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을 위한 개헌은 막아야

현행 헌법은 1948년 성립된 제헌헌법을 계승하고 있다. 제헌헌법은 당시의 정치상황과 국제정세, 이념적 편향성 등의 측면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건국과 한국전쟁, 산업화시대와 민주화시대를 거치며 그간 아홉 차례나 바뀐바 있고, 마지막 개헌은 1987년이었다. 20년이 훌쩍 넘긴 시점에서 개헌은 또 다시 정치권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60년 헌정사에 9번의 개헌은 그만큼 파란만장한 정치사를 반영한다. 한 헌법당 평균 6년을 존속한 셈인 우리의 잦은 개헌은 미국과 프랑스 등의 선진국과 비교할 때 매우 빈번한 수준이다. 미국의 경우 1787년에 건국헌법이 제정된 이후 현재까지 15회 개헌이 있었다. 220년간 16개의 헌법이 있었으니까 한 헌법당 약 14년간 존속한 셈이다. 프랑스의 경우 지난 7월 대통령 권한에 대한 개헌이 이루어졌다. 프랑스는 이원집정부제를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개헌이 이루어졌다. 개헌안은 횟수에 제한 없이 연임이 가능했던 대통령의 5년 임기를 중임으로 제한했고, 대통령 1인의 재임 기간이 10년을 넘지 못하게 됐다. 또한 그간 의회의 책임을 총리가 져왔지만 이제 대통령이 책임을 지는 관계로 바뀌었다. 또한 대통령의 의회 출석 및 연설권한을 보장했고, 대통령이 유럽연합(EU) 신규 회원국 가입 안건을 의회 동의 없이 직접 국민투표에 부쳐 국민 동의를 구할 수 있게 됐다. 프랑스 개헌의 경우 대통령의 권한이 강화돼 대통령과 총리가 대내외 통치권을 분점하던 이원집정부제가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프랑스의 개혁을 주도한 사르코지 대통령과 비슷한 시기에 집권을 시작한 이명박 정부에서도 개헌에 대한 논의가 18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가속화 되고 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의장직에 오르자마자 개헌 관련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개헌의 필요성을 내비쳤다. 김 의장은“국정감사, 형식적으로 가고 있는 청문회, 대정부 질문 등은 확 바뀌어야 하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 결산 분리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의원내각제를 실시한다면 총선이 2012년 4월에 있다하더라도 2013년 2월 24일 현 대통령이 물러나고 2월 25일부터 내각제가 시작되며, 대통령제를 실시하면 2013년 2월 25일부터 그대로 하면 된다”고 구체적인 개헌의 방향과 일정까지 거론하기도 했다. 18대 국회가 문을 열었지만 80여일 간 국회 파행을 거듭해온 와중에도 지난 7월 개헌을 위한 초석을 다지는‘미래한국헌법연구회’가 탄생했다. 한나라당 이주영, 민주당 이낙연,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고 의원 167명이 회원으로 참여한 18대 국회 최대의 의원 연구모임인 미래한국헌법연구회는 19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개헌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 물밑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권력구조, 영토조항, 경제분야 아우르는 개헌 필요
현행 헌법이 개정된 지 20여 년이 경과되고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헌법개정의 필요성은 그 어느때보다도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권력구조의 변경이 강조되고 있고, 통일을 내다본 영토조항 개헌도 언급되고 있다. 영토조항과 관련해 논란이 되는 조항은 헌법 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인데, 이 조항대로라면 한반도 전체는 대한민국의 영토이며 한반도 내의 유일한 국가는 대한민국이다. 결국 북한은 국가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에 대해 진보 세력들은‘북한의 실체를 인정해야 하고,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등을 통해 진전된 남북관계를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분야에서도 개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석연 법제처장은 헌법 119조 2항을 비롯한 경제 조항이 자유시장경제를 제약한다며“헌법을 시장경제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19조 2항이 규정한‘균형성장, 경제성장, 소득분배, 시장지배와 경제적 남용 억제, 경제 민주화’등의 헌법 원리의 정당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경북대 신평 교수는“21년간 누적된 국내외적 변화는 현행 헌법을 합리적으로 해석한다고 해서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지적하며“특히 세계화와 민주화 그리고 남북 간 긴장완화로 대표되는 세 가지 현상이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고 말하며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에 다다랐다

▲ 김형오 국회의장은 의장직에 오르자마자 개헌 관련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의원내각제를 실시한다면 총선이 2012년 4월에 있다하더라도 2013년 2월 24일 현 대통령이 물러나고 2월 25일부터 내각제가 시작되며, 대통령제를 실시하면 2013년 2월 25일부터 그대로 하면 된다”고 구체적인 개헌의 방향과 일정까지 거론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제헌헌법의 초안이 의원내각제였다. 이후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대통령제로 변경됐고, 이후 야당이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을 지속적으로 요구한 바 있으며, 4?19 혁명 이후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자 제2공화국의 정부형태는 의원내각제로 바뀌었다. 1961년 군부쿠데타에 의해 약 9개월간의 의원내각제 정부는 붕괴됐고, 약 2년 후에 등장한 제3공화국이 대통령제를 채택한 이후 2008년 현재까지 대통령제가 지속되고 있다. 