시행을 유예한 데 대한 항의표시였다. 현대차는 “복수노조만 되면 현재의 노조 성향을 확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회사 입맛에 맞는 노조를 지원해 강성 노조를 무력화시키겠다는 계산이었다. 노무관리를 강화하는 조치는 뒷전이었다. 김영문 전북대 교수는 “현대차는 노조의 변화만 바라는 ‘기도형 노무관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매년 반복되고 있는 파업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파업을 노사 간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내 노동조합이 이미 단위노조에서 산별노조로 전환된 만큼 노조가 제기하는 사회적 이슈를 포용하는 동시에 이를 조율할 수 있는 조정기구를 둘 필요가 있고, 특히 노사정 3자간의 대화에서 배제된 민주노총을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국노동교육원의 박태주 교수는 “올해 파업은 쇠고기 문제와 연계된 정치 파업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지만 민주노총을 대화에서 배제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며 “법과 원칙만 강조하고 충돌이 발생할 경우 개입하겠다는 공안적 노동정책으로는 매년 되풀이되는 파업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실제로 정부는 현대기아차 파업의 경우 교섭결과 자체가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큰데도 현대기아차가 ‘알아서 풀어라’는 식이다. 노조는 금속관련산업 전체 조합원들을 대표해 교섭에 나서는데 정부는 개별기업만 바라보고 있다. 단국대 김태기 경제학 교수는 “올해 같은 정치파업은 노동계가 자제해야 한다. 노동계가 사회적 이슈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정치의 직접적 액터(Actorㆍ행위자)로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치권은 여야 모두 노동문제를 국회 차원에서 논의함으로써 노동계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 노동문제는 민주노동당 만의 고유 업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한국고용정보원의 주무현 연구위원은 “국가단위의 대화기구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현재 정부에서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어 놓고 있지만 민주노총이 없는 반쪽짜리 기구일 뿐”이라며 “민주노총을 대화파트너로 끌어들여 노사정간의 대화기구를 정례화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현재구도로는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갈 여건이 되지 않는 만큼 정부가 전향적인 사고를 갖고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대화기구를 만드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며 “파업이 개별 기업과 사업장의 노조간의 문제라기보다 산별노조와 기업단체, 그리고 정부와 상급단체간의 문제인 만큼 의제의 외연을 확대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직된 노사관계는 투자유치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
▲ 까르푸, 월마트 등 외국계 대형 유통업체들도 노조와 대립관계를 보이다 결국 한국을 떠났다.
case1. 다국적 제약기업인 H사. 2006년 노사문제 때문에 한국에서 철수했다. 이 회사는 표면적으로 한국을 연구개발(R&D)기지로 삼기 위해 생산시설을 옮긴다고 했지만 몇 년간 지속되 온 노사분규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case2. 식음료 종이팩을 생산하는 스웨덴계 T사, 지난해 극심한 노사분규 이후 경기도 여주 공장을 철수하고 기본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소만 남겼다.
반복되는 노사 분규는 국내에 투자한 외국기업들의 발길을 돌려 세운다. 지나치게 높은 임금인상 요구, 노조의 경영권 참여 요구, 상급 노동단체의 간섭, 원칙 없는 노사분규 해결 등 한국의 노사관계 현실을 더 이상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 그들이 지적하는 한국 철수 이유다. 한국을 떠나는 외국 기업들의 노사현실에 대한 불만은 지난 7월 2일 전경련 국제기업위원회에 참석한 외국기업 대표들의 입을 통해 보다 분명해졌다. 주한 외국인 기업인들은 이날 우리나라의 ‘경직된 노사관계’를 투자유치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로 지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한 참석자는 “한국의 경직된 노사 관계가 유연화, 선진화되지 않고서는 외국 기업들의 투자 유치를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인은 “경직적인 한국의 노동제도가 가장 큰 애로 중 하나”라고 지적하고 “노동시장 유연화가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네슬레, 한국테트라팩, 한국화이자제약 등 외국 기업들은 최근 단순히 노사문제만을 이유로 생산시설을 철수했다. 까르푸, 월마트 등 외국계 대형 유통업체들도 노조와 대립관계를 보이다 결국 한국을 떠났다. 한국오웬스코닝, KOC, KGI증권, 한국테트라팩, 레고코리아 등 외국계 업체들은 노조와의 대립이 격해지자 직장폐쇄를 단행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은 국가 이미지 추락과 외국 자본의 철수로 이어진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전 세계에 생산시설을 가진 다국적 기업에서는 노사분규와 과도한 노조 요구 등이 계속된다면 언제든지 해외이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코트라에 따르면 한국에 투자했다가 철수한 외국기업의 당초 투자규모는 2007년 41억 2000만 달러에 달한다. 주목할 점은 2004년까지만 해도 외국인 투자 철수 규모가 연평균 11억 4000만 달러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불과 3년 사이에 상황이 변한 것은 그만큼국내 기업환경이 급격하게 악화됐다는 것을 뜻하고 그 중심에는 노사분규, 임금 상승 등 노동문제가 있다.

