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적, 편향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 높아

인권의 존재와 타당성 그리고 그 내용 자체는 오늘날 철학과 정치학에서 열띤 논쟁의 대상이다. 그러나 인권은 국제법과 협약에서 정의되어 있으며 나아가 수많은 국가들의 국내법에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많은 인간 사회의 배경 속에서 인권이 정의되는 구체적 표현은 다양하며 또한 지역적인 관할 지역에 따라 다르게 판단된다.


개별 국가에게 있어서 ‘인권’은 정부의 일방적 권리 남용에 대항하여 개인들이 받을 수 있는 보호 및 보장을 일컫는다. 이는 1) 개인의 well-being, 2) 개인의 자유와 독립성, 그리고 3) 인류 이익이 정부에 대표되어야 할 의무 등을 뜻한다. 이러한 권리들은 일반적으로 생명 권리, 적당한 삶의 수준에 대한 권리, 고문 또는 타 부당한 처우에 대한 보호, 종교와 표현의 자유, 이동의 자유, 자기 결정의 권리, 교육에 관한 권리, 그리고 문화와 정치에 참여할 권리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규칙들은 유엔 회원 국가들의 법적, 정치적 전통에 근거하고 있으며 국제 인권 기구들에 의해서 발현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존재하고 있으나 최근 인권위가 편향적, 이중적이며 국가권력을 남용한다며 인권위의 존치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도 커지고 있다.

▲ 보수층에서는 국가인권위가 좌파 성향의 단체나 시위대만 옹호한다거나, 보편적 인권을 빌미로 월권하는 경우도 많다며 ‘완장 찬 권력’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국가인권위, 권력 앞에 고개 숙였나
지난 5월 2일 시작해 넉 달째 계속된 촛불시위. 국가인권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국가인권위가 “경찰의 촛불시위 진압 과정에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며 직권조사를 결정한 것은 지난 7월 11일이다. 촛불시위를 시작한 지 두 달을 넘기고 나서다. 직권조사는 진정이 없어도 인권 침해가 있다고 믿을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고, 중대한 사안이라고 인정할 때 실시한다. 거리 행진이 시작되고 최초의 심각한 경찰폭력이 있었던 5월 26일부터 계산하더라도 공백이 매우 크다. 지난 5월부터 7월 30일까지 인권위원회 상임위·전원위에서 촛불집회가 안건으로 거론된 것은 총 네 차례. 긴급호소문을 내기도 했지만 인권위가 취할 ‘액션’의 대부분은 바로 이 논의 테이블에서 결정된다. 국가인권위는 매주 1회 상임인권위원이 참여하는 상임위원회 회의를 연다. 비상임위원까지 참여하는 전원위원회 회의는 월 2회 열린다. 처음 거론된 것은 지난 5월 23일 열린 상임위원회에서 나온 ‘촛불문화제 참여 방해에 관한 긴급구제조치 신청건’(의결안건). 중·고등학생 94명이 전날 진정과 함께 긴급 구제를 신청한 것에 대한 첫 번째 ‘반응’이다. 두 번째는 6월 30일. 상임위원회 보고안건으로 ‘촛불집회 상황보고’가 나왔다. 7월 2일 개최된 전원회의에서 ‘촛불집회 상황보고’건이 세 번째였고, 7월 11일 직권조사 결정과 관련한 의결안건이 네 번째였다. 문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이의 ‘침묵’이다. 임송 인권위 홍보협력팀장은 “그 기간 동안 상임위나 전원위가 정상적으로 개최됐지만 (촛불집회에 관해) 논의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가장 많은 부상자가 발생한 지난 6월 29일 새벽. 심지어 인권위 인권침해감시단으로 나선 직원까지 무차별적으로 폭행당했다. 직원이 공무수행 중 폭행당하는 참담한 상황이 벌어졌지만 인권위는 경찰 쪽에 공식적인 사과를 요청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 날 저녁 안경환 위원장이 어청수 경찰총장에게서 전화로 구두 사과를 받았다. 이 문제는 인권위 내에서 논란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들은 “단지 인권위 직원이 폭행당한 것이 아니며, 공권력이 인권이라는 가치를 능욕한 것이다”라고 반발했다는 후문이다. 또 공무 수행 중인 직원을 폭행한 행위는 인권위법 56조 1항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 부과 등 적극적인 조치가 가능한데도 구두 사과로 끝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이날 현장 책임자는 “상식적인 차원에서 직원이 폭행당했는데 가만히 있는 조직이 있겠느냐”라면서도 “답변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여 그렇긴 한데 답하기가 그렇다”라고 말을 아꼈다. 인권위가 몸을 사려도 너무 사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현재 정권과 관계 등을 감안해 인권위의 독립성이 위태로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위태로운 국가인권위의 독립성
