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이 꼽은 ‘올해의 작가’로 선정
지난달 17일부터 오는 15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펼쳐지는 정연두의 개인전 <핸드메이드 메모리즈>는 노인의‘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정연두는 이번 전시를 위해 지난 5월부터 석 달간 탑골공원과 서울노인복지회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처음엔 인터뷰를 기피했던 노인들도 점차 자신의 옛 기억을 펼쳐놓기 시작했고, 그간의 인터뷰들은 6점의 영상작품‘수공기억’으로 재탄생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를 지켜본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정연두는 20년 전 세상을 뜬 남편과 함께 외출을 했다는 할머니를 보며, ‘기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 개인의 삶과, 과거에 대한 회상 속에서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아름다움과 아픔을 환기한다.
정연두는 그간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드나드는 작업을 해왔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이 꿈꾸는 현실과 이상을 작품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러나 그 오묘한 경계는 작품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인위적 배치로 인해 관객들로 하여금 자유로운 해석을 유도해낸다.
한편, 정연두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1년. <보라매 댄스홀>을 통해 일상적 행위와 유희를 담은 퍼포먼스 사진을 선보인 이후, <내 사랑 지니>, <원더랜드>, <로케이션> 등의 작품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2002년 상하이 비엔날레,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와 같은 국제적 전시는 물론 국내외에서 활발한 전시활동을 펼쳐왔다. 이에 2007년, 정연두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꼽은 역대 최연소‘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이때 전시한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의‘모던 먼데이’라는 특별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차례 상영돼 호평을 얻은 뒤, 지난 6월 우리나라 비디오아트 작가로서는 故 백남준에 이어 두 번째로 작품이 소장되는 영광을 누렸다.
또 다른 개인전 준비 차 영국으로 떠나기 하루 전, 전시 개막 후 이제야 조금 숨을 돌린 그를 만나기 위해 국제갤러리를 찾았다.

- 개인전에 대한 특별한 의미보다는, 전시 한 번 한번을 열 때마다 어떤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큰 의미다. 하지만 작가가 아무리 훌륭한 작품을 만든다 하더라도, 만들어지기 전까진 그저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무형지물이기 때문에‘멋있을 것이다, 좋을 것이다’아무리 얘기해봤자 의미가 없다. 그래서 막상 작품을 만들어 처음으로 내놓게 되면‘도대체 무슨 말이 나올까, 과연 정말 반향을 일으킬까, 내가 원하는 대로 보였을까’, 여러 가지 고민들이 생긴다. 결론적으로 좋은 공간이든 나쁜 공간이든 새 작품마다 항상 설레고 기대되는 건 마찬가지다. 특히 이번 전시는 완전히 새로운 시리즈의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라 긴장을 많이 했다.
Q. 이번 전시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 사실 막상 작가가 작품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금방 뭘 만들었다고 파악이 된다기보다는, 당시 워낙 몰두해서 작업을 하다 보니 뒤로 한발 물러나 작품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사전에 작품을 다 만들어 놨었기 때문에 그나마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심적인 여유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여유가 너무 없었다. 전시 직전까지 이렇게 밤을 새가며 무리했던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영국에서 돌아온 뒤 좀 더 시간을 갖고 봐야 객관화될 것 같다.
Q. 그만큼 이번 전시에 애착이 갔던 이유는 뭔가?
- 애착이라기보다는, 사실 내가 만든 작품 중에서‘그래, 완벽하게 완성 됐어’라고 손 털 수 있는 작품들은 어디에 가더라도 잘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힘들고 귀찮아서‘그래, 이 정도면 완성된 거지’라고 생각하면, 그건 어떻게 보면 완성이 된 걸 수도, 안 된걸 수도 있다. 그래도 뭔가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계속 보완해야 하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애착이라기보다는 책임감이다.
Q.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기분은 어땠는지?
- 어렸을 때는 뭘 해도 어리다고 인정을 안 해주니까‘빨리 커서 인정받아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아주 기쁜 일은 아니지 않나. 특히 60대, 70대가 되면‘왕년엔 나도 잘나갔는데, 그 땐 그랬는데’라는 생각에 점점 세상으로부터 소외된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굉장히 복잡 미묘한 감정이 않을까. 그래서인지 노인 분들과 인터뷰를 하는 내내 총체적으로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것을 내 나름의 해석으로 표현하면서 가급적이면 단순히 작업자라는 입장에서 감정의 기복 없이 객관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 한 분 한분 얘기들이 다 다르듯, 능력이 되고 시간이 됐으면 훨씬 많은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다. 평생 침을 놓으셨던 할아버지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데, 아쉽게도 이번 전시에는 포함이 안됐다. 이 할아버지의 경우, 인터뷰마다 자꾸 일이 벌어져서 똑같은 인터뷰를 세 번이나 진행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처음의 팽팽했던 긴장감은 사라지고 얘기가 점차 늘어져 시간상 작품으로 담을 수가 없었다. 인터뷰 내용을 요약하자면, 젊은 시절 관절염으로 앉아서만 지내던 할아버지가 침술을 배워 처음으로 환자를 낫게 한 이야기다. 그간 어찌나 에피소드가 많으셨는지 인터뷰 중 눈시울을 붉히시기도 했다. 아무래도 한약방을 하셨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경험 때문이었는지, 그 할아버지의 인터뷰가 유독 공감을 가져왔던 것 같다.
Q. 이번 전시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없다. 작가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작품을 만든다기보다는, 오히려 관객들이 그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는 작가조차도 작품을 만들면서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만들어 나가게 되고, 한편으론 작가라고 해서 그 작품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약방을 하셨던 아버지로 인해 침을 놓았던 할아버지의 사연이 내 마음에 와 닿았듯이, 관객들 저마다의 경험에 따라 와 닿는 작품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관객들이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다면 충분하다.
Q. 그간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드나드는 작가라는 평에 대해
- 그것은 나를 판단하는 소수의 의견인 것 같다. 아무래도 주변에서 보고 느끼는 것을 소재로 삼기 때문에 현실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고, 그 소재들을 내 나름대로 해석해나가기 때문에 이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닐까. 어쨌든 두 가지 요소는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방법론일 뿐이다. 현실에서 모티브를 찾아 작품을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은, 내가 작품을 제작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공감’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르는 얘기를 꺼내는 것 보다는, 살아가면서 내가 보고 느끼는 것들을 다른 누군가도 생각해봤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런 작품의 구조가 생기는 것이고, 그 공감을 내 나름대로 해석하기 때문에 공감이 예술화되어가는 거라 생각한다. 예술이라는 장르 자체가 공감이 존재하지 않고서는 여타 다른 대중화된 매체들 사이에서 그저 낯설고 어려운 일부 사람들의 전유물로 전락되기 쉽다는 것이 내 나름의 가치관이다.