정치파업은 해마다 수조원의 경제적 손실 야기
정치파업은 해마다 수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몰고 온다.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그 원인을 노조 집행부에서 우선 찾는다. 민노총과 각 산별노조 등 상급단체 집행부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정치파업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 대기업의 한 노조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경우 근로조건 개선이 많이 이뤄지면서 80~90년대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강경파들이 대부분 민노총이나 산별노로 몰려갔고, 이들이 자신들의 세력규합을 위해 임금과 정치적 아젠다를 조합해 파업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일단 파업을 시작하고 봐야 뭔가 더 얻을 수 있다”는 관행적인 사고방식도 정치파업의 주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금속노조의 파업에서 보듯 교섭전 파업이 결정되는 ‘이해 못하는’상황이 벌어졌다. 임금협상을 위한 교섭이 결렬되면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을 거쳐 파업이 시작돼야 하는 것이 원칙. 하지만 말도 안 되는 ‘한국적 모순’이 해마다 반복되는 것이다.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도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 법과 원칙에 의한 대응을 강조했지만, 쇠고기 사태 이후 정부의 신뢰성이 무너지면서 노조의 강경 파업에 빌미를 작용했다. 남용우 경총 노사대책본부장은 “노사가 만나 임금 등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협상에서 답이 나오지 않을 경우에 파업이 시작되는 것인데, 이제는 습관이 돼버렸다”며 “정부가 엄정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 같은 습관성 파업에 우리 경제가 멍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파업에 대한 손실은 기본이고,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법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데 따른 성장률 손실이 1%포인트라는 분석이 이에 근거하여 나온 것이다. 정주연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조가 정치적인 분위기를 이용해 뭔가 얻어내려는 경향이 클수록 경제 전체적으로 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과정상의 불법행동, 비민주성을 필요악으로 인식하기도
▲ 노사화합 분위기가 일회성 행사가 아닌 진정한 산업평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노사정 모두의 변화와 혁신이 요구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주노총의 산별 임금단체협상이 지지부진하면서 사업장별 릴레이 파업이 가시화하고 있다. 릴레이 파업이 이어질 경우 고유가와 고환율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금속노조는 지난 7월 4∼5일 열린 중앙쟁의대책위원회에서 지난 2일 미국산 소고기 재협상을 촉구하는 민노총의 총파업에 불참한 사업장을 중심으로 오는 8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4시간 부분파업을 벌이기로 결정하고 11일에는 간부들이 4시간 파업에 나서고, 위원장이 체포되거나 노조 사무실에 공권력이 투입되는 경우에는 전면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쟁대위는 각 지부나 지회 실정에 맞춰 8일과 10일에 2시간씩 파업하거나 하루에 4시간 파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금속노조에 이어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역시 7월 7일 조정 신청해 16∼18일 파업 찬반투표를 거쳐 23일 산별 총파업에 돌입하는 등 투쟁일정을 확정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료 영리화 반대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10여 차례 교섭을 진행했지만 사용자협의회 측과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7월 현재 파업에 따른 근로손실일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3배에 달하는 26만9042일이다. 여기에 산업에 끼치는 영향력이 막대한 대기업 노조가 속한 금속노조 산별파업까지 결합하게 되면 경제적 손실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문제는 수치상으로 나타나는 파업건수의 다소 문제보다 과격성과 폭력성으로 대표되는 노동운동의 후진성에 기인하는 측면이 더 크다. 우리 노동운동은 과거 민주화운동의 하나로 인식되면서 과정상에서의 불법행동이나 비민주성을 민주화운동을 위한 필요악으로 인식하는 문화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이제는 더 이상 수단상의 불법이나 위법행동이 용인될 수 없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노동운동은 과거 ‘독재 타도’를 부르짖던 시대에서 멈춰버린 것처럼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투쟁을 고집하고 있다. 또한, 노동계의 경영계에 대한 인식도 여전히 공격적이다. 노조는 기업이 수년간 적자를 기록하여도 고율의 임금인상을 요구한다. 노동계의 이러한 태도는 경영계와 노동계를 기업이라는 하나의 단위로 묶지 못하고 적대적 관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며 노동계는 이러한 인식에 기초하여 사용자를 적(敵)으로 규정하고 과격불법투쟁을 벌여나가는 것이다. 실제로, 노조는 노사분규 현장에서 회사관리자에 대한 욕설, 폭행 등 불법행위를 진행하는 등 회사와 경영진을 적으로 규정하고 과격한 불법행위의 대상화하고 있다. 노동계의 이러한 투쟁적·불법적 쟁의행위 문화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은 쟁의행위시 빈번하게 발생하는 불법 공장점거 문제이다. 노동계는 쟁의행위시 공장점거를 당연한 수순으로 여기고 쟁의행위가 발생하면 불법적으로 공장을 점거하고 회사 기물을 손괴하는 불법행위를 빈번하게 자행한다. 최근 일부에서는 산업현장에서 노사화합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을 이유로 노사관계를 낙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사화합 분위기가 일회성 행사가 아닌 진정한 산업평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노사정 모두의 변화와 혁신이 요구된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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