오랜 기간 대통령제가 지속되어오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의원내각제로의 정부형태 변경에 대해 꾸준히 의견이 제기되어왔고, 개헌이 가시화 되면서 더욱 구체적으로 이에 대한 의견이 드러나고 있다. 아주대 법대 이헌환 교수는“다른 정치적 의도의 존재여부와는 별도로, 의원내각제로 정부형태를 변경하고자 하는 논의의 핵심에는 기존의 대통령제가 권력독식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어서 민주정치의 구현에 장애가 된다는 주장이 가장 빈번하게 제시되었다”고 말했다. 그는“그러나 민주정치의 구현을 위해 의원내각제가 대통령제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은 자칫 존재론적 관점에서의 현상만을 서술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의 권력독식이 가져오는 부작용은 대통령 권력이 막강해지는 만큼 격돌이 벌어지고 극한대치, 장외투쟁, 국회폭력, 국회공전, 파행정국으로 그 양상이 확대되고 심각한 국정 혼란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또한 대통령제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 결점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지역주의와 연결된다. 특정지역과 특정세력에서 대통령이 선출되고 이는 권력과 부, 명예가 특정지역과 세력에 쏠려 지역분열과 이념분열이 조장되고 세력 간 대결이 격화되기도 한다. 이를 막기 위한 전국 정당제도가 있지만 이 역시 지역당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빈번해 이 결점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교수는“대통령의 권력이 막강하다는 것은 결국 책임도 무한책임에 가까울 정도로 막대하다는 의미”라며“행정부관료들의 미흡한 정책집행, 일선 검사들의 수사실수, 주가하락과 아파트분양가 상승, 심지어 장관부인들의 치맛바람 등 일상의 사소한 당파적 정쟁거리도 모조리 정부수반인 대통령 책임으로 돌려진다”고 말했다. 쇠고기 정국을 지나오며 이러한 문제점은 충분히 노출됐다. 세계 경제 침체와 국제 유가 상승 등의 외부적 요인도 함께 수반된 상황에서 국내 물가 상승, 주가 하락 등의 결과들이 속출될 때 마다 결국 마지막엔‘대통령 때문’으로 귀결됐다. 매 정권마다 반복되는 유행어가 될 정도로‘000대통령 때문’이라는 명제는 국민들에게 매우 일상적인 개념이 되고 있다. 이 교수는“이러한 현상들로 인해 사사건건 대통령을 욕하고 들볶는 정쟁의 정치문화 속에서 국가원수가 동네북으로 전락, 그 권위가 철저히 구겨지고 망가진다”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주장하며 100번이 넘는 촛불시위를 강행했던 우리 국민들의 조직적 반대 행위에 국제적인 관심과 시선이 쏠리면서 새롭게 정권을 잡은 보수 정당과 그 출신의 대통령에게 책임을 돌리는 분위기가 국제 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신이 어떻게 작용했을 지는 분명 생각해봐야 하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불법 및 폭력 시위와 정치, 사회적인 갈등으로 인한 행패 등이 우리나라의 국제신용등급 평가에서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가 혼합된 형태
고려대 법대 이준일 교수는“대통령제는 입법부와 집행부의 엄격한 분리와 독립성을 본질적 요소로 한다. 집행부의 수장인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할 뿐만 아니라 임기를 보장받기 때문에 임기 동안은 입법부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입법부가 집행부의 구성과 존속에 참여할 수 없는 것처럼 집행부도 입법부를 해산할 수 있는 권한을 갖지 않으므로 입법부의 존속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대통령제의 장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입법부와 집행부의 엄격한 분리와 독립성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강력한 집행부의 구성을 통해 국정의 안정을 가져올 수 있고, 이러한 국정안정의 효과를 통해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 속에서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국가적 목표의 실현이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통령제의 이러한 장점은 곧이어 단점이 되기도 한다. 대통령의 강력한 권한이 대통령의 독주 또는 독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입법부의 다수당과 집행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속한 정당이 불일치하는 경우 정국은 극한적 대치상황으로 흘러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는 현재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민으로부터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고, 임기를 보장받을 뿐만 아니라 임기 동안은 국민은 물론 국회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 대통령제의 본질상 대통령의 독주나 독재는 이미 예견된 현상이다. 또한 한국에 도입된 대통령제는 장기집권 및 군사정권과 결합되면서 더욱 부정적인 이미지를 축적해왔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가 혼합되면서 대통령에게 헌법개정발의권, 국민투표부의권, 법률안제출권, 헌법기관구성권 등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한국적 대통령제가 대통령의 우월적 지위를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분권형대통령제가 최선인가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당시 특별담화에서"각 당이 당론으로 차기 정부에서 추진할 개헌의 내용과 일정을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제시하고 이것이 합의가 되거나 신뢰할 만한 대국민 공약으로 이루어진다면, 저는 개헌안 발의를 차기 정부와 국회에 넘길 용의가 있다"는 제안을 한 바 있다.
