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와 타협을 존중하는 여야 대표 선출

지난 달 9일 제18대 국회가 개원한 지 두달 여 만에 통합민주당의 국회 등원을 계기로 국회가 정상화 됐다. 각 당의 전당대회를 비롯해 민주당의 등원, 국회의장 선출 등의 일정을 단숨에 해치우고 국회는 자리를 잡았다. 국회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동안 민생 경제는 지속적인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 현상은 겉잡을수 없이 커져만 갔다. 시민들이 초를 내려놓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만큼 정부와 국회도 모두 제자리를 찾아 그동안 낭비됐던 에너지를 제대로 발휘할 시점이다.


지난달 10일 국회는 김형오 국회의장을 선출함과 동시에 문을 열었다. 집권당인 한나라당과 제1야당인 통합민주당이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 구성을 마쳤고, 국회 운영에도 차질 없게 의장을 비롯한 상임위 구성까지 빠르게 마무리 되며 제18대 국회는 정상화를 되찾은 모습이다. 문을 열자마자 가축법개정안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고, 원구성 협상과 교섭단체 완화 문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해임건 등 산재한 쟁점들이 다양해 여야 간에 초반부터 진통이 예상된다. 양대 정당의 대표인 한나라당의 박희태 대표와 통합민주당의 정세균 대표는‘대화?타협?소통’을 중시하는 정치인으로 정평이 나 있는 만큼 위기에 처해있는 정국을 바로 잡고 각 당의 내부문제까지 함께 아우를 수 있을만하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 두 사람의 원만한 성격과 화합형 리더십은 그들을 대표직에 올려놨을 뿐만 아니라 국정 능력에 대한 기대심리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고분고분한 여당은 되지 않겠다”
한나라당은 지난 달 3일 박희태 후보를 당 대표로 선출했고, 정몽준, 허태열, 공성진, 박순자 후보는 새 최고위원으로 선출했다. 현장개표 결과 대의원 9281명 가운데 7554명이 투표에 참가했고, 당 대의원 대상 현장투표에서 박희태 후보는 4294표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 뒤를 이어 친박계의 허태열 후보가 2792표를 획득해 2395표를 얻은 정몽준 후보보다 397표를 앞섰다. 그러나 이번 전당대회의 결과는 지난해 8월 있었던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결과처럼 당원들의 선택이 비당원인 일반 국민들의 여론조사에 밀려 최종 당선순위가 뒤집혔다. 일반인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46.9%를 얻어 정몽준 후보가 1위를 차지했고, 박 후보는 30.13%로 나타난 것이다. 이번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통해 정 후보에게는 당내 지지기반이 아직 약하다는 결론과 결국 승리한 박 대표를 향한 일반 국민들의 여론은 그리 후하지 않다는 결론이 났다.

