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적 사회악으로 보는 시선이 반사회적 성격 가속화

교육과학기술부의‘2006년도 학업중단자 현황’에 따르면 중학교는 1만8968명, 고등학생은 2만7930명이 학교를 그만 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해에만 중·고등학교에서 4만6898명이 학업을 포기한 것이다. 이는 전체 중고생의 약 1.22% 수준이지만 반면 재입학률은 10%내외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은둔형 외톨이’는 탈학교 청소년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교육 관계자들은 입시경쟁 등이 치열한 서울 수도권에서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본다. 지난해 서울 지역에서만 1만 명의 10대들이 공교육을 포기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정부는 전체적인 총량만 파악하고 있을 뿐, 탈학교 청소년의 구체적인 현황과 변동추이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국청소년상담원 통계에 따르면 탈학교 청소년들이 학교를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학교·학습 부적응’으로, 학교와 배움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쟁적·획일적·폭력적 학습문화’와 ‘전일제·학기제·주입암기식 학습방식’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서대문청소년수련관이 운영하는 ‘도시속 작은 학교’의 황인국 관장은 현장 경험을 토대로 “2000년초반만해도 탈학교 청소년 발생의 주원인은 가정해체였지만 최근에는 입시경쟁에서 탈락한 아이들이 많다”며 “경제적으로 보면 과거가 극빈층의 아이들이 탈학교화 되지만 최근에는 차상위, 중산층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탈학교 청소년 중 대부분은 ‘히키코모리’
탈학교 청소년에 대한 실태조사는 민간이 운영하는 대안교육 기관이나 몇몇 뜻있는 시민단체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예산과 인력부족으로 인해 실태조사의 절대적인 신뢰성은 부족하지만 현재로서는 탈학교 청소년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서울시 대안교육센터에 따르면 탈학교 청소년 중 대부분은 속칭 ‘히키코모리(사회성 부족으로 온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사람)’가 되거나 피시방에서 하루를 때운다.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는 탈학교 청소년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가정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아이들은 길거리로 나선다. 그러나 가진 돈도, 직업을 얻을 능력도 없는 청소년들에게 사회생활은 ‘가시밭길’이다. 청소년들은 그 또래가 할 수 있는 손쉬운 직업을 택한다. 유흥가에서 취객들을 유흥업소로 이끄는 소위 ‘삐끼’들의 상당수는 10대 탈학교 청소년들이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의 집단생활을 가장 경계한다. 서울의 신림, 청량리 일대의 속칭 쪽방촌에서는 비슷한 처지의 10대 남녀 8~9명이 혼숙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원하지 않는 임신과 폭행 등이 이곳에서 벌어진다. 그러나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급속히 늘어난 성매매이다. 보건복지가족부 청소년보호중앙점검단이 올 4월부터 6월까지 인터넷 모 사이트 채팅방을 집중적으로 조사해 7월10일 공개한 ‘가출·위기청소년들 실태점검’을 살펴보면 사리판단이 미숙한 청소년들이 성매매 피해자로 전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매수자들은 대부분 평균 이상의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직장인들로서 오갈 데 없는 탈학교 청소년들의 처지를 이용, 자신의 욕심을 채웠다. 여성인원중앙지원센터 허나윤 정책팀장은 “우리나라의 온라인 환경을 보면 탈학교 청소년들이 근본적으로 성매매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들에 대한 인권보호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탈학교 청소년’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입시지옥’으로 상징되는 무한경쟁 사회에 있다는 것은 일반 교육기관이나 대안교육기관의 관계자들 모두가 갖고 있는 공통된 인식이다.
학교·학습 부적응 이유로 학교 울타리 넘어
공교육의 궤도에서 벗어난 탈학교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자는 목소리는 2000년도 초입부터 부쩍 커졌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목소리는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이반 일리히(1926~2002)의 저서「학교 없는 사회」를 이론적 토대로 삼고 있다. 일리히는 현대 산업사회가 지닌 비인간화, 물량주의, 소외문제, 양극화 등이 원천적으로 학교제도에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일리히가 참된 세상을 만들자며 역설하는 ‘탈학교사회’는 학교교육의 폐지라는 급진적 생각까지 치닫는다. 우리나라의 소위 탈학교론자들은 일리히처럼 학교교육 자체의 폐지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현재의 학교교육이 학생의 학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학교교육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한다. 21세기 한국의 탈학교론자들은 일리히의 탈학교 이론을 발판삼아 작지만 의미있는 시도를 벌여 탈학교 청소년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도는 60~70년 산업화시대 달동네 등지에서 성행했던 야학의 맥을 이으며 갈수록 메말라가는 우리나라 교육현실에 소중한 습지가 되고 있다. 최근 서울시 대안교육센터와 도시형 대안학교들이 실시하고 있는 ‘징검다리 학습과정’은 대안학교의 문턱조차 넘지 못한 탈학교 청소년을 위해 만든 사실상의 첫 번째 교육과정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 힙합래퍼, 네일아트, 자전거 하이킹, 커피 바리스타, 라디오PD 등 청소년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전문분야의 교사를 초빙해 탈학교 청소년들과 ‘관계’를 맺어주는 것이다. 프로그램 참여과정도 일체의 간섭이 배제됐다. 주최측은 지난 8월 20일 서울 시내 주요 청소년쉼터의 청소년들을 강화도에서 펼쳐지는 ‘바다로 가는 자전거’라는 하이킹에 초대했다. ‘징검다리 학습과정’은 하이킹 참가자들 가운데 교육에 흥미를 가진 아이들의 자발적 지원에 따라 마련됐다. 참가대상은 폭주족부터 가출소녀까지 다양했다. 서울시 대안교육센터 강원재 부센터장은 “아이들이 배우는 것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의 배움의 방식을 재미없어 하는 것이고, 학교가 싫은 게 아니라 전일제 학기제로 운영되는 학교를 다니기 싫은 것”이라고 말했다. 