노무현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제왕적 대통령제를 타파하겠다는 의미에서 탈권위주의를 선언하고 그 일환으로 책임총리제 내지 분권형 대통령제로 국정 운영을 하겠다고 선언했었다. 하지만 여러 정치세력들을 통합하지 못했고, 보혁갈등을 초래한 노 대통령은 재신임투표정국을 야기, 탄핵까지 몰고 갔다. 이러한 상황을 거치면서 대통령의 권한행사방법에 대한 헌법적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헌법개정에 대한 논의는 여야간에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시기에 관하여 이견이 있는 정도로 꾸준히 논의되어 왔다. 이헌환 교수는“분권형대통령제는 외교안보를 초당파적 대통령에게 전담시키는 점에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에 낀 반도국가의 지정학적 처지에 일견 적합한 정부제도”라고 말했다. 분권형대통령제를 통해 외교안보의 효율화를 실제로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금의 대통령처럼 내정과 외정, 경제와 군사, 국토개발과 문화발전을 동시에 관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은 내정을 초월하여 외정에만 전념하는 것이다.” 분권형대통령제를 통해 대통령의 권력집중 문제를 해결하고, 국회의 총리의 지위를 격상시키며, 권력형 부정부패와 비리를 소멸할 수 있고, 여야대결과 국민분열을 완화할 수 있고, 국가원수의 권위를 세워 국가를 안정시키고 국력을 결집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제왕적 단임대통령제는 권력집중과 조기 레임덕, 극한 정쟁, 지역갈등, 국민분열, 국정마비, 권력형 부정부패, 식물대통령, 국가 원수의 존엄성 파탄과 국가 중심 소실, 국가불안정과 무질서 등으로 국가 경쟁력을 결정적으로 저하시키는 소모성 정부형태라는 지적에는 정치권에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때문에 대통령제를 청산하기 위한 헌법개정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이준일 교수는“정부형태로서의 대통령제가 의원내각제보다 더 나은 제도인가의 여부는 역사적으로 혹은 이론적으로 비추어 볼 때, 명확히 답하기가 어렵다”며“정부형태에 관한 논의에서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가 서로 배타적인 것처럼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의원내각제는 집행부가 입법부에 의해서 구성될 뿐만 아니라 임기의 보장이 없고 항시적으로 입법부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정부형태이기 때문에 집행부의 수장인 수상이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이기 어렵다. 또한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가 항시적으로 집행부인 내각을 불신임하여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집행부의 무능과 잘못된 정책결정에 대해서 의회는 국민을 대변하여 집행부를 심판하고 퇴진시킬 수 있다.
의원내각제가 제도적 보완을 거쳐 한국사회에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의원내각제에 반대하는 견해가 있다. 한국의 여러 가지 여건과 상황은 의원내각제를 도입하는 데 적합하지 않거나 아직 성숙되어 있지 않다는 주장들이 있다. 정부형태의 변경을 포함한 전면적 헌법개정은 통일 이후에 논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는 의견, 새로운 정부형태의 실험은 정착을 위한 시간과 비용을 생각할 때 설득력이 없다는 점, 의원내각제가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는 점, 통일을 대비한 정부형태로는 대통령제가 적합하다는 의견 등 의원내각제 도입과 더불어 개헌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 역시 난무하다.
이준일 교수는“모든 제도가 그렇듯이 정부형태의 경우에도 절대선이나 절대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며“국가가 처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도 완벽한 제도가 될 수는 없고, 각자가 장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동안 대통령제를 실험해 보았다. 대통령제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파악됐다. 따라서 여기에서 계속해서 대통령제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의원내각제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서 다시 한번 실험해 볼 것인지의 문제가 남는다.