정부 신뢰 회복이 우선
“제가 대표가 됐다고 무슨 특별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보통 대표가 할 수 있는 그 정도 이상을 제가 할 능력이 없습니다. 단지 제가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 당 대표로서 당내에는 화합, 국민 여러분들의 신뢰를 쌓도록 하겠습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화합형 대표’기치를 내세웠고, 선택받았다. 쇠고기 파동으로 촉발된 촛불집회와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과 불신,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계파를 둘러싼 당내 갈등 등 안팎으로 한나라당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던 시기에 박 대표는 당을 이끄는 수장이 되었다. 박 대표는 지난해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서 이명박 캠프의 선대위원장을 맡았었고, 경선과 대선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맡아왔으며 이명박 대통령과도 긴밀한 관계임에는 틀림없다. 1988년 13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이후 17대 총선까지 5선 의원으로 활약했고, 지난 18대 국회의원 공천심사에서 탈락해 6선의 고지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는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진 지난 20여년 동안 주요 당직을 두루 거쳤고, 그 실력을 이제 인정받았다. 따라서 당 운영에서 발휘될 그의 정치적 노하우와 능력에 대한 의심과 우려를 보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계파 갈등은 끝나지 않는 숙제
▲ 1988년 13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이후 17대 총선까지 5선 의원으로 활약했고, 지난 18대 국회의원 공천심사에서 탈락해 6선의 고지에는 오르지 못했다.
박 대표는 한나라당 내에서 온건하고 대화를 추구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홍준표 원내 대표 등 원내 지도부가 밀어붙이는 성향이 강하다면 박 대표는 그 사이에 대화 채널을 만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온순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식이다. 야당의 국회 등원이 지연되고 있던 시점에 홍 원내대표는 당일까지도‘단독 개원 불사론’을 밝히며 야당을 압박했던 것과는 달리 박 대표는‘합의 개원이 원칙’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박 대표가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가진 타협, 조정, 교섭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내 계파문제는 박희태호(虎) 출범으로 인해 원만한 협의 체제에 돌입하게 될 것이라는 예견과 본격적인 친이계의 결집이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난무한 가운데 친박연대와 무소속 친박계 의원들의 복당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박 대표의 선출로 친이계 결속력에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한 달여 시간이 흐른 지금 대표적인 친이계 인사들의 행보에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은 일선에 물러나 잠행하고 있고, 친이계 좌장격인 이재오 의원은 해외에 머물고 있으며, 한때 파장을 일으켰던 정두언 의원까지 현재까지 두드러진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어 일단 박 대표의 균형 있는 출발이 성공한 셈이다. 박 대표는“당내에는 화합을, 국민에게는 신뢰를 쌓도록 하겠다”며 취임초기부터 낮은 자세를 보였다. 그는“일찍이 공자님은 제자들이‘나라를 다스리는 데 무엇이 필요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우선 먹을 것 식(食), 나라 지키는 법(法), 신의 신(信) 중에 마지막까지 있어야 할 것이 믿을 신이리라고 답했다”며 정치권 전반에 퍼져 있는 불신의 기운을 다스리고자 하는 시도를 가장 우선시 한다고 밝혔다. ‘화합’을 중시하고‘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것이 정치권의 혼란의 원인’이라고 판단한 박 대표는 친이계와 친박계 모두와 돈독한 관계를 이어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의 문제는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 이후 한나라당 내부 갈등의 씨앗이었다. 친박연대의 부분 복당이 이루어진 만큼 당내 일각에서는‘박희태 체제’하에서 한 목소리를 내는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계파간의 문제보다 시급한 것이 쇠고기 파동으로 인해 성난 민심을 달래야 하고, 고물가, 고유가 문제로 심화된 서민 경제 고통을 덜어내는 일에 매진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계파는 한나라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달 6일 통합민주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정세균 당 대표를 선출했다. 최고위원으로는 송영길, 김민석, 박주선, 안희정, 김진표 의원이 당선됐다. 열린우리당 의장 출신인 정 대표는“새로운 비전으로 무장하고 국민을 섬기는 겸손한 자세로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히며“민주당을 국민의 뜻을 받들어 좋은 정당, 대안 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전당대회 이전 정세균 대세론을 무너뜨리기 위해 추미애-정대철 후보가 단일화를 시도했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정 대표와 추 의원은 경선 과정에서 위험수위를 넘나드는‘막말 공방전’을 치르면서 격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 바 있다. 당 화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 대표 인지라 전당대회 이후 추 의원과는 승자의 아량으로 그간의 앙금을 씻고자“계파싸움을 계속할 경우 민주당 스스로가 자멸하는 형국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계파는 한나라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통합민주당의 경우 계파별 연대 양상은 옛 열린우리당계와 옛 민주계를 중심으로 커다란 대결구도를 가지고 있고, 이런 구도로 보면 최고위원 후보에 올랐던 박주선, 김민석, 정균환 후보가 옛 민주계에 속하고, 송영길, 안희정, 김진표, 이상후 후보 등은 옛 열린우리당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통합과 소통을 강조하는 정 대표 체제가 출범했지만 여전히 계파가 존속하고 있고, 정 대표 스스로가 이러한 난관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로열린우리당 되지 않게
▲ 정 대표는 외유내강형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정계 입문 이후 구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정책위 의장, 국회 예결특위위원장을 거치면서 정책통으로 명성을 쌓았다
정 대표는 흐트러진 당 기강을 다잡고 거대 여당을 상대로 원만한 관계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 그동안 정 대표의 정치적 행보는 당 내부적으로는 화합형 리더십을 발휘해 계파 갈등과 분열을 줄이는 역할을 해 왔다. 지난 2005년 10?26 재선거 패배 이후 3개월간 임시 당 의장과 원내대표를 겸임하던 시절 당시 대표적 개혁입법인 사립학교법 개정안 통과를 진두지휘했던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 대표는 또한 외유내강형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정계 입문 이후 구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정책위 의장, 국회 예결특위위원장을 거치면서 정책통으로 명성을 쌓았다.
참여정부 말기 정권 실패의 책임론을 뒤집어쓰며 여론의 뭇매를 맞던 386에 속하는 송영길, 김민석, 안희정 최고위원은 각각 1,2,4위에 오르며 당 지도부에 입성했다. 특히 김민석, 안희정 최고위원의 경우 18대 국회의원 공천 탈락의 아픔을 딛고 다시 정치적 기반을 마련한 것에 당안팎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민주당의 체제를 두고‘도로 열린우리당’이라는 평가도 있다. 과거 열린우리당 출신 인사들이 대거 주요 요직을 맡게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이 새로운 대안을 가진 야당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민주당의 정책 노선과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민주당은 현재 어청수 경찰청장의 즉각 경질,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교체, MBC PD수첩에 대한 검찰수사 즉각 중단,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해임 등을 정부와 국회에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지난 달 국회 개원식에서 민주당은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 본회의장 입장시 기립은 했으되, 박수는 치지 않았다. 야당의 입장을 확실하게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일하는 국회, 국민과 소통하는 국회 되어야
올해는 건국 60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로 국회와 헌법이 탄생한 지도 꼭 60년이 됐다. 17대 국회에서 법안이 제출됐음에도 상정조차 안 된 법안이 1100건, 상정은 됐지만 심의하지 않아 자동 폐기된 법안도 3200건이다. 일하는 국회에 목말라 있던 국민들은 물가 상승과 경기침체로 인해 생활고가 더해진 만큼 18대 국회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쇠고기 정국으로 인해 등원마저 2개월 늦어졌다. 경제살리기와 일자리 창출, 물가 안정 등 삶의 질을 높이는 입법 활동에 전념해달라는 국민의 요구를 국회와 정당 모두 절실하게 받아들여야 할 시기다. 민생경제를 살려내는 데에는 여당과 야당이 따로 없고, 국민과의 소통에 국회와 정당이 따로 일 수 없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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