- 이것 또한 나름의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로케이션>에 인물은 없고 풍경만 등장한다는 것에 의아해했던 것 같다. 그동안 내 작품의 특성을 인물로 생각했던 사람들은 그렇게밖에 해석이 안됐을 수도 있지만, 다른 식으로 해석을 찾아갔던 사람들은 <로케이션>에서도 많은 의미를 발견했을 수 있다. 한편으로, <내 사랑 지니>와 <원더랜드>에서 항상 전후의 두 가지 사진을 선보였었기 때문에, 그동안 내 작품의 특성을 전후 분류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로케이션>에 사진이 딱 하나만 나오니까 낯설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난 이번에 내가 뭔가 성공적인 작품을 하나 만들었기 때문에 다음 작업에서도 그게 종속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즉, 작품이 어떤 틀에서 계속 반복적으로 이루어 진다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맘껏 해나가는 것이 좋다. 흥미로운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나간다 하더라도 수많은 평론가나 관객들이 그 연결선을 명확히 찾아낸다는 것이다.
Q. 사진작업에서부터 영상작업으로의 변화도 연장선인가?
- 한번은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를 영화관에서 상영하겠다고 해서 화들짝 놀랬던 적이 있다. 85분 동안 소리도 없고, 카메라도 움직이지 않고, 심지어 가끔 정지장면도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재밌더라. 어떻게 보면 85분짜리 영상물을 무성영화로 만든다는 생각 자체가 참 사진가적인 발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진의 장기노출처럼 말이다. 한편, <로케이션>의 경우 직접 세트를 만들고 사진을 찍는 작업에서 조각가적인 발상이라고들 했다. 그냥 찾아가서 사진을 찍으면 되는데 왜 굳이 세트를 만드는가 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사진가적 발상에 의한 영상이든, 조각가적 발상에 의한 사진이든, 사진작업이나 영상작업이나 그다지 큰 경계선은 없다고 생각한다.
Q. 지난해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며 백남준의 계보 잇는다는 평을 받았는데
- 올해의 작가라는 것이 내게 준 가장 큰 의미는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라는 작품을 만들어 전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시된 자체도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그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에 의미가 더 크다. 그리고 그저 영상작품을 만들었다는 것 하나로 그런 얘기가 나온 것 같은데, 불과 십몇 년 작업한 나 같은 작가가 그런 대가의 계보를 잇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백남준 작가는 비디오아트를 처음으로 창시한 분이고, 아직 비교할만한 위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가 내가 영상작품답게 만든 첫 작업이라 얘기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지 않나.

- 난 정말 평범하게 자랐다. 뒤늦게 미술을 배웠고, 미술 성적도 항상 중간 이하였다. 그러다 우연히 선배가 쓴 논문을 읽고 무작정 영국으로 떠났다. 처음엔 하는 일 없이 돌아다니기만 하다가, 골드 스미스라는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처음으로 내 작업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당시 영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도 아니었고, 한국에 들어와서도 1년은 새벽반 영어강사를 하면서 작업실도 없이 지냈다. 본격적으로 작품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은 2001년도다. 그 이후로 꾸준히 작업했고, 가급적이면 솔직하게, 그리고 내가 즐기고 관객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20세기 영향인지, 흔히들 예술가라고 하면 특별하고, 괴팍하고, 전설적인 큰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21세기는 작품이 있고, 그래서 작가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무엇을 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스타작가가 있다기보다는 스타작품이 있다고 해야 할까.
Q. 제 2의 정연두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남긴다면?
- 꼭 뭐가 돼야지 하는 것보다는, 지금 안 되니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들을 잘 간직하길 바란다. 막상 기회가 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준비가 안돼서 그 기회를 놓쳐버리는 경우가 많지 않나. 살아가면서 기회는 정말 많이 오게 돼있다. 그러니 항상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잘 지니고 있다가 기회가 왔을 때 잘 만들어내길 바란다. 그렇게만 한다면 사진작가든, 미디어아티스트든 뭐든지 될 수 있지 않을까. NP
이나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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