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한 (現) 공존과건축연구원장 ​​​​​​​(前)부산시건축주택국장
김필한 (現) 공존과건축연구원장 (前)부산시건축주택국장

[시사뉴스피플=편집국]

 1. 생숙,, 누구니 넌?
최근, 생활형숙박시설(serviced residence / 이하, 생숙)이 집이냐 아니냐를 놓고 국회와 세종청사, 언론에서 갑론을박이다. 마치 박쥐가 날짐승인가 길짐승인가를 논쟁하는 것과 다름없다. 생숙을 집으로 알고 거기에 둥지 틀었는데 그 둥지에서 쫓겨나야 할 위기에 처한 이들의 안타까운 몸부림과 외침이 절박하다. 마치 둥지 잃은 새들의 슬픈 날갯짓을 닮았다. 원시사회는 인간이 맹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비바람을 피하기 위한 움집이 곧 주거였다. 생존을 위한 움집 주거가 시대를 거듭하며 좀 더 편리하고 여유로운 삶을 향해 그 시대와 호응하며 분화해 왔다. 인간이 건축하고 그 건축물에서 어떻게 사유하고 살아가고 소비하는가는 사회행위이자 곧 문화행위다. 그 중에서도 주거는 아이를 낳고 기르고, 가족과 함께 편안하고 내밀한 휴식처이자 안전하게 보호받아야 할 독점·배타적인 생존 공간이다. 그러한 삶의 둥지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문명국가라 할 수 없다.

생숙은 2012년 공중위생관리법에 생활숙박업으로 도입된 후, 2013년 건축법령에서 건축물의 용도로 새롭게 자리한 지 10여 년이 흘렀다. 그동안 민간사업자는 신개념 주거시설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분양하였다. 아파트와 비교했을 때 단지계획, 외관, 평면, 구조, 발코니 확장 등 물리적 형태가 같고, 세대별 구분등기도 가능하고, 다주택자 규제나 세금 중과에서도 비켜날 수 있다. 거기다가 내 집에서 식사·세탁·청소 등 호텔식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주거공간이라는 마케팅에 현혹되어 많은 사람들이 분양받아 주거로 사용하였다. 그런데도 생숙이 도입된 후 지난 2020년까지 정부 관계자 누구도 생숙의 온전한 정체(주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를 말해주지 않았다. 참 수상한 침묵이었다.

2. 다양한 관점, 곱잖은 시선
생숙을 주거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고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법과 정책은 원칙적으로 모든 이에게 공평하고 적법과 불법은 구분되어야 한다. 정부는 2020년에서야 생숙을 주거로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니 단속하겠다고 하면서 숙박업 신고나 용도변경을 한 분들이 그렇지 않은 분들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을 들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한다. 백번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2013년 생숙을 도입 후부터 7~8년 동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침묵했던 사유를 ‘생숙에 둥지 튼 슬픈 그대’(이하, 그들)에게 납득시켜야 했다. 진즉에 그랬더라면 그들 중 다수는 생숙을 둥지 삼지 않았을 것이다.

생숙은 2021년까지 대략 10만실이 공급되었고, 소유자는 숙박업으로 운영하는 분들과 주거로 사용하는 분들로 양분된다. 그들 중 용도변경 특례기간에 오피스텔로 변경하여 주거로 계속 사용하는 분들은 약 1.2%에 불과하다. 이는 현실적으로 기존의 생숙에 용도변경 특례 적용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생숙을 투기 대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그런데 생숙은 비슷한 시기에 분양된 아파트와 비교했을 때 가격상승률과 투자수익률이 대부분 그에 미치지 못한다. 이제 그들의 선택지는 어디로 향해야 하나? 둥지를 비우든지, 생각에도 없던 숙박업 등록을 하든지, 이도저도 못한다면 둥지에 앉은 채로 불법행위자로 고발당하고 이행강제금 폭탄을 고스란히 맞아야만 한다.