강 부센터장은 “아이들은 학업을 멈춘 것이지 배움을 멈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그 배움의 시작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대학진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반찬 만들기, 오토바이튜닝, 여행 같은 사소한 것에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중고생 가운데 탈학교 청소년의 비중은 약 1.22%. 그러나 이들에 대한 관심은 상위 1%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관심은 커녕 이들을 잠재적인 사회악으로 보는 어른들의 시선은 탈학교 청소년들의 반사회적 성격을 가속화시킨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현수 목사는 “이들이 겪은 고생 혹은 경험을 사회적 자산으로 인정하고 이를 활용하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목사는 “탈학교 청소년, 특히 거리청소년은 사회에서도 극히 소외된 존재들”이라며 “문제를 수학적으로 풀어갈 수는 없지만 이 아이들을 주체화시키고, 스스로 앞장설 수 있도록 우리사회가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학교 청소년 발생의 가장 큰 이유는 무한경쟁 사회
‘탈학교 청소년’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입시지옥’으로 상징되는 무한경쟁 사회에 있다는 것은 일반 교육기관이나 대안교육기관의 관계자들 모두가 갖고 있는 공통된 인식이다. 그러나 교육당국의 탈학교 청소년에 대한 문제의식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전체 청소년 가운데 탈학교 청소년의 비중은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문제점만을 보려고 하면 문제점만 보인다”며 “우리나라의 탈학교 청소년 지원은 선진국에 비해 오히려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교과부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미국 등 선진국의 ‘탈학교 청소년’(혹은 학업 중단자)은 평균 3~4% 선 내외로 알려졌다. 수치상으로 보면 한국의 1.22%는 크게 문제시 될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현장 교육자들의 인식은 다르다. 서울시대안교육센터 강원재 부센터장은 “수치상으로 탈학교 청소년의 비중은 선진국에 비해 낮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대학진학률이 84%에 육박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해야한다”고 말했다. 강 부센터장은 “선진국의 대학진학률은 50% 안팎이다. 이는 굳이 대학을 진학하지 않더라도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가 보장돼 있다는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어떤가? 높은 대학진학률 중도에서 학업을 포기한다는 것은 곧 사회적 소수자로 전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대안교육기관을 운영하는 A씨는 “교과부가 선진국에 비해 높은 수준의 지원을 한다는데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는지 묻고 싶다”고도 말했다. 교과부가 탈학교 청소년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현실 속에서 평생교육권은 보건복지가족부의 몫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복지부의 청소년정책에 대해 일선 교육관계자들은 불신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청소년 정책은 1987년 청소년육성법의 제정을 통해 고유정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후 청소년정책은 ‘주변’신세를 면치 못했다. 청소년정책은 체육청소년부→문화체육부→국가청소년위원회로 연이어 이관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복지부 산하 아동청소년국으로 소관부처가 바뀌었다. 복지부는 2007년 보건복지가족부 백서 제4절에서 ‘청소년 육성정책과 청소년보호정책의 이원화된 정책과 중앙행정조직은 체계적 종합적 정책수행 곤란, 새로운 청소년정책 환경변화에 능동적 대처 미비, 각 부처에 산재한 청소년정책의 총괄·조정역할의 어려움 등의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고 서술해 놓아 그간의 청소년 정책이 문제점이 있었음을 자인하고 있을 정도다.

▲ 서울의 탈학교 청소년 가운데 ‘차선책’이랄 수 있는 대안학교의 문을 두드리는 청소년은 200명 정도에 불과하다.
갈팡질팡 청소년정책, 평생교육권은 어디에
서울의 탈학교 청소년 가운데 ‘차선책’이랄 수 있는 대안학교의 문을 두드리는 청소년은 200명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탈학교 청소년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미미한 수준이다. 교육당국은 공교육의 틀을 벗어났다는 이유로, 지자체는 불량청소년이란 낙인을 찍어 이들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나 대책마련을 주저하고 있다. 가출청소년이 장기화된 형태인 청소년노숙은 기존 노숙인 문제를 뛰어넘는 심각성을 갖고 있다. 여자 청소년들은 성매매 등을 통해 생활비를 벌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성장할수록 공통적으로 반사회적인 경향을 갖게 된다고 지적한다. 물론 청소년단체, 문화단체에 관여하며 재미있는 일을 스스로 찾아다니는 ‘소신형’ 청소년들도 있지만 그 수는 미미한 수준이다. 열린 사고를 지닌 부모를 따라 ‘홈스쿨링(집에서 교육을 받는)’을 하는 청소년들도 있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탈학교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는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 건강한 정신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사회학습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는 그래서 힘을 얻고 있다. 한국청소년상담원 통계에 따르면 탈학교 청소년들이 학교를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학교·학습 부적응’이다. 그 원인은 학교와 배움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경쟁적·획일적·폭력적 학습문화’와 ‘전일제·학기제·주입암기식 학습방식’에 넌더리를 낸 학생들은 거침없이 학교를 떠났다. 탈학교 청소년들이 유일한 대안이랄 수 있는 대안학교조차 찾지 않는 이유는 전일제·학기제로 운영되는 학습 방식이 몸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방치된 탈학교 청소년들을 위해 대안교육 전문가들은 시급히 현재의 대안학교의 일부 기능을 보완한 새로운 교육의 장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NP
저작권자 © 시사뉴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