지난 6월, 감사원은 인권위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감사원은 “정부가 바뀌면서 모든 정부기관이 다 감사를 받았지만, 10여 개의 기관은 감사를 받지 않았고, 그중 통합돼 사라진 기관을 제외한 나머지 5개 기관에 대한 감사”라고 감사 이유를 밝혔다. 감사원 감사는 보통 매년 연말·연초에 진행되며 일반적인 부처 감사는 회계 감사와 직무 감사를 실시하는데, 독립기관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인권위는 보통 회계 감사만 받는다. 올해도 1월에 7일 정도 결산 감사를 받았다. 그러나 지난 6월 감사원 감사는 “직무 감사도 실시하겠다”고 밝혀 인권위 측과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 기간도 보통 때의 2배였다. 6월 2일 시작한 감사는 20일까지 진행됐다. 그런데 이 기간은 우연찮게 국가인권위의 통상적 회의에서 ‘촛불시위’가 논의되지 않던 기간과 겹친다. 일부에선 인권위의 ‘몸 사리기’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일었다. 인권위 관계자는 “감사원 감사와 촛불시위를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대답했다. 한 인권위 관계자는 “원래 처음부터 2주로 예정돼 있고, 이틀이 더 걸린 셈인데 인권위는 인권위 법에 명시되어 있는 독립성 훼손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했고, 거꾸로 인권위가 그만큼 잘 대응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이 사안과 촛불시위 대응 여부는 별개”라고 말했다. 한편 북한 인권 논란도 독립성 논란과 함께 끊이지 않고 있다. 보수인터넷매체와 북한인권운동단체는 그동안 인권위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다고 집요하게 비판했다. 왜 인권위가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하느냐는 것이다. 민경우 진보연대 정책위원은 “북한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인권 문제를 거론하기 전에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북한 문제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지금 인권위의 행보는 보수세력의 프레임에 휩쓸려가는 것이 아닌가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인권위의 ‘위상’도 예전 같지 않다. 인권위는 지난 5월 15일 긴급상임위원회를 열어 이주노동자 위원장 등 이주노동자 2명에 대한 표적 조사 여부 등에 대한 인권위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강제퇴거조치를 유예하는 등 긴급구제조치를 실시할 것을 법무부와 서울출입국관리소장에게 권고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이미 절차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국가공권력 집행을 중단할 수 없었다”며 권고를 무시했다. 인권위의 합법적인 조사권조차 무시한 것이다. 인권위 홍보팀 관계자는 “성 차별이나 장애인 차별은 조·중·동도 쓰지만 이주노동자와 같은 사안은 중대한 사안인데도 잘 받지 않는다”면서 “촛불시위 인권침해 직권조사와 같은 현안이나 교육문제·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등에 대해 인권을 정치로 환원시키려는 과잉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촛불집회 현장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에 대한 인권위의 대응이 늦었다는 비판에 대해 육사무관은 “분명 인권위가 못하는 부분이 있고 비판받을 것은 받아야 한다”고 전제한 뒤 “NGO라면 사건이 발생하면 바로 모여 성명을 내고 활동에 들어가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인권위가 국가기관이다 보니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하나 사실을 확인하고 신중하게 나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현재 정권과 관계 등을 감안해 인권위의 독립성이 위태로운 것은 사실”이라면서 “내년 9월이면 위원장 임기가 만료되는데 사실 인권위에 주어진 시간은 얼마 안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좀 더 현장에 밀착해서 사회적 약자 편에 확실히 서야 독립적 국가기관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이중적이다?