3.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와 태생적 한계
생숙은 정책 도입 단계에서 주거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강력하고 선명한 신호(signal)를 주었어야 했다. 그러지 않으려면 차라리 주거를 허용했어야 했고 오늘과 같은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 지자체 소속이었던 필자 또한 대숲으로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용감하게 침묵을 깨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궁색한 변명을 하자면 당시 생숙에 전입신고를 하면 거부할 수 없고 주민센터는 이를 받아주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전입 허용과 주거 금지라는 양립할 수 없는 인지부조화와 형용모순의 기막힌 상황에서 집단적 착시현상을 일으킨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필자의 무지함과 그 비겁했던 침묵은 면책될 수는 없다.

실제로 2017년경 어느 지자체에서는 소속 공무원을 생숙의 준공·입주 현장에 출장시켜 친절하게 전입신고까지 받아주는 행정서비스를 선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생숙을 신개념 주거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사회적으로 합의된 약속처럼 숙성되고 학습된 신뢰가 묵시적으로 굳어져 갔던 것이다. 그 약속을 믿은 선의의 많은 사람은 생숙을 분양받아 살가운 가족과 함께 그곳을 둥지 삼아 평온하게 살아왔다. 

오피스텔은 업무시설, 고시원은 근린생활시설로 본래의 용도가 정해져 있다. 그런데도 주택법에서 준주택으로 규정하듯 건축물 용도 간의 경계는 이미 희미해졌거나 허물어져 가고 있다. 그것은 곧 절대적으로 지켜내어야 할 신성불가침의 경계선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생숙은 아파트와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은 모습 때문에 보편적으로 주거로 인식하거나 사용할 개연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타고났다. 지난날 정부에서는 오피스텔의 불법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주택법상 준주택이라는 이중 호적에 입양(?)하며 혼란 상황을 수습했던 전례가 있다. 주거라는 가문에서 볼 때 생숙이 서자(庶子)인지 혼외자(?)인지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제는 정부가 그들에게 평범한 일상을 돌려주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여야 한다. 

4. 출구(exit)없는 출구대책
2020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생숙을 주택으로 사용하는 문제점을 지적당하자 정부는 그때서야 주거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지자체에 지시하고 숙박업 등록을 강제하도록 법령을 개정하였다. 이후 2021년 10월에야 오피스텔로 용도변경을 유도하는 한시적인 출구대책을 내놓았다. 정부가 애초부터 생숙을 주거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예방조치를 하지 않은 심오한 까닭을 그들은 도무지 알 수 없다. 특례기간 동안 오피스텔로 용도변경 하든지 숙박업 등록하고 집을 비우던지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고발대상에다 시가표준액의 1/10에 해당하는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겠다고 윽박지른다. 논리의 비약일지 몰라도 이를 두고 혹자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직무유기라 비아냥거린다. 지금이라도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 그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국가정책의 목표는 국민의 행복한 삶을 지향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출구란 누구나 쉽게 열 수 있는 구조가 전제되어야 한다. 주차대수 2배 확보, 지구단위계획상 불가능한 입지, 복도 폭을 확장해야 하는 피난·안전 규정 등을 극복해야 오피스텔로 변경이 가능하다. 필자가 근무하던 지자체에서는 지난해에 생숙의 주차장 완화를 위해 주차장 조례가 입법 발의된 적이 있었지만 특혜시비로 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이 이행강제금 폭탄을 피하고자 오피스텔로 용도변경을 검토 해 보았지만 대부분 넘사벽이었다. 이렇듯 용도변경 문턱은 입주자는 물론 지자체도 넘을 수 없는 까마득히 높은 허들(hurdle)이었다. 마치 입출구가 다 열려있던 터널이라 안심하고 들어왔는데 나갈 수 없도록 출구를 꽉 막아 놓고 언제까지 나가지 않으면 페널티를 주겠다는 것과 같다. 이 공허한 출구 없는 출구대책 앞에서 그들의 억장은 또 한 번 무너진다. 

