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0여일의 반성문 쓰는 국회

지난 달 19일 18대 국회는 정상화됐다. 개원한지 82일만의 일이다. 국회 원구성의 전제조건인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에 대한 막판 협상이 결국 의원들을 본회의장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달 정기국회를 앞두고 있는 국회는 여전히 매끄럽지 못한 상황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어 하루를 길게 보내고 있는 모습이다.

원구성 합의를 두고 막판까지 진통을 겪었던 사안은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의 내용이었다. 민주당은 애초에 한미 쇠고기 협상을 원천 부정하는 안을 내놓았었는데 결국 민주당이 요구했던 광우병 발생 시 즉각 수입 중단 규정을 마련했고,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 재수입 시 국회 심의를 받도록 하는 것으로 한나라당과 합의점을 찾아냈다. 이 법안을 두고 여야는 20여일간 줄다리기를 벌였고, 합의 바로 전날까지도‘한미 간 쇠고기 협상 결과를 가축법 적용대상에서 예외로 한다’는 부칙을 법안에 다느냐는 문제로 밤늦게까지 설전을 벌였다. 원구성 합의에 있어서는 상임위원장 배분을 당초 안대로 한나라당 11개, 민주당 6개,‘선진과 창조의 모임’1개로 정해졌다. 상임위 배정에서 최대 쟁점이었던 법사위원장은 17대에 이어 야당이 차지했다. 방송통신위원회까지 당당하게 된 문화관광체육위원장은 여당 몫으로 결론지었다. 이로써 여야가 원구성에 합의하면서 파행을 거듭해온 18대 국회가 빠른 속도로 정상화를 되찾는 모습이다. 지난 달 26일 본회의를 열어 18개 상임위원회 및 10개 특별위원회이 위원장을 각각 선출했고, 각 의원들은 상임위별로 배분해 원구성을 마무리했다. 또한 지난 달 20일까지였던 미국산 쇠고기 국정조사 특위 활동시한을 연장해 이틀간 기관보고를 받고 하루는 청문회를 실시하기로 여야는 합의했다. 또한 이달 초 여야는 김황식 감사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와 양창수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실시한 뒤 동의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인사청문회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명된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에 대해서는 원구성 직후 해당 상임위에서 인사 검증을 실시하기로 했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원구성 합의 직후"조세, 금융, 규제 개혁과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 등 4대 과제를 처리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는 9월 정기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과 조세제한특례법, 지방세법, 교통에너지환경세법 개정안 및 예금자보호법을 11일까지 처리하기로 했다.

여야 상임위 구성 완료
원구성 합의가 도출되자마자 한나라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11개 상임위원장을 선출했다. 한나라당은 8명의 단일 후보를 추인하고 경선을 통해 3명의 상임위원장을 선출했는데, 운영위원장은 홍준표 원내대표, 기획재정위원장은 부산 출신의 서병수 의원이 맡았다. 정무위원장은 친박계 여성의원인 김영선 의원으로 정해졌다. 국방위원장에 김학송 의원, 행정안전위원장에 조진형 의원, 국토해양위원장에 이병석 의원도 단일 후보로 나서 추인 받았다. 이어 당내 경선이 치러진 통일외교통상위원장에는 박진 의원, 문화관광체육위원장에는 고흥길 의원, 정보위원장에는 최병국 의원이 뽑혔다. 1년씩 번갈아 맡게 될 예산결산 특별위원장과 윤리특별위원장은 각각 이한구 의원과 심재철 의원이 확정됐다.
민주당 역시 원구성에 돌입했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법사위원장은 유선호 의원이 맡기로 했고, 이로써 거대 여당의 독단적인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교두보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교육과학기술위원장은 김부겸 의원, 농림수산식품위원장은 이낙연 의원이 맡을 예정이고, 여성위원장에는 신낙균 의원이 내정됐다. 지식경제위원장은 이종걸 의원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고, 환경노동위원장으로 정장선 의원이 추인될 전망이다.

