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 사태로 新 미-러 냉전기류 흘러

러시아가 지난 8월 16일 그루지야전쟁에서 철군을 선언하면서 그루지야 사태가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미국-러시아간 갈등 관계는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라는 분석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그루지야 사태가 ‘종료’된 것이 아니라 ‘일단락’됐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러시아는 지난 8월 8일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당일 그루지야 내 親러시아 자치 세력인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지켜내겠다며 그루지야 침공을 감행했고 압도적인 화력을 바탕으로 단 이틀 만에 그루지야의 항복을 받아냈다. 하지만 내심 사카슈빌리 대통령 축출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는 휴전 합의에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맹비난에 떠밀려 8월 16일이 돼서야 휴전에 합의한 것도 그 같은 속사정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그루지야 사태가 한창이던 8월 14일 폴란드와 미사일방어체제(MD) 기지 협상에 합의했다. 러시아가 그동안 자국안보를 위협하는 일이라며 반대해왔던 사안을 거뜬해 해결한 것이다. 그루지야는 우크라이나와 함께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하면서 러시아에 미운털이 박혔다. 이미 지난 2004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틱 3국이 EU에 가입하면서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려놓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다음 타깃이 폴란드나 우크라이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으면서 새로운 ‘냉전시대’의 도래를 경고하고 있다.
 
전쟁은 끝났지만 소리 없는 총성은 계속돼
러시아의 군사작전 종료 선언으로 러시아·그루지야간 전쟁의 총성은 멎었지만 인터넷 사이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이버 전쟁은 확산 일로로 치닫고 있다. 공격을 받은 그루지야 정부는 관련 사이트를 미국 등 해외로 옮겨 대응에 나서는 한편, 러시아 해커들은 또 다른 공격 네트워크를 만들어 내며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그루지야 인근 국가들까지 ‘사이버 동맹’을 자처하며 그루지야를 돕고 나서는 등 인터넷 속 ‘소리 없는 총성’이 계속되고 있다.
그루지야 웹사이트와 e메일, 각종 통신 서비스 등에 대한 러시아 해커의 공격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루지야 정부사이트들과 약 20개 금융·방송 사이트가 다운된 상태며 복구된 사이트에 대한 공격도 반복되고 있다. 더욱이 러시아 해커들은 또 다른 공격네트워크(봇넷)를 만들기 위해 CNN과 MSNBC와 관련된 주간 스팸량의 약 3분의 1에 달하는 트래픽을 낳는 악의적인 스팸 메시지를 쏟아낸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메시지는 미카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아 대통령과 관련된 신문·방송의 헤드라인 뉴스처럼 위장하고 있다. 한편 최근 몇년새 러시아와 정치적 마찰을 빚어온 국가들도 러시아 해커의 무력화를 위해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불편한 관계에 있던 에스토니아와 폴란드 등이 그루지야를 돕고 나선 것. 에토니아 컴퓨터위기대응팀(CERT)의 전문가 수명이 네트워크의 지속적인 운영을 돕기 위해 그루지야로 향했으며, 폴란드는 그루지야가 러시아와 분쟁상황을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대통령의 홈페이지의 일부 공간을 빌려줬다. 한편, 러시아 해커조직 ‘러시아비즈니스네트워크(RBN)’의 공격을 받은 대통령 홈페이지와 의회·국방부·외교부 사이트 등은 해외로 서버 위치를 옮겨 대응에 나서고 있다. 대통령 홈페이지는 현재 그루지야 출신 CEO가 운영중인 미국 튤립시스템에 의해 호스팅되고 있고 외무부 사이트는 구글의 블로그스폿으로 옮겨진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 러시아 간 갈등 갈수록 심화돼
▲ 지난 8월 9일(현지 시간) 그루지야 트빌리시에서 80km 떨어진 고리(Gori)에서 한 그루지야인이 가족의 시신을 안고 오열하고 있다.
한편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으로 촉발된 미국과 러시아 간 갈등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지난 8월 20일 폴란드에서 라도슬라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과 회담을 갖고, 미사일 방어(MD) 체제 구축을 위한 패트리엇 요격미사일 10기를 폴란드에 배치키로 합의했다. 미국은 MD체제가 이란 등 적성국의 도발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러시아 견제용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은 이에 앞서 지난 7월 8일 체코에 MD체제의 레이더 기지를 설치키로 합의했다. 러시아는 미국이 과거 옛 소련의 위성국이던 동유럽 국가에 MD체제를 구축하는 데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미국의 MD계획에 적극협력하고 있는 폴란드에 대한 핵 공격 가능성을 거론하는 등 일전 불사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아울러 러시아는 중동의 반미 국가인 시리아와의 군사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지난 8월 20일부터 이틀간의 러시아 방문 기간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군사·기술 협력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아사드 대통령은 러시아가 단거리 미사일인 이스칸데르를 자국 영토에 배치하길 원한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고 일간 예루살렘포스트가 전했다. 러시아는 또한 친미국가인 그루지야에서 독립을 추진하고 있는 남오세티아 자치공화국의 독립을 지원하는 한편, 그루지야 내에 러시아군을 주둔시킴으로써 그루지야 주권을 노골적으로 침해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이와 함께 치열한 성명전을 벌이고 있다. 라이스 장관은 “러시아가 신용을 잃었다”면서 “러시아가 그루지야 사태에 따른 대가를 지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 외교부는 “유럽에서 MD체제가 확대되고 현대화되고 있다”면서 “러시아가 이에 외교적으로만 저항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군사 대응 가능성을 시사했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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