숙박업 등록은 또 어떠한가. 어느 지역에 아무런 교통신호등이 없는 사거리가 있었다고 하자. 그 길에서 좌회전하며 10년 동안 무사·평온하게 출퇴근하였고 교통경찰도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좌회전 금지 신호등을 설치하고서는 그때부터의 좌회전은 물론 지난 10년간 좌회전한 것도 죄다 불법이니 그동안 벌금까지 소급해서 몽땅 다 내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5. 시한폭탄, 뇌관은 그대로,,
이렇듯 전국에서 생숙 입주자들의 민원과 원성이 높아지자, 정부는 2023.9.26. 급기야 땜질에 땜질 처방으로 2024년 말까지 숙박업 신고와 이행강제금 처분을 한번 더 유예하겠다며 한걸음 물러났다. 이는 산소호흡기 착용을 의미 없이 연장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서도 생숙을 주택으로 사용하는 것은 여전히 불법이고 전적으로 입주자의 책임이지 정부의 책임은 없다는 기존 입장은 조금의 흔들림이 없었다. 다만, “생숙제도 전반의 발전방안을 우리나라의 여건 변화와 세계추세를 반영하여 적극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는 알 듯 모를듯한 입장을 내놓았다. 정부의 입장이 그들에게 더이상 기대난망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수만 명 국민의 삶이 걸려있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와 전략, 책임감이 못내 아쉽다. 언젠가 터지는 것이 시한폭탄이라면 그 뇌관을 제거해야 안전하다. 둥지 안에 떨어진 시한폭탄을 치워달라 하였더니 뇌관은 그대로 둔 채 초침만 슬그머니 1년 남짓 뒤로 물려 놓은 격이다. 그들의 둥지에 해마다 수천만 원의 이행강제금 폭탄이 터질 상황에는 변함이 없는데도 말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가장 평안함과 행복을 누려야 할 삶의 둥지에서 정해진 때를 향하는 시한폭탄의 초침 소리가 째깍거리며 그들의 가슴을 옥죈다. 몸속 종양 덩어리는 제거하지 않은 체 대증요법으로 살갗에 소독약만 발라놓고 치료를 다 마친 것처럼 눙치려 든다. 이 무심한 폭탄 돌리기의 연장된 종점인 2024년 12월 이후에는 또 어찌할 것인가. 그때는 총선도 지나고 장관님도 담당 공무원도 다 새 얼굴일 텐데, 그들의 희망 고문도 그때까지 연장되어야 하나?

6. 내 집에서 쫓겨날 처지 & 살아갈 권리
새로운 제도(숙박업)가 생겼다고 해서 기존에 인정되던 국민의 법적지위를 변동시켜 새로운 허가요건을 갖추게 하는 것은 이미 형성된 국민의 법적 지위를 사후 입법을 통해 박탈하는 것으로서 이는 소급입법에 해당해 개인의 신뢰 보호와 법적 안정성을 내용으로 하는 법치국가의 원리에 반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견해(대법원 2018두 49642)이다. 또한, 국회 제409회 국토교통위원회(2023. 8.30.) 질의 답변에서 주무 부처 장관 스스로 숙박업 등록은 소급입법임을 부인하지 못하였다. 

일반적으로 법령은 장래에 발생하는 법률관계를 규율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생숙의 진행 과정을 살펴보면 그들이 생숙을 주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의심할 것을 지극히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이게 과연 위법임을 인식하지 못한 선량한 그들에게만 모든 책임을 물어야 될 일인지를 돌이켜 보는 것이 마땅하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고 고통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닦아 주는 가슴 따뜻한 정부를 기대하는 것이 그들의 과욕일까? 그들에게 지금 사는 집에서 쫓겨나지 않고 삶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갈 권리를 그 누가 박탈할 수 있겠는가? 