일하는 국회 만들려는 국회법 개정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국회의원의‘무노동 무임금’원칙을 담은 국회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국회가 표류할 경우 의원 세비, 보좌관 월급 등도 지급되지 않는 방향을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세비라는 이름으로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돈은 급여나 보수가 아닌‘수당 및 여비’로 분류된다. 여기에 입법 및 특별활동비, 정책개발비를 얹어준다. 그래서 국회의원 보수에 관한 법은 없고‘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이 있는데, 수당 지급의 이유는‘국민에게 봉사하는 국회의원의 직무활동과 품위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실비를 보전하기 위해’라고 현행 국회법에는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18대 국회의원들의 경우 개원 후 81일간 원구성도 하지 않은 채 수당, 즉 세비를 받아간 셈이니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에 홍 원내대표는“국회에도‘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적용하겠다”며 강수를 둔 것이다. 그는 또한“파행을 막고 효율적인 국회 운영을 위해 몸싸움이나 단상 점거가 없도록 이번 정기 국회에서 준비를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여당의 대안에 대해 야당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조정식 민주당 원내 대변인은“여야 합의라는 국회 운영 원칙과 관례를 허물고, 편의대로 운영하겠다는 다수 여당의 횡포”라며“특히 무노동 무임금을 운운하는 것은 야당을 압박하려는 터무니없는 정치 공세”라고 말했다. 일하는 국회라는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한 말뿐이라는 인식도 더러 있어 개정여부와 관계없이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국회의원 1명이 한 해 4억7000만원에 가까운 국고를 축내는 것을 감안하면 이번 국회법 개정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13년 동안 한 번도 체포동의안이 통과된 적이 없어
가까스로 정상화된 18대 국회가 드디어 제 역할을 하는가 했더니 여전히 불안한 상황은 연속이다. KBS 후임 사장 인선,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처리, 한승수 국무총리의 쇠고기 국정조사 특위 출석 및 양상수 대법관 후보자 인사 검증 등 예민한 정치현안들이 즐비해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국회의 분위기는 여전히 고르지 못하다. 여야 정치권은 정국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이 같은 현안들을 두고 재충돌 가능성도 충분하다.
민주당은 지난 달 22일 정정길 대통령실장,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유재천 KBS 이사장과 KBS 후임 사장으로 거론되는 김은구 전 KBS 이사 등이 17일 회동한 것과 관련, KBS 후임 사장 인선에 청와대가 개입한 것이 사실이라며 공세를 펼쳤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KBS 정상화를 위한 모임을 범죄 음모, 방송장악 음모로 몰지 말라고 반박했다. KBS 신임 사장 임명에 관해서는 국회와 청와대 간의 마찰이 예상된다.
지난 달 21일 검찰은 창조한국당 이한정 의원의 공천헌금 의혹과 관련해 문국현 대표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문 대표는 지난 18대 총선 당시 이미 구속된 이한정 의원에게 비례대표 후보 추천과 관련해 6억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문 대표를 반드시 직접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지난 4월부터 최근까지 모두 8차례에 걸쳐 소환을 통보했다. 그러나 문 대표는 소환에 응하지 않았고, 결국 검찰은 문 대표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한 것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회기 중에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법원은 영장 발부 전 국회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회 동의 절차는 필수다. 당사자인 문 대표는 국회 기자회견에서 "정치검찰의 과잉수사는 한반도 대운하를 재추진하고 이재오 전 의원을 정계에 복귀시키기 위한 포석"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서울 은평지역에 문 의원과 함께 출마했다가 패한 바 있다. 창조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는“9번의 소환이라는 문 대표의 깨끗한 이미지를 훼손시키기 위한 정치검찰의 음해성 모략”이라고 비난하며“문 대표는 이미 8차례의 서면조사에 임해 답해야 할 것은 모두 답한 상태이며 방문조사도 가능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여야는 검찰의 발표 직후 모두 체포동의안 처리 문제에 대한 당론을 내놓지 않았다. 당론 없이 소속의원들의 선택에 맡기겠다는 기류다. 문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오는 26일로 잡힌 본회의에 상정될 가능성이 높다. 가결 여부는 예상하기 어렵다. 14대 국회에서 옛 민주당 박은태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이후 13년 동안 한 번도 체포동의안이 통과된 적이 없다. 그래서 부결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한나라당 의원 중 상당수가 '방탄국회'라는 국민적 비판을 의식, 찬성표를 던질 경우 가결될 수도 있다.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면 체포동의안은 통과된다.
이밖에도 공기업선진화 방안과 관련, 야당은 벌써부터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상수도 민간 위탁 경영이 사실상 수도 민영화라며 공세를 퍼붓고 있다. 또 양도세, 종합부동산세 완화와 같은 세제 개편안도 이달 초 발표될 예정이어서 9월 정기 국회를 뜨겁게 달굴 것으로 예상된다. 야당은 정부와 여당이 소수 부자만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는 주장을 이어나갈 전망이다.

여야 모두 국정감사 대비에 열중

18대 국회가 80일이 넘는 기간 동안 공전을 거듭하면서 국민으로부터 받은 성적표는 최악이다. 거대여당인 한나라당은 원구성 합의를 원만하게 이끌어내지 못한 존재감의 문제점을 드러냈고, 홍준표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대표단은 당과 청와대 사이에서 흔들리면서 양쪽 모두로부터 외면 받았다. 원구성 협상안을 두고 그 내용에 대해 청와대가 불만을 제기하고 국회 파행에 대해 홍준표 원내대표와 청와대간 서로 책임을 미루는 듯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또한 총선 과반의석 확보와 더불어 친박근혜 인사들의 복당까지 이루어졌지만 박희태 한나라당대표와 홍 원내대표 체제에서 한나라당은 지난 시간 혼선의 양상을 보여주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조차도 의원총회에서 원내대표단에 노골적인 불만을 제기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국회 정상화 과정에서 민주당 역시 치명적인 결점을 드러내긴 마찬가지였다. 172석 거대여당에 맞선 83석 소수당의 한계를 보인 것이다. 이러한 힘의 한계는 민주당을 다수결이라는 정상적인 과정보다는 무리한 국회 운영으로 이끌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민주당은 원구성 협상과정에서도 가축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이를 원구성과 연계시키는 투쟁전술을 구사했고, 이는 민주당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의 부재에서 온 최선이었지만 결국 과정에서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불안한 리더십 또한 민주당의 숙제로 남겨졌다.
이달에는 18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내정돼 있다. 한나라당은 이번 국감을 노무현 정부 5년간 실정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전략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지난 10년간 우리 한국사회에는 좌편향 정책이 많았다”며“이번 정기국회는 10년 좌파정권의 좌편향 정책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올 하반기에 민생현안은 물론 공공부문 개혁과 각종 규제완화 등에 대해서도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 계획이다. 이에 반해 민주당은 국감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6개월의 실정 공략에 집중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는“한나라당이 독주를 시도하고 있다”면서“그것을 막을 정당은 민주당밖에 없다. 우리가 더 유능해져야하고, 더 열심히 해야 하고, 더 진지하고 성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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