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위기, 대책은 없는가?

지난 6월말까지 우리나라의 가계 빚은 총 660조 3천억 원.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의 3배가 넘는 수준으로 가구당 평균 약 4천만 원씩 빚을 지고 있는 꼴이다. 대출한 돈을 대출해 갚아주겠다는 이름도 듣지 못한 금융회사에서 매일 전화를 받고 문자를 받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엄청난 이자를 감수하고 대출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은행 문조차 꽁꽁 닫아버려 결국 사채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극단적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저소득층에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가계 위기를 대비해 정부가 은행권으로 돈을 풀었다고는 하지만 정작 그 돈을 써야 할 서민들에게 은행은 쉽사리 돈을 내주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리상승은 부동산 호황을 믿고 주택 구입을 위해 너나 없이 대출을 받았던 서민들에게 막대한 이자를 안겨주었고 끝을 모르고 오르는 대학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들의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게 한다. 1400원대까지 오른 달러, 바닥을 치고 있는 증시와 펀드까지 가계는 지금 외환위기 이후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어렵다 어렵다 하며 다들 아우성이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옛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외환위기도 넘긴 우리나라, 이 위기도 도전 해볼만 하지 않은가?

K모씨(31)는 대학 졸업 시 4.5 만점에 4.33이라는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취업 문턱은 너무나 높았다. 군대 제대 후 복학해서 장학금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지만 너나 할것 없이 학점을 위해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했기에 4.33이라는 높은 점수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 이에 K씨는 학자금 대출을 매 학기 받아야 했고, 기숙사비, 기타 생활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카드론, 현금서비스 등을 이용해야 했다. K씨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카드 회사들은 우후죽순 학생들의 카드신청을 받았고, 이 카드로 안되면 저 카드로 쓰고 다른 카드로 막자라는 생각에 K씨는 나중 일을 생각하지 못한 채 돌려막기를 하다가 결국 졸업 전에 신용불량자로 내몰리고 말았다. 신용불량인 그가 취업하기란 쉽지 않았다. 대출받은 학자금은 어떻게든 열심히 갚으려 했지만 취업도 안 되는 상황에서 그 많은 금액을 갚기란 힘이 부쳤다. 결국 그는 개인회생을 신청했고 현재까지 꾸준히 매달 20여 만원씩 갚고 있지만 한번 찍힌 신용불량자라는 주홍글씨는 금융권에서 쉽게 지워주지 않았고 지금도 은행에 가서 무언가 상담을 할라치면 은행 직원은 친절하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비웃음으로 들린다고 하소연한다. "겨우 취업해서 열심히 갚겠다는 데도 불구하고 신용불량이란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부모님도 늙으셨고 동생들도 자리 잡기 전까지는 지원을 해줘야 하는데 장남으로써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너무 안타깝다. 지금은 대출을 받아도 일정한 급여가 있어서 충분히 갚을 수 있는데 예전 기록 때문에 적은 액수의 대출도 안 된다고 하니 답답하다"고 K씨는 서민을 위한 은행인지 VIP를 위한 은행인지 알 수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 겨우 일자리를 찾아 K씨는 열심히 생활하고 있지만 K씨와 같은 경우를 당한 사람들은 굉장히 많다. 그나마 일자리를 구한 K씨는 운이 좋은 편이다. 일을 하고 싶은 의지가 있으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상황이 좋지 못한 것. 때문에 K씨와 같은 경우이지만 일자리마저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2,30대 청년들에게는 하루하루가 고통이다. 설상가상으로 빚까지 지고 있으면 그 불안한 마음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집값대비 근로자 임금상승 둔화, 주택담보대출 위기
▲ 가계빚 중 주택담보대출의 비중이 크게 늘면서 부동산 시장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지난해 임금근로자의 월 급여 평균은 174만 5000원. 서울 아파트값 평균이 2억 9719만원임을 감안할 때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 기간은 14년 2개월이었지만 2008년 임금근로자의 월 급여가 184만 6000원으로 10만원 오른 반면, 서울 아파트값은 3억 4198만원으로 4479만원이 증가해 결국 내 집 마련 기간은 2007년보다 늘어났다. 서민아파트가 많은 강북권의 내 집 마련 기간이 큰 폭으로 늘었다. 노원구가 3년 1개월, 종로구 2년 8개월, 도봉구 2년 7개월 등으로 각각 늘어 서민들의 부담이 더 커졌다. 반면 강남권은 내 집 마련 기간이 1년 6개월 줄었지만 집값이 워낙 비싼 탓에 강남구에서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26년 6개월이 걸려 사실상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강남권이 평균 1년 정도 줄었지만 비강남권은 6개월이 늘어났으며 몇 년간의 부동산 시장을 보더라도 임금 상승 대비 집값 상승률은 더 커지고 있고, 특히 서민 거주지로 각광받던 저가아파트가 큰 폭으로 올라 그만큼 대출 부담을 안고 집을 살 수 밖에 없어 가계 경제는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6월말까지의 가계빚 660조 3천억 원 중 47%인 307조원이 주택담보대출이다. 