보수층에서는 국가인권위가 좌파 성향의 단체나 시위대만 옹호한다거나, 보편적 인권을 빌미로 월권하는 경우도 많다며 ‘완장 찬 권력’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반면 진보 측에서는 나서야 될 때 침묵하고 최근에 정부의 눈치를 보는 것 같다는 비판하고 정부 부처에서는 인권위의 드라이브가 너무 세다고도 한다. 또한 아직도 인권침해 현장이 너무 많은데 인권위가 이념충돌 현장에만 나타난다는 지적도 피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인권은 이념을 초월한 개념이다. 누구나 갖고 있는, 그리고 삶의 기본권으로 보호받아야 할 인권에는 좌우도, 보수와 진보도 없다. 국가인권위의 안경환 위원장은 “그동안 너무 급속한 압축성장을 하다 보니 인권에 대한 욕구와 기대, 그리고 시각들이 너무 크고 너무 다르다”며 “우리 인권위가 다루는 사안의 95%는 이데올로기가 아닌 일상의 문제, 소소한 개인의 인권들이다. 다만 양심적 병역거부나 국가보안법 폐지의 경우 국제 기준에 맞춰 국내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사실은 인권침해라고 밝혀질 경우 국민정서와 안 맞는 부분도 있겠지만 선진국을 추구하면서 지속적으로 국제사회나 인권기구로부터 지적 받는 사안들에 대한 의견을 제출한 것이라는 말. 특히 국가보안법의 경우 과거에 남용 사례가 너무 많아 국제사회에서 늘 폐지권고를 받아왔다. 일반적으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국가안보가 위협을 받는다고 오해하기 쉬운데 기존의 다른 법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에 대해 국제인권단체인 엠네스티에서 조사관을 파견할 정도로 촛불집회 진압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기도 했다. 진보진영에선 인권위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에 비판도 거세다. 국가인권위는 국가기관으로 성격이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시민단체나 국민들은 국가기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되지만, 국가기관은 정책을 반영해서 시행해야하기 때문에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과 푸는 사람은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가기관으로 문제를 소화할 수 있는 메커니즘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인권위의 결정 사안마다 평가가 엇갈린다
인권위는 강제 권한이 없고 권고 기능만 있어 미온적이라거나 과격하다는 이중적 평가를 받는다. 인권위의 권고는 강제력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오해도 있지만 인권위의 권고 수용률은 76%로 매우 실효성이 높아, 침해사건 수용률은 97%, 차별사건 수용률은 86.9% 정도다.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미온적이라거나 급진적이라거나 판단이 엇갈리게 되므로 인권위는 늘 샌드위치 신세일 수밖에 없다. 한편 인권위가 관여하는 문제들은 이념적인 문제, 혹은 거창한 정치적 사안에 주력한다고 보이는데 사실 인권위의 진정 사례들을 보면 일상 속의 인권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크레파스는 물론 빛깔을 칭할 떄 특정색을 피부색인 살색이라고 명명한 것은 차별이라는 내용은 가나인이 진정한 것데, 언론에 보도된 후 살구색으로 바뀌었다. 또 버스 카드를 사용할 때‘학생입니다’라는 고지는 비학생 청소년에 대한 차별이자 사회적 신분을 동의 없이 고지하는 인권침해라는 진정이 들어와 서울시와 청소년위원회가 곧바로 시정해서 현재는 삑~하고 울린다. 그 밖에도 대출심사 때 성별, 이혼 여부 등으로 신용을 평가하는 것이 차별이라는 진정 역시 조사 중에 피진정기관이 대출해주면서 해결되는 등, 인권위는 우리가 생활에서 겪으면서도 의식하지 못했던 불평등을 해소해하고 있다. 안 위원장은 “인권위가 겨우 7년 전에 탄생했지만 그건 시대의 요구였고 국민들의 힘을 얻어 탄생한 것이다”라며 “당시 어떤 정부, 어느 대통령이었더라도 인권위를 만들었을 것이다. 때문에 그 정부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한다는 것은 오해와 편견”이라고 강조했다. 인권을 찾으려면 개인이건 정부 기관이건 불편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인권위 역시 사람들을 사람답게 살게 해주기 위해 끝없이 타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곳이다. 하지만 제대로 인권에 대한 교육을 받고 바르게 인식한다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인권을 찾으려 할 거고, 그 때 안 찾으면 더 큰 비용을 치를 것이란 걸 알게 된다. 홍보와 교육이 필요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초등학교부터, 아니 유치원부터 누구나 인권 교육을 받아야 하고 또 노인, 장애인, 수감자, 정신지체인 등 소수자들을 위한 인권 교육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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