총리 지위와 기능 조정도 필요
국무총리의 지위와 기능 조정에 관한 개헌도 논의되고 있다. 총리는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는‘정치형’,‘화합형’이었다가 민주화 이후에는‘책임형’으로 역할이 요구됐다. 하지만 총리는 국민들로부터 대표성을 부여받지 못하고 대통령에 의해 위임을 받은 역할만 수행하기 때문에 지위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광희 한국행정연구원 국정평가연구센터 소장은“내각제를 도입하면 총리 중심의 정책결정이 이뤄질 수 있지만, 대통령제를 고수하면 부통령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면서“현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다수당 당수가 총리가 되고, 총리의 기능을 합법적으로 부여하는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모형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 민주화 이후 직선 대통령들은 국정운영의 중심을 기존 대통령비서실과 같은 참모조직에서 총리를 비롯한 내각으로 이동시키고자 했으나, 대통령비서실의 영향력은 여전하다고 평가했다. 이 소장은“공식적인 최고 정책결정기구는 국무회의이지만, 실질적인 조정은 관계 장관회의에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면서“대통령비서실은 공약 등 중장기 국정과제에 대한 정책적 보좌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헌 여부 국민 의견은 분분

▲ 한나라당 이주영, 민주당 이낙연,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고 의원 167명이 회원으로 참여한 18대 국회 최대의 의원 연구모임인 미래한국헌법연구회는 19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개헌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 물밑작업에 돌입했다.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김일영 교수는 지난 달 11일 여의도연구소 주최‘대한민국 선진화 어떻게 이룰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건국 60주년 기념토론회에서“대선과 총선을 4년마다 동시선거로 치르고 비례대표 의원은 임기를 2년으로 단축, 대통령 임기 중간에 비례대표를 뽑음으로써 정권에 책임을 묻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지난 달 서울신문에서 실시한 개헌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72.4%가‘민생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일이 많으므로 헌법 개정 논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답했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 구체적인 법안 내용이 논의될 만큼 개헌에 관한 준비가 시작됐다. 국회연구단체‘미래한국헌법연구회’의 공동대표 이상민 의원은“정부형태를 비롯해 기본권, 지방분권, 통일 등 제반 분야에 대한 토론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져 보다 충실한 개헌논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헌은 국회의원 과반수의 발의로 제안된 개헌안이 제안된 날로부터 20일 이상 대통령 명의로 공고되어야 하고,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국회에서 재적의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회의결로부터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쳐진다. 따라서 2010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새 헌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확정하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내년 6월경부터 범국민적 개헌논의를 벌여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신중하고 합리적인 선택이 필요한 시점
개헌은 상당히 위험하고 민감한 문제다. 논의가 본격화되면 자칫 국가 혼란만 초래해 국가 경쟁력을 악화시킬 가능성도 점쳐진다. 개헌의 각 조항마다 진보와 보수, 중앙과 지방 등 이념과 이해가 다른 주체들이 의견을 달리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이명박 정부 5년 임기 내내 개헌 논의에 발목 잡혀 큰 위기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따라서 개헌 논의의 신뢰도를 제고하기 위해서라도 전문가 중심의 심의기구가 필요하다. 성균관대학교 정치경제학 이국영 교수는“민간이 주도하는 기구는 영향력이 제한되기 때문에 대통령 산하에‘헌법개정위원회’가 설치되어야 한다”며“대통령 개인의 관심이 위원회의 구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계기를 방지하기 위해 위원회의 구성은 학계가 위임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의 정부형태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는 단순한 이론적인 논의의 결과로 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한 나라의 기본법으로서의 헌법을 개정한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정치적 행위다. 서강대 헌법학 임지봉 교수는“지금은 차분하게 바람직한 개헌의 방향과 내용에 대해 연구하고 검토할 때”라며“경제상황이 나아지고 민생이 안정되면 그 연구·검토의 결과를 가지고 개헌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한다면 어떤 내용의 개헌을 할 것인지를 국민들에게 묻고, 국민들이 주도하는 충분한 개헌논의과정을 거쳐, 국민이 개헌의 최종적인 모습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둘러 정치권의 주도로‘그들만을 위한, 그들만의 개헌’으로 나아가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헌법개정권자인 국민이 헌법개정을 하겠다는 근본적인 요구가 먼저 있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과 정착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그러나 그 제도의 도입이 장기적으로 볼 때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게 할 수도 있다. 신중하고 합리적인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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