은행권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도 48조원에 이른다. 주택시장이 무너진다면 과연 금융시장이 무사할 수 있을까? 건설회사 보유 땅이나 미분양 아파트의 현금 공급, 분양가 바가지 관행도 뿌리뽑는 등 갖가지 대책 마련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 정도의 대책으로 주택시장이 살아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직접적인 주택시장 지원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재정에 의한 대규모 토목사업을 진행해 건설업계도 살리고 경기 침체도 막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자는 주장에 심각하게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제2의 IMF', 서민들에게 더 큰 고통으로 다가와
지난 IMF 경제위기 때 우리 국민들은 금모으기 운동, 아나바다운동 등과 같은 절약운동과 씀씀이를 줄이는 등 아껴 쓰는 생활을 실천했고, 직장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자 근로자들은 임금을 줄이거나 반납하면서 회사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TV 광고 역시 "아빠, 힘내세요!", "여러분, 모두 부자되세요!" 등의 카피를 통해 국민들에게 힘을 실어주었고 결국 우리나라는 IMF를 훌륭하게 극복해낸 사례로 손꼽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 경제 위기는 IMF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동안 이뤘던 경제적 성장에 만족해 국제적인 경제 상황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고 정부는 이 문제의 심각성에 바르게 대처하지 못했던 것. 경제가 살아나자 기업들은 금융 기관에서 많은 돈을 빌려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고 금융기관은 갚을 능력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돈을 빌려 주었다. 또한 해외 여행이 급증했고 사치품의 소비가 늘어나는 등 분수에 맞지 않게 돈을 쓰는 사람이 많아졌다. 지금도 모 백화점 명품관은 이렇게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경제 위기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매출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만큼 경제 위기는 서민들에게 특히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제2의 IMF'라 불릴 정도로 어려운 이 시점에서 가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가계빚을 우선 갚는 것이 급선무이다
가정경제가 위기라는 것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른바 '재정 소방훈련'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생활비가 없어 마이너스 통장을 쓰면서도 막연한 기대심리로 소득공제가 많은 장기주택마련저축에 매달 몇 십 만원씩 붓는 사람들과 무이자랍시고 할부로 카드를 무분별하게 긁는 사람들은 당장 다음달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일 가계 운용에 부담을 주는 고정지출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K씨처럼 가계빚이 많은 사람들은 우선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가계빚부터 갚고 그 후에 단돈 10만원이라도 여윳돈을 만들어 비상통장에 저축해야 한다. K씨는 아직 젊기 때문에 수입 중 절반이라도 강제 저축한다면 훗날 분명히 편해질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며 저축은 6개월이나 1년짜리 적금을 여러 개 만들어 가급적 1년이 넘는 것을 없애야 한다고 권한다. 최근 주식투자로 인해 큰 손해를 보는 이들이 많은데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주식시장보다는 펀드가 그나마 재테크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최근 경제 상황을 볼 때 거치식이 아닌 적립식으로, 올인이 아닌 분산 투자로 돌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또한 가계부 작성을 통해 무모한 재테크를 피하고 적당히 큰 돈이 들어가는 것은 모두 재무 목표로 잡아 라이프 플래닝이란 큰 그림 안에서 세부적인 지출 리스트를 만드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금융회사도 지금의 정책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비록 신용불량자 낙인이 찍혔다 하더라도 현재 재정 상황과 고객의 의지를 고려해 소액대출이나 기타 금융권에 묶인 여러 제한들을 풀어줘야 할 것이다. 그들이 또 다시 제2금융권이나 사채로 내몰리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금융권 역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실물경제위기가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물론 그때까지 주식시장은 오르락내리락 할 것이고, 11월 24일 현재 1513원까지 뛴 환율 역시 쉽게 진정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이 위기가 서민들에게는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마냥 고통으로만 느낄 것이 아니라 서민들 나름대로의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싸인함수의 곡선처럼 한 번 내려간 경제는 다시 올라가는 법이다. 내려갔다고 해서 절망하지 말고 올라갈 날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하는 것이 기본 대책일 것이다. 올라갔다고 해서 흥청망청 써대는 것 역시 지양해야 할 부분이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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