7. 밥은 밥그릇에만?
인간은 문명의 발전과 함께 인간의 생활과 문화, 삶의 방식은 다양한 모습으로 순응하고 진화해 왔고, 라이프스타일(life style) 또한 끊임없이 변화·발전한다. 생숙은 국민의 다양한 욕망과 삶을 건축공간에 담아 보다 편리함을 누릴 수 있도록 법제화한 것이다. 우리나라 국토정책을 살펴보면 도시를 주거, 녹지, 상업, 공업 등의 용도지역으로 구분(zoning)한다. 산업단지 계획에서 산업시설만 입지하면 산업단지로서 기능하기가 어렵다. 직장 가까이에 주거와 생활편의시설을 두어야 그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되는 것이므로 최근에는 이러한 융복합형 산업단지를 선호한다. 통섭과 융합의 시대에 경직된 틀에 매몰되어 조금이라도 그 틀에서 벗어나면 불법으로 규정하고 가차 없는 페널티만이 능사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다.

건축물의 경우 1963년 건축법 제정 이래 주택, 업무, 숙박 등의 용도라는 틀 안에 60여 년간 가두어 놓았다. 그런데 최근 각기 다른 용도들이 모여 하나의 건축이 되고 그 안에서 유기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지식산업센터 같은 융복합성 건축물이 선보인다. 또한, 주택에 대하여도 종전의 개념과 경계가 느슨해지고, 삶의 방식과 패턴에 따라 하이브리드(hybrid) 주택 등 새로운 주거방식이 등장하고 있다. 다양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라이프스타일이 주거와 장기체류, 숙박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활방식이 다변화되고 있다. 이처럼 국민의 삶과 문화는 발전하는데 이를 담아낼 그릇을 적기에 정책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저 철 지난 틀 안에서 밥은 밥그릇에 국은 국그릇에만 담아야 한다는 기계적인 준법만을 고집하는 것이 최선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국그릇에 밥 말아 먹는 게 식사예절(?)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면 변화무쌍한 사회현상을 제도권 안으로 수용하는 포용력과 유연성을 발휘할 때다. 

2023.8.31. 국회에서 개최된 생숙제도 개선방안 세미나에서 발제자와 패널들은 생숙을 준주택으로 인정할 때가 무르익었고, 숙박업 등록은 소급입법이라 주장하였다. 준주택이 인정되면 내 집에서 편리하게 식사·세탁·청소 등 힘든 가사노동에서 해방되어 삶의 방식과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긍정의 효과가 적지 않다. 또한 저간의 첨예한 논쟁거리였던 소급입법 시비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덤으로 다양한 일자리의 창출까지 기대할 수 있어 정책논의 테이블에 올려볼 필요가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다만, 이로 인한 용도지역 및 건축물 용도체계의 혼란 등을 최소화할 대안과 준주택 지위에 걸맞은 과세체제 정비나, 입지 및 시설기준을 강화하는 등의 보완조치도 신중히 뒤따라야 할 것이다.

8. 모두에게 자유로운 길
21C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개성과 선택권을 무시한 채 동일한 규율, 문화, 가치관에 모두를 묶어버리는 획일주의는 배격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의 진보와 성숙은 한때 진리로 생각했던 오류가 새로운 믿음에 의해 대체되고 그것을 양보하는 과정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국민이 바라는 주거의 방향과 필요(need)가 무엇인지를 살피고 새로운 주거의 유형을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등 국민의 라이프스타일을 주택정책에 녹여내는 발상의 전환과 입법이 필요하다. 

국민이 국토교통부라 명명할 때 그 함의는 국토를 아우르고 국민까지 품으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정부는 편안하고 익숙했던 규제의 본능과 작별을 고하고, 모두를 자유롭게 하는 포용정책을 펼쳐 들어야 한다. 그리하면 비로소 ‘생숙에 둥지 튼 그대’들은 슬픈 날개를 접을 것이다. 그래야 국가다. 이제 국가의 존재 이유를 증명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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